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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화요일> : 과거보다 더 낯선 현실에서 살아가기

낯선 조선 시대에 떨어짐으로써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

2024-03-15 김민경



뒤늦게야 이 작품이 지난 <지금, 만화: 19호>의 ‘이럴 땐 이런 만화’ 코너에서 인생 최고의 SF 만화로 이미 소개되었다는 걸 알았다. 되도록 다양한 작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덕목인 입장으로서 고민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만큼 좋은 작품이고 하고 싶은 말도 있었기에 최초의 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또, 같은 작품에 대한 서로 다른 평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임술년 화요일>은 세 등장인물이 타임머신을 통해 연구 도중 실종된 차 실장이라는 인물을 추적하는 걸 줄거리로 한다. 여기서 인상적인 대목은 타임머신이 어떠한 흥미진진한 모험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으로 조심스럽게 활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들 연구원은 과거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순수하게 관찰자적인 시점을 유지하기 위해 방역을 포함하여 철저히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아니, 그러려고 한다. 쉽지만은 않지만. 



차 실장의 자취를 쫓는 일도 녹록지 않지만, 그보다 주인공들을 괴롭게 하는 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속해있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이다. 그것도 시간 여행이라는 배경과는 전혀 무관한. 희연은 뛰어난 능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그간 비교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단기 임무만을 해왔다.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지원은 매번 제 몫을 하라는 꾸중을 듣거나 연구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공연 휴게실을 전전한다. 이미 승진이 예정된 한규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듯 보이지만, 작중 드러나는 지나치게 인정이 많은 점이나 우유부단한 성격은 과연 한규가 정말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그렇게 차 실장을 찾는다는 임무 아래 자신들이 속하지 않은 시대에 도착한 이들이 겪는 일들은, 동시에 현실에서 겉돌던 세 사람이 각자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부단한 노력 끝에 잡힐 듯 말 듯 했던 차 실장의 행방이 점차 선연해지고 그가 행방불명되기까지의 경위가 밝혀지면서 세 사람의 여정은 결말에 가까워진다. 인상적인 건, 차 실장을 쫓는 궤적에서 희연과 지원, 그리고 한규는 각각 절로 자신의 은밀한 바람을 차 실장에게 투사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육아라는 부담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희연은 차 실장에게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시대에 떨어져 현실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을 읽는다. 혹은 한규의 경우,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평가하고 측은지심을 느낀 나머지 관찰자라는 입장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에 현대의 문물로 사람들을 돕고 이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차 실장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 실장을 현실에서 겉돌던 세 사람에게 있어 구원과도 같은 존재라고 봐야 할까?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작품을 감상할 독자들을 위해 이쯤에서 비밀에 부치도록 하겠다. 다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차 실장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설령 지금 엉뚱한 곳에 떨어진 기분이 들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결코 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감춰두었던 욕망과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길이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함께.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짧게 덧붙이자면, 낯선 현실에 몸담은 이들이 낯선 조선 시대에 떨어짐으로써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며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택한 점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선택이었다고 느껴진다. 


필진이미지

김민경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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