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평안북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독학으로 그림과 만화를 공부했으며, 군복무 중 신병 교육 교재를 만화로 만들면서 만화창작을 시작했다.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등 모범적인 군복무 후 예비역 하사관으로 전역한 뒤 기성만화와 일본에서 흘러 들어온 만화 등을 참고하여 본격적으로 만화를 공부했다.
1955년「허서방」을『야담과 실화』에 연재하며 데뷔했다. 이후《서울신문》,『아리랑』,『삼천리』,『희망』등 여러 매체를 오고가며 활발하게 만화를 연재했다. 1961년「꼴두기」를《대한일보》에 연재했고, 1968년부터「재동이」를 13년간《소년한국》에 연재했다. 1970년 대표작 「꺼벙이」를『만화왕국』에 선보인 후,『소년중앙』으로 매체를 옮기면서 연재를 계속했다.
1971년부터는 또다른 대표작인「순악질 여사」를『여성중앙』에 18년간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계속해서「나원참 여사」,「거북이」,「순악질 남편」,「돌석이」등 다양한 명랑만화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만화의 1세대 작가이자 명랑만화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명랑만화의 계보를 잇는 신문수 작가 및 윤승운 작가 등과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99년「꺼벙이」가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고, 2002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2003년 보관문화훈장, 2006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어워드 대상을 받았다. 폐암 진단을 받고 1997년 이후 창작활동을 중단했다. 2010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력 사항>
1973 중앙일보 편집위원
1979 한국만화가협회 자문위원
1999「꺼벙이」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명예의 전당 헌정
2001「꺼벙이」만화우표 발행
2009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고문직
아동만화자율위원회 심사위원
<작품 활동>
1955「허서방」을『야담과 실화』에 연재하며 데뷔
1959「홀쭉이와 뚱뚱이」를『아리랑』에 연재
1961「꼴두기」를《대한일보》에 연재
1968「재동이」를《소년한국일보》에 13년간 연재
1970「꺼벙이」를『만화왕국』에 연재, 「꺼벙이」를『소년중앙』으로 옮겨서 연재
1971「순악질 여사」를『여성중앙』에 18년간 연재
1973「나원참 여사」를《중앙일보》에 연재
1975「신판 보물섬」을『새소년』에 연재
1977「선달이 여행기」를『새소년』의 부록으로 연재,「쭉쟁이」를『소년 중앙』에 연재
1980「순악질 선생」을『소설문학』에 연재,「순악질 남편」을『주부생활』에 연재
1982「고집세」를『보물섬』에 연재
1985「관철이」를『자연과 어린이』에 연재
1987「코메디 홍길동」을『소년중앙』에 연재
1989「순악질 여사」를《민주일보》에 연재
1994「꺼벙이 만화일기」출간
1995「재동이 만화일기」출간
1997「내친구 쭉쟁이」,「내친구 만복이」출간
2000「꺼벙이」복간,「재동이 만화일기」복간
2010「신판 보물섬」복간 (한국만화 걸작선19)
<전시경력>
2004 부천만화정보센터「길창덕 만화세계 50년, 꺼벙이전」"
<수상>
1981년 색동회상
1999년 '꺼벙이' 부천만화정보센터 명예의 전당에 헌정
2001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공로상
2001년 정보통신부 꺼벙이 만화우표 발행
2002년 출판만화대상 공로상
2003년 한국만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문화관광부 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2006년 제4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어워드 코믹부문 대상
2021년 한국만화가협회 공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