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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왜 AI 웹툰을 보이콧하는가?
2023년 웹툰계에 불어닥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작가(作家)’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란 사전적 정의에 ‘AI를 사용하지 않은’이란 구체적인 조건이 따라붙어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간 AI 기술이 예술 창작계에 불러일으킨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마주하면서도 마음 한쪽 부분에서 우리와는 아직 동떨어진 일이라고 여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생성형 AI가 몇 개의 단어만 던져주면 그럴듯한 완성도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드는 것을 목도하면서 점차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이에 더하여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한 작품의 부자연스러운 작화가 생성형 AI를 활용했을 때 나타나는 오류와 같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 이 웹툰을 제작한 스튜디오는 후보정 작업에서 AI를 사용했다고 알렸다. 변화의 속도는 예측보다 빨랐고 부정적인 여론이 앞섰다. 웹툰 창작 일선에서는 AI 학습과 저작권과 관련된 여러문제들이 제기되었다. 2023년 6월 초에는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 생성형 AI로 만든 웹툰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보이콧 운동이 전개되었다. 특이할 만 한 지점은 지망생을 포함한 예비/기성 창작자들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AI 웹툰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단 것이다. 웹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생성형 AI 웹툰과 이에 따른 문제와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본고에서 다뤄본다.
2023년 생성형 AI와 관련한 사건
2023년 5월 22일 네이버웹툰에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1화가 업로드되면서 이 작품의 배경 소품이 컷마다 바뀌는 점, 손가락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점은 생성형 AI가 이미지를 만들었을 때 자주 보이는 오류였으므로 AI로 만들었단 의 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의견이 공유되면서 웹툰에 최저 수준의 별점이 매겨졌고 댓글의 반응도 신랄했다.
▲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스케치 이미지
비슷한 시기에 네이버웹툰이 진행하던 지상최대 공모전의 출품작이 AI 학습에 동원되는 게 아니냐 는 문제도 잇따라 제기(IT조선(2023.05.24.), 네이버웹툰, 공모전 출품작 AI 학습에 무단 활용 가능성 제기…“논의한 적도 없다”. https://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5/24/2023052402657.html)되었다. 도전만화나 지상 최대공모전에 사용되는 ‘웹툰 크리에이터스’ 플랫 폼은 네이버웹툰 회원에 가입해야 하는데 약관에 ‘회원이 네이버웹툰 서비스에 게재한 콘텐츠를 네이버와 네이버웹툰의 기술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6월 2일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서 AI 보이콧 섬네일이 게시되더니 6월 4일까지 총 61건(동아일보(2023.06.05.), “손가락이 6개, AI가 그린 웹툰 안돼”… 포털에 반대글 봇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605/119619926/1)의 AI 보이콧 게시물이 올라왔다.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마구잡이로 쓰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저작권을 침해당하고 건강한 창작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단 걱정에서 말미암은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들의 흐름과 반응을 살폈을 때 ‘저작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반감의 원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댓글에서도 어떠한 이유로 AI가 그렸다고 의심이 되는지를 밝히는 댓글과 함께 어느 작품을 얼마나 학습했는지 모른다, 일자리나 노력을 빼앗는다, 작가들의 노력을 무시, 모욕했다는 내용에 이어 ‘표절’이란 단어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간 자동채색, 배경 분리 등과 같은 AI 기술을 개발하며 창작자들을 과도한 작업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네이버웹툰의 의도를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이들이 개발한 것은 전적으로 창작을 대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보조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때마침 내세운 글로벌 스토리테크 기업이 되겠단 목표는 누구든 창작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웹툰은 AI로 쉽게 만들라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은 웹툰을 잘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는 창작자와 예비창작자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줄 수 있다.
창·제작 구조의 변화 속 생성형 AI와의 불안한 대면
웹툰은 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PC와 스마트폰의 보급, 인터넷, 모바일, 디지털 툴의 발달 등으로 성장 중인 웹툰계는 20여 년의 짧은 역사 동안 몇 번의 변곡점을 지나쳐 왔다. 웹툰은 콘텐츠 산업의 핵심으로 주목받으며 IP 확장을 시도할 때 바로미터 역할을 부여받았다. 웹툰 플랫폼의 목표가 슈퍼 IP가 될 씨앗을 발굴하는 것, 일단 발굴하면 투자해 어떻게든 더 크게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고품질의 작화 경쟁으로 나아갔다. 전문 웹툰 제작사 들의 분업화된 시스템은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투자 대비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작화의 완성도 경쟁은 심화되었다. 여기에 개인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다.
플랫폼은 오리지널 IP의 중요성을 위시하며 개인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하려 하지만 개인으로 창작하는 웹툰 작가는 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는 건 여전하다. 제작사에서 분업 시스템으로 만드는 고품질 웹툰과 경쟁해야 하는 개인 작가들에게 작업 도우미로서 AI 도구가 쥐어지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높아진 작화의 완성도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에 따른 문제들이 미처 해결되기도 전에 나타난 생성형 AI와의 불안한 대면은 창작자들에게 긍정적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어렵다.
누가 생성형 AI로 웹툰을 만드는가
AI와 관련한 문제들은 스케치업을 웹툰 배경에 도입했던 시기와 종종 비교된다. 이때에도 일각에서는 손으로 그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똑같이 존재하는 배경으로 만든 작품은 웹툰이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스케치업이 배경에 대한 부담을 덜 고 작화의 완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에 이견을 갖는 이는 없을 것이다. 스케치업이 범용적으로 사용된 예시는 창작의 일부분에만 쓰이고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 이질감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는 점에서 가능했다. 더 불어 스케치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당시의 웹툰계는 개인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 졌고 작업량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들이 시나브로 수용해갔다.
▲ 팀 베이아이가 제작한 AI 캐릭터 이미지
현재 생성형 AI를 사용해서 논란이 된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은 노블코믹스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AI 웹툰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베이아이(BEIAI)도 개인 작가가 아닌 팀으로 제작하는 사업체다.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는 주체가 개인 작가가 아닌 사업체 라는 지점이 스케치업의 사례와 다르다. 개인 작가를 과도한 작업량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고 말하지만 개인 작가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 작금의 사태를 일으킨 근원적인 요인이다. 그러므로 이 논란은 작품의 주인은 작가 개인이라는 일반론, 사업체와 개인 작가의 관계를 부정적 학습으로만 인식해 온 한계에서 한 발짝도 진일보하지 못했음을 알린 사건이다.
독자들이 품은 반감의 정체
이번 사건이 특별한 것은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웹툰이 독자들에게도 반감을 불러일으킨단 것을 확인한 데 있다. 생성형 AI로 만든 웹툰에 대한 독자들 반응의 양상을 살피기 위해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베스트 댓글을 살펴본 결과 대체로 두 가지의 의견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AI 웹툰을 수용하는 것은 개인 작가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몇몇 독자들은 작가에게 이입하여 생성형 AI로 웹툰을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와 같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생존의 위협을 당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다른 한 편에서 미숙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용의 댓글도 확인할 수 있다. 연결된 컷에서 같은 배경의 소품이 불일치하거나 손가락 모양, 신체 비율이 어색하다는 ‘작붕’을 사례로 들며 조롱하는 베스트 댓글이 상당수 존재한다. 독자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나 대체노동에 대한 생존의 위협보다 ‘미숙함’일 수 있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아니더라도 연재 중인 웹툰 댓글에서 컷 수 부족, 작화 미숙, 이야기의 부실 등은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모두가 아마추어이자 인터넷 유저였던 2000년대 초반 웹툰 태동의 시기에 소통하기 위해 웹툰을 즐기던 때와는 다르게 현재는 웰메이드에 대한 강박이 서슬 퍼렇게 존재한다. 유료결제로 웹툰을 보기 시작하면서 웰메이드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기준은 높아졌다. 웰메이드 웹툰의 기준은 작화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고품질의 작화는 증가하고 있다. 채색에서 명암을 여러 단계 넣고 컷마다 밀도를 높여 가득 채워진 작화가 근래 웹툰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만 큼 그리지 않으면 부실하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렇기 때문에 AI 기술을 동원해 밀도를 올릴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아직까지는 오류가 있고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독자들의 미숙함에 대한 반감은 AI에게도 통용된다. 만일 스케치업처럼 AI 기술이 웹툰창작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길 원한다면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독자가 AI 웹툰에 바라는 것은 시각적인 스펙터클이 아닌 웹툰으로서의 완성도
독자들이 느끼는 AI에 대한 반감이 미숙함에서 오는 것이라면 작가들이 품은 AI에 대한 반감은 속도감에서 찾을 수 있다. 생성형 AI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감히 따라잡겠단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다양한 AI 도구의 발전 속도 또한 빠르다. 예측이 불가할 정도의 속도감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키운다. 생성형 AI의 창작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하다. 사람이 아닌 AI가 만들어냈다는 점과 그 속도감에서 오는 스펙터클에 우리는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로 찍은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을 처음 본 관객들처럼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영화를 제작하진 못했다. 시네마토그래프를 활용해 영화를 만들어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보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가능했다. 충격적인 스펙터클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웹툰을 통해 얻은 즐거움과 갖가지 감흥들은 온갖 기술을 동원해 만든 작화의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에게도 작화의 밀도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인 웹툰의 완성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그럴듯하게 웹툰의 형식을 빌어 내보이는 것. 독자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2023년 초여름에 부산웹툰센터에서 열린 ‘AI와 예술의 미래’의 강연자로 나선 ‘엘프화가’ 작가는 AI로 만든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므로 독자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자가 AI 웹툰을 보이콧 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근원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를 찾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