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한국만화, 프로듀스의 힘으로 살린다.’
지난 16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뮤지엄 만화규장각 상영관에서 ‘글로벌 코믹스타 컨퍼런스’가 열렸다. 진흥원이 주최하는 국제만화가대회 & 부천국제만화축제(9/15~19) 행사 가운데 하나다.
윤인완 “‘작가 프로듀스 시스템’으로 전환하자”
이날 이른바 ‘마나(MANA) 프로젝트’ 발제자로 나선 것은 윤인완 작가. <아일랜드>, <신 암행어사>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만 10년 넘게 만화 스토리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현재의 ‘작가 1인 체제’ 작품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프로듀서가 보다 적극적으로 붙는 ‘작가 프로듀스 시스템’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표를 시작했다.
작가 혼자 작업을 하면 처음에는 쉬울지 몰라도 연재중에 점차 다양한 난관들을 만나게 되어 결국 ‘퀄리티 불균형’이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그의 주된 논리다. 윤 작가는 이것이야말로 ‘한일 만화의 차이점’을 불러일으킨다고 전했다. 불안정한 제작 환경으로 인해 양질의 작품이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 작가는 이어 “일본 만화에도 역시 문제점은 있고, 매년 3씩 전체 만화책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본 만화계 전문가들이 역시 ‘나올 게 다 나왔고, 만화 내용이 역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오타쿠화하고 있으며, 보수적이고 몰개성한 작품들이 범람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는 것. 일본 3대 만화 출판사들의 판매율 역시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슈에이가 3.1, 쇼각칸이 7.8, 고단샤가 9.8의 판매율 저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윤 작가는 “최근 일본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출판사와 관계없이 활동하는 프리랜서 프로듀서제인 ‘프리-프로듀서’제를 해답으로 내놓고 있고, 우리 만화계 역시 ‘프리랜서 편집자에 의한 작가 관점의 프로듀스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 내 프리랜서 프로듀서들은 <20세기 소년>, <노다메 칸타빌레>, <신의 물방울>, <소년탐정 김전일> 등의 걸작을 탄생시키고 있어 일본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작가만의 고유한 장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음악, 영화 등 만화를 제외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장르들이 프로듀스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유난히 만화만 그렇지 않은 점은 의아해 할 만한 일이다”라며 만화 프로듀스의 시급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첫 ‘마나 프로젝트’로 구상된 것이 바로 ‘글로벌 콘텐츠 공모전’이다. 이 공모전은 한마디로, 한국 작가와 일본 편집자 간의 협업을 골자로 하고 있다. 먼저, 국내 만화가들로부터 소재를 모집하고 1차 심사와 면접, 2차 심사, 화상 편집회의를 통해 원고를 완성하며, 완성된 작품을 한일 만화 매체에 동시 게재되는 방식이다.
이미 지난 7월과 8월 2달 사이 작품들이 접수됐으며, 9월 1일 1차 심사가 있었다. 만화가 이현세, 강풀, 원수연 외에도 영화감독 봉준호가 심사에 나섰다. 만화 및 스토리, 작화 등의 분야에서 각 5명 이내의 작가들이 발굴될 예정.
오는 24일에는 도쿄 고단샤에서 일본측 만화 전문 프로듀서들의 2차 심사가 있을 예정이다. <신의 물방울>, <소년탐정 김전일>로 알려진 키바야시 신을 비롯해 <노다메 칸타빌레>의 카오리 미카미, <몬스터>의 타케시 나가사키 등 일본 만화계를 대표하는 걸출한 프로듀서들이 참여한다.
키바야시 신 “편집자는 만화가와 혼연일체로 작업해야”
2차 심사를 맡고 있는 키바야시 신은 이날 컨퍼런스의 강연자로도 나섰다. 그는 윤인완 작가의 발제에 이어 자신이 20대에 고단샤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일하며 느낀 고충과 깨달음에 대해 강연했다.
키바야시 신
그가 처음 신인 작가와 함께 작업했던 <화이트 앨범>이라는 작품은 인기가 없어 연재 4주만에 연재 중단 위기에 처했었지만, 이후 만화가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자재를 마련해주고, 콘티를 함께 짜고, 심지어 집까지 구해 주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연재 14회만에 1위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아직도 그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면서 그 희열을 만들기 위해 “편집자는 만화가와 혼연일체가 되어 작품을 만들고 인기를 얻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편집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즉, 편집자란 쓴 원고를 받기만 하는 위치가 아니라 함께 기획하고, 물심양면으로 만화가를 돕고 필요하다면 신인 만화가들에게 세상을 알려주는 일 역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화가에게 작품에 대한 모든 책임을 미루거나 만화가와 편집자가 서로를 의심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만화가, 원작자, 편집자 등 다양한 만화계 종사자들은 모두 만화를 함께 만든다는 동지의식을 갖고 함께 일해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은) 시장은 크지 않지만 재능 있는 작가가 많아 다시 만화의 인기가 오르리라 믿는다”면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드는 한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