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일상의 작은 변화,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인유유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는 주인공 송이연이 이혼을 계기로 삶의 주도권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작가 인유유는 여성의 소외, 가정 내 권력 구조, 지역 사회의 현실을 포착하며,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삶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 이혼을 통한 변화의 시작
“중년이 된 나의 모습은 어떨까?”, 작품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 송이연이라는 여성이 있다. 이연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가정폭력과 빈곤 속에서 자라났다. 공장 일과 야간학교를 오가며 청춘을 보내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외도와 폭력에 시달렸다. 쉰 살, 인생의 중턱에서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이혼이 닥친다. 남편 박기호는 12살 연하의 김아름과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나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변변찮은 자가 한 채와 불안한 아르바이트 생활뿐이다. 심지어 단골 미용실에서도 ‘멍청한 여자’라는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 이연은 묻는다. “나는 이제 머하고 살아야 되노.” 하지만 작품은 이혼을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제도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한 변화였지만, 이연은 서서히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삶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프롤로그 中
2. 소외된 일상과 관계 속 깨달음
작품은 일상 속 소외와 미묘한 권력 구조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시작은 1화의 미용실이다. 사장 윤진혜가 자리를 정하고, 가위를 든 손으로 머리칼을 쥐는 동작은 이연을 자연스럽게 옭아맨다. 어느 날, 진혜의 ‘무료’라는 유혹에 이끌려 이연은 골프장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인다. 환대 가득한 사교의 장은 그녀를 ‘쓸모 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비와 착취의 또 다른 그늘이 있다. 그러나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식사 자리에서 구석에 앉아 물과 반찬을 나르던 이연은, 자신이 영어 단어를 몰라도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이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은 곧 "내 자리는 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연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1화, 7화 中
하지만 변화는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동창회에서 우연히 재회한 첫사랑 상현의 다정한 말과 선물 공세에 이연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유부남이었고, 관계의 주도권은 늘 그에게 있었다. 이연은 무의식중에 또다시 의존적인 존재가 되고, 그 의존성은 치명적인 실수를 낳는다. 첫째 딸 유미의 아이 모모를 돌보던 중, 상현과 시간을 보내느라 모모를 차 안에 방치하고 만 것이다. 경찰에 의해 발견된 모모,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유미는 아동 학대 가해자로 몰린다. 이연은 상황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고, 유미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평생 자신이 들어온 말들과 겹치며 그녀를 깊은 자기혐오로 몰아넣는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5화, 7화 中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11화 中
3. 시행착오 속에서 발견하는 진짜 자신
딸을 두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이연은 방황 끝에 다시 골프장 사람들과 필드에 나선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무시당하자, 충동적으로 혼자 있을 때 홀인원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다. 그녀는 홀인원 뒤에 팁, 음식 대접, 기념품 등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는 사실을 몰랐다. 허울뿐인 명예를 둘러싼 이 관습은 자격과 돈 없는 자는 발붙이기 힘든 세계를 드러낸다. 극단의 상황 앞에서 이연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솔직해지려 한다. 운명은 뜻밖에도 그녀 편이었다. 마침, CCTV가 고장 나 거짓은 드러나지 않았고, 이 우연은 그녀 삶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연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겁이 많았는지를 깨닫는다. 사실 세계는 본래 공허하며, 누구나 어딘가 결핍된 채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결핍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가꾸고 살아갈 것인가이다. 달라진 옷차림은 고깃집에서 뜻밖의 대접을 받게 하고, 네일샵에서는 손톱 하나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점차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그녀는 급기야 노후 자금을 꺼내 자신을 가꾸기 시작한다. 이연은 상현과의 부산 백화점 데이트를 통해 자신이 속하지 못했던 화려한 세계를 잠시나마 맛본다. 그녀는 점점 누려보지 못했던 삶을 간절히 원하게 되고, 그 욕망이 진정한 용기로 이어지게 된다. 이연은 딸 유미에게 서툴지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가족 또한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관계이다. 이혼 후 이연이 겪는 모든 시행착오는 결국 자신만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과정이다. 작품은 이연의 가장 큰 결핍이 ‘시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삶’에 있었다고 말한다.
4. '가정'의 사회적 담론화
이연의 자식들 또한 사회의 시선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좌절과 성장통을 겪는다. 첫째 딸 유미는 아파트 커뮤니티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고립되고, 막내아들 천범은 공장에서의 괴롭힘을 홀로 감내한다. 작품은 인물들이 자신과 대립하는 타인을 통해 자기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연에게는 불륜녀 ‘아름’, 유미에게는 커뮤니티의 주도자 ‘미애’, 천범에게는 직장 동료 ‘재학’이 그러한 존재로, 이들은 서로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반사’의 이미지들은 인물들이 흐릿한 자화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또한, 단순한 그림체는 모호한 현실과 삶의 불완전함을 담담히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는 완벽함이란 결국 환상일 뿐임을 일러준다. 결국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주목할 점은 이연이 과연 이를 깨닫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7화, 13화, 18화 中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오랫동안 사적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가정’을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데 있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여성을 ‘주부’라는 이름으로 가정에 가둬왔다면, 이 작품은 이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욕망하고 흔들리며 때로는 더럽고 치졸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솔직하고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소외되어 온 가정과 여성의 서사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작품의 배경이 서울이 아닌 창원이라는 점도 의미 깊다. 생생한 사투리와 구체적 풍경은 수도권 중심 담론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더 다양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는 2025년이 변화와 성찰의 해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작년의 불안한 시기를 지나오면서, 광장에서 소외된 이들이 함께 연대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시대는 거창한 혁명이 아닌, 일상의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웹툰이 전하는 성찰 또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비치는 우리의 현실은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아프게 다가온다.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위로 비치는 흐릿한 자기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