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어반 판타지, <아인>
『아인』, 사쿠라이 가몬

몸에 큰 충격을 받거나, 독을 먹거나, 병에 걸리거나, 너무 많은 양의 피를 흘리거나 하면 사람은 죽는다. 자연의 법칙이자 당연한 상식이다. 이러한 죽음은 우리 삶에서 찾아보기 쉬우면서도, 살아가다 마지막에 한번은 반드시 겪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언제일지 몰라 우리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이러한 두려움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부활 또는 불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죽지 않는다,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상상을 만들어낸 우리는 이러한 개념을 동경하고 꿈꿔오게 된다. 그렇게 불사나 부활을 다룬 작품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사쿠라이 가몬 작가의 아인 또한 이러한 작품 중 하나다.
아인은 만화적으로 보면 상당히 특이하게 연재된 케이스에 속한다. 아인을 완결 낸 사쿠라이 가몬 작가는 원래 아인의 스토리 작가가 아닌 그림 담당이었고, 스토리 작가로 미우라 츠이나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미우라 츠이나 작가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1권만 맡고 작품에서 빠지게 됐다. 보통이라면 이 경우 만화 자체의 연재가 중단되거나 하겠지만, 아인은 독특하게도 2권부터는 그림 작가가 스토리까지 맡게 되어 완결까지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그림체가 흔한 미소년 미소녀 느낌의 눈 큰 그림체에서 극화로 바뀌고, 특유의 개그가 나오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연출법도 많이 바뀌고, 몇몇 설정과 캐릭터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있었으나, 사쿠라이 가몬 작가가 스토리를 맡은 뒤 아인이라는 만화는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아인은 죽지 않는다. 자세히 말하자면 죽더라도 한순간일 뿐, 금방 다시 살아난다. 노화를 제외한 어떠한 방식으로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중독으로 죽을 때 다시 살아나는 과정에서 체내의 독이 사라진다. 몸이 토막 난 채 흩어져 사망하면 가장 큰 부위를 중심으로 다시 살아난다. 만약 신체를 절단한 뒤 먼 곳에 떨어뜨리고 죽으면 부활하는 과정에서 새로 신체가 생성된다. 생성되는 과정에서 신체를 막고 있는 물질은 분해한다. 이러한 신체 생성 능력을 응용해서 ‘검은 유령’이라는 아인 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을 이 작품은 끝까지 활용해 내고, 그러한 활용법을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킨다. 마치 RPG 게임에서 특정 스킬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다양한 활용법을 선보이는 게임 고수의 영상을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이러한 응용법은 1권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작품 초반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1권에선 앞서 설명한 검은 유령을 활용하는 방법을 더 보여주었고, 부활 자체를 사용하는 활용법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스토리 작가가 바뀌면서 아인은 설정을 조금 바꾸게 된다. 아인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아인은 무조건 죽어야 한다. 따라서 아인이 자살을 쉽게 한다면 그때는 능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이에 작가는 두 가지 장치를 선택했다.
첫 번째로, 좀만 훈련받아도 쉽게 사용 가능하고, 이를 자기 자신에게도 써서 자살도 쉬워지는 무기인 총을 택했다. 두 번째로, 자살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인 악역을 넣었다. 여기에 작가의 엄청난 밀리터리 지식까지 더해지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자살해 자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 작품의 메인 악역 ‘사토’가 탄생했다.
사토는 미우라 츠이나 작가가 스토리를 맡았던 1권에선 일본 만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실눈의 흑막형 악역 캐릭터였으나, 사쿠라이 가몬 작가가 이어받은 뒤로 여러 설정이 더해져 변화했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자기 자신도 거리낌 없이 죽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한히 활용한다. 살인부터 테러에 이르기까지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질릴 때까지 한다. 그런 이유에 사연 같은 것 없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뿐이다. 여기에 더해 액션 누아르에선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노년의 고수’라는 설정까지 더해져 사토를 일본 만화에서도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매력적인 악역으로 만들었다. 사토가 하는 행동이 악행임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능력을 활용해 악행을 저지를지 독자가 궁금해지게 만든다.
아인으로서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악역뿐 아니다. 주인공 또한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사쿠라이 가몬 작가는 주인공이 악역과 비슷하게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원래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었단 것과, 정부에 넘겨져 인체 실험을 당해 수십 번은 죽은 뒤로 죽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설정을 넣었다. 덕분에 주인공이 능력 활용을 위해 자살을 반복하더라도 독자가 납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을 활용하는 캐릭터들을 넣어 아인이라는 설정을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면서도, 그 설정을 너무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저 ‘아인은 이런 것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 능력의 자세한 기원이나 능력을 각성하는 과정 등은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가 딱 보여줄 설정만 보여주고, 그 이상은 절제하면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그려진 덕에 아인은 또 다른 음모를 꾸미는 빌런의 등장 또는 새로운 설정의 추가 등으로 연재를 이어나가는 것 없이 박수 칠 때 떠났고, 어반 판타지 만화로서 독자들의 마음을 더더욱 사로잡았다.
거기다 퀄리티 높은 작화와 작품 내에 깨알같이 숨어있는 현실 비판, 어디로 갈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긴장되며 계속 만화를 붙들게 만드는 스토리, 앞서 말한 작가의 밀리터리 지식이 첨가되어 절제되면서도 멋지게 연출된 잔인한 액션, 그리고 남자 독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누아르 연출 등, 수많은 요소가 이 만화를 완성해 웰메이드 어반 판타지 만화로 만들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어반 판타지 만화를 찾는다거나, 잘 짜인 밀리터리 액션을 보고 싶다, 매력적인 빌런을 보고 싶다, 판타지 만화로서 작품 내 설정을 끝까지 최대한 활용하는 만화를 보고 싶다면 아인을 한번 읽어보자.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