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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우리, <눈에 밟힌 발걸음>

눈에 밟힌 발걸음(사이사, 네이버웹툰) 리뷰

2025-06-04 주다빈

우리라는 우리, <눈에 밟힌 발걸음>

『눈에 밟힌 발걸음, 사이사

주인공인 10서선우가 사는 세계는 하루 종일 하얀 눈이 내려 삽시간에 성인 키만큼 눈이 쌓이는 세계. 이따금 파란 눈이 내리고 그 눈을 맞는 사람은 그 색처럼 꽁꽁 얼어붙어 죽어버리는 세계이다. ‘서선우는 그런 세계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유치원생 최이서와 남겨졌다. 혹한에 이서는 독한 감기에 걸리고 선우는 해열제를 구하기 위해 불편한 다리로 눈을 헤치며 집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연락이 끊겼던 부모님의 동사한 시체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을 찾아 나선 이서마저 차가운 시신이 되어 선우에게 돌아온다. 생전 이서와 자신의 부모님을 찾은 뒤 이서를 부산에 있는 부모님께 데려다주기로 약속했던 선우는 부모님의 죽음을 확인하고 이서를 부산 집에 데려다주기로 혼자만의 다짐한다. 부산까지 가는 길을 묻기 위해 친분이 있던 교회에 들렀지만, 친절했던 그들은 선우에게 냉랭한 시선을 보내며 부족한 자원을 나눠야 할 짐덩이로 여긴다. 존재에 대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낀 선우는 교회를 박차고 나온다. 교회 무리에 속해 있던 우찬은 시신을 끌고 부산으로 가겠다는 선우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교리에 배반하는 속물적인 교회 집단의 인간성에 불쾌감을 느끼고 선우를 따라나선다.


눈에 밟힌 발걸음에 내리는 파란 눈은 순식간에 인간을 얼리고 동사하게 만든다. 이 눈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선우는 눈이 닿는 것에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우찬은 그런 선우에게 어느 정도는 맞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며 선우를 밖으로 이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파란은 맞아도 이상증세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우찬역시 그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선우가 말하는 파란은 무거운 것, 혼자 힘으론 도저히 녹일 수 없는 것이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The blues’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는데 눈에 밟힌 발걸음에서 다룬 것만큼 깊은 슬픔과 우울은 아니지만 파랑이란 색이 감정을 나타낸다. 파란색은 희망과 밝은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우울과 냉소처럼 부정적인 의미와도 연결된다. 후기에서 사이사 작가는 파란 눈에 관해 묻는 독자의 질문에 살아가는 데에 있어 크고 작은 파란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을 극복하는 힘도 다릅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얼어붙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파란 눈을 상징적인 불가사의라고 말했다.

24시간 눈이 내리는 세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눈에 밟힌 발걸음이란 언어 유희적 제목을 붙인 작가의 표현 방식을 생각하면 파란은 단순히 색을 의미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이 일다.'라는 관용 표현에서 잔물결과 큰 물결을 의미하는 파란은 순탄하지 아니하며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을 의미한다. 여기까지 단서를 따라가면 처음 작가의 말을 읽을 때, “크고 작은 파란을 대하는 태도를 인물들이 언급하는 파란 눈의 약칭인 파란으로 이해했던 것과 달리 크고 작은 어려움이나 시련으로 읽힌다. 작가는 선우의 입을 빌려 파란은 혼자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서를 집으로 데려다준 뒤 모든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린 선우가 죽음을 결심하고 파란 눈을 맞고 누워있을 때 선우가 구한 이들이 선우를 일으켜 세운다.

전반적으로 우울과 불행, 시련과 연결되던 파란색의 이미지는 이야기 끝에 가서는 가능성과 푸른 미래의 이미지로 대치된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과 생존자들이 사는 마을로 이동한 동네는 세상에서 제일 큰 파랑을 끼고 사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풍요롭지는 않았으나 좌절과 가깝지 않았으며, 바보같이 계속 쌓이는 눈을 치우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선우파란에 좌절하고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끝없이 파랑이 밀려오는 곳에 닿았다고 한다. ‘파랑파란과 달리 시련과 어려움의 뜻을 내포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누가 밀어 보내는 것도 아닌데 저절로 밀려오는 파랑. ‘선우는 기록을 마쳤던 일기장을 들춰보며 아직 장이 많이 남아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곤 이 짧은 여정 속에서 느린 발걸음일지라도 멈추지 않으면 의미가 생긴다고 믿으며, 망가진 자신을 스스로 다시 만들어가기로 한다.

선우의 성장은 우찬없이는 불가능했다. ‘우찬은 이 작품에서 이유 없는 운이나 복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교회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머물렀으며 쉬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선우를 돕고 나아가게 하는 존재, 노란 머리에 붉은 눈으로 타락한 천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마지막엔 미련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다. 신의 사랑이 자신과 함께한다고 믿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한 이 삶에서 우찬으로 그려진 행운은 선우가 버틸 수 없는 절망을 맞닥뜨렸을 때, 홀연히 선우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선우가 스스로 파란을 헤쳐 나갈 만큼 성장했을 때, 조용히 떠난다. 행운은 붙잡아 두고 싶어도 붙잡아 둘 수 없으니까.

14편의 짧은 웹툰을 보면서 아직도 파랑에 덮여 있을 이름 모를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그리고 주인공 선우의 말처럼 눈에 밟힌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중략) 늦지 않게 손을 뻗어 녹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이사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깊은 우울과 슬픔, 절망은 주변에서 끌어내 주지 않는다면 본인 스스로는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눈에 밟힌 발걸음을 놓치지 않고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모두가 앞만 바라보고 남들보다 늦지 않기 위해 헐떡이는 이 사회에서 혹여나 파란에 휩쓸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독자가 계신다면, 부디 당신의 주변에도 당신의 발자국을 우연히 발견해줄 이가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주시길 바란다. 지금 당장 곁에 없을지라도 당신이 그 파랑을 견디고 묵묵히 서 있어 주기만 한다면 언젠가 당신에게 우연처럼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걸 믿어주시길. 그 손을 잡고 파란을 딛고 나왔을 때는 끝도 없이 펼쳐진 파랑이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저의 손을 내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