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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방식이 다른 두 사람, 그 사이의 고양이, <킬러의 집사>

2025 서울국제도서전 선정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리뷰

2025-06-02 전혜정

혼자 있는 방식이 다른 두 사람, 그 사이의 고양이

킬러의 집사, 우태영

망치고 싶은 청년의 정서

우태영의 킬러의 집사는 단순한 설정만 보면 코미디에 가깝다. 전설적인 킬러가 고양이를 기르고 있고, 그 고양이를 돌보는 백수 아르바이트생이 등장한다. 킬러, 고양이,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조합은 익살스럽고 기묘하며, 기본적으로 장르적 톤은 경쾌하고 재치 있게 유지된다. 하지만, 이 만화는 표면적인 개그와 액션 너머에서, 지금 이 시대의 청년이 겪는 감정적 고립과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정을 아주 정교하게 다룬다.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다.

24살의 백수 여주인공 미호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에 있다. 가족과 친구들은 계속해서 묻는다. “요즘 뭐 해?”, “언제까지 이럴 거야?”, “하고 싶은 건 있어?” 미호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없는 자신을 설명할 방법도 없고, 그 상태를 받아줄 사람도 없다. 사회는 청년에게 끊임없이 속도와 방향을 요구하는데, 미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상태 자체로 이미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 미호는 도망치고 싶다. 그냥 조용히,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원한다.

도망친 곳은 가장 위험한 낙원

이런 미호가 맡게 되는 아르바이트는 킬러 강철의 집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다. 그 방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강철의 집은 사람이 없는 공간이고, 말도 없고, 감정도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미호는 그곳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 질문도 없고, 기대도 없고, 비교도 없다. 그녀는 그곳에서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아무 증명도 없이 존재할 수 있었다. 밖에서는 모든 침묵이 해명되지 않으면 비난을 받지만, 그 방에서는 침묵이 그냥 침묵으로 허락된다. 그래서 미호에게 그 집은 유일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허용하는 장소다. 킬러의 집이라는 가장 위험한 장소가, 역설적으로 미호에겐 가장 안전한 장소, 도망칠 곳이 된다. 이 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지 아르바이트 시간이 아니라, 오직 그때에만 허락되는 미호의 감정적 숨구멍이자 정체성의 회복 공간이다.

서로 다른 존재의 병렬

한편, 킬러 강철은 수많은 사람에게 원망받으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곁에 두지 않는다. 고양이를 돌볼 사람에게는 계약서를 전달하는데, 그 안에는 커튼을 열지 말 것, 발코니에 나가지 말 것 같은 항목이 있다. 그러나 미호는 그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커튼을 열고 빛을 들인다. 이 장면은 단지 규칙을 깨는 행동이 아니라, 두 인물이 각각 세상과 맺는 관계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강철은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며 살아간다. 그에게 세상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고, 타인은 잠재적 위협이다. 그는 밤에만 집에 돌아오며, 외부와 철저히 단절될 수 있도록 집을 통제하고 있다. 그는 오로지 비가 오는 날 밤만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반면 미호는 낮에 이 집에 들르고, 공간에 틈을 내 바깥과 연결하려 한다. 그녀에게 세상은 벅차지만, 완전히 닫고 살 수는 없는 곳이다.

미호는 아무리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쪽에 있고, 강철은 너무 많이 겪어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는 쪽에 있다. 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을 밀어내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시각적으로도 명확히 구현된다. 강철은 검은 옷, 검은 머리, 어두운 밤. 미호는 밝은 옷, 탈색한 머리, 햇살 가득한 낮의 시간에 존재한다. 이 둘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 고양이 미영이다. 흑백이 섞인 턱시도 고양이는 두 세계의 색을 모두 품고 있고, 두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작품은 이 고양이를 통해 두 사람의 감정 구조를 병치하며 보여준다. 강철이 나가서 적들과 격렬하게 싸우는 액션 장면의 연출과, 미호가 집 안에서 고양이와 사냥놀이를 하는 장면의 구도는 유사하게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연출 장난이 아니라,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세계에 살면서도 정서적 리듬에서 묘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전투와 놀이, 위험과 일상,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시퀀스로 편집되면서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감정적 병렬을 만든다.

그러나 둘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밤낮으로 분리될 순 없다. 플롯 상 둘은 마주쳐야 한다. 서서히 강철은 미호를 의심하고 마침내 붙잡아 심문한다. 미호가 흘린 음식 가루를 마약으로 오인하고, 미호가 고장 낸 문고리를 침입 시도로 오해한 것이다. 이 장면은 누아르적 연출과 블랙코미디가 겹쳐지며 구성된다. 미호의 무능함을 깨달은 강철은 예외적으로 그녀를 그대로 집에 보낸다. “사장님, 아르바이트는요?” “기다려.” 미호는 오해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살아남았다는 기쁨도 잠시다. 집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외로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지만, 친구들은 미호 빼고 다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호는 다시 쉴 곳이 없어진다.

주변은 여전히 묻는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기회를 잡아야지.” 미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말이 없고, 그런 말을 받아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기다린다. 고양이를 돌보는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비교하지 않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러나 기다려라는 말은 미호에겐 상처다.

초라해. 나만 그대로야. 잘하는 것도 없고,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어. 기다려? 언제까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마침내 미호는 기다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로 한다. 킬러 강철은 그녀를 다시 붙잡을 것인가, 미호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상호 구원을 바라며

킬러의 집사는 아직 1, 이야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미호가 다시 킬러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이야기가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개는 하나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누군가와 연결되지 못해 고립된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아주 미세하게 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명확한 성장도, 빠른 구원도 없다. 하지만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존재를 허락했던 그 거리 안에서, 이들은 어쩌면 각자의 세계에 작은 틈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킬러의 집사는 지금 그 틈의 가능성, 변화 이전의 예감, 연결의 문턱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이 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두 사람의 성장, 개방, 그리고 상호 구원 서사를 액션 코미디로 풀어내는 탁월한 작품으로서 지속해서 전개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