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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것들의 얼굴, <앨리스, 앨리스>

2025 서울국제도서전 선정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리뷰

2025-06-02 전혜정

돌아온 것들의 얼굴

앨리스, 앨리스』, 이공공구

1. 과거 형식의 현재적 부활

이공공구 작가의 앨리스, 앨리스는 단지 정서적 회고에 그치는 옛 순정만화의 재현이 아니다. 이 작품은 과거 순정만화의 문법과 미감을 차용하면서, '잃어버린 것의 귀환'이라는 철학적 정서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존재는 과거의 '그것'이지만, 그것은 원형 그대로가 아니다. 기억 속의 대상이 시간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변형된 형태로' 돌아왔고, 그것은 때로 위로가 아닌 비극으로 전환된다. 이 점에서 앨리스, 앨리스'기억의 환상과 현실의 충돌'을 주요 정서로 한다.

작품 속에서 잃어버린 존재는 연인이나 가족처럼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 귀환은 정화되지 않은 고통의 형태로 돌아오며, 오히려 주인공을 다시 한번 찢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돌아온다'는 것은 구원일까, 아니면 새로운 감정의 고문일까? 우리는 어떻게 잘 잃을 수 있는가?’

2. 「앨리스, 앨리스: 사랑의 시간적 비극

표제작 앨리스, 앨리스는 판타지의 외피를 두른 시간과 기억에 관한 철학적 명상이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아무 소원이 없던 앨리스로부터 시작된다. 그녀 앞에 나타난 악마는 소원을 말하라 했지만, 모든 걸 가졌던 앨리스는 바랄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약혼자 월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앨리스는 다시 나타난 악마를 물리치지 못한다. 월터를 돌려달라고.

악마는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 방식은 앨리스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월터는 앨리스의 뱃속에서 아들 테오로 환생한다. 더욱 잔혹한 것은 앨리스가 더 이상 늙지 않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멈춘 젊은 어머니와 성장하는 아들, 전생의 연인과 현생의 모자라는 이중적 관계는 둘 모두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테오는 성장하면서 젊은 어머니에 대한 부적절한 감정적 끌림에 고통받는다. 그는 결국 도망치듯 집을 떠나 어머니를 다시 찾지 않는다. 평생에 걸친 도망이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자 드디어 앨리스는 아들을 찾아와, 죽어가는 아들의 곁을 지켜본다. 이들의 사랑은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비극으로 남는다.

3. 「기다릴게: 망령이 된 기다림

두 번째 단편 기다릴게는 호러의 문법을 빌려와 더욱 절제된 방식으로 같은 주제를 탐구한다. 반려견을 잃은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던 한 여성이 외딴 시골의 빈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나는 것은 정체불명의 검은 망령이다.

처음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 존재는 침대 머리맡에서 내려다보고, 문을 두드리며 여성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점차 여성은 그 망령의 행동에서 적대감이 아닌 외로움과 애정을 감지하게 된다. 망령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기다림의 끝'이었다.

나중에 밝혀지는 진실은 이렇다. 이 집에서 과거 자살한 전 주인은 한 마리 개를 길렀고, 그 개는 주인을 잃고도 끝없이 기다리다 사라졌으며, 이런 모습이 된 것이다. 이 검은 형체는 죽은 개가 품은 기다림의 의지이다. ‘뭔가 나타날 거라면 죽은 내 개나 나타날 것이지라던 주인공이었지만, 자신이 그 전 주인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이 망령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망령이 귀환시킨 것은 주인이 아니라 기억의 잔상이었고, 여성은 자신이 이 개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망령의 기다림을 품는다. 이는 서로 다른 상실을 가진 존재들이 만나 이루는 기묘한 연대이자, 완전하지 않은 위로의 형태다. 망령이 가져다주는 것은 진정한 만남이 아닌 '기다림의 공유'이며, 이는 상실에 대한 완전한 치유는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것뿐임을 말한다.

4. 침묵의 미학과 정서의 밀도

두 단편 앨리스, 앨리스기다릴게가 짝을 이룬 이중 구조도 탁월하다. 두 작품은 독립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다림의 결과가 현실과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왜곡을 다룬다. 앨리스, 앨리스에서는 기다림의 결과가 비극적 변형으로 다가오고, 기다릴게에서는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스스로 기다림의 끝이 되어준다. 이러한 왜곡은 환상성을 가진다. 앨리스의 월터에 대한 기다림, 망령의 주인에 대한 기다림은 모두 환상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비틀린 환상을 단순하게 비극이라며 부정해 버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환상과 현실이 만나는 경계에서 불완전한 미궁의 틈으로 빠뜨려두는 세련됨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환상 문학의 문법이다.

이 작품이 강렬한 이유는 형식에도 있다. 흑백 2도 인쇄, 스크린톤, 고전적 컷 구성 등 1990~2000년대 출판만화의 양식을 충실히 재현한 이 단편집이 이 단순한 향수나 복고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주제와의 탁월한 연결성에 있다. '잃어버린 형식의 귀환'이라는 메타적 장치를 통해 작품의 핵심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웹툰이 일반화된 현재 만화계에서 이러한 형식적 선택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과거를 아직 차마 애도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적절한 장르와 연출로 펼쳐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를 잃어버렸음에도 끝내 놓지 못한 이들이 겪는 통증은 이공공구 작가의 장면 구성과 연출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대사보다 침묵, 행동보다 정지된 컷이 전하는 감정은, 고전 순정만화의 '멈춤의 미학'을 극대화한다.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다. 두 작품 모두 설명적 대사보다는 침묵, 응시, 몸짓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앨리스, 앨리스에서는 앨리스와 테오가 서로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모자 간의 사랑과 연인으로서의 갈망이 뒤섞인 그 표정들, 기다릴게에서는 망령이 여성을 따라다니며 보여주는 간절함의 몸짓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과거 순정만화가 즐겨 사용했던 '멈춤의 순간', '시선의 교차', '말하지 못하는 감정의 울림' 등이 페이지를 압도하며 노련하게 펼쳐진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차용을 넘어서 그 시대 순정만화가 추구했던 정서적 밀도를 21세기적 감수성으로 되살려낸 성취다.

이렇게 앨리스, 앨리스는 웹툰 시대에 순정만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도로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과거의 형식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이 담고 있던 정서적 깊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순정만화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개인 플랫폼을 통한 단편 발표와 출판이라는 경로는 대형 플랫폼 중심의 웹툰 생태계에서 소외된 작품들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준다. 이는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5. 결론: 귀환의 시학

앨리스, 앨리스는 기억, 상실, 복귀, 애도라는 감정적 궤적을 담아내며, '단편 순정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단지 과거의 오마주가 아니라, 형식과 내용이 하나의 감정 구조로 결합된 현대 순정만화의 실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즉각적 감정 소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정서적 잔향'이 얼마나 오랫동안 독자를 붙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사례다.

앨리스, 앨리스"잃어버린 것은 돌아온다. 다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라는 명제를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증명하는 작품이다. 과거 순정만화 형식의 귀환, 사라진 존재들의 변형된 복귀, 그리고 독자들 기억 속 감정의 되살아남이 하나의 정서적 구조를 이룬다.

앨리스, 앨리스는 상실을 마법처럼 회복시키지 않는다. 되찾는다는 것은 곧 다시 잃는 일이며, 그 되풀이 속에서 남는 것은 결국 어떻게 잘 놓아줄 것인가라는 질문뿐이다. 이 작품은 애도하지 못한 기억이 우리 삶에 얼마나 기이하고 아름답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동화이자, 조용한 이별의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