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野史)와 무사(武士), 그리고 패배자 서사
『비흔』, 황영찬, 정재한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편년체로 적지만, 왕의 업적을 중심으로 한 기전체, 사건 중심의 기사본말체 등 다양한 서술 방식이 존재한다. 역사 교과를 배울 때는 대부분 편년체의 형식으로 배우지만,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같이 인물 단위로 역사를 적는 것도 존재한다. 이것은 서사 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역사라는 무척이나 큰 단위 앞에서 인물이라는 작은 단위로 역사를 적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이러한 작은 인물들은 보통 ‘이야기’로 등장한다. 이전에는 ‘찬기파랑가’와 같은 시였을 수도 있고, ‘숙향전’과 같은 소설일 수도 있었다. 매체와 서술 방식의 변화에 따라 인물 서사는 이어졌고, 현대에는 소설만큼이나 영화나 만화가 인물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되었다. 만화라는 현대의 매체로 과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과거의 역사에서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야사(野史)에 적힌 신비로운 인물을 조명하면 더 흥미롭다. 우리가 김유신에 대해 김유신이 가진 업적보다 김유신이 술을 먹고 말에 태워져 돌아와 정혼자의 집으로 가게 되어 말의 머리를 자른 이야기에 더 주목하듯, 우리는 업적이라는 결과보다 그에 이르는 과정의 정당성과 필연성, 흥미에 주목한다.
<비흔>은 승리자인 신라의 역사가 아닌 패배자인 백제와 고구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특히 각 나라의 무사 집단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신라의 화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싸울아비 등 무사 집단을 중심으로 각자의 특징을 살린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삼국의 대립 구조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물론 조의선인과 싸울아비은 실제로 있던 집단은 아니다. 조의선인은 고구려의 관료 등급인 조의와 선인이 합쳐져 활용된 경우이며, 싸울아비는 일본 사무라이의 원형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실제로는 제일 오래된 문헌이 소설가 이관수의 <이차돈의 사>라는 1935년도 소설이기에 싸울아비의 어휘 자체에 오류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삼국시대와 관련된 자료 자체가 거의 전무하기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부족한 역사적 내용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이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오류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 (왼) 싸울아비 비흔, (오) 조의선인 명림평검
물론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러한 무력 집단의 존재는 특색에 따라 아주 매력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싸울아비가 유행하던 시절 판타지 소설 <싸울아비룬>이나 게임 <리니지>, 영화 <싸울아비> 등 여러 미디어 매체로 등장했는데, <비흔>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망국의 무사라는 설정과 ‘환두대도’라는 무기를 더해, 패배 이후 남겨진 무사 집단과 무기의 비밀이라는 서사가 인상 깊다.


△ (위) <싸울아비> 영화 포스터, (아래) <비흔>에서 등장하는 환두대도의 후계자 '효연'
이러저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승리자인 신라의 기록은 많이 남았지만, 패배자인 백제와 고구려의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다. 기록의 빈 부분은 현대의 사람들이 채워나가야 할 몫이다. <비흔>은 백제 멸망 이후 남아있던 싸울아비 부대가 백제 부흥 운동을 계획하고 부흥 운동과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싸울아비의 대장 비흔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각국의 무사 집단을 통해 전통문화를 보여주며, 잊혀진 집단이라는 설정은 상상력을 자극해 작품의 매력을 더욱 높인다. 결국 잊혀진 무사 집단이라는 점에서, 패배자라는 역사적 결과가 있다는 점에서 종국은 파국을 치닫을 수밖에 없지만, 이야기의 핵심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이 멸망은 아름답게 보일 정도다.
패배자들은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패배자의 발악은 패배자의 최선이다. 흑수련의 우두머리 철안신이 백제를 부흥시키고자 당나라를 이용하고, 2인자인 양운이 철안신을 배신하여 자신의 백제를 세우려는 것은 모두 패배한 뒤 나타나는 발악이다. 철안신이 백제 부흥에 신념을 가지고 있고, 양운이 신라에 복수하려는 마음은 모두 패배했기에 더 절실하다. 오히려 비흔은 망국의 패자로서 결과를 받아들이고 ‘지킴’에 가치를 두며 왕도의 길을 걷는다. 이는 패자의 패배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패배자 서사의 재미는 악인에게 어느 정도의 과정을 부여할 지에 달려있다. <비흔>에서 선인은 크게 신라의 화랑 주효랑, 백제 싸울아비 비흔, 고구려 조의선인 명림평검이 있고, 악인은 흑수련의 철안신을 중심으로 한 양운과 흑사무로 나뉜다. 즉, 선인은 패배자를 인정하려는 승리국과 패배에 승복하는 패배자라는 가치 있는 집단이라면, 악인은 망국의 부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다른 외세를 끌어들여 해결하고자 하는 비윤리적인 집단이다. 당연히 독자는 이 비윤리성을 거부해야 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악인과 그 우두머리의 신념은 서사의 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일본만화 <나루토>에서 가장 매력적인 집단을 꼽으라면 다른 마을보다 ‘아카츠키’가 나오는 것처럼 다양한 악인은 선인보다 더 돋보인다. ‘선은 단순하고 악은 복잡하다’는 말은 곧, 선만으로는 풍부한 서사를 구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 (왼) 악인 집단 흑수련, (오) 만화 <나루토>의 악인 집단 아카츠키
나당 전쟁 직전의 폭풍전야 속에서 흑수련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된다. 부흥 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조의선인이었던 정도비사는 옛고구려 터로 가고, 양운은 복수를 포기하고 당나라의 하위 관료가 된다. 승리자는 기록을 남기지만, 패배자는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 <비흔>은 그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패배자의 자취를 따라간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잊히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슬픔이나 복수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은 오히려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렇게 패배자들의 서사는 세상이 외면하거나 지워버린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도 오히려 더 깊고 진실한 감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은 결국, 단순한 승리의 기록보다도 더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