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스탤지어가 끊임없이 충족된다면
『구룡 제네릭 로맨스』, 마유즈키 준

이 만화가 구룡채성을 배경으로 불법 조직 간의 적대를 그렸다면, 아마 내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구룡채성과 누아르의 조합이 어쩐지 내게는 지나치게 안전한 (혹은 안일한) 선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까, 정말로 내가 궁금했던 건 구룡채성이 실제로 어떤 곳이었는지가 아니라 어째서 구룡채성이라는 공간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을 매혹하는지였던 것 같다.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마유즈키 준이 그리는 구룡의 풍경에는 폭력이나 마약 같은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장르로는 누아르보다는 SF에 가깝지만, 영화 <공각기동대> 속 미래 도시처럼 암울한 디스토피아는 아니다. 대신 <구룡 제네릭 로맨스>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건,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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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의 부동산 업자로 일하는 주인공 쿠지라이. 쿠지라이는 자신이 직장 동료이자 선배인 쿠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사소한 행동이 모두 신경 쓰이기 마련이고, 쿠지라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안경을 쓴 게 낫다는 말에 시력이 좋아졌음에도 블루라이트 차단용 패션 안경을 쓰고, 눈가에 주름이 있다는 놀림에 안티에이징 크림을 챙겨 바른다. 그렇다면 쿠도의 마음은 어떨까? 쿠지라이와 달리, 쿠도의 태도에는 묘한 데가 있다. 줄곧 철없이 굴다가도 수박을 먹은 뒤에 담배를 피우는 쿠지라이에 애틋한 얼굴을 하고, 가까워졌다 싶다가도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며 선을 긋기도 한다. 1권의 결정적인 사건(키스)을 계기로 쿠지라이는 쿠도가 자신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우연한 기회로 그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 쿠지라이는 혼란에 빠진다. 사진 속 사람이 바로 쿠지라이 본인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제목의 제네릭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차례인 것 같다. 제네릭은 제약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주성분이나 함량, 사용 목적 등이 원본 의약품과 동등하게 만들어진 의약품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이렇다. 진통제로 널리 알려진 타이레놀은 사실 미국의 존슨앤드존슨 사에서 개발한, 아세트아미노펜을 성분으로 하는 특정 상품의 명칭이다. 타이레놀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펜잘이나 타이레펜과 같은 유사한 제품들이 출시되었는데 이때 타이레놀은 오리지널 의약품, 펜잘이나 타이레펜과 같은 상품은 제네릭 의약품에 해당한다.
타이레놀과 타이레펜의 관계처럼, 쿠지라이와 쿠도의 사랑에도 뚜렷한 원본이 존재한다. 쿠지라이는 이미 죽은 인물이요, 지금 쿠도와 독자 앞에 존재하는 쿠지라이는 어떠한 환경적 이유로 발생한 클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쿠지라이만이 아니다. 쿠지라이A와 쿠지라이B, 제2의 지구를 만들겠다는 제네릭 테라 프로젝트, 제2구룡채성과 철거된 이후에도 일부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제2구룡채성의 환영, 다이아몬드와 인공 광석 지르코니아…. 작품은 쉴새 없이 많은 제네릭들을 소환한다. 그것을 요구하는 주체는 그리움이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과학과 기술이다.
그렇다면, 그리움이 끊임없이 충족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까? 과거가 생생한 형태를 하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욕망하는 것일까? 처음 넷플릭스를 구독했을 때, 나는 마치 모든 세상을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아깝게 놓쳐버린 수많은 영화와 시리즈물의 목록을 보며 매달 내는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고 과연 이윤이 남을까 기업을 걱정하기도 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며칠이 지나니 금세 심드렁해졌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마구잡이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에 대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움의 감정을 실행 취소하고 과거를 제네릭이라는 형태로 현재에 붙잡아두려는 시도는 내게 꼭 인류가 신에 도전하여 쌓던 바벨탑처럼 느껴진다. 창공을 향해 높이 솟은 탑은 신의 분노를 샀고, 그 대가로 인간과 언어가 제각기 흩어지며 혼돈이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건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부수는 제네릭의 존재는 등장인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쿠도는 쿠지라이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똑같은 얼굴을 한 쿠지라이에게서 자신이 사랑했던 쿠지라이B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절망한다. 제네릭의 존재에 구엔은 섬뜩함을, 유우론은 혐오감을 느낀다. 요우메이는 지르코니아로부터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지만, 미유키는 제네릭이 결코 원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절망감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려고 한다. 작가가 치열하게 그려내는 제2구룡채성의 환영 속 인물들을 보노라면, 바벨에서 수만 갈래로 흩어진 언어들이 역설적으로 수많은 문화가 탄생시켰듯이 제네릭을 둘러싼 이처럼 다양한 입장들이 노스탤지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기대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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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지금, 만화> 17호에 겨울 여행 때 가져가고 싶은 만화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SF를 표방하는 많은 작품이 종종 빠지는 함정으로 (중략) 슬프게도 자신들이 자신 있게 내놓은 세계관과 사회적 통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대답하는 일에는 실패한다.” 나는 <구룡 제네릭 로맨스>가 지금까지 그 함정을 완벽하게 돌파했다고 믿는다. 제네릭이라는 공상과학적 설정이 구룡이라는 배경이나 작품의 주된 정서인 그리움과 완벽하게 조응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낯선 용어들과 흩뿌려진 단서들이 진입 장벽을 높이긴 하지만, 여태처럼 작품이 중심을 잃지 않는 한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을 곁들이며 글을 마무리하자. 워크룸 프레스에서 나온 그래프턴 태너의 『포에버리즘』은 노스탤지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노스탤지어에 대항하는 개념으로서의 영원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원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짧지만 강력한 통찰을 담고 있다. 윗글의 상당 부분 또한 이 책에 힘입어 작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기에 함께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