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브이로그
『김야 브이로그』, 디디
격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 등장한 인공지능 기반의 ‘초연결’ 사물인터넷은 공동체라는 말조차 무색할 만큼 뚜렷했던 언어적, 문화적, 공간적 장벽을 단번에 관통하며, 우리 삶의 연대를 보다 친밀하게 이어주는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유례없는 공감대 형성은 정보의 확장과 더불어 개인의 시야 확장으로도 이어졌고, 다양한 직업군은 일상처럼, 일상은 직업처럼 대담하게 공개되며, 전 세계인 간의 ‘교류 없는 왕래’라는 획기적이면서도 호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신시(新市, 새로운 시장)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긍정적인 문화를 창조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20세기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이념은 이 참신한 시장을 다시금 극단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결과, 금전적 자본이라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 일부 ‘크리에이터’들이 본능적인 폭발에 직면하며 21세기 전반에 걸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김야 브이로그>는 삶이라는 막다른 구석에 내몰린 한 ‘크리에이터’의 사건을 그린 웹툰으로, 영화 <미저리>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지닌 ‘새로운 맛의 스릴러’ 장르를 개척하려는 작가 디디의 각오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비교적 편협해지기 쉬운 공포 스릴러라는 장르 하나만을 고집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역량으로 확장해 나가는 그의 행보는 놀랍기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김야 브이로그>는 여타 공포 스릴러물과 달리, 시점이 매우 제한된 방식으로 특이하게 연출됩니다. 방송 크리에이터로 성공을 꿈꾸는 ‘연서’와 산중 비현실적인 대저택의 주인 ‘김야’, 이 두 사람의 시점 외에는 연서의 쌍둥이 남동생 ‘연웅’과 전자발찌를 착용한 ‘천영묵’ 정도만이 추가됩니다. 물론 후반부에 이들의 시점이 충격적인 반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연웅과 천영묵의 시점만으로는 작품 전체의 시각을 좌우하기에는 다소 미약한 수준입니다. 결국, 지금까지는 연서와 김야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중심축이 되어 작품의 전반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점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전환점은 김야, 혹은 김야의 엄마, 또는 김야의 또 다른 인격일지도 모를 인물 ‘천사’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이 될 것입니다. <김야 브이로그>를 미스터리하게 만드는 핵심은 바로 이 ‘천사’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천사의 탈을 쓴 사악한 존재로서 지금의 김야를 괴이하게 만든 범인이거나, 반대로 진정한 천사의 날개를 지닌 존재로서 김야를 그나마 ‘인간답게’ 만든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전개 흐름상 후자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 천사가 제3의 인물이 아니라 김야의 다중 인격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은연중에 드러나는 김야의 비도덕적인 ‘마스터베이션’ 역시 ‘천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서가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 또한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녀는 ‘촬영’이라는 일반적인 방식과 ‘딥페이크’라는 전문적인 기법을 활용해, 마치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주인공처럼 영상 속 김야의 일상과 현실 속 김야의 모습이 어떻게 뒤틀려 있는지를 추적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김야의 어둡고 깊은 내면, 마치 검은 우물의 바닥 같은 속내를 파헤치는 전 과정을 영상에 담아낼 수 있다면, 연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김야 브이로그’를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개인 채널은 흔히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대박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연서의 ‘갈망’입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각박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직업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에 기반한 평균적인 직업이 아닌, 인터넷 방송이라는 ‘크리에이터’였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연서의 성공에 대한 갈증을 뱀파이어의 목마름에 비유하며, 자본주의에 깊이 물든 인물로 그려지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충분히 누리면서도 그 안의 ‘쓴맛’은 피하고 싶어 하며, 동시에 돈은 쉽게 벌고 싶어 하는 모습, 즉, 노동의 가치를 상실해가며 자극적이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그녀의 직업을 통해 오늘날의 잘못된 경향을 비판하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후로 연서는 작위적인 일상을 버리고, 진심을 담은 야외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육체적 힘과 정신적 노동이 동반된 이 콘텐츠는 개인 채널을 통해 그녀의 가장 사적인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개하는 방식이었고, 이를 통해 교류 없는 왕래라는 획기적이면서도 호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신시가 구성됩니다. 구독자와 후원이 늘어나는 이 장면은 결국 가장 가치 있어야 할 직업적 노동이 배제된 ‘삶이라는 브이로그’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종내에는 행복과 불행 사이의 일상 속에서 진정 ‘노동의 가치’를 깨닫는 크리에이터로 성장한 연서를 내세우며, 이 작품은 <김야 브이로그>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홀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며 그동안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감추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1인 미디어 시대인 지금, 더 이상 ‘나’를 감추는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나’라는 존재를 더욱 부각해 가며 ‘너’라는 타인을 이해하는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명심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연서의 갈망과 김야의 일상도 삶이라는 모태 속에 살포시 내려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앞날에 평화로운 생이 깃들기를 바라며, 오늘도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자문하고 자인하며 묵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