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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아요, 예쁜 마르시아,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마르셀루 킨타닐랴, 이숲) 리뷰

2025-07-22 박근형

울지 말아요, 예쁜 마르시아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 마르셀루 킨타닐랴

*동명의 만화의 음악이 언급되기에 만화는 ≪≫ 음악은 <>로 표기하였습니다.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
연인이 정말 슬퍼하고 있어
뭐 때문에 슬퍼할까
사랑, 잔인한 신
난 한숨조차 몰랐어 당신을 음 만나기 전에는
하지만 당신과 두 눈을 마주친 뒤엔
한숨을 알아 죽음도 알아

_<들어봐, 예쁜 마르시아> 가사 , 만화 본문에서 인용

 

마르시아는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Escuta, formosa Marcia)>를 듣고 있다. ‘Modinhas imperiais’라는 음반의 수록곡이다. 모디냐(Modinhas)18-19세기에 유행했던 포르투갈 음악 장르로,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유입되어 현재 브라질 음악의 뿌리 중 한 갈래를 이루고 있는 장르다.1) ‘19세기 브라질 음악에 관한 연구(“The Lundu and Modinha of Brazil in the Nineteenth Century”, 1966)에 따르면 식민지 브라질에 전파된 모디냐는 살롱음악에서 더 단순한 형태로 변모하면서 낭만적 성격을 가진 대중음악이 되었다.2) 모디냐를 듣다 보면 가사는 몰라도 멜로디가 묘하게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장르가 브라질에 대한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브라질에는 수백만의 흑인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끌려왔다. 노예제는 1888년에서야 폐지되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노예제도를 가장 늦게까지 유지한 나라였다.

그러니까, 여기 마르시아가 있다. 이야기 내내 마르시아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웃을 일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녀가 일하는 병원의 동료들과 환자들은 입을 모아 요새 마르시아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라며 칭찬하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리우의 파벨라는 바람 잘 날이 없는 동네다, ‘무법지대’, ‘빈민가’, ‘갱단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그 파벨라가 맞다. 공권력이 전혀 통하지 않고, 카르텔과 갱단이 실권을 쥐고 있는 곳. 아이들이 자장가 대신 총격을 듣고 자란다는 그곳 말이다.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딸 자클린이 그런 환경에서 비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다. 자클린은 불건전한 관계로 성병에 걸리거나, 마르시아를 엄마대신 마르시아’, ‘자기라고 칭하는 등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인다. 마르시아에게 헌신적인 남자친구 알루이지우가 친아버지 대신 아버지 노릇을 해왔지만, 자클린은 통제 불가능한 시한폭탄이다. 그야, 브라질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파벨라의 젊은이들에게 엇나가는 것 외에 많은 선택지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슬아슬해 보이던 이 유사 가족의 관계는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파벨라의 건달패 트리아농이 지역 민병대의 반강요에 의해, 더 거대한 범죄 조직과 손을 잡고 범죄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클린을 중간책으로 포섭한 것이다.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는 두 가지의 주요 서사를 담고 있다. 하나는 파벨라의 이야기-더 깊이는, 브라질 빈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계 브라질 흑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마르시아 개인의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분명 다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다. 마르시아는 반복적으로 다 내가 망쳤다라고 자신을 책망한다. 자클린이 엇나가는 것, 알루이지우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치젤라가 죽은 것, 모든 것은 다 자신의 탓이다. 그녀의 자책은 죄의식의 감옥을 만들어낸다. 자클린이 교도소로 호송되기 전 마르시아를 만나는 장면에서 정작 교도소로 끌려가는 사람은 마르시아처럼 보인다. 그녀는 매달 10시간씩 걸려 리우데자네이루 옆 이스피리투 산투의 교소도로 자클린을 면회하러 찾아가지만, 자클린은 그녀를 만나주지 않는다. 마르시아가 면회하러 간 것임에도, 교도소 직원에게 면회를 요청하는 장면의 구도는 마치 그녀가 재소자인 것처럼 연출된다. 마침내 자클린이 마르시아의 이름을 명단에 올린 날, 마르시아가 자클린이 기다리고 있는 운동장으로 나아가는 장면은 그녀 자신의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시아가 자클린의 끝없는 일탈과 반항에 대해 자책하는 장면에서 알루이지우는 대답한다. “당신 잘못이 아냐. 누구 잘못이겠어.” 그것은 이어지는 그의 말대로 올해 세금을 얼마나 많이 내야 하는지의 문제와 누군가는 소득세 내는 게 소원인 세상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합해 있다.

리우의 파벨라에서 경찰과 범죄 조직이 총격전을 벌였다는 뉴스를 읽었다. 짧은 뉴스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이날 총격전으로 파벨라 주민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인근 지역 학교 66개가 폐쇄돼 2만 명 넘는 학생들이 학교에 갈 수 없었다.”3) 파벨라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날은 저 날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 날 총격으로 사망한 7명의 범죄 조직원들은 곧 또 다른 파벨라의 청년들로 교체되었으리라. 그 청년들은 아마 총격전으로 학교에 가지 못했던 아이들의 형, 오빠, 언니, 누나이거나, 바로 그 아이들일 수도 있다. 알루이지우와 마르시아의 제보로 파벨라의 범죄 조직이 소탕되었어도 카르텔은 관리자를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할 뿐이고, 가난하고 일이 없는 파벨라의 청년들은 죽은 친구들을 대신해 조직에 다시 착취당한다. 근본적으로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파벨라의 상황은 반복될 뿐이다.

조금 순진한 상상을 해본다. 빈민가에 범죄 조직이 기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2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최대한 자주 갈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같은 만화를 더 많이 읽고 이야기하는 것도.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는 브라질 사회 문제에 대한 만화임과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만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들어봐, 예쁜 마르시아가 가진 힘이며, 2022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이유가 아닐는지.

알루이지우와 마르시아, 자클린은 리우를 떠나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자클린에게는 전과가, 알루이지우에게는 장애가 생겼지만 마르시아는 드디어 웃고 있다. 자클린은 아기 이름을 마르시아로 짓겠다고 했다. 새로 태어날 마르시아는 온 가족의 축복을 받고 자라며 더 많이 웃게 되리라. 잠깐, 잠깐. 버스가 이스피리투 산투에 도착하기 전에 마르시아에게 대답해 주어야 한다.

나 예뻐?”

그럼요, 예쁘고말고요. 사랑스러운 마르시아, 마르시아들이여.




1) 영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참고, 202574일 접속, https://www.britannica.com/art/modinha

2) “The Lundu and Modinha of Brazil in the Nineteenth Century”, Gerad Behauge, 1967년 101, COLLEGE MUSIC SYMPOSIUM, 202574일 접속,

https://symposium.music.org/7/item/1615-the-lundu-and-modinha-of-brazil-in-the-nineteenth-century.html

3) “브라질 리우 경찰, 총격전 끝에 범죄 조직원 7명 소탕”, 장은진, 2024228, 한국일보, 202574일 접속,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56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