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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잘하고 싶을 때: 웹툰 <상남자>

상남자(도가도·하늘소, 네이버웹툰) 리뷰

2025-12-16 최기현

직장 생활을 잘하고 싶을 때 : 웹툰 <상남자>

『상남자』, 도가도·하늘소


직장 생활을 배경으로 하는 웹툰을 읽다 보면 나 자신의 신입사원 시절이 떠오른다.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 상대방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해서 겪어야 했던 일,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과 엮이면서 난처해졌던 사건 들이다. 웹툰 <상남자>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만약 내가 신입사원 시절 <상남자>를 읽었으면 나의 직장 생활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주인공의 서사가 흥미로웠다.

직장 서사를 다루는 웹툰은 이미 충분히 많다. <운명을 보는 회사원>이 사주 보는 능력이 있는 먼치킨 주인공이 독자에게 사이다를 선사한다면, <사서고생>이나 <미생>은 주인공의 먼치킨적인 능력보다는 통찰력으로 회사 생활을 풀어가는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상남자>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직장 생활을 잘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회귀물정도일까?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문장은 <상남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한유현은 성공을 위해 인간관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공은 주변을 내쳐버린,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성공이었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로 회귀해 자신의 직장 생활을 다시 선택할 기회를 얻는다. 설정만 놓고 보면 흔한 회귀물의 문법을 따른다. 하지만 <상남자>가 다른 회귀물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은 주인공이 미래 정보를 독점하여 혼자만 앞서 나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회귀물은 주인공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모든 선택의 우위를 점한다. 경쟁자를 제압하고, 개인의 성취를 극대화하며 결국 서사의 목적은 복수에 수렴한다. 반면 한유현은 사장까지 올라가며 체득한 경험과 미래에서 획득한 정보를 자신이 속한 조직 전체를 성장시키는 데 사용한다. 동료를 성공시키기 위해 상사를 설득하며 때로는 당장의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선택을 감수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동의할 만하다.

<상남자>에서 특히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장면은 초반부에 신입사원 한유현의 면접 장면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 역시도 채용 면접 위원으로 종종 참여할 때가 있다. 채용 면접은 지원자를 대면으로 만나서 서류로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을 질문과 답변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지원자는 서류에 없는 자신의 능력을 어필해야 하고, 면접 위원은 미사여구로 블러핑한 가짜 인재와 진짜 인재를 걸러내야 하는, 그야말로 진검승부의 장소이기도 하다.

지원자에게 1분간 자기소개를 하게 하면 많은 지원자가 비슷한 멘트를 한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라”,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평소에 성격이 무난하다는 평가를과 같은 소개는 진정성과 무관하게 이미 수없이 소비된 형식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된다. GPT가 써준 듯한 입사지원서의 자기소개 멘트도 문장만 다르지,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되풀이된다.



반면 한유현은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소개한다. 그의 첫 마디는 디스플레이는 지금보다 앞으로의 잠재력이 훨씬 더 큰 사업이라 생각합니다”(9)이다. 면접이라는 상황에서 누가 나를 평가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다. “저는 한성 LCD 사업부가 LCD에 머물지 않고 OLED를 중심으로 미래 디스플레이 사업의 주역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9). LCD가 주력이던 그 시절, 아직 개발되지 않은 OLED를 임원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미래에서 확인한 것이긴 하지만, 면접 위원이 가장 고민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내서 꺼낸 통찰력이 돋보인다. 다시 말해 직장에서 중요한 것은 나를 설명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감각이다. 댓글창을 보면 한유현을 따라 해서 채용 면접에 합격했다는 댓글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꽤 재미있는 요소다.



회귀 이후 한유현의 가장 큰 변화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드러난다. 전생의 그는 철저히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과감히 정리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직장 생활에서 그는 다른 선택을 한다. 당장 성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을 챙기고, 조직 안에서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 이 변화는 이상주의적 오지랖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훨씬 효율적인 전략으로 그려진다. 직장 생활에서 쓸모없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관계의 가치는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작품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직장 생활을 하는데 꼭 갖춰야 할 요소이다.

이런 직장 서사가 강하게 공감되는 이유는 웹툰을 읽는 독자의 현실이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은 불합리한 상사, 책임을 회피하는 동료, 성과만을 요구하는 조직 등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나와 다른 빌런이 득실거리는 공간이다. <상남자>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통쾌한 복수와 사이다도 있지만, 독자에게 이 안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주로 상향 리더십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던 시즌 1과 달리, 최근 재개된 시즌2에서는 대리로 승진하면서 전 방향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직장 생활에서 일을 잘하는 개인후임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선임은 다르다. <상남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유연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성실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웹툰 연구에서 댓글의 부정적 영향이 종종 지적되지만, 댓글 또한 웹툰을 완상하는 중요한 요소다. <상남자>의 댓글은 다른 회귀물과 다소 다른 결을 지닌다. 댓글 수는 많지 않지만, 실제 직장 생활의 내공이 느껴지는 반응들이 눈에 띈다. “이 장면, 현실에서는 이렇게 흘러간다거나 이 선택이 장기적으로는 더 낫다라는 식의 의견은 작품을 또 다른 각도에서 읽게 만든다. 웹툰과 독자의 경험이 상호작용 하는 이 지점에서, <상남자>는 웹툰 속 무분별한 댓글 테러와 비교하여 꽤 재미있다.

결국 <상남자>가 직장인 독자에게 주는 가치는 현실적인 위로에 있다. 직장 생활은 늘 힘들다.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전개도 아니고, 한유현처럼 사장의 통찰력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현실 속 모든 일이 웹툰처럼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친 직장인의 삶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볼 힘을 준다는 점에서 <상남자>직장 생활을 잘하고 싶을 때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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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현

만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예술지원팀장 
2020 만화웹툰평론공모전 신인부문 가작
2021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22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