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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새] 독립만화 인터뷰

본 인터뷰는 최근 주목을 받는 독립만화 그룹 칸새를 운영하는 란탄, 김도이, 우야 작가들을 김정영 교수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2025-06-07 김정영

[칸새] 독립만화 인터뷰

인터뷰어(Interviewer): 김정영(연성대학교 웹툰만화콘텐츠과 교수)

인터뷰이(Interviewee): 란탄, 김도이, 우야

2025. 6. 6.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정영 교수 (이하 김교수) : 안녕하세요. 독립만화를 활성화하고, 작가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창작 역량이 존중받는 시대를 만들고 싶은 김정영 교수입니다.

안녕하세요. 만화의 칸과 칸 사이를 뜻하는 칸새는 국내의 독립 출판만화를 한데 모으고 전시, 판매하는 행사입니다. 칸새는 란탄, 우야, 도이 세 명의 창작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칸새 공식 인스타그램과 X 계정 : @kansae_official

 

- 김교수 :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란탄 : 란탄입니다. 작년에는 만화 <뫼비우스 콜렉션>을 냈습니다. 어쩌다 보니 만화 제작 외에도 만화와 관련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 작업 외엔 주로 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우야 : 우야입니다. 한예종에서 애니메이션 전공을 하였고, 만화, 그림, 애니 세 분야로 일을 하고 있어요.

김도이 : 김도이입니다. 만화 <도이만화일기>를 그렸습니다. 만화와 영상 관련 일을 합니다.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교수 : 출판만화 시대에는 독립만화에 대한 움직임들이 있었는데 웹툰만화 산업이 성장하고 시장을 주도 하면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칸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우야 : 저는 출판 시장이 웹툰 산업에 밀려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아요. 다만, 출판만화를 함께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장이 부재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웹툰의 경우 도전만화나 포스타입처럼 자신의 작업을 공개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들이 있지만, 출판만화는 여전히 그런 나눔의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라 느꼈어요. 작품을 만든다는 것, 그 자체로 외롭고 고립되기 쉬운 일인데, 공유할 수 있는 장이 없다면 더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만화를 가르치면서, 데뷔나 생계와 직접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작업을 멈추고 떠나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고. 단순히 시장의 유무보다, 외로움과 연결의 단절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느꼈어요.

뜬금없지만 제가 한때 미니카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오프라인 매장에서 미니카를 조립하며 낯선 사람들과 부품 이야기, 도색 정보, 튜닝 방법 등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느꼈던 일이 있었어요. 그 덕에 한동안 푹 빠져 공부하고 만들고 경기도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 문득, ‘만화도 이런 소통의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칸새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작품을 만든 사람끼리, 만든 결과를 나눌 수 있는 장부터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칸새를 처음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판매보다는 교류와 나눔에 중심을 둔 소규모의 장, 그것이 칸새의 시작이었습니다.

김도이 : 우야님이 독립출판 만화만을 판매하는 마켓을 기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구체화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칸새라는 이름이 정해졌고, 저는 캐릭터를 디자인했어요.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획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란탄님을 추천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란탄님 합류 이후 행사 규모와 방향이 확장되며, 팀이 본격적으로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란탄 : 저는 마지막 합류자입니다. 우선 두 분의 열기가 좋았어요. 앞의 우야님 설명처럼 분명한 기획을 먼저 들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이님의 우야님이 독립출판 만화를 파는 마켓을 만들고 싶대요! 근데 란탄님이 함께하면 좋을 거 같아!”라는 말만 듣고 아무 준비 없이 다짜고짜 모였어요. 그러고선 마켓을 열거라고?! 뭐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면서 두 사람에게 질문을 퍼부은 게 칸새 기획의 시작입니다. 도이와 우야의 열기에 걸맞은 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종종 독립만화가라고 소개될 때가 있는데 독립이라는 단어가 갖는 한계나 모호함이 답답하단 생각도 계속 갖고 있었고요. 자신의 만화를 독립만화라고 지칭하는 사람을 모으고 만나서 대체 독립이란 게 뭐냐?”란 질문을 고민할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교수 : ‘칸새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략 이해가 갈 텐데일반 대중들을 위해서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지었을까요?

김도이 : 처음 우야님이 행사 아이디어를 냈을 때, 이를 구체화하는 자리에서 마침 함께 있던 우야님의 제자 호재쿤이 칸새라는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출판만화 행사라는 성격과 한글 이름이라는 점, 칸과 칸 사이라는 의미가 행사 취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란탄 : 셋이 준비하면서 칸새라는 이름을 정식 공개하기 전까지도 계속 의미를 붙여나갔어요. 칸새라는건 만화 안에서 분명하게 작동하지만 (대부분) 비어있는 시공간을 아우르는 것이고 그 불분명한 성질이 독립만화와 비슷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거나, 시범 행사를 위해 한데 모은 만화책을 쭉 모의 진열하면서 생긴 사이 사이의 공간을 보면서 이것도 칸새다!’라는 발견 등도 재밌는 과정이었어요.


- 김교수 : 칸새는 누가 기획하고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기획은 셋이서 함께 합니다. 기초적인 일정 확정과 모집, 워크숍이나 출장편집부 같은 출품 작가를 위한 프로그램부터 행사장의 내의 사소한 전시 방식까지도 셋이서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조율하며 만들어갑니다. 가끔 상반된 의견을 협의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우리가 만들고 싶은 행사에 이걸 하는 게(혹은 들어가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기준으로 사항을 판가름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체적인 실행과 조율은 란탄이, 비주얼 디렉팅과 그래픽 디자인은 도이가, 공간 디자인과 서적 관리는 우야가 맡고 있습니다.

 

- 김교수 : 칸새는 2회차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규모와 예산, 전체적인 구성을 알 수 있을까요?

24년에 열린 시범 행사와 올해 열린 본행사 모두 무일푼으로 시작했습니다. 올해 열린 1회 행사는 출품 작가에게 1권의 책 출품에 대한 비용 2만 원을 받아 280여만 원의 자금을 마련해 각종 부대비용을 해결하고 행사 공간을 꾸몄습니다. 행사장에는 140여 권의 만화책을 전시·판매했고, 이틀 동안 약 900명의 참가자가 행사에 와주셨습니다. 공간의 쾌적함을 위해 출입 인원을 정해두고, 티켓 예매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는 다소 번거로운 규칙이 있음에도 이른 시간 안에 티켓이 매진되어 준비한 보람을 행사 시작 전부터 느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리플렛 제작을, 플랫폼P에서는 공간 대관을 지원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쪽프레스와 문학동네 만화편집부는 행사장에 직접 오셔서 출품 작가의 만화를 상담해 주는 출장편집부프로그램을 함께해주셔서 더욱 알차게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교수 : 관람객들의 규모와 칸새를 통해서 무엇을 교감하고 싶어 하나요?

란탄 : 알음알음 활동하고 별다른 교류가 없는 독립 만화가들과 이런 만화를 사 모으는 독자를 한데 모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열기까지 겪었던 모든 과정의 밀도가 빽빽했던지라 행사를 끝낸 지금에야 무엇을 느꼈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에요.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 만든 만화에 대한 감정이 엄청났다는 것만 겨우 알아냈습니다.

우야 : 원고 제작에 어떤 과정들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 외 소소한 피드백이나 감상, 말이 아니어도 그 현상 자체를 교감하고 싶었어요.

김도이 : 재밌는 만화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만화를 보고 자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풍경이 좋습니다.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교수 : 독립만화라면 저는 크게 자본으로의 독립, 창작으로의 독립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독립만화는 어떤 개념일까요?

우야 : 저는 독립만화를 *주위의 시선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생각해요.

자본이나 플랫폼에 기대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주변의 회의적 시선이나 기준을 뛰어넘어 자신의 고집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 그 자체가 독립만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걸 왜 하냐?”라고 말할 때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창작을 이어 나가는 태도. 저는 그걸 고집을 넘어선 아집의 결정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의 독립만화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창작자의 태도와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란탄 :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질문에 매번 변덕스럽게 답하는데요. 정말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독립을 했다고 한들 아무도 읽지 않는 만화라면 그건 독립만화로서 기능하는 것일까요? 혹은 만화란 읽힐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는 고루한 말 또한 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타인에 의해 승인되거나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더라도 작가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만화들이 있고, 그런 만화가 갖는 힘이 있거든요. 지금의 저는 그 힘에 가속도든 물리력이든 뭐든 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내 만화도 일면식조차 없던 누군가가 그렇게 해줘서 읽혔으니까.”라는 마음입니다.

 

- 김교수 : 현재 만화계는 대형 만화 제작사나 플랫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다양성도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요. 독립만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원이나 정책 등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세요.

우야 : 사라졌다기보다는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나 주변 작가들의 원고를 보면 여전히 표현 방식이나 주제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이 더 많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학교마다 만화 동아리 활동이 활발했고, 축제 때마다 자율적으로 만든 회지를 교환하며 창작자 간 교류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 기억이 제게도 큰 용기를 줬고, 실제로 그 경험 덕분에 코믹월드 같은 행사도 참여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만화 행사가 상업적인 판매 중심이라 학생이나 아마추어 작가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판매보다는 작품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형 축제나 모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런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대학 중심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만화 교육 공간. 예를 들어 동네 만화 화실이나 열린 클래스 같은 형태들이 생겨나고, 여기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면 정말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김도이 : 양성과 작품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독립만화가 대형 플랫폼에서 다양한 연재 시스템과 마케팅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주간 연재 시스템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교수 : 칸새의 미래 계획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우야 : 미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칸새가 이렇게 조명받은 것에 어안이 벙벙하고 꿈같아서요, 만일 다음도 있다면 지금의 경험을 잘 다듬어 잘 유지해 보는 시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본업이 따로 있다 보니 병행에 어려움이 있어서요.

김도이 :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계획은 없지만, 다음 행사를 열 수 있다면 행사 개최 매뉴얼을 보다 체계화하고, 더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란탄 : 셋이서 이야기하면서도 매번 바뀝니다. 이번 행사 직전에도 서로 지쳐서 에이~ 다음은 없지. 못하지.” “난 다음번엔 진짜 (함께) 못 해같은 얘길 했습니다. 근데 행사 끝나고 며칠 안 가서 앞다투어 다음엔 어쩌자, 대관처는 어쩔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행사장에서 말풍선으로 띄운 대사를 다시 인용해 봅니다. 신일숙 작가님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대사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 김교수 : 칸새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란탄 : 당신이 만화를 그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만화를 그리고 내보이는 두려움보단 기쁨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당신이 만화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만화를 칸새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우야 : 보고 싶어요! 당신의 애증! 고집! 당신의 만화!

김도이 : 지원 없이 행사를 운영하는 건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행사가 열릴 때 함께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재밌는 만화는 주변에 소개해 주세요. 만화가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진심 어린 감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칸새 제공


- 김교수 : 장시간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독립만화에 대한 이해도가 좋아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칸새와 세 분의 미래를 응원하면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칸새 일동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