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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이야기꾼, 고우영

고우영 20주기를 맞아 열린 전시에서는 젊은 세대와 만화 지망생들에게 그의 작품과 유산을 소개하며 예술적 가치를 다시 조명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전시를 기획한 신명환 작가에게 준비 과정과 의도를 들어보았다.

2025-06-07 신명환

우리 시대 이야기꾼, 고우영

_신명환(만화가, 전시기획자, 고우영 대표)


 

2025년은 만화가 고우영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개인적으로는 2001년 스포츠 신문 굿데이가 창간되며 약 1년간 함께 연재했던 인연이 있었는데, 2005년 작고 10주기를 맞던 해, 둘째 고성언 실장으로부터 아버님의 추모전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전시는 '아버지 고우영'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로서의 고우영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같은 길을 걷는 만화가의 시선으로 그의 삶을 돌아보니 매일 연재와 마감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살아온 한 만화가의 고단했던 인생이 보였다.

만화가 고우영에 관해 이야기하면,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과 해학으로 한국 만화사에 깊은 자취를 남겼으며, 고전과 민담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문의 판매량을 끌어올릴 만큼 대중을 사로잡았고, 한국 만화를 성인 대상 일간지 연재의 세계로 이끈 선구자라는 찬사도 뒤따른다. 이렇게 고우영이라는 이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대표 만화가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고우영'이라는 이름을 아는 젊은 독자들은 많지 않다. 고우영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흐르는 동안 만화 환경은 웹툰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제는 "만화=웹툰"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대부분의 독자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면서 고우영의 만화를 접할 방법은 복간된 단행본뿐이며, 결국 기존 팬층 외에는 찾는 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웹툰 작가들은 어떨까? 만화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이름은 들어봤겠지만, 실제로 그의 만화를 읽어본 작가는 얼마나 될까? 이쯤에서 웹툰 1세대와 2세대를 대표하는 강풀, 조석, 주호민 작가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웹툰의 시작과 고우영 만화를 아는 마지막 세대

2002, 강풀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만화들을 모아 낸 지치지 않을 물음표에서 고우영 작가를 존경한다고 밝히며, 그의 캐릭터 창조력과 무한한 다양성에 대해 만화로 표현한 바 있다.

2007년 조석 작가는 화이트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고우영의 삼국지십팔사략을 추천하며 어린 시절, 만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기존 삼국지와는 차별화된 인물 해석이 있어, 원작을 알고 있는 독자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11년 주호민 작가는 프레시안인터뷰에서 돌아가신 고우영 선생님처럼 그리려고 노력한다. 특히 신고전열전놀부전을 좋아한다라며, “그분의 만화는 술술 읽힌다. 일본 만화처럼 과장된 연출을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크기의 네모 칸들이 연속되어 친근하다. 보수적인 방식 같지만 매우 쉽게 읽힌다. 만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많은 이들이 고우영의 만화를 언급했지만, 이처럼 웹툰 작가들의 사례를 따로 모은 이유는 이후 세대에서는 그런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강풀, 조석, 주호민 작가처럼 십 대 혹은 이십 대에 신문 연재나 단행본을 통해 고우영의 만화를 접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가 지나고, 이후 세대는 웹툰을 읽으며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다. 고우영의 만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시점에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학교 내 만화도서관의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을 하고 재개관을 기념해 전시를 제안해 왔다. 전시의 성격을 고민하던 중, 마침 고우영 20주기와도 겹쳐 고우영전을 열기로 학교 측과 합의했다. 특히 청강문화산업대학교는 웹툰을 배우는 젊은 지망생들이 가장 많은 학교 중 하나라는 점이 전시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우영을 모르는 젊은 세대, 그것도 작가 지망생이 많은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 전시 동안 그들이 자의든 타의든 만화도서관을 오가며 고우영이라는 이름 석 자만이라도 기억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독자를 찾아가는 전시

젊은 독자들, 만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자는 명확한 목적이 세워졌고, 그렇다면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두 번째 과제였다. 관람객의 대부분이 웹툰 지망생이거나 창작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비슷한 나이에 어떤 과정을 거쳐 만화를 창작했고, 얼마나 연재를 했으며, 어떤 상황과 고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편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가의 나이별 연혁을 소개하는 대형 벽면을 구성했다. 일반적인 전시처럼 연도별로 나열하는 대신,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또래 창작자의 시선에서 고우영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그다음은 원화의 힘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디지털 파일이나 보정된 인쇄물이 아닌, 작가의 손맛과 작업 과정의 흔적, 연재 당시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원화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살아 있는 만화 교과서이자, 고우영의 만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작가를 간접적으로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장이 일반 열람실과 이어진 오픈형 구조이다 보니 원화의 훼손이나 분실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물론 보험이나 CCTV 등 감시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애초에 분실이나 훼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특히 임꺽정, 대야망1972년 당시 원화처럼 50년이 넘은 귀중한 작품도 있었기에 조명, 온도, 습도 문제도 신경 써야 했다. 게다가 전시장 한쪽 벽면에 창이 뚫려 있어 실제로 전시 벽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는데, 다행히 학교 측에서 가변형 전시 벽체를 추가로 제작해 주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

전시장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문제가 일정 부분 해결되자, 전시 주제와 제목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전시는 320일 개막으로 일정이 정해졌고, 준비도 서둘러야 했다. 201510주기 전시는 앞서 언급했듯 아버지 고우영이라는 제목이었고, 그보다 앞선 2008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던 고우영 만화: 네버 엔딩 스토리전시는 고우영의 만화와 시각문화 현상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했던 대규모 기획이었다. 전시 제목 네버 엔딩 스토리는 고우영의 만화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만화 자료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해 다각적인 시각으로 고우영의 세계를 풀어냈다.

반면 이번 전시는 분명한 주 관람층이 있었다. 바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전국적으로도 입시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 이 학교는, 입시 단계부터 실기와 그림을 치열하게 준비한 학생들이 많다 보니, 실기 수업보다는 상대적으로 기획과 스토리 위주의 수업에 집중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만화가는 누구일까? 나는 고우영이라고 확신했다. 조선 시대에 이야기꾼 전기수가 있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고우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이야기꾼.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은 우리 시대 이야기꾼, 고우영으로 정했다.

고우영의 만화를 읽고 자라 또 다른 이야기꾼이 된 작가들이 있다. 마치 우리가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의 대표작을 익혔듯, 만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인 고우영의 만화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청강문화산업대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투자를 한 셈이다.

전시 구성과 제작

전시 제목이 정해지고 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시 포스터와 키 비주얼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함께 작업해 온 디자이너 팀 중 한 팀을 선정해 전시 주제와 의도를 설명하고, 여러 차례 시안 작업을 거쳐 포스터를 빠르게 완성했다. 전시 포스터는 큐레이터의 의도, 전시 주제, 그리고 참여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작업이지만, 종종 기관이나 조직에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최대한의 이해와 지원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공간이 크지 않고 예산과 일정이 빠듯한 상황에서도 관계자와 주최, 주관 기관의 애정과 배려 덕분에 무리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흔히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말이 있지만, 다른 물리적인 조건들이 충족되고 전시를 채워야 하는 전시 콘텐츠 제작이 남아 있는데 이 과정이 제일 어려운 작업이었다. 방대한 자료 속에서 전시에 사용할 실물과 디지털 데이터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카이빙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정리하느라 며칠 밤을 새우기도 했다.

데이터 정리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서, 그 자료를 넘겨받아 시작해야 하는 전시 디자인 작업도 일정이 빠듯해졌다. 특히 처음 계획했던 친환경 소재인 허니콤보드 제작을 포기하게 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허니콤보드는 전시 후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종이 소재로, 요즘 전시 현장에서 자주 활용되는 친환경 자재이기 때문이다. 대신 전시 후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전시대와 모형은 다른 전시나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고, 시트지 형태의 유포 출력물도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했다.

전시는 전시 제목과 소개 글, 작가의 나이별 연혁, 대표 캐릭터 소개 및 포토존, 열람할 수 있는 단행본 시리즈, 작가가 직접 사용했던 화구, 작업 스케치, 원화, 희귀 단행본과 자료들, 핸드프린팅이 포함된 쇼케이스, 작가의 생전 작업 책상과 메모, 원고지 더미, 작가의 말, 생전 인터뷰 및 광고 모델 영상, 그리고 원화 액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전시 리플렛은 고우영이 신문 연재를 통해 인기를 얻은 점을 반영해 신문 형태로 디자인했으며, 전시장에 배포하자 반응이 좋았다.

20년 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

전시를 개막하고 나니, 설치 단계부터 만화도서관을 방문하는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리뉴얼을 마친 청강 만화도서관은 고급스러운 만화 카페처럼 꾸며져 있으며, 8만 권이 넘는 장서와 최신 만화책을 갖추고 있어 편안하고 쾌적한 열람 환경으로 인기가 높다. 도서관과 카페를 이용하러 온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고, 만화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전시를 유심히 보고 질문도 자주 했다. 방명록에 남긴 관람 후기들을 보면, 고우영의 만화가 다시 읽히기 시작한다면 그 진가를 알아보는 새로운 독자들이 분명 많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전시는 515일까지 열렸고, 이후에는 청강 만화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공간에 맞게 축소해 9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고우영 작가의 가족들은 어렵게 보관해 온 수많은 원화와 자료들, 그리고 저작권 관리를 위해 2023년부터 고우영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소중한 만화 자산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연구하며, 고우영 만화를 더 널리 알리는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고우영체폰트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했으며, 복간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삼국지, 십팔사략, 열국지, 일지매등이 복간되었고, 수호지는 복간을 준비 중이다. 5월에는 서유기애장판 펀딩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올가을에는 보급형 복간도 계획되어 있다.

또한 서유기복간 시점에 맞춰 길창덕 작가의 꺼벙이와 함께 네이버 웹툰에서 새로 런칭하는 숏폼 애니메이션 서비스 컷츠를 위한 AI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고우영은 단순히 과거의 거장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만화가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 읽히는 작가여야 한다. 그의 만화는 아직 해외 번역된 적도 없다. , 여전히 만나야 할 독자들이 많다. 돌아가신 분의 작품을 알리는 일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독자를 찾는 일이다. 그들이 많이 모이는 곳, 많이 보는 공간을 찾아가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카이빙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연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전시일 수도, 연재일 수도 있으며,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꾼이 고우영을 만나 또 다른 웹툰이나 장르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