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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이니까" 책으로써 만화책을 고민하고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

디지털 시대에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 대표가 전하는 만화책 제작에 대한 이야기

2023-10-12 한윤아


나는 2022년 쓰게 요시하루의 단편만화와 작가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나사와 검은 물-쓰게 요시하루 만화집, 작가 연구』(타이그레스 온 페이퍼)를 출간했다. 이 책을 처음 기획하고 발간하려고 할 때 잡은 분류는 ‘작가 연구서’였다.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 출판사의 정체성은 예술 출판을 하는 것인데, 시각 예술 작가의 작품집, 모노그래프, 작품이나 작가에 관한 연구나 예술 비평서, 예술 이론서를 내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단편만화의 경우도, 쓰게 요시하루의 친필과 편집자의 글씨가 들어간 날 것의 원고였기 때문에 자료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을 완성된 ‘만화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만화집’이 된 건 독자를 고려해서였다. 원서에서는 흩어져 실려있던 단편만화를 한 호흡으로 읽어보는 것도 중요했고, 무엇보다 일본 책의 구조가 한국 책과 달라 재배열을 하는 것도 필요했다. ‘번역’에는 언어 뿐 아니라 문화적 번역도 필요한데, 일본 책의 관습을 한국 책으로 바꾸더라도, ‘작품’만은 임의로 좌우를 뒤집을 수가 없었다. 지금 쓰는 이 글의 주제로 ‘만화책을 고민하고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로 제안해주셨다. 내가 ‘만화책’을 아직 내보지 못해서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창작 만화책을 만들고 싶고, 몇몇 작가들에게 협업을 제안해 둔 상태이긴 하다. 앞으로 작가들과 만들고자 하는 만화책의 형식과 주제는 일단은 촘촘하게 정의하지 않고 열어 둔 상태다. 그런데 확실한 건 만화 작업의 물성은 ‘책이라는 사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때 ‘책’이라는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바는 『나사와 검은 물』을 만드는 것과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그렇다면 ‘만화집’과 ‘만화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아카이빙 자료집’을 만든 경험과 고민을 나누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사와 검은 물』의 인쇄 직전 상태, 그러니까 디자인이 완료되어 제작을 기다리는 최종 파일이 원작자인 쓰게 요시하루 선생님(이하 ‘쓰게’)에게 넘어가 최종 허락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저작권을 중개해주는 에이전시에서 다급하게 전화 연락이 왔다. 보통 에이전시와는 통화를 거의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파일을 검토한 쓰게가 두 가지 부분에 의문이 있다고 하니 설명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나는 이 책의 제목이 원서와 왜 다른지 물었고, 또 하나는 이 책이 왜 ‘만화집’이냐는 질문이었다. 제목의 경우는 번역서의 제목이 바뀌는 경우는 흔한 관행이기 때문에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는데 두 번째 질문에 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 책은 어떤 장르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면, 출판사가 지향하거나 만들어내려는 ‘책’이라는 사물은 어떤 의미인지, 책의 기존 문화에서 어떤 부분을 비평하고 바꾸고자 하는지 까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감정만 있고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안개처럼 모호했다. 그런데 그걸 원작자가 이해해줄 수 있을 지 염려가 되었다. 쓰게는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왔고, 그가 생각한 만화’책’과 내가 생각한 ‘책’의 생각이 다르면 어떡하지(당연히 다를 것이므로), 아직 뭔가로 드러나지 않은 책, 즉 ‘도래할 책’에 관한 몽상이 몽글거리는 출판 초짜가 거장을 설득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우선 내 생각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고, 원작자에게 긴 편지를 썼다. 책은 텀블벅 펀딩을 통해 선판매되고 제작 기간을 엄수해야 했기 때문에 답장 시한도 함께 적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쓰게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급하다고 하니 전화로 불러준 것 같은데, 다음과 같이 전언했다. 


“출판에 관한 것은 편집자가 정하는 것입니다. 생각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간단한 문장의 말이었지만, 그가 왜 훌륭한 예술가인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한편 그가 ‘책’에 관해 생각하는 바가 나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때 또 알게 된 것은 애초에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고령의 쓰게를 대신해 그의 저작권을 대리하고 있는 그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쓰게가 편집자를 창작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협업자들을 인정해온 작가라는 점은 『나사와 검은 물』에도 담겨 있다. 「나사식」의 첫 장면의 문장인 “설마 이런데 메메 해파리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에서 ‘메메 해파리’는 원래 쓰게가 원고에 ‘XX 해파리’로 썼던 것을 편집자 다카노 신조가 일본어 ‘メ’(메)로 보고 ‘メメ해파리’로 인쇄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인쇄된 원고를 본 쓰게의 반응은 “아니야, 괜찮아요. 메메해파리라고 하는 것이 작품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네요.”(같은 책 p145)라고 했다. 또 마감이 바쁠 때 「나사식」의 세 장면 정도를 동료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가 작업 조수를 했는데, 그걸 보고 당시 모 만화평론가가 “「나사식」은 모두 남이 그린 것이다”는 등 터무니없는 혹평을 했다고 한다.(같은 책 p33) 그 이야기를 하면서 쓰게는 만화나 작화는 원래 협업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히며, 미즈키 시게루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개인적으로 쓰게 요시하루의 작품을 만난 건 1990년대 말 정도이다. 쓰게 만화를 읽으며 일본의 1960-70년대 사회를 연구하는 세미나에서였다. (죄송한 말이지만) 학교 앞 인쇄제본집에서 복사한 만화였다. 사실 그때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2005년에 나는 일본국제기금의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오사카에 머물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혼자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일본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였다. 소도시들을 돌고, 돈이 별로 없다보니 싸구려 여관 등에서 머물렀다. 당시 느낀 건 내가 가졌던 깨끗하고 단정한 일본의 이미지는 극히 일면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 떠올린 건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리얼리즘 여관」이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것 같은 작은 마을에서 품을 파고드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찬찬히 걷는 장면들과 궁색한 목욕탕, 구차한 밥상, 외지인에 대한 힐끗거림이 생각났다. 한순간 쓰게 만화 주인공들의 무표정한 쓸쓸함으로 접속해 들어간 기분이었다. 쓰게는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시골 마을을 좋아했다. 『나사와 검은 물』에는 쓰게가 직접 그린 여행 지도가 담겨 있는데, 현재와 다른 지명, 없어진 길 같은 것이 표시되어 있다. 여행중 나는 교토대학 앞의 한 헌책방에서 문예지 『유레카ユリイカ』 의 ‘쓰게 요시하루 특집호(1982년 3월호)’를 발견했다. (유레카!) 문학평론가와 시인들이 쓰게 만화에 관해 쓴 글과, 만화 장면들이 담긴 책이었다. 문학 쪽에서 나온 쓰게 요시하루에 관한 비평집으로 의미있는 책이다. 2015년엔 친구들과 유후인의 온천 료칸을 시작으로 규슈 지역을 여행하게 되었다. 무인양품의 서적 코너에서 『나사와 검은 물』의 원서인 신쵸사의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신쵸사의 예술 서적 라인인 ‘톰보우’에서 일본의 거장 만화가들을 선별하여 다양한 철학적 관점으로 쓴 비평서 시리즈 중 한 권이었다. 그땐 출판사를 할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책을 꼭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출간 준비를 하며 리서치를 하다보니, 의외로 쓰게 요시하루의 ‘책’이 한국에 출간된 적이 없었는데, 작가의 전작이 한국에 판권이 팔렸다는 SNS의 글을 읽게 되었다.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는 작은 출판사로서 본격적인 만화’책’ 시리즈를 낼 정도의 역량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쓰게의 전작이 출간된다는 점은 무척 반가웠다. 그의 만화가 한국에 모두 소개된다면 당연히 ‘작가 연구서’의 수요도 생길 것이라 생각해서 출판을 결정하게 되었다.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의 ‘동아시아 시각문화’ 시리즈의 첫 책으로 낼 준비를 하면서 만화 전문 서점 B-side의 ‘만화사교클럽’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운영자인 성인수 작가가 일본에서 나온 문고판 쓰게 전집을 빌려주었는데, 그때서야 그의 만화의 ‘전작’을 모두 읽어 볼 수 있었다. 특히 『가로』 이전 대본 만화 시절 초기 작업과 1980년대 절필 직전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쓰게가 초창기에는 (많은 작가들이 그랬듯이) 데즈카 오사무와 시라토 산페이의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 여러 작품의 화풍을 바꾼 것, 의외로 시대물이나 장르물 창작에도 능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1980년 작품 「창틀의 손窓の手」은 2차대전 이후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 장르의 환상물이다. 그리고 「바깥의 팽창」처럼 (본인도 밝히지만) 속세를 떠나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고 싶어하던 심정이 작업 전반에 흐르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쓰게의 만화’책’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느리고 긴 시간의 여정이 떠오른다. 시간의 매듭마다, 우연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만나게 되는 책들은 어떤 생각의 고리들을 만들어낸다. 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고리를 적극적으로 엮게 될 때까지, 그 옷이 어떤 모양이 될 지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한 것 같다. 만화 독자로서 나는, 나나난 기리코의 만화로 쓰디쓴 연애의 시간, 우라사와 나오키는 시험 전날 밤새 빠져드는 이야기의 쾌락, 후루야 미노루는 모든 게 다 싫었던 충동적인 시절을 자동연상하는 것처럼, 쓰게의 책은 묘하게도 ‘연구’, ‘여행’, 그리고 ‘우연’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을 편집할 때는 마치 쓰게에 관한 충실한 ‘아카이빙 전시’를 만드는 것처럼, 단편만화라는 원화와 그에 관한 아카이빙 자료들을 배치하여 어떤 호흡으로 걸으면서 이미지를 보고 글을 삼켜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우리 책을 디자인한 스튜디오fnt의 이재민 디렉터는 쓰게 만화를 진지하게 읽고, 진심으로 만화’책’을 사랑했다. 만약 쓰게의 만화를 인쇄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로 만났다면, 이렇게 오래 생각할 수 있었을지,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책이라는 사물은 시간과 관계의 감각을 새로 짓는다. 


동시대 만화가들, 특히 ‘아트북페어’ 등에서 소규모 출판으로 만들어 오는 작품의 경우, 책의 물성을 서사의 요소로 가져오려는 경우도 꽤 늘어나고는 있다. 아직 그림책 작가들에 비하면 종이 종류나 판형, 지면, 파라텍스트, 제본과 인쇄 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보다 페이지의 칸과 홈통의 연출론이 좀 더 우세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떤 작품들, 『지붕 위 삐롱커피:Roof Fall』(엥기)처럼 리소인쇄로 찍은 만화,  『I love it and I hate it』(김승환) 같이 손바닥 반절만한 작은 사이즈의 책, 별색으로 인쇄하거나 중철, 실제본으로 묶은 만화책들은 흥미롭게 눈에 띈다. 『지붕 위 삐롱커피』가 을지로의 골목을 배경으로 한 만큼, 그 장소성을 감각하는데 리소인쇄만큼 적절한 선택은 없었다고 감탄한다. 웹툰 작가 중에서도 ‘인쇄’를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이는 작업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김정연 작가의 『혼자를 기르는 법』 등은 스크린톤의 망점이 보이는 듯 색을 처리해 만화’책’의 감성을 연상시킨다. ’책’의 세계에서 그림책의 물성 탐색과 만화의 칸과 시간 연출은 섞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이기훈의 그림책 『09:47』(2021)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기후 위기 문제를 글이 없이도 충분하게 끌고 가는 이미지 연출로 시사하는 탁월한 예이다. 『09:47』은 30x30cm의 큰 판형의 책이다. 각 지면의 그림이 만화의 칸처럼 다양한 크기로 사용하며 빠르게 이어가다,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60cm의 검은 심연을 펼쳐 새끼 손톱의 반절만한 주인공을 망망대해로 이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간지처럼 삽입된 흰 종이에는 디지털 시계의 분 단위의 숫자만 쓰여져 화면의 바깥으로 독자를 끌어내고, 책의 챕터처럼 이야기의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 책의 주제는 ‘긴박한 시간’이며,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지구 소멸의 흐름이다. 판형과 지면은 칸을 확장할 가능성을 넓힌다. 두 지면이 한 칸처럼 작동하여 인간 종의 나약함을 극대화한다. 아트북페어나 작은 서점 등의 책의 유통망은 대형 서점이나 웹툰 플랫폼의 유통망에 비하면 작은 오솔길처럼 보이지만, 만화를 ‘책’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부터 촉발된 미학적 시도들이 풍부해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화를 ‘책’으로 만들 때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건 이 사물이 서가에 꽂혀 있게 될 시간이다. 내 책장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오랜 시간 책등을 바라보아도 좋고, 이사갈 때도 여전히 들고 가고 싶어하는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말이다. 만화의 작업 시간이 긴 만큼, 읽고 간직하는 시간이 길어져야 할 것 같다. 웹툰 시대 만화’책’은 자본주의의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사물로 재발명되기를 바란다. 


필진이미지

한윤아

시각예술 기획자,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