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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어른의 초입 2부 - 어른의 초입,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

'어른'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된 시점까지 웹툰 평론가에게 영향을 미친 만화들은 무엇이 있을까

2024-02-08 수차미

지구는 둥그니까 무작정 걸으면 계속해서 걸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영영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이기에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순례길이 아니다. 전쟁과 참사로 얼룩진 이 세계에서 아이들이 자의로 살아남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에겐 ‘걷기’가 있다. 특히나 후속작인 [더 복서](2019~2022)에서 [수평선]과 유사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연출이 있는 걸 고려하면 정지훈은 하늘에 시선을 보내는 일, 즉 시선이 닿지 않는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시선이 닿지 않으니까 세상이 덧없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 소년소녀의 말처럼 작가는 ‘이후’라는 말을 어떠한 종착지나 종결로 사용하지 않는다. 가령 [더 복서]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오며 이들에겐 각각 주어진 재능이나 성격이 있다. 작품은 이들이 지닌 능력을 강화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보다는, 능력 이전에 존재하는 ‘그들’에 관해 물으며 도달하려는 것보다 이미 가진 것을 묻는다. 

K의 의도처럼 타인이 넘볼 수 없는 궁극의 복서가 되기보단, 보내지 못했고 누리지 못했던 유년 시절에 관해 못다 한 성장을 이루어내는 게 바로 이 만화의 방향성이다. 이미 완성된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내는 작법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 만화에서 성장은 단계적인 무언가로써 자신의 과거를 끊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그 경우라면 위에서 말했던 진화의 형태를 띨 것이다. [더 복서]는 링 위에 오른 이들이 몸과 마음의 떨림을 느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회상과, 그에 따른 신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인물의 서사를 펼쳐낸다. 특히 [더 복서]가 완성된 주인공인 유를 내세우며 보여주려는 건 이들의 세계에도 떨림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이 만화에는 유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일을 느끼는 묘사가 있다. 유의 삶은 어린 시절에 멈춰버렸고, 삶에 떨리는 일이 없으며, 사는 게 무료하고 무의미해서 시간의 흐름조차 그렇게 느끼는 인물이다. 작품은 그런 유가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의 세상에 활기를 되찾아주고, 다시금 행복한 유년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 그림 1, 더 복서]


세계에 떨림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일은, 그 무엇보다 개인을 살아있게 한다. [더 복서]의 유처럼 심장의 떨림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전함과 동시에 세계가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음을 전한다. 아무런 고동이나 미동이 없는 세계는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한, 죽어버린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떨림’은 책임이라는 말을 파악하는 일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유효하다. 떨림은 세계가 멈춰있지 않고 계속됨을 보여준다. 분명 떨림은 사랑하는 일처럼 기쁜 일에서만 찾아오는 게 아니지만, 어떤 형태로든 떨림이 있을 때 세계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다른 한편 모든 어른에게는 자기일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잃으면 더는 ‘나’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즉, 책임을 진다는 건 그런 맥락에서 자기를 ‘지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지배해야만 비로소 도망치지 않고서 맞서 싸울 용기를,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바라볼 용기를 얻으니 말이다. 아이가 몸의 떨림을 그대로 느낀다면 어른은 떨림을 지배하며 우위에 서려 한다. 도망치지 않고서 맞서 싸우는 일은, 텅 빈 폐허에서 홀로서기를 감행하는 일과도 같다. 

허5파6의 [푸쉬오프](2021~2023)는 사이비교에 빠진 부모와 유년기를 보낸 주인공 ‘나’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스케이트보드의 가장 기초가 되는 푸쉬오프를 제목 삼은 이 작품은 인물이 자신을 더 잘 대하도록 돕는 주변인물의 모습을 그린다. 전작인 [아이들은 즐겁다](2013~2014)와 [여중생A](2015~2017)에서 다뤘던 아이들의 세계가 학교와 같은 집단에서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 주가 된다. 전작들이 자기를 긍정하는 일이 우선시되었던 것에 반해 사이비종교와 부모와 연결된 이 작품에서는 그와의 연결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 자기를 상실하는 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자기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른이 되는 일, 즉 ‘책임’을 제대로 지는 것을 강조한다. 어려서부터 사이비종교에 영향받아온 자신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별다른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와도 결별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에게서 ‘이후’란 존재하지 않는다. 

[푸쉬오프]의 주인공인 ‘나’는 사이비종교에서 구조된 이후의 삶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머무르지만 이따금 그녀는 사이비종교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하지만 명실상부 그때와 지금의 자신은 연결돼있고 과거는 현재와 마땅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 그때의 그녀도 지금의 그녀도 모두 까마득히 먼 순간에서 비롯되어 온 자신이다. 작품은 아무런 취향도 없던 그녀가 취미와 인간, 양쪽 모두에 관계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오직 자신만이 자기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또한 그래야만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하게 된다. 설사 그게 부모라고 한들, 작품이 보여주려는 건 마치 낙원처럼 보이던 사이비종교에서의 삶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게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순간이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이 만화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아이의 세계가 못다 한 성장을 이루어내려는 일을 보여준다면, 어른의 세계는 자기를 대하는 문제를 보여준다. 책임이라는 말은 아이 일반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핵심에 관해서도 동일하다. 

이는 어른이라는 게 결국 유년기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으로, 어른이 아이를 책임지는 일에서는 자신조차 아이의 범주에 든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니까 아이와 어른을 나누는 일에서 ‘아이’는 어른과 분리되어 생각되기보단 아이의 이후가 바로 어른이라고 보아야 한다. 모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어른에게는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른에게서 아이의 성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였던 시절을 잊은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이 어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만을 계속해서 추구하기만 할 뿐이다. d몬의 [케찰코아틀](2002) 연작은 그런 점에서의 어른을 묘사한다. [헤수스]와 [다빗]으로 나뉜 두 개의 편은 [헤수스]편의 헤수스가 어린아이인 다빗을 위해 희생하는 과정과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다빗]이 다시금 어린아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과정을 그린다. 헤수스는 다빗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목격하고 다빗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깨닫는다. 다빗은 헤수스에게서 전투기술만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 또한 물려받는다. 


 

[ 그림 2, 케찰코아틀 ]


아이를 지키는 게 어른의 의무라면, 어른 또한 아이의 연장선에 있기에 아이에 대한 책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연재되는 [케찰코아틀]의 이야기는 두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다빗에게서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게끔 한다. [헤수스]에서 빨리 커서 한 명 몫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다빗은 어쩌면 작품의 결말과 함께 유년기의 끝을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헤수스가 다빗에게 남긴 유산인 ‘책임’을 통해 살아갈 마음을 다잡는 다빗의 태도로 이어진다. 다빗은 보스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헤수스의 유지를 따라 세계에 발을 붙이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이른바 책임은 유년기를 토대로 구성된 우리의 자아가 세계에 발을 붙이도록 하는 강력한 기제가 되어주는 셈이다. 책임은 마치 중력처럼 우리의 자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유년기의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준다. 그러니 책임이 커질수록 점점 더 행동이 신중해지는 건, 그만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물위의 우리](2021~)는 아이들의 세계로 시작해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물 위에서 갇혀버린 처지와 물 위에 갇혀버린 ‘우리들’을 동시에 지시하는 이 작품에서 어른은 다소 각별한 존재이다. 어린 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사내로 시작된 이 만화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묘사하는 일에 공을 들인다. 기후변화로 물에 잠겨버린 한국은 물 위로 떠오른 문제들을 마주하며 이는 과거에 산이었던 지역이 모두 섬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반영한다. 가장 시급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지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문제의식 안에서만 살 수 있게 된 상황을 가정하면서, 역설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우리’라는 형태를 완성하게 된 현실을 반영한다. 가령 우리는 취향이 세분화된 사회에서는 개인 간에 교류와 소통이 더 소극적이 됐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만화는 물아래로 잠겨버린 세상보다 물 위로 드러난 것들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음을 말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면 어른은 비교적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어른이 아이의 모습을 드러낼 때 이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비밀을 탐구하는 듯 보이던 작품의 이야기 동선은 어른들의 선택보다는 그런 선택에서 벗어나 버린 것들,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아이가 커서 된 어른들에 관해 말한다. 예를 들어, 작품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세력인 잠실의 총괄관리자가 고아로 자랐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와 전쟁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끌고 들어온다. 정확하게는, 작품의 주인공은 한호주의 딸인 한별이지만 아직 어린아이여서 작중 외로 활약이 도드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한별은 실질적 주인공인 한호주에게 보호받는 입장이며 보호받는 유년기를 상징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한호주가 잠실에 들어오는 과정과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새로이 대체된 ‘나’로써 중심에 자리한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한호주는 아이였던 자신을 지우고 어른의 책임과 의무를 배운다. 

이 만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아니지만 아이의 마음이 어른의 책임과 의무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이들에겐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이 만화에서 아이와 어른의 관계는 아이들이 커서 된 게 바로 어른임을 명확하게 설정한다. 어른이 아이를 지켜내려 하는 만큼이나 어른들에게선 자신일 수 있는 하나의 축이 있고, 우리는 그걸 유년기의 기억, 또는 책임이라 부른다. 이런 것들은 [케찰코아틀]에서처럼 다른 이에게 계승되는 형태일 수 있고, [푸쉬오프]처럼 자기가 정해둔 세계의 바깥으로 나오면서 자기를 이루는 삶의 중력을 갱신하는 일일 수 있다. 이러한 중력의 형성은 [더 복서]와 [수평선]의 사례처럼 자신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존재, 땅을 밟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로서의 자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유년기의 기억에 강하게 사로잡힐 수 있고, 어쩌면 그런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유년기의 연장선에서 살아갈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상을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는 [신도림]의 이야기처럼 떨림을 잠재우는 것은 항상 우리 자신의 몫이었다. 



필진이미지

수차미

< 만화평론가> 
* 2019 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상 신인 부분 
* 2019 한국예총 평론상 영화 부문
* 2020 서울시립대 영화평론 공모전 대학원생 부문
* 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 저서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포스트 시대의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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