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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톺아보기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이모저모와 수상작 이야기

2023-12-15 주다빈

만화의 천국, 비주류 문화가 주류 문화만큼 다채로운 나라 일본. 엄청난 상상력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걸작들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덕후를 만들어냈다. 특히 최근 OTT 돌풍을 등에 엎고 전세계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만화 업계도 일본의 방식을 그대로 도입하거나 우리나라에 맞는 방식으로 약간의 변형을 주며 구축됐다. 어려서 만화방에서 빌려보던 만화에는 일본 작가들의 책이 많았다. 흔히 갱지라 불리는 재생지의 거친 표면에 흑백으로 가득 그려진 그림, 책장을 촤라락 넘길 때면 종이 먼지가 폴폴 피어올랐지만 책이 주는 느낌 자체를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는 투니버스나 퀴니같은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방송을 보며 자란 터라 만화보다는 애니메이션에 더 친숙했다. 그 이전에도 분명 만화책을 봤었을 텐데 ‘카드캡터 체리’와 ‘흑집사’만 기억에 남아있다. 애니메이션보다 주인공들이 더 예쁘고 잘생겨서 좋아했던 것 같다. 그 후에는 만화 카페로 변모한 만화방에서 종종 신작이나 애니메이션화가 되지 않은 작품을 찾아 읽었다. 최근 들어서는 유명 애니메이션의 카페나 팝업 스토어가 한국에서 자주 열려 오타쿠로서 정말 재밌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한정된 공급에 엄청난 팬들이 몰려 오픈런을 해서 줄을 서야 하고 그런데도 조기 품절되는 제품들이 많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에서 관련 굿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재로서는 만족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만화를 덕질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나라처럼 느껴졌던 일본도 이럴 때만큼은 바다 건너 먼 해외라는 것이 실감 나는데, 귀엽고 예쁜 굿즈는 국내에서 구매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여행은 ‘오타쿠 여행’으로 명명하고 성지인 아키하바라를 정복하기로 정했다. 요즘 관심 있는 ‘먼작귀’라든지 오랫동안 좋아했던 ‘짱구는못말려’, 최근 재밌게 본 ‘주술회전’ 등등 여러 만화의 굿즈나 원본 책을 둘러볼 예정이다. 특히 신작 만화의 발매 속도가 아주 느려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팬으로서 가장 애달픈 부분이다. 이러한 일본의 만화 시장이 전 세계 1위라는 점은 그렇게 놀라운 정보는 아니다. 심지어 일본출판협회에서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잠시 침체기를 겪던 일본 만화 시장은 2020년 기준 가장 호황이었던 1995년보다 더 큰 성장을 이루었고 이후 2022년까지 꾸준히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엄청난 만화 산업을 이룩할 수 있도록 터를 닦아준 인물이 데즈카 오사무이다.

‘우주소년 아톰’은 통통한 체형에 빨간색 부츠를 신은 로봇이다. 이제는 부모님 세대에 더욱 친숙한 캐릭터이지만 얼마 전 아티스트 그룹인 미스치프는 ‘Big red boots’라는 고무 재질의 붉은 부츠를 출시했을 때 많은 사람은 이 부츠를 보자마자 아톰을 떠올리며 아톰 부츠라는 별명으로 떠들썩했다. <철완의 아톰>은 1952년에 연재를 시작한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 아톰은 5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있다.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데즈가 오사무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업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만화의 신’이라 불리기도 하는 인물이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 만화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런 때에 데즈카 오사무는 스토리 기반 만화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 그 과정에서 기존보다 복잡한 서사나 동기를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아톰 역시 단순히 인류를 구원하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로봇 경계에서 있는 인물로 그려내며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무시프로덕션을 설립해 티브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또 일본 만화 제작 방식으로 현재까지 잘 알려진 어시스턴트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의 인기작 『도로로』를 카카오엔터테이먼트와 손잡고 웹툰으로 리메이크해 업로드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카카오웹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명작 『블랙 잭』이 인공지능으로 만든 스토리에 사람의 연출로 재연재를 진행한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를 향한 일본의 사랑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일본 만화 산업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그를 기념하는 의미로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이 아사히 신문의 주최로 1997년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해당 문화상에서는 만화 업계를 총 결산하는 느낌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대상에 뽑을 뿐만 아니라 참신하고 획기적인 재능을 보여준 작품에 신생상을, 단편이나 4컷, 1컷 만화에는 단편상을 수여한다. 이 외에도 특별상으로 만화 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가 그 후보에 오른다. 가장 처음 치뤄졌던 1997년 대상의 주인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도라에몽』이었다.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의 로고에 들어간 아톰처럼 로봇 주인공이 등장하고 어딘가 비슷한 그림체의 만화가 대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의 도라에몽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단지 이러한 이유로 『도라에몽』이 상을 탄 것은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것이다. 사실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코 F. 후지오는 데즈카 오사무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그는 만화 초판을 모두 사서 모았고 작업을 갓 시작했던 초기에는 데즈카 오사무와 훨씬 비슷한 그림체였다고 한다. 너무나 그를 동경했던 후지오는 초창기 콤비 작가였던 후지코 후지오 A와 함께 사용할 필명을 ‘아시즈카 후지오’로 지었는데 ‘데즈카 후지오’를 사용하려다가 데(手)즈카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시(足)즈카가 되었다는 웃긴 일화가 있다.

지난달 10월 2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플루토』는 동명의 원작 만화 「플루토」를 애니메이션화한 것이다. 이 만화는 『철완의 아톰』의 에피소드인 ‘지상 최강의 로봇’에 우라사와 나오키의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로 풀어낸 작품으로 2005년 제9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의 대상을 받았다. 당시 함께 경합했던 작품 중,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노다메 칸타빌레가 있기도 했다. 그 뒤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작품 중 수상작을 둘러보자면 2011년 『강철의 연금술사』가 신생상을 받았고 20215년에는 『목소리의 형태』가 동일한 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귀멸의 칼날』이 특별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아쉽게 수상을 하지는 못했으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화를 통해 만화를 잘 모르는 한국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고독한 미식가』, 『약속의 네버랜드』, 『스파이 패밀리』 등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스파이 패밀리』의 경우 이번에도 후보에 오르며 많은 대중으로 하여금 가장 유력한 대상 후보로 논의 됐다. 특히 제52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코믹 부분 대상에 오르며 2관왕을 달성할 수 있을지 한껏 기대를 샀었다.


[ 그림 1, 이리에 키와 <유리아 선생님의 붉은 실> ]



그리고 2023년 제27회를 맞은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은 4월 25일 수상작 목록을 공개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대상에는 이리와 키에의 『유리아 선생님의 붉은 실』이 자리매김하였다. 이 작품은 ‘BE•LOVE’라는 고단샤의 격주간 만화잡지에서 연재된 작품이다.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했던 중년 여성 유리아의 남편 고로가 시부야의 호텔에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리아는 서둘러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자신은 알지 못하는 아주 아름다운 미청년인 28세의 리쿠를 만나며 그녀가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후에는 갑작스럽게 두 명의 아이를 떠맡아 돌보게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일본 타카라지마샤에서 매년 12월 공개하는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에서 2020년 8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2020년 코단샤에서 주최하는 만화 상인 코단샤 만화상 종합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작품은 지금껏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던 ‘정상 가족’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간병, 불륜, 성소수자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까지 현실 세계의 사회 문제를 작품 내에서 준수한 스토리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자신이 만화를 그릴 때는 주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또 결말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런 자신이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 그림 2, 건프 <단초테이 일기(단정정 일기)> ]


신생상은 만화가 ‘건프’ 앞으로 돌아갔다. 그가 연재하고 있던 「단초테이 일기」 (일본어 제목은 「断腸亭にちじょう」) 가 그에게 이 상을 안겨주었다. 이야기는 자신의 암 투병기를 그린 자전적인 만화인데 16화에는 투병 일기를 절대 그릴 생각이 없었다고 했던 일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런데도 작품을 그리게 된 이유를 묻자, 작가는 지저분한 이유와 멋진 이유가 있다며 지저분한 이유로 건강을 회복하면서 집안 형편에 대한 걱정을 들었다고 한다. 멋진 이유로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던 중 방송에서 한 정치인이 ‘창자를 자를 생각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대장암으로 대장을 잘라낸 자신의 처지와 맞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면서도 슬럼프를 심하게 겪으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 뒤 연재를 내팽개치고 노숙자로 생활하거나 알코올중독 치료소 수감됐던 시절을 그려낸 아즈마 히데오의 『실종 일기』, 총기를 불법 개조한 죄로 징역 3년을 받은 뒤 실제로 감옥 살이했던 수기를 그린 히나가와 가즈이치의 『형무소 안에서』를 예로 들으며 자신이 작품을 그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일본의 소설가인 나가이 가후의 『단초테이 일기』를 떠올리게 된다.  『단초테이 일기』는 나가이 가후가 일하던 대학과 마찰을 겪은 후 세상과 단절하고 자기 집에 칩거하며 적은 일기를 묶은 것인데 암 투병하는 동안 적은 항암 일기에 그림을 붙여 유사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그림 3, 야마지 에비네 <여자아이가 있을 곳은> ]

 

마지막으로 단편상에는 야마지 에비네 작가의 「여자아이가 있을 곳은」이 차지했다. 이 작품은 ‘소녀’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인도, 일본,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 소녀의 일상을 그린 단편집이다. 처음 그녀의 편집자인 아오키씨는 에비네씨에게 두 종류의 이야기 플롯을 보여줬고 그중 성차별에 맞서는 소녀들의 일상을 그리는 주제를 선택해 지금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른 선택지는 이와 완전히 다른 스토리로 소년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야마지 에비네 작가는 오랫동안 레즈비언 소재로 만화를 그려왔었기에 편집자도 이러한 주제를 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 본인 역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편집자는 자전거 타는 것을 금지당한 사우디아라비아 소녀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와즈다’라는 영화에서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에비네 작가가 실제 현실에서 발생하는 차별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을 만들어주길 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작업 과정에서 세계 각국의 차별 받는 소녀들의 일상을 더해 「여자아이가 있을 곳은」을 만들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부분별 시상작품을 톺아보았다.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가 강제로 열린 유리아 선생님의 기상천외한 인연들과의 이야기를 담아낸 『유리아 선생님의 붉은 실』, 자신의 암 투병기를 담백하고 이성적으로 그려낸 「단초테이 일기」 마지막으로 단편임에도 각 나라의 여성 차별 이야기를 수려하게 그려낸 「여자아이가 있을 곳은」까지 모두 엄청난 후보군을 이기고 수상에 오를 만큼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원고를 작성하면서 아사히 신문에서 진행했던 세 작가의 수상 인터뷰를 살펴보았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작가들이었지만 수상 앞에서는 모두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재미있었다. 특히 ‘검프’ 작가의 경우 만화를 그리며 많은 방황의 시기를 겪었던 것 같은데 젊은 나이에 암 투병을 하고 이후에 그린 작품으로 좋은 상을 타게 됐다는 게 인상 깊었다. 제27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수상작들은 여러 이름 있는 만화 차트 혹은 대회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모두 일본 내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대상을 받은 『유리아 선생님의 붉은 실』은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 방영됐다. OTT 시장이 성장한 만큼 드라마로라도 접해보고 싶어 구독하고 있는 플랫폼을 모두 확인해 보았으나 국내 OTT에서는 서비스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세 작품 모두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든 작품들이란 것이 아쉬운 마음을 더 키운다. 그러나 이번 시상을 계기로 한국의 서점 코너에서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도 되지 않을까? 세 작품에 수상을 축하하며 벌써부터 내년의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에 이름을 올릴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필진이미지

주다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