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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으로서의 전쟁의 지형도를 그려보기

다양한 전쟁만화 작품을 분석하여 전쟁만화의 현황을 알아보자.

2024-06-20 김민경

픽션으로서의 전쟁의 지형도를 그려보기

※ 아래 본문은 웹툰 <피와 나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감상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전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일단 모아보자.

  소설, 영화, 만화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얼추 모았다면 이제는 분류할 차례다. 한쪽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모일 것이다. 만화가 고() 고우영의 십팔사략, 초토의 시와 아버지의 땅,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전쟁이라 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데다 역사적 사건을 다뤘다는 사실 자체로 의의가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정반대의 작품들이다. 즉 실존하지 않았던 전쟁, 픽션으로서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 말이다. 애써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대신 예시를 들어 보겠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주 그럴듯한 예시를 말이다.

△ 좌측부터 각각 영화 <스타워즈>, 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책 피를 마시는 새》 시리즈

  미국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제목대로 은하계를 배경으로 선과 악을 비롯한 여러 세력의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주인공 신지와 레이, 아스카는 인류를 구한다는 명분 아래 에반게리온 기체에 탑승해 사도라는 적과 싸운다. 한편 드래곤 라자로 잘 알려진 이영도 작가는 여러 세력이 뒤섞이는 전장의 긴박한 모습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러한 그의 역량은 피를 마시는 새시리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내가 본격적으로 만화 얘기를 하기에 앞서 굳이 이들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하나다. 그러니까 픽션으로서의 전쟁을 다루는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판타지, 특히 SF의 얼굴을 하고.

쟁터에서 적은 언제나 비-인간으로 나타난다.

  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시대가 바뀌면서 돌과 도끼가 칼과 방패, 총과 탱크가 핵과 생화학 무기로 대체되었지만, 행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나와 너를 구분하고, 아군과 적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속한 진영은 인간으로, 상대방은 비-인간으로 칭해지며, 그렇게 비-인간인 적은 인간의 윤리와 무관한 존재이자 척살되어도 무방한 대상으로 여겨진다(불과 몇십 년 전까지 인민군이 뿔이 달린 도깨비이자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그려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우리가 전쟁의 본령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존재의 등장과 개입이 허용되는 판타지 장르에서였고, 이는 한국의 만화, 특히 웹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과거 네이버 웹툰 판타지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구가하던 <신의 탑><노블레스>, 혹은 <갓 오브 하이스쿨> 등의 작품은 나와 너의 가치의 대립과 세력 간의 대규모 전투라는, 다소 고전적인 형태의 전쟁과 얼추 잘 들어맞는 데가 있다(다만 전투라는 소재가 결국 주연의 내·외적인 성장을 위한 부차적인 소재 정도로만 이용된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군을 성장물 외에도 전쟁물로 분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격적으로 전쟁이라는 소재가 작품의 전면에 내세워진 것은 2010년대 초반 국내에서 SF라는 장르가 약진하면서부터이다. 하일권 작가의 <방과 후 전쟁활동>은 외계 물체의 등장과 전시 상황, 거기에 대학 입시라는 유사-전쟁이 겹쳐지면서 극한 상황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가는가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 4화

  물론 작품에 등장하는 세포체는 나와 구별하는 비-인간의 대상보다는 일상을 벗어난 재난 상황을 구현하는 어떤 설정에 가까우며,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 또한 세포체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SF라는 허구적 상황을 통해 전쟁이 개별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를 충분하게 구현한다는 점에서 픽션으로서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인상적이기에 지면을 빌려 소개한다. 더불어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 레코딩 영상을 활용한 연출로 리얼리티를 살려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본격적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대결이라는 전쟁의 구도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레민 작가의 <피와 나비>를 소개하고 싶다. 작품의 배경은 벌레라는 괴생명체가 등장한 2020년 서울로, 인류는 자신들이 개발한 생화학 무기를 이들에게 사용한다. 그러나 벌레는 오히려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기의 독성이 퍼지면서 인류는 절멸하다시피 한다. 주인공 백매화를 포함하여 나비의 아이들은 혈액을 매개로 한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벌레들을 죽이고 남은 인류를 구할 유일한 희망이다.

 네이버 웹툰 <피와 나비> 1화.

  나비의 아이들과 그들이 수호하는 인류() 대 그들의 주적인 벌레()의 대립 구도가 지닌 허구성이 폭로되는 건 작품이 후반부에 이르면서이다. 나비가 ()벌레에서 탄생한다는 당연한 자연의 법칙처럼, 장인물들에 의해 벌레와 나비가 같은 종()이라는 진실이 독자에게 밝혀진다. 당연하다 여겨왔던 나와 너의 이분법이 무너지면서 등장인물과 독자 모두 외부의 압력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힘으로 나와 너, 그리고 전쟁이라는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나비의 아이들을 관리하던 기관인 정원이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은, 어쩐지 거짓된 명분 아래 소수의 결정권자가 주적과 전쟁을 정의함으로써 다수의 희생자를 만드는 현대사의 장면들이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때, 좀비물이 등장했다.

  SF가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을 통해 전쟁에 가까워진다는 관점에서 SF의 한 갈래인 좀비물은 유독 흥미로운 데가 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인간으로 회복되는지 아닌지와는 무관하게, 여타 외계 생명체나 물질 등과 달리 좀비는 우리(인간)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세포체나 벌레와 달리 그들은 인간과 상당히 유사한 외형을 지니며 우리와 과거를 공유한다. 따라서 좀비물은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치환된다. 적이 되어버린 예전의 동료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좀비물 중에서는 드물게 좀비라는 일종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된 이후의 얘기를 다룬다. 좀비가 인간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좀비였을 때의 기억, 이를테면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작품은 자신 또한 원치 않게 좀비가 된 피해자이자 동시에 좀비로서 인간을 살해하고 섭취한 가해자인 서지혜라는 인물의 딜레마에 주목한다.

 네이버 웹툰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표지

  서지혜의 이러한 모순적인 위치는 전장에 내몰린 군인의 그것과 닮아있다. 전쟁에서 군인은 상대를 처단의 대상으로만 인지하도록 요구받는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그들에게는 전쟁을 멈출 권한이 없으며, 망설이면 자신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의 생존은 곧 수많은 타인()의 피와 주검을 의미하므로 생존자에게 남는 건 물리적인 부상과 더불어 한 생명을 겨냥했다는 고통스러운 기억뿐이다. 결말에 이르러 작품은 원치 않게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칭해지는 인물인 서지혜에게 결정권을 돌려줌으로써 서지혜로 대변되는 수많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준다.

  한편, 과거의 동료가 하룻밤 만에 불가피한 이유로 적이 되는 구도는 대한민국의 역사와도 묘하게 일치하는 면면이 있다. 외부의 타자를 정복하던 서구와 달리 우리는 분단이라는 현실을 겪으면서 같은 민족을 미워해야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를 포함한 SF의 하위 장르 대다수가 성적이 부진했던 데 비해 좀비물이 유독 인기를 끈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의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과거의 가족이자 잠재적 화해의 대상인 좀비를 대상으로 대다수 작품이 액션이 아니라 휴머니즘 중심의 일상물이라는 노선을 취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윤창 작가의 <좀비딸>과 이명재 작가의 <위아더좀비>가 대표적인 예이다. <좀비딸>은 좀비 사태가 마무리될 즈음 딸처럼 키우던 수아가 좀비가 되자 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주인공 이정환의 일상을 그려낸다. 한편 <위아더좀비>는 폐쇄된 서울타워 안에 인간과 좀비가 공존한다는 독특한 발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 <위아더좀비> 1화.

  좀비가 척결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당위는 변함없이 가져가되 이들 작품은 나와 너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서 그저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으로 초점을 옮긴다. 외부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이정환 가족과 서울타워라는) 화합과 유대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좀비딸>은 주인공 이정환을 통해 갈등 해결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위아더좀비>는 우리의 흔한 고민을 소재로 삼아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모두(위아더) 좀비라고 세상에 외친다.

픽션으로서의 전쟁의 지형도를 그려보기

  여기까지 우리는 최근의 웹툰이 그리는 전쟁의 지형도를 판타지에서 SF, 외계의 존재와 좀비로, 그리하여 휴머니즘으로 종횡무진을 하며 어설프게나마 그려보았다. 대강 요약해보자면 전쟁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행위이기에 비-인간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판타지, 특히 SF라는 장르가 적합하다고 했다. , SF가 대개 외계에서 기원하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대한민국의 경우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좀비물이 유독 발달하였으며, 그들은 대개 휴머니즘으로 회귀한다는 걸 살펴보았다.

  최근에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가 좀비물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 같다. 그중 몇 작품을 리뷰한 인연이 닿아 이렇게 칼럼을 작성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에 대해 몇 마디를 덧붙이는 걸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포스트-아포칼립스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우리는 더는 앞서 본 것과 같이 정형화된, 즉 너와 나의 대결 양상을 지닌 전쟁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형태조차 파악되지 않는 거대한 재난(전염병이나 기후 위기와 같은 것들)과 그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무력함과 잔혹함이야말로 현대전의 진정한 본질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시대에 매몰되기보다는 새로운 희망을 발굴해오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예술, 그리고 만화가, 단순히 좌절과 절망의 정서에 그치지 않고 불모지에서도 끝내 또 다른 형태의 휴머니즘을 틔워내지 않을까, 하고 소박하게나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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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