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스크롤 다음의 웹툰 - 쇼츠와 AI는 웹툰의 무엇을 바꾸고 있나

AI 시대의 웹툰 일자리를 이야기하면서 '작가가 없어질까'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직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기보다 그 안의 개별 공정이 먼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26-09-17 김민수

스크롤 다음의 웹툰

쇼츠와 AI는 웹툰의 무엇을 바꾸고 있나



[그림1] 스크롤 웹툰이 동적으로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장면  그림설명 — 웹툰 캐릭터가 세로 스크롤을 벗어나 숏폼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그림1] 스크롤 웹툰이 동적으로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장면

웹툰 캐릭터가 세로 스크롤을 벗어나 숏폼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웹툰을 읽다가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골라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이 만든 영상을 넘겨보다 다시 원작을 펼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웹툰을 '본다'는 것은 스마트폰 화면을 아래로 내리는 일이었다. 요즘은 그 앞뒤에 할 일이 꽤 많아졌다.


변화의 중심에는 숏폼이 있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처럼 수십 초짜리 영상이 이용자의 시간을 가져가자 웹툰 플랫폼들도 움직였다. 인기 장면을 짧은 영상으로 보여주고 팬이 직접 숏폼을 만들게 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들어오면서 제작 시간과 비용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7월 네이버웹툰은 원작자가 승인한 지식재산권(IP)의 캐릭터와 이용자가 대화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AI 스토리챗 '바이어스(byUs)'를 선보였다. 첫 작품 〈이직로그〉는 휴재 중이었지만 출시 첫 주 원작 열람이 직전 주보다 약 67% 늘었다는 게 네이버웹툰의 집계다.


앞서 나온 '컷츠메이크'에서는 독자가 〈연애혁명〉, 〈전지적 독자 시점〉 등 9개 작품의 캐릭터와 장면을 활용해 숏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이를 '컷츠'에 바로 올릴 수 있다. 쇼츠는 웹툰이 독자의 시간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대인데, 플랫폼은 그 쇼츠를 자기 서비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웹툰의 새로운 입구, 쇼츠



웹툰도 처음부터 지금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종이 만화가 스마트폰으로 옮겨오면서 페이지와 칸은 세로 스크롤에 맞게 다시 짜였다. 화면을 내리는 동작 자체가 연출이 됐고 읽는 호흡도 달라졌다. 이번에 달라지고 있는 것은 '세로'보다 '시간'이다.


쇼츠나 틱톡, 릴스에서는 몇 십 초마다 다음 콘텐츠가 나온다. 반면 웹툰은 등장인물을 익히고 이야기를 따라가며 다음 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콘텐츠다. 그렇다고 '숏폼 때문에 웹툰 독자가 떠나고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지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변화는 웹툰을 짧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웹툰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짧게 만드는 것’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AI 헬릭스 숏츠'가 대표적이다. AI가 웹툰의 컷과 대사, 캐릭터 표정을 분석해 줄거리를 요약하고 내레이션과 자막, 화면 효과 등을 구성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기존 방식으로 숏츠 한 편을 만드는 데 약 3주와 200만 원이 들었다면 헬릭스 숏츠는 약 3시간, 6만 원 수준으로 제작할 수 있다. 2025년 4월 발표 당시 카카오페이지 전체 숏츠의 약 40%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카카오가 작품을 보여주는 미리보기와 제작 자동화에 무게를 뒀다면 네이버는 ‘컷츠’를 통해 팬의 참여와 2차 창작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활용법은 달라도 숏폼을 원작과 따로 노는 영상으로 두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 


그래서 요즘의 변화를 '웹툰이 짧아진다'고만 표현하면 정확하지 않다. 원작은 여전히 수십 화, 수백 화까지 이어진다. 짧아진 것은 작품을 발견하는 입구와 소개 영상, 팬이 작품을 즐기고 공유하는 방식이다. 


네이버웹툰은 이용자가 원작 IP를 활용해 숏폼을 만들도록 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AI로 작품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제작한다. (출처: 네이버웹툰·카카오엔터테인먼트)

[그림2] 네이버웹툰 '컷츠메이크'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AI 헬릭스 숏츠' 화면

네이버웹툰은 이용자가 원작 IP를 활용해 숏폼을 만들도록 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AI로 작품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제작한다. (출처: 네이버웹툰·카카오엔터테인먼트)


중국에서는 '움직이는 만화'가 시장이 됐다


중국에서는 한발 더 나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만극(漫剧)'이다. 만화 컷에 움직임을 넣은 콘텐츠부터 웹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AI 애니메이션과 실사풍 영상까지 여러 형식을 아우른다. 


중국 온라인 매체 펑파이(澎湃新闻)에 게재된 업계 분석에 따르면 2025년 11월까지 더우인(抖音), 콰이서우(快手), 아이치이(爱奇艺), 텐센트비디오, 빌리빌리(bilibili) 등 10여 개 플랫폼이 만극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 광고·마케팅 플랫폼 쥐량인칭(巨量引擎)은 2025년 연간 시장 규모가 200억 위안(한화 약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AI는 제작비도 크게 낮췄다. 이 분석에서 한 제작자는 비교적 단순한 AI 만극의 분당 제작비가 2025년 3월 1000~2500위안(한화 약 20~50만원)에서 그해 연말 200~300위안(한화 약 3~6만원)까지 내려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자 인기 소재의 반복, 캐릭터 일관성 저하, IP 무단 사용 문제가 뒤따랐다. 플랫폼들은 저품질 콘텐츠 심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만극 통계 서비스 '만극유수(漫剧有数)' 집계에 따르면 2025년 11월 27일부터 하루 평균 150편을 넘던 신규 만극은 한때 20편 안팎으로 급감했다가 이후 50편 가까이로 회복됐다. AI 도입으로 제작비가 내려가고 생산량이 늘자 이번에는 작품의 질과 차별화가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 만극을 그대로 한국 웹툰의 미래로 대입할 수는 없다. 다만 AI가 제작비와 생산 속도를 바꾸면 콘텐츠의 양뿐 아니라 플랫폼의 유통과 관리 방식까지 함께 움직인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AI 애니메이션 쇼츠 만화 ‘만극(漫剧)’ 게시물 (출처: 더우인·텐센트)

[그림3] 중국 ‘만극(漫剧)’ 게시물

AI 애니메이션 쇼츠 만화 ‘만극(漫剧)’ 게시물 (출처: 더우인·텐센트) 


한국 웹툰 작업실에도 AI가 들어왔다


국내에서도 AI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2025 웹툰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웹툰산업 매출은 2조2856억 원으로 전년보다 4.4% 증가했다. 

같은 조사에서 연매출 10억 원 미만 웹툰 사업체의 48.8%, 10억~100억 원 미만 업체의 50.4%가 생성형 AI 활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00억 원 이상 사업체에서는 36.7%였다. AI를 사용한 업체 가운데 60.2%는 기획과 이야기 구상 등 사전 제작 단계에서 주로 활용했다. 아직은 작가 한 사람을 통째로 대신하기보다 제작 과정 곳곳에 AI가 들어오는 모습이 더 뚜렷하다. 


안은지 서일대 겸임교수가 지난 6월 《인문콘텐츠》에 발표한 연구논문 〈생성형 AI 도입과 웹툰 창작 노동의 재구성〉에 따르면 콘티·작화·전공정 작가 15명을 인터뷰한 결과, 작화 직군은 단가 하락과 일자리 축소를 상대적으로 직접 체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어시스턴트 문제다. 배경과 채색, 작화 보조는 일감인 동시에 신인이 현장에서 제작 방식을 배우고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반복 작업부터 AI가 맡기 시작하면 당장의 일자리뿐 아니라 신인이 현장을 거쳐 성장하던 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 시대의 웹툰 일자리를 이야기하면서 '작가가 없어질까'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직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기보다 그 안의 개별 공정이 먼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없어지는 일 옆에서 새 일이 생긴다


기존의 일이 바뀌는 동안 새로운 일도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 7월 '웹툰 숏폼 기획·제작' 체험형 인턴을 모집했다. 숏폼 콘텐츠 기획·제작과 영상 편집 도구 시험, 홍보용 콘텐츠 제작 등이 업무였다. 웹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의 숏폼 콘텐츠와 이용자에 대한 이해도 요구했다. 


그동안 웹툰 제작은 글, 콘티, 선화, 채색, 배경 같은 분업으로 설명됐다. 이제는 어떤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지 고르고, 몇 초 안에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주며, AI가 만든 결과물 가운데 쓸 만한 것을 골라내는 일도 붙는다. 

한 화 분량의 웹툰을 30초 영상으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덜어낼지 정해야 한다. 웹툰 숏폼은 원작을 잘라놓은 영상보다 긴 이야기를 짧은 시간의 문법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AI는 이야기 구상부터 배경·채색 등 웹툰 제작 과정 곳곳에서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작화 작업 중인 작가 (출처: 김민수)

[그림4] AI가 들어온 웹툰 작업실

그림설명 — AI는 이야기 구상부터 배경·채색 등 웹툰 제작 과정 곳곳에서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작화 작업 중인 작가 (출처: 김민수) 



스크롤 다음에 남는 것



쇼츠는 웹툰에 까다로운 경쟁자다. 사람의 하루는 늘어나지 않는데 짧은 영상은 계속 늘어난다. 플랫폼이 택한 대응은 쇼츠와 맞서기보다 그 문법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웹툰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고 팬에게 다시 만들게 하며, 그렇게 생긴 관심을 원작으로 돌려보낸다.

AI는 여기에 속도를 붙였다. 숏폼 제작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웹툰 작업의 여러 공정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존의 일이 줄어드는 자리에서는 숏폼 기획처럼 예전 웹툰 작업실에서 보기 어려웠던 일도 생겨난다.


김병수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학과 교수가 만화규장각 웹진에 기고한 〈만화·웹툰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에 따르면 웹툰·만화 관련 대학은 2018년 18개에서 2025년 75개로 늘었고, 입학정원은 2,687명에 달한다. 웹툰을 배우고 현장 진입을 준비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 상황에서 제작 방식의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산업에서는 이미 비슷한 시행착오가 나타났다. 미국 인력관리업체 커리어마인즈가 지난 2월 인사 담당자 600명을 조사한 결과, AI 관련 감원을 한 기업 가운데 32.7%는 줄인 직무의 25~50%를, 35.6%는 절반 이상을 다시 채용했다고 답했다. 기술을 도입한다고 사람의 역할이 한 번에 정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변화 속에서 'AI를 배워야 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쓰는 AI 프로그램은 몇 년 뒤 바뀔 수 있고, 현재 유행하는 숏폼 서비스도 영원하지 않다. AI를 어디까지 맡길 수 있는지 판단하고, 긴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다시 구성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그림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 어려운 부분을 찾는 일이 더 현실적인 준비에 가깝다. 캐릭터의 매력을 짚어내고 다른 형식으로 옮길 때 무엇을 살릴지 판단하는 힘도 필요하다.


웹툰도 한 번 이런 변화를 겪었다. 종이 만화를 화면에 그대로 옮기지 않고 세로 스크롤에 맞춰 컷과 여백, 이야기의 호흡을 다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웹툰이 자리 잡았다.

이번에는 쇼츠와 AI다. 10년 뒤 '웹툰 작가'가 지금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웹툰을 그리고, 움직이게 하고, 짧게 다시 만들고, 캐릭터를 다른 콘텐츠로 보내는 일까지 창작자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독자가 웹툰을 보는 이유까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마음 가는 캐릭터가 있어야 다음 화를 누른다. 쇼츠와 AI가 그 앞뒤에 얼마나 더 많은 일을 만들어낼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AI 생성 이미지 [출처 = 김민수]



필진이미지

김민수

CBS노컷뉴스 기자. 어릴 때 만화방에서 〈맹꽁이 서당〉을 보고 푹 빠져 자주 따라 그렸다. 이내 손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글 쓰는 일을 꿈꾸다가 결국 기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