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권 888책에 달하는 방대한 왕조의 기록 ‘조선왕조실록’이 마침내 만화책으로 완성됐다.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이다. ‘개국’에서 ‘망국’까지 스무 권. 지난 13년을 작가는 직장도 그만두고 오로지 ‘실록’ 연구에 매달렸다. 작품의 근간인 ‘조선왕조실록’ 국역본 CD를 읽고 또 읽으면서 실록에 가장 충실한 만화를 그려냈다. 왕조의 탄생과 번영, 멸망을 그리고, 그 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벌이는 치열한 대결과 화합, 발전을 녹여냈다.
결코 기존 권위자들의 연구 내용에 휩쓸리지 않았다. 스스로도 치우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용은 없고, 재미와 감성에 호소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올해 부천만화대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오랫동안 외로이 달려온 고된 작업에 대한 격려와 박수인 듯해서다. 바라는 것은 이제 한 가지 뿐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남녀노소 누구라도 ‘조선왕조실록’을 쉽게 접하는 창구 또는 내비게이션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리하여 많이 팔리는 책보다 많이 읽히는 책을 소망한다는 박시백 작가를 2013 부천만화축제 현장에서 만났다.
오랜 작업이 드디어 끝이 났다. 소감이 어떠한가? “서운함보다는 시원함이 크다. 시원함과 섭섭함이 9대 1 정도다.(웃음)”
2003년 1권 출간과 동시에 이미 대한민국만화대상을 받았고, 이번에는 완결과 함께 2013 부천만화대상까지 받았다
“고맙고, 기쁘다. 근래 들어 한국 만화들이 웹툰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상을 받아) 조금 미안한 감도 있다. 오랫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배려인 듯하다. 역사서로서는 모르겠지만 사실 만화로서는 부족한 게 많다.”
분명 만만찮은 작업이다. 많이 힘들었겠다
“이런 얘길 하면 사람들이 웃는데, 나는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또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한다. 책도 많이 안 읽는다. 가령 박재동 선배님이나 이희재 선생님처럼 그림을 늘 그리는 사람만 봐도 신기하고, 어쩌면 저럴까 싶다.
나는 지식을 가공해 만화로 만드는 류의 작업은 잘할 수 있을 듯해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공부가 가장 힘들더라.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방대한 양의 실록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 또 이 긴 이야기를 그려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우선적으로 추려낸 실록의 내용만도 대학노트 100권 분량을 넘었다고 들었다
“그러니 얼마나 지겨웠겠는가.(웃음)”
2001년도 4월, 잘 다니던 신문사를 돌연 그만두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시작했다. 공부도 그림도 싫어한다는데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나?
“일단, 그땐 젊어서 가능했겠다.(웃음) 뭐랄까, 나는 주변의 평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측면이 있다. 처음 한겨레에서 ‘그림세상’을 연재하면서 굉장히 좋은 평을 받았었다. 그런데 3~4년쯤 지나니 정점에서 쭉 떨어지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다. 나의 만화적 에너지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독자들이 벌써 알아본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만화가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만화가로 오래 가고 싶은데 재미가 없어도 그냥 버틴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기가 떨어지기 전에 혹은 더 망가지기 전에, 더 고갈되기 전에 다른 출로를 찾자는 생각을 했다. ‘그림세상’을 한 3년 정도 하고 나서는 (‘조선왕조실록’ 작업) 시작을 했던 것 같다. 때마침 조선왕조 관련 책을 읽고 있었는데, 확 당기더라. 여러 책을 보다 보니 같은 이야기도 저자나 역사학자에 따라 서술이 달라지는 게 보였다. 또, 마침 ‘조선왕조실록’ 국역본 CD가 보급되던 때였다.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대단한 포부를 갖고 ‘조선왕조실록’을 소개했던 게 아니라 그저 조선사를 소개하자, 쉽게 풀어 알리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너무 엉터리에, 소개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책들이 많더라. 드라마뿐 아니라 무슨 교수님이 쓴 책이고 간에 실록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들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실록에 파고들었고, 실록에 기초한 책을 그리자는 생각도 더욱 강해졌다.”
취재나 현장 조사 등도 많이 필요했겠다
“막무가내로 시작한 측면이 있다. 아마 완벽주의적 관점으로 접근을 했으면 아예 시작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의 A부터 Z는 실록이었다. 그게 우선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배경 같은 경우는 만화를 쉽게 넘기기 위한 장치 정도로 여겼다. 물론 잘하면 좋지만 그것에 시간을 빼앗기기 보다는, 실록의 맥과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잡았다.”
500명이 넘는 주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캐릭터 설정이 어렵지는 않았나?
“주요 캐릭터가 아닌 인물들까지 더하면 1000명쯤 된다. 만화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진행이 되고, 그래서 더욱 위험한 면이 있다. 내가 언젠가 이 만화의 첫 페이지에서 끝까지가 ‘오류투성이’라고 얘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령, 왕이 어떤 교시를 내리는 장면만 보아도, 그 이야기는 물론 실록에서 따온 거지만, 그때의 표정이나 옷차림, 동작 같은 것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세부적으로 접근하면 배경부터 모든 게 다 오류고, 그 누구도 재현할 수 없다. 우선 실록을 핵심 스토리로 잡고, 앞뒤 다른 사건들과의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인상을 캐릭터화 시켜냈다. 어쨌든 역사는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의 주관이 강력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고, 객관적인 역사란 있을 수가 없지만 만화여서 더욱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인물들도 보인다. 가령 청렴의 대명사인 황희는 뇌물 사건과 연루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든 것은 다 의심하자는 게 나의 원칙이었다. 제 아무리 유명한 박사건, 교과서에 나온 것이건 간에 일단 의심했다. 어느 한 편에 서지 않으려는 노력도 의식적으로 했다. 사극을 보면 분명 사람인데 너무 선악이 뚜렷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완전히 선하고 완전히 악하기만 할 수 있나.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기록에 근거한 타당성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릭터의 생김새나 성격이 아니라 사건의 진행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내 사적인 감정 이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수많은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세종과 이순신이다. 둘 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너무 영웅화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나도 좀 까칠하게 접근했었다. 하지만 파면 팔수록 오히려 멋있기만 하더라.
세종은 정말 무지막지한 천재다. 사고 자체가 몇 백 년 앞서 있어 정조나 그 이후쯤에 가 있는 사람이다. (한글 창제와 같이) 상상도 못할 생각을 혼자 진행하고 있고, 일단 시작하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자기의 구성안대로 다 체크하면서 기어코 완성을 본다. 또, 반대하는 신하들을 조곤조곤 설득하고, 납득시킨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민주적인 리더십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현대의 어떤 지도자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중세시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이순신 역시 만약 그 당시에 없었다면 이미 조선은 그때 망했거나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을 거다. 말 그대로 나라를 구했다. 하늘이 내렸다고 밖에는 말 못하겠다.”
‘조선왕조실록’이 박시백을 떠올리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듯하다
“10권이 출간됐을 때까지만 해도 누군가 대표작을 물으면 ‘그림세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조선왕조실록’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실록’에 대한 접근, 관심을 촉발시키고 안내의 이정표, 심하게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였으면 좋겠다. ‘조선왕조실록’은 진짜 대단한 기록이고, 그에 비해 많이 연구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더 많이 연구하고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세계사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이런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 선조들에 대한 후대들의 보답이 되지 않을까.”
사초가 유실되고, 국사가 외면받는 시대다.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층이 있나?
“처음부터 성인 독자를 염두했고, 청소년이 봐도 좋게 작업했다. 지금은 좀 많이 바뀌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많이 팔았으면 했지만 하다 보니 ‘실록’의 가치를 느끼게 됐고, 그럼에도 ‘실록’이 덜 소개되고 덜 연구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속되게 말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도서관을 통해서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누구라도 조선사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본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나?
“아니, 별로 없다. 중·고등학교 때도 역사를 싫어했다. 특히 국사보다 세계사를 싫어했는데, 외국인 이름들을 잘 못 외우기 때문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하니까. 그래서 역사를 안 좋아했었는데 대학(고려대) 다니고 학생운동을 하면서 어쨌든 역사를 접하고, 그게 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역사학자들에게 특히 인정받고 있다. 야사 보다는 정사를, 왜곡 없이 접근한 점이 돋보인다
“어쨌든 제대로 했다는 생각은 든다. ‘실록’을 기초로 해야겠다고 작심했고, 그 작심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만화로서는 그림이나 표현에서 많이 부족한 게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 했다는 만족감이 크다.”
7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인기를 실감하나?
“작가는 잘 모른다. 파는 건 내 몫이 아니니까. 출판사에 가면 인기 있더라.(웃음)”
“자주 검색해 본다. 내 작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나는 칭찬을 들어야 달리는 타입이다.”
본래 만화가가 꿈이었다고 했는데, 등단이 꽤 늦었다
“만화가가 되고자 한 게 서른 살이었다. (학생운동 이력 탓에) 취직도 잘 안 되어서 고시를 볼까, 뭘 할까 고민했다. 그래도 하고 싶던 게 만화였으니까 와이프한테 한 2년만 해보겠다고 했다. ‘아이큐점프’ 등 주간지 몇 군데를 떨어졌고, 1994년도에는 신한새싹만화상 동상을 받았다. 되겠다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1995년 여름쯤 만 2년이 되어 만화를 완전히 접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고시 공부가 재밌더라. 그런데 몇 달 후쯤 박재동 선배님이 ‘그림 세상’을 그만두시면서 한겨레 공모전에 자리가 났다. 안하면 인생에 후회가 될 듯했다. 밤샘해서 7~8장을 그려 냈고, 그렇게 만화가가 됐다. 박재동 선배 눈에 그때 뭐가 씌인 게 아니었을까. 만화는 대학 때도 몇 장 그려보지 않았고, 그림도 너무 후진데 말이다. 박재동 선배님은 평생의 큰 은인이다. 만화가로 살게 하고, 꿈을 이루게 해줬으니까.”
차기작이 궁금하다
“아직 구상중이다. 그런데 시사만화는 안할 거다. 마감과 스트레스가 없는 전업작가가 너무 좋다. 공부하기 싫고, 그림 그리기도 싫지만.(웃음)”
독자에게 한 마디?
“우리 선조들이 남긴 훌륭한 ‘조선왕조실록’에 철저히 기반했고, 그림은 잘 그렸는지 모르지만 잘 정리하고 소개한 책이다. 우리 역사, 조선사를 공부하고 싶은 분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꼭 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