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만화 붐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만화판은 미래지향보다는 과거회귀의 길을 걸었다. 대여점이 불황기에 접어들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낼 작가가 급격히 줄어들자 만화시장이 선택한 출구는 복간만화다. ‘복간만화’란 문자 그대로 과거에 인기를 누렸던 만화작품을 다시 펴낸 것을 말한다.
요즘 어지간한 인터넷서점에 가보면 만화코너에서 ‘복간만화’나 ‘추억의 만화’는 순정, 학원물, 환타지 등과 함께 하나의 메뉴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바다 그림판은 한국만화대표선집 시리즈로, 시공사는 명작 컬렉션 시리즈로 복간 만화를 브랜드화 하기도 했다.
현재 복간만화 출간 붐은 크게 세가지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애장판 혹은 완전판 형태로 출간되고 있는 근래의 인기작과 7 ~ 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전형적인 복고풍 작품, 고전만화로 일컬어지는 5 ~ 60년대 만화의 복원판들이다.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여 전부분에 걸쳐 ‘과거작품’들이 속속 새 옷을 갈아입고 있는 셈이다. 복간만화가 2000년대 들어 갑작스럽게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일본 출판만화계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소년점프 주간 600만부 발행이라는 신화의 밑거름이 되었던 드래곤볼의 도리야마 아키라, 슬램덩크의 다케히코 이노우에 같은 ‘대작가’의 출현이 뜸해지면서 급속도로 위축되었던 일본만화가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다름 아닌 ‘복간만화’였다. 일본만화를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우리 만화계에도 복간만화의 열풍은 곧바로 이어졌다.
슬램덩크 완전판, 드래곤 볼 애장판 등 소위 대박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베스트셀러 복간 바람에서 차츰 국내작가, 7~80년대 작가로 확장되어 간 복간 열기는 판매부진에 허덕여 온 출판사에 숨통을 틔워주는 효자 구실을 했다.
유시진의‘ 마니’ 같은 경우는 2002년 여름 한양툰크 순위집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그 주의 베스트셀러 톱 텐 가운데 4개가 완전판이나 애장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과거의 작품들이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가장 최근 시점(10월 3째주)에서도 한양툰크 만화 베스트 순위에 풀하우스, 총몽, 어른이 되는 방법 애장판 등 복간만화가 순위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복간만화는 이제 붐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로, 키워드로 정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복간만화의 특징
복간만화를 통해 독자들이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은 ‘현재는 절판되어 볼 수 없는 작품을 다시 찾을 수 있게끔 만든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만화작품은 시대를 넘어 이른바 고전의 영역으로 편입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하위문화로 취급받던 만화를 고급문화 또는 예술적 가치를 환기시키는 ‘작품’으로 인정받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의미있는 작품은 계속 독자들과 만나야한다는 대의명분은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복간만화를 규정하고 있다.
복간만화 출판의 도드라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체적으로 고급 장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장판은 용어 자체를 일본에서 직수입 한 경우지만 문자 그대로 소장가치를 염두해 두고 출판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값싼 코믹스류 보다 규격도 커지고 분량도 늘어나는 등 ‘사서보고 간직하는 데’ 분명한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7~80년대 복간 만화는 하드카버에 고급용지를 사용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컬랙터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처음 출판 되던 당시의 값싼 종이의 거칠고 투박한 잉크선을 제대로 복원(?)해 내지 못했을 정도로 인쇄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두번째 특징은 검열과 사회 풍토 등의 이유로 삭제되거나 실리지 못했던 부분을 완전히 복원하여 선보이는 무삭제본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판이라는 이름으로 복간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한국적 특수상황(군부독재)’ 때문에 빚어진 시대의 우울했던 단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의미 외에도, 당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온전한 내용을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24년 만에 무삭제 완전판으로 출판된 고우영의 삼국지는 시대의 변화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폭력과 선정성을 이유로 무려 100여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도려내야 했던 고우영 화백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여 시대의 어두웠던 한 단면을 절절히 묘사하기도 했다.
“ 아이는 군용트럭 비슷한 것에 깔려 팔 다리 몸통이 갈갈이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비 되는 내가 애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절통했던 것은 그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는 사실이다”
복간만화의 또 다른 특징은 향수와 추억이라는 문화전반의 ‘복고풍’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복간만화 열기가 일본의 복간만화 붐에 편승한 면이 다분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전반의 복고 열풍도 한 몫하고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세기말을 거치면서 확고한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복고’는 영화 ‘친구’, ‘품행제로’ ‘챔피언’, ‘해적 디스코왕 되다’ 등에서 노골적인 마케팅 전략을 드러냈다. 또 음악에서는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표되는 7~80년대 가수들을 대거 부활시켰고 인터넷에서는 갤러그, 테트리스, 제비우스, 벽돌깨기, 방구차 같은 추억의 오락실 게임이 다시 등장하여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쫀드기, 아폴로, 자야 같은 추억의 불량식품 역시 속속 복원되어 젊음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고 있으며 선데이 서울류의 과거 사건, 사고를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타임머신’은 방송가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80년대 초 어린이들의 심금을 쥐어짰던 은하철도999은 음악방송 Mtv에서 절찬리에 재방송되고 있다.
이처럼 복고는 일회성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전반에 확실한 장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최전선에 만화가 서 있다. 만화는 해방 후 텔레비전이 전국민에게 확실하게 보급되기 전 인 80년대 초반까지 어린이에게 가장 강력한 매체로 군림해왔다. 그 확고한 친근함이 오늘날 복고문화의 최정상에 만화가 자리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 측면
그러나 복간만화 붐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만화평론가들은 복간만화의 붐이 신인작가의 등장을 가로막는 구실을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기존의 만화출판사들이 새로운 작가, 작품을 발굴하기보다는 과거의 향수에 기대어 손쉽게 ‘돈을 벌어보자’는 상술에 충실한 나머지 궁극에는 만화시장 전체를 오히려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복간 가용자원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것이고 더 이상 복간만화를 낼 수 없는 사태가 오게 될 경우 그 공간을 메울 작가와 작품이 필연적으로 부족해지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좋은 작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화출판사들은 복간만화 붐에 편승하기 이전에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장의 흐름과 제작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간만화는 신작만화 보다 우위에 서서는 안되며 오히려 시장 스스로 적정한 비율에서 발간량의 조절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비평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무문별하고 우후죽순격의 복간만화는 오히려 그 자체만으로 시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복간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가 되도록 마케팅 전략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100만부 팔리는 베스트셀러 하나보다 연간 1만부 팔리는 스테디셀러 10권을 보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출판 업계의 통설인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볼 대목이다.
70년대를 풍미했던 클로버 문고를 다시 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던 어문각의 좌절 또한 복간만화 붐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는 씁쓸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애초에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독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힘입어 기획이 시작된 ‘클로버 문고 부활 프로젝트’는 몇 해가 흐른 지금까지 한권도 공식적으로 출판되지 않아 독자들의 엄청난 실망과 항의를 자초했다. 클로버 문고를 다시 보고 싶다는 글로 도배질 되었던 어문각 인터넷 게시판은 어느새 회사의 안일한 대응과 무신경을 질타하는 안티 게시판으로 변해 버렸다. 아무런 전략 없이 독자들의 기호에만 편성하여 복간을 시도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복간은 결코 안정된 사업이 아니며 성공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도 아니다. 기존의 작품보다 더 철저한 기획과 마케팅이 선행되었을 때만이 독자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봐야할 고전만화
복간열풍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 봐야할 분야가 있다. 부천만화정보센터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중심이 되어 출간 작업을 진행 해 온 5~60년대 고전만화들이다. 부천만화정보센터는 한국 만화사의 복원을 위해 기획한 한국만화걸작선 시리즈를 통해 김종래 선생의 마음의 왕관, 박광현 선생의 그림자 없는 복수를 펴낸 바 있으며 최근에는 우리 SF만화의 고전 ‘라이파이’를 40여년 만에 다시 출간했다. ‘라이파이’의 경우 단순히 작품의 복간에만 그치지 않고 동호회를 결성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한편 인사동 유명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입체적인 재조명을 시도하여 만화계 안팎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는 새만화책, 바다출판사등과 손잡고 방영진 선생의 ‘약동이와 영팔이’, 신동우 선생의 ‘허진형제 복수록’, 박기당 선생의 ‘만리종’을 새롭게 펴냈다.
부천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에서 추진하는 고전만화 복간 움직임은 일단 부실한 우리만화문화를 살찌운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인식해야할 것은 이상의 만화관련 기관에서 펴내는 복간만화는 우리 사회에 몰아치는 복간만화열기와는 다른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만화박물관의 복간만화사업은 박물관 ‘고유의 기능’이라는 면에서 일반 출판사들의 상업적인 전략의 ‘복고주의’와는 구별하여야 한다. 우리 만화판에 복간만화가 붐이 일어 나지 않았더라도 이상의 단체들에서는 복간만화를 내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로 시기가 맞아 떨어졌던 것뿐이다. 워낙 복간만화가 많이 출간되다보니 상대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덜 받는 등 손해(?)를 입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해서 이러한 고전만화 복간사업이 대중성을 완전히 무시한 기획인 것만은 아니다.
이용철 한국박물관 학예실장은 복간만화 발간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단순히 만화를 재연해낸다는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세대를 뛰어 넘어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부분도 있다. 상업성까지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5~60년대 작품이 오늘날 대중에게도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과거의 작품을 영인본식으로 계속 묶어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요즘에도 어필이 될 만 한 것을 선정하여 서점용으로 출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 인프라구축이라는 면에서 세대를 초월하여 공유하는 지적자산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불국사가 있어 신라천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듯이 고전만화를 보면서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만화문화를 호흡할 수 있다면 고전만화복간 사업은 성공인 것이다”
4~50대 기성세대의 향수를 본격적으로 자극하는 5~60년대 고전만화는 10대 위주의 잡지, 단행본, 코믹스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일반 서점, 대여점에서 성공을 거두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부천만화정보센터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같은 공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고전만화 복간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어 오랫동안 독자에게 사랑받아 ‘스스로 살아 움직일 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복간에 따르는 어려움
복간만화가 확실한 코드로 자리 잡았다고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꽤 까다로운 공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물론 필름이나 원고가 확실하게 보존되어 있는 최근의 작품들은 예외지만 2~3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만화를 원형 그대로 복원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우선 복간을 원하는 출판사를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원본 분실’이다. 그 당시 - 작가들이 오늘날 복간만화열풍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졌겠지만 - 한번 출판사로 넘어간 작품은 작가가 악착같이 되돌려 받지 않는 이상 원형 그대로 보존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로보트 킹 13권 전권을 복간하며 ‘졸지에 한국 유일무이의 만화복원 전문가가 되어버렸다’고 고백하는 원종우 길찾기 대표는 딴지일보에 기고한 ‘로보트 킹 복원 열혈분투기’를 통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야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 고선생님의 경우 악착같이 자신의 원고를 다시 회수해 가는 프로정신을 보였지만, 킹의 경우 80년, 재간을 담당했던 출판사가 책을 찍고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원고를 찾지 못한 경우가 된다. 여기에 더욱 엽기적인 사실 하나를 더 공개하자면, 출판사 사장 아들놈이 몇 개 안 남은 금쪽같은 만화원고를 가지고 색칠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고전만화를 복원하는 데는 당시 출판되었던 만화책을 원본으로 삼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나마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수정 공정이 뒷받침 되었기에 원형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5~60년대 고전만화 복간에 주력해온 한국만화박물관 이용철 학예실장은 보다 근원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일단 복간대상이 될 작품이 선정되면 작품 수집에 나선다. 그러나 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당시의 작품을 소장하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심지어 미국까지 연락하여 가족과 친지, 관련자를 수소문 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찾지 못하여 복간작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한 권의 완전한 작품을 다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우리사회에 결핍된 기록, 보존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복간 만화의 복원 비용이 상당히 높아 상대적으로 소비자 가격의 상승을 초래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하다. 만화가나 출판사가 작품에 대한 충분한 애정을 가지고 원화를 관리해 왔다면 오늘날과 같이 출간에 따른 다양한 어려움이 대폭 축소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리는 관습이 우리 만화 문화 전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앞으로 만화인 스스로 만화문화보존에 대해 어떤 고민을 담아야할지는 분명해 보인다.
?작가는 죽어도 작품은 영원하다
예컨대 복간만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재미있는 만화(혹은 의미있는 만화)는 독자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최근의 붐은 상당한 거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너도나도 복간만화에 온통 심혈을 기울이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그전에는 아무도 만화를 복간한다는 생각을 발굴해(?)내지 못했기에 일시적 러시아워는 피치못할 사정이긴 하다.
우리 만화계에 복간의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승운의 맹꽁이 서당, 고우영의 일련의 역사물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들은 확실한 스테디셀러였다. 복간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꾸준히 재생산되어 온 작품들이다.
만화문화사적 의미에서의 복원과 시장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은 일정한 지점에서 구별되어야한다. 오늘날 복간만화의 붐은 지금까지 간과해 왔던 또다른 만화의 세계 전체가 복원된 의미를 갖는다.
거품이 꺼지고 시장에서 일정지분을 확보한 후 자기만의 궤도를 확보한다면 복원 만화는 창작자에게 아주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좋은 작품, 열심히 하면 마치 퇴직금이나 연금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며칠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최근호는 고인이 된 유명인들의 연수입을 집계하여 발표했다. 2위를 차지한 스누피 캐릭터로 유명한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는 지금도 여전히 연간 3200만달러(380억원)을 벌어들이며 3년 연속 2위에 올랐다고 한다. 작가는 죽었어도 작품은 여전히 살아남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만화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어느 누가 작품을 소홀히 할 것인가?
?주요 복간 작품 소개
다음은 새롭게 복간되어 나온 작품 가운데 볼만한 작품을 골랐다. 90년대 이후 인기를 끌었던 작품을 새롭게 애장판으로 만든 것은 복간의 의미가 그다지 높지 않아 제외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한국 거대로봇물의 시작 로봇태권V 만화로 복간(?)
지금의 30대들에게 로봇태권V는 명절날 극장에서 만나는 김청기 감독의 에니매이션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동네 만화방 한구석에서도 태권도를 주무기로 적과 싸우는 태권브이의 위상을 만나 볼 수 있었단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76년 개봉되었던 태권브이 1탄의 인기를 힘입어 만화가 김형배 화백이 로보트 태권 -우주작전을 시작으로 시리즈를 발표하였고 이 만화본 태권브이도 당시 어린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만화 전문출판사 G&S는 최근 70년대 만화방을 누렸던 로보트태권브이의 활동무대를 2003년으로 옮겨와 시리즈 모두를 복간했다. 제1탄 로보트 태권 브이- 우주작전(전3권) , 2탄 로보트 태권브이 -수중특공대(전2권), 3탄 로보트 태권 V와 황금날개의 대결(전 2권)등 총 7권이 한 세트로 출간됐다. 지금보면 어슬픈 부분도 보이고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 아이들이었던 지금의 청장년층들에게 추억과 향수에 젖게 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로보트 태권 V
로보트킹 완결 복원되다
70년대 거대로봇 만화붐을 주도하며 탁월한 유머와 패러디로 다른 거대 로봇물과 차별화된 재미를 주었던 로보트킹을 기억하는가? 77년 월간 우등생지에 연재를 시작으로 81년까지 5년동안 큰 인기를 누렸던 고유성화백의로보트킹시리즈는 출판사 길찾기에 의해 13권 전권이 복간되었다. 당시의 열악한 만화풍토로 인해 남아있는 원고가 거의 없어 복원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검열 삭제되었던 장면을 작가가 다시 복원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완결된 모습으로 독자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카리스마 로봇 로보트킹, 천재박사 고박사 멋진 주인공 유탄군 사이보그 호연양 호시탐탐 지구를 노리는 코코스일당등의 통쾌한 액션, 고유성화백 특유의 배꼽 잡는 개그와 함께 30년의 시간을 넘어 유년의 기억속으로 젖어드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성인만화의 클래식 고우영의 삼국지 무삭제 출간
1978년 스포츠신문에 처음 선을 보인 고우영의 삼국지는 당시 재기 넘치는 이야기솜씨와 그림으로 성인층에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몇번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지만 선정성과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삭제 수정 된 버전임을 눈치 챘던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출판사 애니북스에서 당시 검열을 통해 삭제 수정 되었던 100여페이지 달하는 장면들을 직접 복원해 무삭제 완전판으로 다시 출간한다. 고우영 특유의 유머로 재해석된 쪼다 유비 멋진수염 관우 터프한 장비등등 삼국지의 호걸들을 허리 잘린 모습이 아니라 완전한 모습으로 한층 더 밀도있게 다룬 점이 백미다.
뽀루뚜가, 제제, 그리고 밍기뉴...
68년 브라질 작가 바스콘셀로스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놀라운 감수성의 다섯살의 악동 제제와 제제의 영원한 친구 뽀루뚜까아저씨 그리고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의 우정을 중심 축으로 감동의 서사에 눈시울을 적셔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만화가 이희재 화백은 1988년에 이 소설을 만화로 재탄생시켰다. 전례의 작품 악동이, 억새풀등에서 알 수 있듯이 만화가 이희재화백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소설의 감동이 만나면서 만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한다. 출판사 청년사는 흑백으로 되어있던 400페이지 가량의 원본에 다시 칼라를 덧입히고 양장본으로 업그레이드해 복간하였다.
명랑만화의 원류를 만나다.
길창덕, 신문수, 이정문, 박수동, 윤승운... 지금은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70년대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이른바 명랑만화를 그렸던 작가들이다.
이들의 대표작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출판사 바다그림판은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
박수동의 5학년 5반 삼총사,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등을 한국만화대표선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리즈로 출간했다. 지금 30~40대를 이루고
?
있는 그 당시 꼬맹이 독자층들은 거의 다가 팬이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작품들이다.
박수동의 5학년 5반 삼총사,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등을 한국만화대표선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리즈로 출간했다. 지금 30~40대를 이루고
?있는 그 당시 꼬맹이 독자층들은 거의 다가 팬이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작품들이다.
이들의 대표작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출판사 바다그림판은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
박수동의 5학년 5반 삼총사,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등을 한국만화대표선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리즈로 출간했다. 지금 30~40대를 이루고
?있는 그 당시 꼬맹이 독자층들은 거의 다가 팬이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