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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산업의 성장과 다양성의 위기: 장르 편중의 그림자와 미래 과제

웹툰 산업은 장르 편중과 다양성 위기 속에서 창작 생태계의 건강한 지속을 위해 균형 잡힌 장르 확장과 새로운 독자층 유입 전략이 요구되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

2025-06-11 홍난지

웹툰 산업의 성장과 다양성의 위기: 장르 편중의 그림자와 미래 과제

 

웹툰 산업의 장르 편중과 다양성 위기는 이미 업계에서 주요한 과제로 지목되어 왔다.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인기 장르에 쏠림 현상, 신인 작가의 등용문 축소 등 건강한 웹툰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단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장르 편중과 다양성의 위기가 발생한 원인을 살펴보고, 창작자와 웹툰의 다양성 확보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성장과 전환의 기로에 선 웹툰 산업

웹툰 산업을 이끌어 가는 양대 산맥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웹툰과 웹소설 중심의 IP 활성화 비즈니스모델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세계인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COVID-19의 반사이익에 힘입어 웹툰 산업은 성장 일로를 걸었다. 이 기세는 엔데믹으로 반전돼 트래픽의 감소로 이어졌고 급증한 작품 수에 따라 단위 작품의 매출은 점차 감소했으며 장르 편중화로 인한 독자들의 이탈을 피할 수 없었다. 검증된 웹소설을 기반으로 노블코믹스를 주로 제작하던 중간 업체들의 안타까운 폐업 소식이 잇따르는 가운데 2024년 네이버웹툰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장한 네이버웹툰의 주가가 하락하며 웹툰 산업계에 감도는 불황의 그림자가 기시감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웹툰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가 다소 둔화하는 조짐이 보이는 지금, 성숙한 웹툰 생태계로 나아가기 위해 그간의 발전 과정을 되짚고 앞으로 필요한 과제들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성장에 따른 웹툰 산업 구조의 변화

출처 : 카카오페이지


웹툰은 정부 주도의 인터넷 인프라의 확산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 속에서 아마추어 창작자들 중심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웹콘텐츠다. 초기에는 개인 홈페이지나 취향 중심 게시판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자유롭게 게재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플랫폼들이 이용자 유입 수단으로 만화 게시판을 도입하자 세로스크롤 연출 방식이나 컬러 작화, 주간 연재 등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장르의 웹툰이 연재되었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며 웹툰은 각종 디바이스에 최적화되었고 스토리텔링의 방식도 디지털 기기를 주로 활용하는 이용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웹툰은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 슈퍼 웹툰 프로젝트와 같은 IP 비즈니스 전략을 펼쳤고 이와 함께 에이전시와 제작사, 스튜디오 등으로 불리는 중간 업체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간 업체가 제작된 웹툰이 대거 플랫폼에 연재되면서 웹툰 중심의 IP 확장은 더욱 가속화됐다. 이때 중간 업체들로부터 만들어진 웹툰은 웹소설 원작의 노블코믹스의 비중이 높았다. 노블코믹스 제작이 증가하고 연재 비중이 확대된 주요 요인으로는 웹소설이 이미 스토리텔링과 상업성을 검증한 IP로서 웹툰으로 제작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 웹소설에서 웹툰 영상화로 이어지는 IP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수익성 확대를 꾀하는 전략에 부합한다는 점이 꼽힌다. 이러한 전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웹툰 플랫폼의 여러 중간 업체를 대상 대규모 투자가 있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플랫폼은 노블코믹스 제작 확대를 위해 중간 업체에 대규모로 투자했고 중간 업체들은 성공이 보장된 웹소설 IP로 고품질의 노블코믹스를 제작하는 데 열중했다. 노블코믹스는 다수의 구성원을 각 공정에 투입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제작했고 1인 작가가 만드는 오리지널 웹툰과는 작품의 분량이나 완성도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오리지널 웹툰 작가들의 노블코믹스로의 유입도 눈에 띄었다. 네이버웹툰에서 <필살 로맨스>를 연재했던 구르 작가는 <빙의자를 위한 특혜>를 노블코믹스로 만들어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했고, <알고 있지만>, <투명한 동거>의 정서 작가도 <엔딩 후 서브남을 주웠다>를 노블코믹스로 만들어 네이버웹툰에 연재했다. <SM플레이어>, <가담항설>, <니나의 마법서랍> 등의 랑또 작가도 <마술하는 섹시한 남자>의 각색을 맡기도 했다.

 

노블코믹스의 인기와 희석된 가치

노블코믹스의 인기는 원작인 웹소설의 상업성과 대중성에 기인한다. 웹소설은 제목에서부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장르 규칙에 충실하며, 독자들은 이미 익숙한 장르 특유의 재미를 확인하기 위해 웹소설을 연달아 읽는다. 노블코믹스는 독자들 나름대로 상상하던 웹소설의 텍스트를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작화로 시각화해 한층 더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웹소설은 매일 연재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보다는 독자가 원하는 재미를 빠르게 제공하는 제 집중한다. 웹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회귀빙의’, ‘환생은 독자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장치다. 특히 스마트폰 환경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면 쇼츠나 릴스처럼 다른 콘텐츠로 쉽게 이탈할 수 있어서 웹소설 속 주인공은 독자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통쾌하게 얻을 수 있도록 회귀하고 환생하며 빙의한다. 이러한 특성이 있는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든 노블코믹스는 오리지널 웹툰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등장해, 현대 판타지부터 로맨스판타지, 무협 등 이전에는 익숙하지 않던 장르들을 다양하게 선보였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장르의 다양성 확대, 웹툰 작가의 진로 다양화, 유료 판매 증진, 중간 업체의 성장 등 웹툰 산업이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노블코믹스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그 긍정적인 효과가 점차 희석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플랫폼의 장르 편중과 독자들의 반응

엔데믹 이후 웹툰 유료 매출 감소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업체들이 공통으로 겪은 현상이다.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단위 작품당 매출이 줄어든 것은 국내외 시장 확장을 위한 불가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노블코믹스 장르가 팬데믹 시기에 웹툰 시장 확대에 기여했단 점은 분명하지만, 성과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웹소설 원작 웹툰의 비중이 꾸준히 늘었다. 카카오페이지의 경우 2024년 상위 200개 작품 중 95%가 노블코믹스였으며, 네이버웹툰도 30%까지 증가했다고 알려졌다. 2022년의 자료에 의하면, 네이버웹툰의 로맨스 장르의 비중은 202025%에서 202240%로 급등했지만, 개그와 일상물은 2% 수준으로 하락했다. 카카오웹툰 역시 같은 기간 5%에서 35%로 로맨스 장르의 비중이 크게 늘었고, 카카오페이지는 로맨스판타지 장르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플랫폼들이 잘 팔리고 조회수가 높은 장르 위주로 연재를 집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2024 만화 웹툰 이용자 조사


플랫폼의 장르 편중을 두고, 독자의 요구 때문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매년 조사되는 <만화 이용자 실태조사>에 살펴보면 독자는 플랫폼에서 소외된 장르를 다른 서비스를 통해 충족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화 이용자 실태조사>의 만화를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를 묻는 질문의 최근 3년간의 추이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을 선택한 비율이 20225.9%, 202311.5%에서 2022년에는 13.6%로 최근 3년간 꾸준히 상승했다. 이 기간에 플랫폼이 등한시한 개그와 일상 장르의 웹툰을 독자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비해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SNS라는 점에서 접근성이 좋은 점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지만, 한편으로 독자들이 인기 장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에 고르게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웹툰을 성장시킨 동력, 다양성의 가치

돌이켜보면, 네이버웹툰은 2000년대 후반 타 플랫폼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에 웹툰 게시판을 개설했다. 이용자를 네이버라는 플랫폼에 유입시킬 목적으로 내세운 전략이 개그와 일상 장르 웹툰의 연재였고 일반 독자들이 가볍게 볼 수 있고 스스로 그리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춘 덕분에 네이버웹툰은 지속적으로 이용자가 증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은 2000년대 초반, 개인 홈페이지나 게시판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며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아마추어에서 프로 만화가가 되는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 한국 웹툰의 태생적 특성과도 맞물려 있다. 네이버웹툰은 아마추어들이 일상을 유쾌하게 전하는 일상, 개그 장르에서부터 스릴러, 액션, 로맨스, 판타지 등의 장르를 확장해 가며 만화 고관여층까지 아우르는 웹툰 플랫폼으로 가장 많은 이용자가 웹툰을 감상하기 위해 드나드는 플랫폼이 되기까지 다양성은 근간이 되었다. 다양성은 독자에게만 효용이 있는 건 아니다. 노블코믹스를 보고 꿈을 키운 지망생들은 완성도 높은 작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테크닉을 갈고닦는다. 개성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구하는 것보다 노블코믹스의 화려한 작화가 기준이 되어 현장에서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트렌드에 맞추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 기준이 여러 명이 한꺼번에 투입되어 만드는 높은 밀도와 화려한 작화로 획일화되는 것은 안타깝다. 비록 웰메이드는 아니더라도 오로지 재미를 위해 행해진 여러 시도가 작가와 독자를 포섭하고 역동적인 생태계를 만든 것처럼 다양성은 웹툰 산업에 필요한 가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양성 확보를 위한 플랫폼들의 노력과 새로운 시도

카카오페이지는 2019년 무렵 여러 장르의 오리지널 웹툰을 발굴해 연재한 바 있으나 여전히 노블코믹스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카카오웹툰의 오리지널 웹툰들도 함께 연재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시기별로 공급이 필요한 장르를 선발하는 공모를 비정기적으로 개최하기도 한다. 특히 큰 인기를 끌던 작품이 완결할 때마다 같은 장르의 작품을 모집하는 공모를 진행했고, 이러한 방식이 모여서 2024년에는 연재 직행 열차프로그램으로 발전해 하이퍼리얼리즘’, ‘군필공감’, ‘심장제세동기 로맨스’, ‘생활툰/썰툰’, ‘귀요미 캐릭터’, ‘열혈청춘 스포츠 성장물과 같은 장르별 웹툰을 모집했다. 같은 해 말에는 ‘2024 졸업작품 공모전이 열리기도 했다. 네이버웹툰은 2016년부터 베스트도전에 연재되는 웹툰 대상으로 2개월마다 5개 내외의 작품을 선정해 지원금과 함께 정식 연재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고 최강자전지상최대 공모전와 같은 정례화된 공모전 이외에도 오리지널 웹툰을 발굴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해왔다. 이처럼 정기·비정기적 모집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이유는 특정 장르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웹툰이 연재되길 바라는 플랫폼의 의지를 보여준다.

 

출처 : 네이버웹툰


웹툰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슈퍼 IP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 연령대가 웹툰에 관심을 두고 유망한 작가로 성장하며, 고관여층 독자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젊은 세대들은 쇼츠나 릴스 같은 숏폼 영상 콘텐츠를 즐겨 보기 때문에, 웹툰을 읽고 해석하거나 세로스크롤을 올리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래 독자층을 타 콘텐츠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는 웹툰 산업의 지속적 발전에 있어 가장 큰 불안 요소로 지적된다. 따라서 웹툰을 결제해서 감상하고 파생 콘텐츠까지 소비하는 고관여층을 위한 장르를 활성화하면서도 새로운 독자층과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생태계가 조성된다면 웹툰 산업은 더욱 큰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네이버웹툰이 과감하게 도입하는 숏폼 콘텐츠 컷츠(CUTS)’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네이버웹툰은 새로운 창작자와 IP를 발굴하고 웹툰 생태계의 확장을 위해 국내외로 성장하고 있는 숏폼 플랫폼 시장에 대응하고자 컷츠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웹툰보다는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형식이지만, 신규 독자와 창작자의 유입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웹툰 산업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변화로 여겨진다.

 

웹툰 산업은 쉼 없이 달리며 외연의 확장을 모색해 왔다. 대박 중심, 장르 편중 현상은 외연 확장 과정에서 나타난 대표적 사례로, 오히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사한다. ‘다양성의 필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을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독자나 지망생 모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생태계,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 올린 발전의 발판 위에서 멈추지 않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다채롭고 풍부한 목소리와 색깔이 공존하는 웹툰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필진이미지

홍난지

만화평론가, 정책연구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웹툰만화콘텐츠전공 교수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 前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웹툰 퍼포먼스와 독자의 즐거움』, 『이말년』 등 도서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