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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상반기 K-그래픽노블의 현재] 붓과 먹으로 그린 기억, 국경을 넘다 –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김금숙과 프랑스

6월 26일 오후 3시,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프랑스관. 한국 만화가 김금숙과 프랑스 만화가 의빈 랑드루가 마주 앉았다. 김금숙은 지난 5월 28일 한국 만화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프랑스가 1957년부터 예술과 문학에 공을 세운 이를 기려 온 훈장이다. 프랑스 작가 의빈 랑드루는 부천에 새로 생긴 '빌라 한불-부천' 레지던시가 그를 첫 입주작가로 불렀다.

이민우

(사진 왼쪽부터 통역, 의빈 랑드루, 김금숙 작가 그리고 사회를 맡은 김선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콘텐츠실장. [이민우 기자 제공]


한·불 수교 140주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김금숙과 의빈 랑드루


6월 26일 오후 3시,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프랑스관. 한국 만화가 김금숙과 프랑스 만화가 의빈 랑드루가 마주 앉았다. 김금숙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그려 왔고, 랑드루는 베트남계 가족의 기억을 담아 왔다. 국적도 세대도 달랐다. 그런데 한 시간 남짓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두 사람이 자꾸 겹쳐 보였다. 둘 다 자기와 가족의 역사를 그리는 작가였다.


사회를 맡은 김선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콘텐츠실장이 자리의 뜻을 짚었다.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맺은 지 140년입니다. 프랑스와 함께 기억을 그리자는 주제로 두 작가를 모셨습니다." 두 나라의 첫 만남은 충돌이었다. 1886년 정식 수교보다 20년 앞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빼앗아 갔다. 그 의궤 297책은 145년이 흐른 2011년에야 대여 형식으로나마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빼앗긴 의궤를 두고 한 세기 넘게 줄다리기한 두 나라의 작가가, 이제 같은 탁자에 앉아 함께 기억을 그린다. 대담이 깊어질수록 두 작가는 같은 질문에 닿았다. 우리가 그리지 않으면, 누가 이 기억을 기억하겠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이들이 왜 하필 만화가일까. 한국에서 만화라고 하면 많은 이가 웹툰을 먼저 떠올린다. 스마트폰 화면을 세로로 내리며 보는, 색을 입힌 연재물 말이다. 그래픽노블은 결이 다르다. 작가 한 사람이 글과 그림을 함께 맡아, 한 권이나 몇 권의 책으로 완결되는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오락보다 문학과 역사, 증언에 가까울 때가 많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만화로는 처음 퓰리처상을 받은 일이 그 상징이다. 이날의 두 주인공이 바로 그런 작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대담 중인 김금숙 작가. 김금숙 작가는 지난 5월 28일 한국 만화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이민우 기자 제공]


기억을 그리는 손


김금숙은 지난 5월 28일 한국 만화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프랑스가 1957년부터 예술과 문학에 공을 세운 이를 기려 온 훈장이다. 파리에서 번역으로 생계를 잇던 한 조각가가 왜 만화로 향했을까.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이면 어디서든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화를 시작했을 땐 절망 속에서, 다른 창작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화가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습니다." 

1971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지만, 그 작업만으로는 파리에서 전시 한 번 열기도 버거웠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한국 만화 번역이 뜻밖의 길을 열었다. 프랑스에 머문 17년 동안 한국 만화 100여 편을 프랑스어로 옮기며 두 나라를 이었고, 그러다 스스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책을 내면 전 세계로 나가죠. 지금은 밥 먹고 숨 쉬고 잠자듯,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제 일상입니다."


그의 첫 책 <아버지의 노래>는 1970년대 가난한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자기 가족의 이야기였다. 사적인 가족사였지만 오히려 외국 독자들이 더 깊이 공감했다. 폭력적인 남편도, 떠나는 사람들의 사연도 어느 나라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말을 이었다. "한땐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그 삶이 1970년대를 살아낸 여성 대부분의 모습이었어요. 내 이야기지만,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프랑스에서 우연히 들은 판소리는 귀국한 뒤 그를 사로잡았다. 직접 소리를 배운 그는 "판소리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위안부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도 프랑스였다. 2014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위안부 기획전 '지지 않는 꽃'이 열렸을 때, 일본 극우 진영은 전시를 막으려 했다. 프랑스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맞섰고, 현지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오히려 국제적 관심이 쏠렸다. 김금숙은 다가오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역사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대표작 <풀>이 싹텄다. 2017년에 나온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담았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한 영어판은 이듬해 하비상 최고의 국제도서 부문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받았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지금은 수십 개 언어로 독자를 만난다. 한 할머니의 증언이 온 세계의 기억으로 남은 셈이다. 


2017년에 나온 그래픽노블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담았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한 영어판은 이듬해 하비상 최고의 국제도서 부문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받았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지금은 수십 개 언어로 독자를 만난다. [예스24 책소개 갈무리]


<풀>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2014년 단편 <비밀>에서 위안부 문제를 처음 다루며, 그는 극한의 폭력을 어떻게 그림으로 옮겨야 할지 막막했다고 돌아본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열대여섯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간 뒤 평생을 떠돈 할머니 앞에서, 그는 사실을 고발하기보다 한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기로 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할머니를 찾아가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완성했다.


<풀>의 힘은 관점에서 나온다. 

"모든 역사는 누구의 관점으로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도 가해자와 남성의 시각으로 흘러왔는데, <풀>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여성의 서사로 풀려 했습니다." 

한국 여성의 이야기가 곧 어느 나라에나 있는 폭력과 차별의 이야기였기에, 세계의 독자는 그것을 제 일로 읽었다. 국경은 장벽이 아니었다. 학살처럼 차마 다 그릴 수 없는 일을 그는 검은 먹과 넓은 여백으로, 다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린다. 그 역사를 매일 마주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마음에도 근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하며 매일 스스로를 단련하죠." 

무거운 진실을 가벼이 건네는 일, 그것이 만화라고 그는 믿는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그림으로는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대사는 제주 4·3의 공동체 기억을 그린 <지슬>이 "이후 한강의 문학으로 이어지는 선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그래픽노블이 먼저 그 길을 열었다.


침묵을 물려받은 사람들


맞은편의 랑드루는 한국에 온 지 막 이틀째였다. 프랑스 일러스트 명문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석사를 마쳤고,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신인 무대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부천에 새로 생긴 '빌라 한불-부천' 레지던시가 그를 첫 입주작가로 불렀다. 

"만화는 문학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글로 표현 못 하는 것을 그림이 표현해 주는 순간이 많아요." 

그가 부천에서 작업 중인 첫 그래픽노블 <도자기 집(메종 포슬렌)>은 어느 프랑스 가족의 30년을 담는다. 겉보기엔 평범한 이 가족은 본래 베트남 이름을 지우고 살아온 보트피플이었다.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 배를 타고 조국을 떠난 난민, 그 후손이 지금 프랑스에서 만화를 그린다. 

"국가의 정치적 행위가 내밀한 가족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단편 <나의 할머니>는 더 사적인 데서 출발한다. 스무 살 무렵, 집에 혼자 있던 그에게 낯선 노인이 찾아왔다. 서로 누군지 몰랐지만, 그 노인은 그가 평생 만난 적 없던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는 프랑스에 온 뒤 20년을 홀로 남편을 기다리며 두문불출했습니다. 할머니는 베트남어로, 저는 프랑스어로 말하죠. 제가 붙든 건 그 침묵의 의미였어요." 


프랑스 일러스트 명문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석사를 마친 의빈 랑드루는,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신인 무대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부천에 새로 생긴 '빌라 한불-부천' 레지던시가 그를 첫 입주작가이다. [이민우 기자 제공]


두 작가는 그렇게 닮았다. 김금숙은 할머니의 증언을 기록하고, 랑드루는 할머니의 침묵을 응시한다. 그러나 둘 다 앞 세대에게 물려받은 기억을 그린다. 김금숙은 1999년 파리에서 어머니가 처음 털어놓은 분단의 비밀을 <기다림>으로 그렸고, 랑드루는 베트남어밖에 못 하는 외할머니의 침묵에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겪지 않은 세대가 그렇게 부모와 조부모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을, 미국 학자 마리안 허시는 '포스트메모리'라 불렀다. 분단이 남긴 어머니의 비밀과 전쟁이 남긴 할머니의 침묵. 언어도 역사도 달랐지만 두 사람은 같은 것을 그렸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랑드루가 부천을 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함께 공부한 한국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너는 한국인, 나는 베트남인이지만, 둘 다 식민지를 겪었고 가족이 이주의 아픔을 안고 있죠." 

레지던시 동안 그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김금숙의 <풀>을 미리 읽고 왔다. "읽으며 눈물을 겨우 참은 게 여러 번입니다." 그 고백 앞에서 김금숙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역사는 묘하게 포개진다. 한국은 일본의,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두 나라 모두 전쟁으로 갈라졌다. 김금숙은 프랑스로 건너가 비로소 한국을 다시 보았고, 랑드루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베트남을 되짚는다.

이런 만남에는 오랜 계보가 있다. 앞서 말한 슈피겔만의 <쥐>가 그 출발점이다. 이란 혁명을 그린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사이공을 떠난 보트피플을 그려 2011년 앙굴렘에서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은 클레망 발루프의 <사이공을 떠나며>가 그 길을 이었다. 발루프만이 아니다. 베트남전쟁을 어린 눈으로 통과한 마르셀리노 트루옹,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기억을 좇은 티안까지, 아시아 디아스포라의 증언은 이제 프랑스 만화의 한 흐름을 이룬다. 개인과 가족의 기억으로 거대한 역사를 증언하는 그래픽노블의 전통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 한국전쟁과 분단처럼 오래 묻혀 있던 상처를 다뤄 온 작가들의 맨 앞에 김금숙이 있다. 랑드루가 대담에서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은 이도 사트라피였다. 전쟁이 한 사람에게 남기는 흔적을 그린다는 점에서, 김금숙의 <풀>과 랑드루의 <도자기 집>은 그 계보 위에 나란히 선다. 


이란 혁명을 그린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사이공을 떠난 보트피플을 그려 2011년 앙굴렘에서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은 클레망 발루프의 <사이공을 떠나며>가 그 길을 이었다. 발루프만이 아니다. 베트남전쟁을 어린 눈으로 통과한 마르셀리노 트루옹,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기억을 좇은 티안까지, 아시아 디아스포라의 증언은 이제 프랑스 만화의 한 흐름을 이룬다. [예스24 책소개 갈무리]


소설도 영화도 못 하는 일을 만화가 한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폭력, 평생 입을 닫은 할머니의 침묵처럼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것들 앞에서, 김금숙은 그 자리를 먹의 여백으로 비우고 랑드루는 빈 칸의 고요로 남긴다. 그리지 않은 자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증언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하는 역설, 그것이 이 형식의 윤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국경을 넘을 때


프랑스가 만화를 '제9의 예술'로 떠받드는 데는 내력이 있다. 1983년 자크 랑 문화부 장관은 '만화 진흥 15개 방안'을 내놓으며 "만화는 너무 오랫동안 무시당해 왔으며, 이 표현방식은 문학적·시각적 표현형식과 동등한 선상에 합법적으로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1974년 출범한 앙굴렘 국제만화축제가 그 실천의 상징이다. 김금숙이 받은 슈발리에 역시 만화를 예술로 대접하는 이 토양에서 나왔다. 한국 만화가 그 땅에 발 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2003년 앙굴렘 축제가 한국 만화를 대규모 특별전으로 처음 조명했을 때만 해도, 현지의 반응은 "한국에도 만화가 있구나" 하는 감탄에 가까웠다. 그 무렵 쏟아진 작품들을 사람들은 일본 망가의 아류로 여겼고, '한국 만화'라는 이름표마저 오래 못 가 사라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1년까지 프랑스에서 한국 만화가 약 1,250권이나 나왔지만, 정작 그 고유의 이름은 끝내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김금숙의 슈발리에 수훈은 한국 만화가 마침내 예술로 인정받은 순간이다. 글로벌화는 그저 많이 파는 일이 아니었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일수록 세계와 더 깊이 만나는 일, 곧 현지화가 그 답이었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만화도시 부천이 있다. 1998년 시작한 부천국제만화축제,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한국 만화를 보존하고 세계와 잇는 거점으로 자라났다. 부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 창의도시이기도 하다. 지난해 진흥원은 주한 프랑스대사관, 부천시와 손잡고 문화예술 레지던시 협약을 맺었다. 프랑스 작가가 부천에 오고 한국 작가도 프랑스로 가는 양방향 교류, 그 첫 결실이 랑드루가 입주한 ‘빌라 한불-부천’이다. 빼앗긴 의궤가 돌아온 그 '기억의 외교'가 이제 두 작가가 마주 앉아 기억을 그리는 자리로 흘러왔다. 


김금숙 작가는 강화도의 이층 작업실에서 만화를 창작하며, 마음에도 근육을 만들고 있다. [윤민 기자 제공]


사회를 본 김선미 실장은 대담을 준비하며 김금숙의 작품을 다시 읽었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좀처럼 울지 않는데, 책을 덮을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대담의 끝에서 두 사람은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김금숙은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렸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창조적이라고들 하죠. 저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랑드루가 화답했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입니다." 두 사람의 붓은 멈추지 않는다. 김금숙은 제주 4·3의 불길이 여수와 순천으로 번진 1948년의 또 다른 비극을,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500쪽 분량으로 그렸다. 여성의 목소리를 특히 많이 담은 이 신작은 올가을 한국과 프랑스에서 나란히 나온다. 랑드루의 <도자기 집>은 9월 부천에서 전시로 선보인다. 슈발리에 훈장과 레지던시, 수십 개 언어의 번역이 말해 주듯, 세계는 이제 한국 그래픽노블을 '증언의 예술'로 읽는다. 우리가 그리지 않으면 누가 이 기억을 기억하겠는가. 두 작가가 던진 그 물음은 더는 한국만의 물음이 아니다. 


[참고] 

「일본만화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본 프랑스의 한국만화 수용과정」 (상지대 한상정 교수,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41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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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한국출판학회 상임이사, 한국크리에이터진흥협회 이사, 뉴스페이퍼 대표를 맡고 있다. 콘텐츠와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찾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