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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대학교 한국만화축제 이야기 - K-Manhwa: 종이에서 스크린까지

지난 3월28일 부터 4월 1일까지 미국 시애틀 워싱턴 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만화축제 이야기. 윤태호 작가가 초정되어 이슈가된 본 행사를 진행한 이효경 워싱턴대학교 한국학사서를 통해 생생하게 리포트 해본다.

2015-04-06 이효경
워싱턴대학교 한국만화축제 이야기
K-Manhwa: 종이에서 스크린까지
2015년 3월28일 - 4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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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행사 하루 전)  

하필이면, 미국 아시아학회 컨퍼런스가 윤태호 작가님을 초청한 같은 기간에 시카고에서 열렸다. 한국만화축제 행사가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한국학사서인 나는 아시아학회 기간 중에 동양 도서관인들이 일년에 한 번씩 모이는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CEAL) 학회에 참석해야 했다. 시카고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이 기간에 윤태호 작가님을 모셔야만 했던 피치 못할 이유가 있다. 시애틀에서 열리는 Comicon 컨벤션에 일정을 맞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먼저는 작가님께 일석이조의 시간을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고, Comicon컨벤션 참석자들에게 가능만 하다면 워싱턴대학교의 한국만화축제까지 참석하게 해서 시너지 효과를 배로 이끌어내고 싶었던 이유에서였다. 과욕이 부른 자업자득이었다. 살인적인 스케줄은 행사 바로 전날까지 학회에 참석했다가, 윤작가님이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는 불과 2시간 전에 같이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시카고 일정을 마치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자 호텔을 나섰는데,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도로엔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고 추운 동부의 겨울이 내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순간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비행기는 지체하지 않고 제 시간에 시카고 공항의 활주로를 박차고 시애틀로 향해 날아 올랐다.

비행기 속에서도 윤 작가님을 모시고 앞으로 갖게 될 행사 걱정이 되었다. 작정하고 눈을 붙여 보았지만 허사였다. 이럴 때 잠이 와 주면 저질 체력인 내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텐데, 몸 따로 마음 따로인 것이 야속했다. 

시애틀에 도착하자마자 이메일과 전화로 그 동안 자리를 비워서 처리하지 못했던 행사준비의 마지막 점검을 했다. 인천발 시애틀 비행기가 연착해서 기다림은 3시간으로 늘었다. 밀린 일을 보는 사이 기다림의 시간은 활같이 지나갔고, 마침내 윤작가님의 비행기 착륙 소식이 들려왔다. 질서 없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속에서 윤작가님을 놓칠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열심히 출구를 살폈다. 

마침내 작은 체구의 야구 모자를 쓴 윤태호 작가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에는 백팩을 매고 계셨다. 가족을 공항에서 마중해 보긴 했어도 유명인사를 공항에서 마중하기는 처음이라 작가님을 큰 소리로 부르지도 못하고 순간 머뭇거렸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짐을 찾아 작가님을 모시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오랜 동안 숙원 해 온 한국만화축제의 행사가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저녁 식사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시게끔, 작가님을 호텔로 모셔다 드렸다. 이어서 나는 출장의 피곤함도 씻지 못한 채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금요일 오후 도서관 폐관 시간이 겨우 1시간 남았다. 만화방 전시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러 전시장으로 힘껏 달려갔다. 학생들은 지난 두 달간 열심히 준비해 온 전시물을 중앙 도서관 로비 내 전시관으로 옮겨 설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땀흘려 일하는 학생들과 훌륭하게 완성된 전시물을 보자 시카고 출장 내내 걱정했던 마음의 먹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실 지난 한 주간 몸은 시카고에 출장을 와 있었지만, 전시 준비가 과연 잘 돼가고 있는 지 마음 속으로 무척 걱정이 되었었다. 책임자인 내가 현장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공포였다. 전시가 제 시간 안에 완성이 될까 하는 우려에서부터, 기대 한만큼 예쁘게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모두 쓸데없는 기우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그럴싸하게 만화방을 재현해 놓은 학생들이 기특했고 무엇보다도 고마웠다. 한국 이민 2세들과 중국인 학생까지 포함된 학생들이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70-80년대 만화방을 멋지게 만들어냈다. 학생들의 노고를 격려해 주는 것도 잠시, 마지막 정리는 함께 거들지도 못한 채, 나는 다시 윤 작가님이 계신 호텔로 향해 작가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의 장소로 이동했다.

시애틀 첫 날의 저녁 식사는 행사 스폰서를 맡아 주신 분들과 함께 했다. 주 시애틀 총영사관의 문덕호 총영사님, 김병권 부영사님, 아시아나 시애틀 김태엽 지점장님, 한국일보와 시애틀N의 황양준 편집국장님이 윤태호씨를 환영하고자 저녁 자리에 나오셨다.

윤 작가님의 요르단 여행 이야기와, 알라스카 방문 시 가졌던 미국 여행에 대한 추억,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영화 속 수상가옥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 미생에 대한 시애틀 한인사회의 반응과 감동 등의 이야기로 윤작가님의 시애틀 첫 날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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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윤태호 작가와의 북:소리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워싱턴대학교의 북:소리 프로그램은 주로 둘째 주나 셋째 토요일에 개최된다. 윤작가님이 오시는 시기를 맞추고자 3월달 북:소리는 부득이하게 마지막 주에 잡았다.

북:소리는 2013년 6월에 처음 기획되었다. 그 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 달 책에 대한 강연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 한국어로 된 양질의 책을 읽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북:소리는 지난 2년간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소개하고 그 분야의 전문 강연자를 모셔왔었다. 서울의 뒷골목 건축에서부터 훈민정음과 한글, 아리랑 정치학, 부부싸움, 탈북인, 국제원조개발, 빅데이터, 인터넷과 법률, 조선시대 여성의 정절,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 커피와 다방의 역사, 대한민국의 복지, 디아스포라, 힐링에 이르기까지 매달 다른 주제로 북:소리 팬들을 만났다.

주로 대중 인문서 중심의 북:소리 (Book 소리)에서 만화책을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웹툰으로 시작해 드라마로 인기가 최고조에 달았던 윤태호 작가의 <미생: 아직 살아남지 못한 자>를 가지고 3월 북:소리를 준비했다.

 한국만화축제를 기획하면서 첫 날 첫 테이프로 북:소리를 준비한 것은 이제껏 북:소리를 사랑해주신 시애틀 한인커뮤니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가장 컸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대학 행사에 마음 편하게 윤태호 작가님을 만나고, 한국어로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으로 북:소리라는 프로그램은 안성맞춤이었다. 내심 윤 작가님의 인기를 타고 북:소리 프로그램의 격을 키우고 싶은 진행자로서의 욕심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 작가님께 북:소리 강연을 의뢰하자, 작가님은 인터뷰 식으로 진행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제껏 진행돼 온 북:소리 강연의 형식을 바꾼 뜻밖의 제안이었다. 인터뷰를 하려면 진행자가 준비해야 할 자료가 무엇보다도 많이 필요했다. 인터뷰를 주업으로 해 온 방송인도 아닌 내가 윤태호 작가님과 작품에 대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실 적지 않았다. 진행을 매끄럽게 해야 하는 것도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작가님과 작품에 대한 조사를 치밀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준비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훌륭한 작가님을 모시고 형편없는 인터뷰 수준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어서 마치 내 강연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렇게 윤태호 작가님과의 북:소리를 계획하고 나서 제일먼저 시작한 일은 <미생> 드라마를 첫 회부터 빠짐없이 보는 일이었다. 만화책 <미생>도 읽어야 했고, 웹툰을 찾아 온라인 상의 <미생>도 살펴봐야 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시간 투자가 요구되었다. 드라마 전편을 모두 보는 일은 아무리 드라마가 재미있어도 바쁜 일상의 직장인? 에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평소에 TV와 드라마를 멀리하고 살았던지라 삶의 패턴이 행사를 준비하며 완전히 바뀌었다. 퇴근 후에 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김없이 드라마를 틀었고, 주말에 틈틈이 시간이 나면 하루에도 몇 편씩 강행군을 하며 진도를 따라가고자 속도를 냈다. 때로는 시간에 쫓겨 빨래를 개면서,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도 타블렛을 가까이 두고 드라마 훑기에 집중했다.

마침 한국에서 도서관으로 파견 나와 있던 인턴에게 윤태호 작가님의 개인 신상 및 작품, 또 사전에 이미 행해졌던 인터뷰 조사를 맡겨 자료 도움을 받았다. 받은 자료를 가지고 작가님과 작품에 대한 기본 지식을 채우고, 내 나름대로 인터뷰 질문지들을 하나 하나 만들어갔다. 질문지 원고를 사전에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작가님께서 말씀하셔서, 내가 원하는 마음대로 질문을 자유롭게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전 준비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또한 질문지에 대한 준비를 더 할 수 있는 있는 시간을 버는 일이어서 시간에 쫓긴 나에게 매우 유리한 일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질문에 어떤 식의 무슨 내용으로 어떤 분량의 답변을 주실 지 예측 불가능 했기 때문에, 질문지를 준비하는 일이 사실 더 어려운 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리허설이 없는 인터뷰라, 답변에 맞게 진행자로서 즉석에서 순발력 있게 응해야 하고, 다음 질문과의 관계를 조리 있게 엮어가야 하는 부담감이 뒤따랐다.

행사날 아침 그 동안 출장으로 밀렸던 피곤함이 몰려왔다. 컨디션은 엉망이었고, 인터뷰 진행자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걱정이 따랐다. 첫 날 행사가 시작된다는 설레임을 느낄 새도 없이 주최자로서 갖는 엄청난 마음의 짐이 나를 초조하게 했다. 행사에 과연 많은 분들이 참석해 줄까하는 염려도 큰 두려움 중에 하나였다.

행사가 시작하기 몇 시간 전, 이미 행사장에 도착해서 준비해 둔 질문지 원고를 읽고 또 읽었다. 행여 질문이 모자랄까 싶어 9장에 달하도록 질문지를 준비했다. 그나마 빽빽한 질문지가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행사 시간이 임박해지자 사람들로 하나 둘 대형 강의실 자리가 채워져 갔다. 평소 50-60명 정도의 북:소리 행사와 달리 많은 분들이 참석할 것을 예상해 200명이 넘는 강의실을 준비했다. 예상했듯이 강연실의 좌석은 거의 모두 채워졌고, 행사 시간 전에 미리 미리 도착한 손님들 덕분에 1시 반에 정확히 북:소리를 시작하는 기록도 세웠다.

행사 개막은, 진행자로서 한국만화축제에 그 동안 아낌없는 후원과 지원을 해 주신 분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감사를 드리는 시간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윤태호 작가님을 소개했는데 정말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작가님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인터뷰는 윤태호 작가님의 시애틀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미국 내 최초로 열리는 워싱턴대학교의 한국만화축제와 그 행사에 참여하는 의미 등에 대해서 제일 먼저 여쭈어 보았다. 유난히 그림을 잘 그려서 미대를 지망했지만, 결국 가정 형편으로 인해 화가의 꿈을 접고 만화의 세계로 접하게 된 윤작가님의 계기를 들을때는 다소 엄숙했다가, 어렸을 적 만화를 대했던 만신할머니가 운영했던 시골 만화방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관중은 모두 함께 웃었다. 노숙을 하고 만화 학원을 다니며 허영만 작가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는 윤작가님의 끈질긴 의지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그림의 뒷처리 작업만 1년, 배경맨으로 5년, 얼굴을 뺀 그림을 그리는 일로 3년 넘게 연습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의 마스크를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만화가 초년병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었다. 만화의 배움에 최선을 다했던 작가님의 고뇌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데뷔작품에 대한 작가로서 가지는 좌절감은 물론, 습작시절의 그림만 과장되게 그려진 작가 자신이 느꼈던 민망함을 당시의 심정 그대로 솔직히 들려 주었다.

어려운 시절을 거쳐, 마침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이끼>라는 작품을 통해 만화가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된 이야기에서는 성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모두에게 실감케 해 주었다.

윤작가님은 출판 만화와 웹툰을 모두 경험했던 세대 중의 한 분이셨는데, 실제로 체험한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가 종이 만화를 그릴 때와 달랐던 차이점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웹툰 작품에 딸려오는 댓글 문화가 주는 공포, 연재라는 방식으로 인해 피폐해진 작가의 삶,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서 무료만화로 시작된 웹툰을 통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웹툰 만화의 문제점 등에 대한 생각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웹툰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의 접근이 용이해 졌다는 것은 종이만화가 가지지 못했던 가장 큰 장점이라는 데에 독자와 작가 모두 공감했다.

무엇보다도 작품 <미생>에 대한 인터뷰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고, 주인공 장그래 라는 인물을 통해 윤작가님의 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미생>이라는 만화 작품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작가님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이 작품이 가진 매력과 인기의 비결은 과연 무엇인지 집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윤작가님이 평가한 자신의 작품 성공비결로 “그림위주라기 보다는 문학적인 서사로 이루어진 만화에 대한 성인들의 만화에 대해 잠자던 관심을 깨운 것과 직장인들의 애환을 리얼하게 그린 이야기를 미생의 매력”으로 꼽았다. 어떤 만화든 매력이 있는 만화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만화가 가진 다양한 면에서의 매력도 설명해 주셨다.

인터뷰 중간에 <미생> 드라마에서 나왔던 명대사들을 찾아 영상과 함께 감상해 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각자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는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는 <미생> 시즌 2에서 다룰 돈, 회계, 결혼 등에 관한 스토리, 또 앞으로 만화가로서의 계획, 해외로의 한국 웹툰 진출에 대한 전략 등을 듣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워낙 인터뷰에 능하셨던 윤작가님인지라 거침없이 이어지는 달변에 준비했던 질문지의 절반도 다 묻지 못하고 인터뷰를 아쉽게 마쳐야 했다. 행사에 참석한 분들로부터 추가로 질문을 몇 가지 더 받고 행사는 원래 계획했던 1시간 반에서 1 시간을 초과해 2시간 반의 긴 인터뷰로 끝이 났다.
행사 후에 간단히 다과를 가졌고 작가님과 사진을 찍고 싶은 팬들에 성화에 행사장은 한동안 북새통을 이루었다. 오랜 시간 성실한 답변과 진솔한 이야기로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은 물론, 너무 혹사를 시켜드린 것은 아닌지 인터뷰 진행자로서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다.

학교가 방학 기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석한 북:소리 행사였다. 작품 <미생>이 해외 한인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증거이다. 앞으로 직장인 생활을 하게 될 청년들에게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사회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 귀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미생>의 인기는 멀리 아이다호 주에서 장시간 운전을 해서 작가님의 인터뷰를 듣고자 오신 한국 교수님 부부에게도 뜨거웠고, 한국어를 잘 모르지만 <미생>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고 찾아 온 한인 2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를 쫓아 한국의 유명 작가를 만나러 축구 운동복 차림으로 따라온 외국인에게도 <미생>과 윤태호 작가님의 인기는 충분히 확인되고 남았다.

북:소리 행사가 끝나고 참으로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미생> 드라마보다도 훨씬 더 윤작가님의 삶에 매료되었다는 분, 정말 성공한 분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는 학생, 매사에 열심과 꾸준함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직장인, 어려운 무명 시절을 잘 버텨 준 윤작가님의 사모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아주머니, 만화가의 달변과 박학함에 놀라셨다는 언론인, 어떤 질문에도 논리적으로 답변해 주신 윤작가님께 감동받으신 분 등등 참석자 모두를 사로잡은 이번 북:소리는 북:소리 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참고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나로서는 윤작가님의 작가로서 프로다운 모습과 노력하는 인간미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부족한 진행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것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다음 날인 일요일 오전과 오후는 시애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코믹칸 (Emerald City Comicon)을 관람하시도록 작가님께 자유 시간을 드렸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지 3일간 열린 시애틀 코믹칸의 관람 티켓은 몇 달 전에 이미 매진이 되었다. 사전에 미리 구해둔 일요일 티켓을 작가님과 동행을 해 줄 발런티어 학생에게 전달하고 작가님의 하루를 맡겼다.

윤 작가님은 코믹칸에서 미국 만화 잡지인 의 오래된 지난호를 박스 채 구입하셔서 매우 흐믓한 하루를 보내셨다고 들었다. 오후엔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도서관을 사랑하시고 후원해 주시는 한인 커뮤니티 분께서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일류 요리사보다 더 솜씨가 좋은 안 주인이 준비한 정성스럽게 차려진 코스요리로 식사를 나누며 어제 있었던 북:소리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가족같이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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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한국만화 축제 리셉션과 윤태호 작가 강연회

3월 30일 월요일. 워싱턴대학 학사일정은 쿼터제 계절학기로 운영된다. 지난 1주일 간 짧은 방학을 마치고 봄학기가 시작된 첫 날이다. 캠퍼스에는 수업을 듣고자 학교에 나온 학생들로 활기찼다. 오늘은 한국만화축제의 둘째 날이자 메인 행사인 윤태호 작가님의 강연회와 리셉션이 있는 날이다.

행사 전 점심시간에 맞춰 워싱턴대학교 도서관 총관장님이자 대학 부학장이신 벳지 윌슨 (Ms. Betsy Wilson) 께서 윤태호 작가님을 교수 식당으로 초대했다. 도서관 대표로 동아시아 도서관 쉔 관장 (Dr. Zhijia Shen)과 유혜자 한국목록 사서, 조희경 한국문학 교수님과 함께 식사에 참석했다. 행사 주최 기관인 워싱턴대학교 도서관과 윤태호 작가님과의 첫 번째 공식적 만남의 자리였다. 통역을 해서 간간히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모두 한국만화축제의 들뜬 마음에서인지 점심 자리의 분위기는 줄곧 화기애애했다. 오늘 오후에 있을 메인 행사의 성공을 다 함께 다짐하며, 행사 참여를 위해 먼 걸음을 해 주신 윤 작가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리셉션과 기조 연설 강연의 행사를 위해서 여러 기관의 후원이 뒤따랐다. 워싱턴대학교의 한국학센터에서 리셉션 장소 비용을 부담해 주셨다. 같은 교내 행사라도 유료로 행사장을 빌려야 하는 것이 학교 원칙이다. 리셉션 장소로 교내 최고의 장소를 대여해서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만한 행사를 위해선 대여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 리셉션 음식은 주 시애틀 총영사관이 전액 후원해 주셨고, 그 외 행사를 위한 장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모두 부담해 주셨다.

윤태호 작가님의 강연은 한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외국인을 위해 영어 자막을 특별히 준비했다. 대학 내 공식 행사인지라 영어 자막은 필수였다. 한국인들만을 위한 잔치가 아닌 행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미국인들과 이 곳 워싱턴대학 학생들에게 모두 공개할 수 있도록 영어로 강연을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강연 전문을 사전에 미리 작가님으로부터 받았고, 정성껏 영문으로 번역한 유인물을 준비해 두었다. 강연 시에도 강연자와 호흡을 맞춰 이해를 돕고자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 강연 내용을 영어로 볼 수 있도록 준비 했다. 번역은 이중언어가 자유로운 한국역사 박사과정 학생의 도움을 받았다.

영어 번역물 외에도 윤 작가님의 파워포인트도 화면에 올렸다. 대형 스크린 두 개를 강단 앞 좌우로 설치했다. 이 외에도, 마이크와 영상을 테스트하고, 프로그램을 나눠줄 데스크 점검 및 행사 배너의 위치 등 사소한 모든 것을 점검하느라 행사 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교내 수업이 모두 마쳐갈 무렵인 늦은 오후 4시에 리셉션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잘 차려진 전채 요리들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미국식 스타일의 서서 담소를 나누는 리셉션에 익숙하지 않은 윤작가님은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4시 반까지 대기하실 수 있는 자리로 잠시 피신시켜 드렸다.

4시 반에 프로그램은 시작되었고, 각계 인사 분들이 오셔서 축사와 짧은 인사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벳지 윌슨 도서관 총관장님의 인사말로 행사장에 온 모든 하객들을 축하했다. 이어서 쉔 동아시아 관장님의 한국 만화책 정리 작업에 대한 간단한 업데이트와 행사를 후원해 준 기관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다음으로 주시애틀 총영사관의 김병권 부영사의 축하메시지와 함께 멀리 한국에서 온 이수연 국제교류재단 지식정보사업팀 과장의 축사도 이어졌다. 다음은, 행사의 총괄을 맡은 내가 짤막하게 행사 주최에 대한 소감, 워싱턴대학교에 만화책을 기증해 준 커버데일 부부에 대한 감사의 말, 행사를 후원하고 지원해 준 여러 도우미들에 대한 언급으로 인사를 드렸다. 또한 한국만화방 전시 소개화면을 짤막하게 함께 관람하고 (https://youtu.be/H-GP_eXcE80), 다음 날 있을 전시 개막식 행사 참여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희경 한국문학 교수가 나와 윤태호 작가님을 소개했고, 이어서 윤작가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한국 만화 문화와 웹툰의 탄생>이란 주제를 가지고 윤작가님은 해외 최초로 대학 행사에 참여해 강연을 하셨다. 웹툰은 온라인에서 연재되는 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에서 유독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소개로, ‘웹툰’ 이라는 합성어에 익숙치 않은 해외 외국인들에게 한국 만화 웹툰을 자세히 알렸다. 윤작가는 강연회에서 “만화를 포함해 한국 문화 예술계는 올해는 한국 웹툰의 세계 진출 원년으로 이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히고, 한국의 종이 만화가 웹툰으로 전환해 온 과정을 웹툰 아티스트로서 겪은 직접적인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윤작가는 현재 한국 만화가협회 부회장 겸 한국 정부가 저작권 보호를 위해 벌이는 ‘착한 저작권굿 캠페인’의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강연을 통해 웹툰 만화가 가진 종이만화와의 차이점, 온라인 상의 저작권 문제, 번역의 문제, 웹툰의 실험적인 시도, 앞으로 해외 시장으로 진출을 위한 과제 등등 다양한 면에 있어서 한국의 만화 현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총 80페이지나 되는 이미지들을 준비해 주신 윤작가님은 강연 후 질의 응답 시간까지 성실하게 답변해 주시는 것으로 한국 만화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주셨다.

강연에 참석한 자들의 질의응답이 30분 넘도록 이어졌고, 영어 번역을 맡아 준 학생의 동시 통역으로 답변을 성실히 전달했다. 다양한 질문이 차례로 이어졌다. 드라마나 원작 <미생>의 팬들이 많이 참석해 <미생>에 관한 질문들도 쏟아져 나왔다.

총 200여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이번 행사는 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고, 한국 웹툰 세계화를 위한 그 첫 발을 디딘 역사적인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

강연 후 뒤풀이는 윤작가님과 함께 해외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차세대 한인 젊은이들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시애틀의 대기업인 보잉 항공회사,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 등의 굴지의 회사에서 일하는 한인 청년들인 그들은 전도 유망한 미래 지도자들이자 윤태호 작가님의 열혈 팬이기도 했다. 시애틀 총영사관에서 주관한 뒤풀이 겸 저녁식사는 해외 기업에서 일하는 한인 직장인들만의 독특한 경험을 나누는 정겨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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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추억의 만화방 전시 및 드라마 미생 상영

지난 5월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60-70년대의 만화방이 재현된 전시실을 흥미 있게 관람했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워싱턴대학교 중앙 도서관 로비 전시실에서 한국 만화방을 재현해 보고자 하는 꿈을 가졌다. 한국만화축제를 기획하면서 워싱턴대학교에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을 전시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장소도 1년 반 전에 이미 물색해 두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는 계속 고민해 오던 차에 박물관에서 본 추억의 만화방에 마음이 쏠린 것이다.

아이디어만 좋다고 만화방 전시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옛날 만화방을 재현하려면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기에 큰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제일 먼저 한국 박물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한국의 어는 기관에서 만화방 재현 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문의를 했다. 친구의 연결을 통해 한국의 모 기관에 공식적인 제안서를 제출해 보았지만, 예산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성사가 되지 않았다. 낙심한 가운데 만화방 재현의 아이디어를 한 동안 접어 두고 있어야 했다. 마음의 상심도 컸지만, 본격적인 한국만화축제 행사 준비가 시작되면서 만화방 전시에 까지 크게 신경을 쓸 시간적 여유와 심적 에너지가 무엇보다도 딸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워싱턴대학교에 방문학자로 와 계셨던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김영욱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만화방 재현 전시의 아이디어에 급속도로 불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무심코 전시와 관련해 상의 드렸을 뿐인데, 김 교수님은 건축학 교수님다운 안목으로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셨다. 미처 생각지 못했었는데, 만화방이란 하나의 가건물을 짓는 일이기 때문에 건축학과 재학생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말씀에 그간 의기소침해 있던 나는 힘과 용기를 다시 얻게 되었다. 갑자기 머리에 전구가 반짝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만화방 재현이 순간 매우 현실 가능한 일이 되어 눈 앞에 펼쳐졌다. 건축학과 교수님이 함께 이 일을 추진해 주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워싱턴대학교 학생들과 협업하는 일이라니 성사시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렇게 좋은 기획이 창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웠던 것은 김교수님께서 연구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곧 돌아가셔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출국하시기 1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새 방안이 나온 것이다. 전시는 3월31일에 한국만화축제에 맞춰 개막이 되어야 하는데, 김교수님은 2월 초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래도 한 시를 아껴서 일을 진행해 보고자 교수님과 나는 사방으로 건축학과 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한인 유학생 사이트와 한인 2세 대학생 모임을 통해 수소문을 한 결과 건축학과 학생 몇 명을 찾아냈다. 주로 학부생들로 구성된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김교수님의 친분으로 알게 된 도시공학과 학생도 합세했고, 건축을 맡아줄 남학생 둘을 추가로 더 찾아냈다.

이렇게 일할 학생들을 찾고 보니, 현실적이고도 막막한 문제는 만화방 설치비용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서관에는 학생들 인건비 외 예산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만화축제 행사를 위해 이미 여러 후원자들의 스폰서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아이템으로 후원을 해 줄 분을 찾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설치 비용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든 알아보겠다는 내 우격다짐하에 일단 총 7명으로 구성된 학생 팀과의 첫 회의는 시작되었다. 정 뭐하면 사재라도 털어서 만화방을 만들겠다는 의욕만으로 예산도 준비되지 않은 채 시작된 이 사업은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야심찬 계획과 의욕에 마침내 손을 높이 들어 준 한국 국제교류재단이 단독 후원자로 곧 나서게 되었고, 그 때부터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학생들과 매주 만나서 디자인을 논의하고, 어떤 소품들을 가져다가 추억의 만화방을 재현할 수 있을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만화관련 책자를 뒤지고, 인터넷의 부천 만화박물관의 사진들을 보면서 하나 하나 워싱턴대학교만의 독특한 만화방으로 디자인해 갔다. 처음에 일부 학생들은 옛날 만화방 만이 아닌 현대식 만화방을 꾸미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도 했었다. 그러나 전시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나는 워싱턴대학교의 장서와 어울리는 추억의 만화방을 고집했다.
건축학과 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설계와 디자인을 토대로 남학생들은 건축 자재를 사러 쇼핑에 나섰다. 도시 공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에릭 군의 도움이 컸는데, 본인의 트럭을 동원해 물건을 실어 날랐고, 자신의 학과에 마련된 작업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곳에 마련된 각종 건축 도구를 이용해 자재를 자르고 모양을 맞추는 실제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작은 집 한 채만한 만화방을 만들면서 작업에 필요한 작업실과 작업도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쳐 못했던 나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 아닌지 모른다. 머리에 건축모자를 쓰고 남학생들이 무겁고 힘든 일을 하면, 여학생들은 나무 판에 페인트를 칠하고 그 외 작은 건축물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만화방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절한 소품들이 필요했다. 인터넷상의 추억백화점을 뒤져 양은 냄비와 양은 도시락 및 옛날 불량식품을 찾아 주문했고, 미국 이베이 온라인 주문 사이트를 통해 한국 난로와 비슷하게 생긴 미군 부대용 난로를 찾아냈다. 크래그리스트에서 아주 오래된 흑백 TV 도 용케 찾아 구입해 전시에 활용했다.

낡은 느낌이 나는 딱딱한 나무 벤치와 진열식 책장을 만들고자 목재를 사다 자르고 조립해가는 작업은 모두 처음부터 일일이 제작되었다. 검정 고무줄로 만화책이 디스플레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묶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로의 연통을 세워 만화방의 양철 지붕위로 올라가게 한 것, 다소 촌스런 느낌의 초록색 창틀로 요새는 보기 힘든 격자 창문을 단 것, 스르륵 열리는 미닫이 문을 달아 지금이라도 조금만 열면 다정다감한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가 나와서 반겨줄 것만 같다. 이런 소품들이 모여 만화방의 느낌을 그대로 살아나게 해 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문에 어린 아이들이 장난 삼아 붙인 스티커 판박이도 보인다. 유리창에 판박이를 붙여 두고 오래 오래 흐믓해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전화기가 드물었던 시절 공중전화 팻말은 멀리서도 보여야 했기에 문 앞에 간판처럼 붙어 있다. 우체국이 많지 않았던 옛날, 우편물을 대신 보낼 수 있는 우체국 사인도 문 앞에 함께 붙어 있다. 벽면에는 각종 만화 포스터들과 만화 잡지 신간호를 광고하는 포스터들이 어린 아이들의 관심을 끌도록 따닥따닥 줄서 있다. 만화 방 벽면에는 아이들이 낙서해 둔 소변 금지에서부터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내용의 해맑은 낙서들로 가득하다. 만화방 안으로 들어오면 벽면 중앙 높이 애국심을 자극하는 태극기가 반듯하게 그려져 있어서, 세계의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한국의 만화방 풍경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윤태호 작가님도 한 몫을 했다. 전시회 개막 전에 일찍 도착해서 벽면을 두루 살펴보신 후에, 작품 <파인>의 두 주인공을 멋지게 그려 주셨고, 만화방 정문 간판 양 옆으로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와 오차장, 그리고 <이끼>의 이장님 얼굴도 기념으로 남겨 주셨다.

학생들도 만화방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만화처럼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 같다. 만화방 간판을 유답(UW, University of Washington의 약자) 만화방으로 달고서는 무척 흐믓해하며 어쩔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만화방의 꽃인 만화책들은 만화 르네상스 시절의 유명 만화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 고행석, 황미나, 이상무, 김영숙, 김수정 등등 만화방과 어울리게 낡고 빛 바랜 만화책들이지만 그 표지가 만화방을 환하게 비춘다. 나란히 진열해 둔 만화책은 총 230여권에 이른다.

이렇게 준비된 추억의 만화방을 축제 기간 셋째 날인 3월 31일에 작가 윤태호님을 모시고 개막식을 했다. 리본 커팅은 만화방을 만드느라 수고한 학생 대표 오은지 양과 벳지 윌슨 도서관 총관장님이 함께 대형 가위로 자르는 것으로 워싱턴대학교 최초로, 아니 북미 최초로 한국 만화방이 오픈 되었다.

만화방 전시 개막과 함께 윤태호 작가님의 저자 사인회도 함께 개최되었다. 한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윤 작가님의 사인을 받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며 축제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행사 중 기상 변화가 심해 시애틀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는 헤프닝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몰려 화려하게 만화방 전시가 개막되었다. 전시는 앞으로 약 1달간 지속될 것이고, 4월 24일까지 만화방을 찾는 손님들을 맞을 계획이다.
 
 
전시 후 바로 옆에 위치한 앨런 도서관 오디토리엄에서 드라마 <미생>의 1회 에피소드를 함께 관람하는 시간도 가졌다. 영어로 특별히 제작된 자막이 있어서, <미생>의 인기에 대해 듣기만 해왔던 외국인들에게도 윤작가님의 작품과 한국 드라마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윤 작가님은 드라마 상영에도 관람객과 끝까지 함께 자리를 지켜 주시는 성의를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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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조희경 한국문학 교수의 학술 워크숍

축제 마지막 날은 워싱턴대학교 한국문학 조희경 교수의 ‘웹 코믹스: 새로운 매체로의 만화’ 를 주제로 학술 워크숍을 준비했다. 연구 대상으로서의 웹툰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강연의 주된 요지였다. 일회성 행사로 그칠 수 있는 한국만화축제를 학술적인 방향에서 한국 만화를 다시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일반 행사와 차별화를 위해서도 학술 연구가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연구 중심의 대학과 연구를 돕는 도서관의 행사로 꼭 필요한 내용이기도 했다. 전혀 아카데믹하지 않은 쟝르인 만화를 아카데믹한 수준으로 상승시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어야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한국만화축제가 한국만화를 문화적 차원만이 아닌 학술연구로의 발판을 삼았다는 데에 나름대로의 의의를 찾고 싶다.

만화라는 쟝르가 사실 연구의 대상으로 최근 꾸준히 학계의 관심을 받아온 것도 교수님의 강의를 행사에 넣는 데에 기여를 했다. 만화가 더 이상 오락과 흥미의 대상만이 아니라는 것을 일반인들과 학생들에게 알리고, 동시에 한국 웹툰을 학술적인 연구 소재로 소개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조희경 교수님께서는 바쁜 와중에도 여기에 같은 뜻을 두고, 적극적인 지원과 자발적인 참여를 아끼지 않으셨다.

조희경 교수님의 강연은 한국 웹툰의 시발점이 되었던 2003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강풀의 순정만화를 시작으로 그간 빠르게 발전해 온 웹툰 작품들을 통해 변화의 추세를 살펴보았다. 종이 만화와 비교해 웹툰 만화가 가진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서도 논했다. 종이만화가 평면식 가로중심의 제작이라면, 스크롤로 움직이는 상하 세로중심의 웹툰 제작이 어떻게 다른지 만화가와 독자의 입장에서 각각 제시해 주었다. 또한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장르가 만화 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만화 읽기 방식을 전환시켜 왔는지 그 차이점도 꼼꼼히 따져 보았다. 또한 한국 웹툰이 앞으로 어떻게 더 진화해 갈 것인지 웹툰의 미래를 조망해 보며 한국 웹툰을 다른 문화와 연계한 논의도 시도했다.

책장을 넘기고, 종이위의 그림과 글을 좌우로 읽어가는 종이 만화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웹툰을 통해 컴퓨터 마우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형식으로 읽기 시작했다. 종이 한 면에 말 풍선과 그림으로 자리배치 되어 한 눈에 한 면의 내용을 조감할 수 있었던 종이 만화와 달리, 웹툰은 컴퓨터 화면에 한 컷 한 컷 스크롤을 내려가야만 볼 수 있어 만화를 읽는 독자들의 긴장감을 더 불러일으키고 독자를 컨트롤하는 특징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패널과 패널 사이의 공간이 종이 만화에서는 매우 한정적이라면, 웹툰에서는 작가 마음대로 늘리고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색감이나 패널 사이 빈 공간을 배경 삼아 작가가 원하는 주제로 배경을 더 강조할 수 있다는 지적도 강연을 통해 웹툰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영상과 음악으로 옷을 입히기도 하는 웹툰의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앞으로 계속 진화해 할 웹툰에 대한 상상을 키워보기도 했다.

 웹툰의 묘미는 각 에피소드가 끝나면 깨알같이 달리는 독자들의 댓글 감상평도 무시하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즉각적인 작품평을 피드백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혹평과 악플이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온라인 상에 열린 장을 통해 독자와 작가가 작품에 대해 공유하며 더욱 친밀해 질 수 있는, 종이 만화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창작자와 독자간의 간격을 좁혀주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기존의 만화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코-벨기에권 만화(Franco-Belgian Comics)를 비롯한 유럽계의 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IT 기술에 기반한 한국 웹툰이 급속도로 성장해 갈 것을 기대해 볼 것을 예측해 본 강연이었다. 그 기저에는 한국인들의 유달리 높은 모바일 웹툰에 대한 관심과 웹툰을 보는 독자의 인구수 및 그 수요가 또한 앞으로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이 된다는 것도 강연을 통해 재확인 되었다. 앞으로의 한국 웹툰의 발전을 기대해 보는 의미에서 한국만화축제 마지막 날 강연은 매우 고무적인 시간이었다.

조희경 교수님의 강연은 다양한 분야의 학계에서 관심을 보였다. 일본 문학을 공부하시는 교수님, 이탈리아 문학을 연구하시는 교수님 등을 비롯해 한국학을 공부하는 박사과정의 학생들,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교수님과 만화에 대한 연구 관심을 가진 여러 학생들과 학자들이 모여 함께 질의 응답을 통해 한국 웹툰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학술 워크숍의 자리가 되었다.

특별히 조희경 교수님은 한국 근대 소설의 ‘연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해 오신 분으로서 한국 웹툰의 ‘연재’에 대한 연구 관심이 매체는 다르나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해서 장장 4일에 걸친 워싱턴대학교의 한국만화축제가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비록 행사는 4일로 그쳤지만, 앞으로 한국 만화와 웹툰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관심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국만화축제의 미래를 위해 특별히 웹툰을 별도로 모아 워싱턴대학교의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학부도서관 (Odeggard Undergraduate Library) 중앙에 진열해 두었다. 웹툰 전시를 통해 해외에서의 한국 웹툰을 알리고 보다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워싱턴대학교의 열정은 지치지 않고 앞으로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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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워싱턴대학교 한국만화축제 ‘K-Manhwa 종이 만화에서 스크린까지’의 행사 내용의 기사를 마친다. 멀리 있는 해외 행사이기에 기사를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행사 후 잠시 쉴 새도 없이 몇 일 안에 원고를 작성해서 보내야 하는 마감일에 따른 부담감이 큰 작업이었다. 워낙 글을 쓰고는 여러 번 수정하고 고쳐서 비로소 문장을 다듬어가는 글쓰기의 습관을 가진지라, 삼일 만에 작문의 원고를 보내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대학교의 한국만화 축제행사를 하루라도 빨리 본국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무리해서 기사를 작성한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행사를 기록하지 못하고, 주최자로서 매우 주관적인 관점으로 기사를 써 내려간 내 글쓰기의 한계에 대해서도 양해를 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의 모든 공은 윤태호 작가님께 돌려드리고 싶다. 바쁜 일정을 쪼개서 워싱턴대학교 행사에 참여해 주신 윤 작가님의 배려, 짧지만 시애틀에서 함께 웃고 나누었던 사람 사는 이야기, 헤프닝 육백, 별자리 이야기로 행사기간 내내 즐거웠다는 말씀도 꼭 전하고자 한다. 염소자리 파이팅! (이효경 워싱턴대학교 한국학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