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상업만화시장은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다.1) 드라마 <궁>이나 게임 <라그나로크>처럼 국내 만화 원작 사업화를 통한 활로를 모색했으나 작품 자체의 흥행은 성공할지언정 만화산업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실패했다.
21세기 한국만화의 부흥은 인터넷과 함께 찾아왔다. 2003년 강풀의 <순정만화>가 웹툰의 폭발적인 성장의 도화선이 되며 2000년대 중반 국내 만화계에서 웹툰이 부상했다.2) 디지털 환경에 맞는 웹 스크롤 형식이 한국에서 처음 생겼고 ‘웹툰’이라는 용어는 한국 디지털코믹스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굳어졌다. 웹툰은 서브컬쳐의 지위를 내려놓고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웹툰 작가는 온갖 매체에 등장하며 성공한 직업의 하나로 부상했다.
만화와 웹툰에 관한 지역 사회의 관심 역시 늘어났다. 각 지역 정보문화산업 관련 진흥원은 웹툰 작가 양성, 웹툰 제작 지원사업 등 웹툰에 관한 다양한 지원산업을 진행하는 한편3) 웹툰 관련 페스티벌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기도는 올해 처음으로 ‘경기국제웹툰페어’를 개최했고 부산 글로벌웹툰센터에서 열리는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은 올해 3회차를 맞았다.
여기서는 이제 막 기지개를 피기 시작한 ‘경기국제웹툰페어’와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와 함께 올해 23회째를 맞은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을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국내 만화/웹툰 페스티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한다.
경기국제웹툰페어는 국내 최초 GBC4) 통합 박람회로 고양시 중소기업 판로 개척과 국내 웹툰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기획됐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킨텍스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이 공동 주관했으며 2019 플레이엑스포(2019 Play X4)와 같은 시기에 개최했다.
행사장은 기업존, 작가존, 이모티콘존, 아카데미존, 굿즈상품존, 무대존으로 나누어 구성됐다. 각 부스들은 목적에 충실했다. 버프툰 공모전 전시관과 판권연구소는 포토존을 적절히 활용했고 아이나무의 인형뽑기 이벤트와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게임 등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들도 마련됐다. 작가 부스나 굿즈 부스 등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그러나 전체적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내 최초 GBC 통합박람회라 했지만 전체 전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정부(Goverment), 기업(Business), 고객(Customer) 어느 쪽에게도 충분한 콘텐츠가 제공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홍보 부족도 아쉬웠다. 바로 옆에서 많은 관람객을 동원하는 플레이엑스포를 개최하고 있었지만 경기국제웹툰페어 행사장은 다소 한가한 편이었다. 사실상 행사가 무료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입구에 가드를 세운 것도 행사의 접근성을 낮췄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경기도의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지속된다면 경기국제웹툰페어를 글로벌한 웹툰 페스티벌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부산웹툰페스티벌은 작고 알찼다. 구성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탬프 투어 방식으로 동선을 조절하는 방식도 그대로 차용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웹툰’이란 주제 아래 콤팩트하게 구성됐다. 개막식에서는 ‘세상 밖으로 나온 웹툰’이라는 주제에 얽힌 이야기를 뮤지컬 형태의 공연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부산웹툰페스티벌의 가장 큰 장점은 부산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작가커뮤니티의 협업이다. 작가와 밀착한 전시콘텐츠 구성을 통해서 매회 퀄리티 높은 전시 수준을 보여준다.
수도권 지방에서 열린 다양한 웹툰 페스티벌의 타겟이 주로 일반 관객이라면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은 지역 작가들을 많이 배려한 행사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차이점이다. 구성부터 타지역 작가보다 부산 지역 작가 작품 위주로 구성됐다. 웹툰창작상담소 등 작가를 위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지역 웹툰과 연관된 관련자를 다수 초청했다.
일반 관람객이 가볍게 즐길만한 콘텐츠도 많았다. 행사장 곳곳에 포토존을 비치했고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웹툰을 즐길 수 있도록 웹툰 기반 인터렉티브 게임도 전시됐다. 마인드C, 이말년 등 인기 작가를 섭외한 토크쇼도 진행했다. 스탬프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전시를 즐기면서 상품도 받을 수 있었다.
부산웹툰페스티벌은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잘 짜인 페스티벌이다. 지역 작가는 물론 시민들도 가볍게 즐기기 적합하다. 다만 올해 코스프레 행사가 추가된 것처럼 지속적인 변화의 필요성은 있다. 현재까지는 큰 욕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운영해 페스티벌의 질을 확보했지만 매년 같은 포맷으로 운영하는 것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하 SICAF)는 국내의 오래된 만화 애니메이션 행사 중 하나이다. 1995년 처음 개최해 2019년까지 총 23회가 개최됐다. 초창기에 시작한 최초의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1995년 30만명 이상의 관객이 모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인 축제로서의 위상을 세웠다.
2019년 SICAF는 2019년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코엑스에서 ‘한국캐릭터라이센싱페어’와 함께 진행되었다. 올해 SICAF는 ‘혁신적인 변화(Innovative Change)’를 키워드로 내세우고 떨어진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 기존 출판만화 대신 관객들이 실제로 접하는 웹툰을 다양하게 활용해 <가담항설> 특별전과 웹툰 극한견주와 뽀짜툰을 기반으로 한 동물카페 컨셉의 <대견하게 미묘하냥> 특별전, 웹툰 <청년사업가 김대중 특별전> 등을 진행했다. 또한 <오늘도 사랑스럽개> 이혜 작가를 비롯한 12명의 웹툰 작가를 초청한 대규모 작가 토크 콘서트와 인기 성우들과 함께 하는 성우데이, 싱얼롱 행사 등도 진행했다.
전시회 이외에 피칭행사, 대학입시설명회 등의 행사도 진행했다. 특히 대학입시설명회는 세종대, 청강대 등 7개 학교가 참가해 학부형들과 입시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개막작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를 필두로 전세계 131편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
SICAF 2019는 12만 명 이상, 지난해 2배를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보였다. 다만 캐릭터라이센싱페어가 없이도 올해와 같은 인원 동원이 가능한가에 대한 부분, 그리고 국제행사의 위상에 맞는 예산 구성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포맷의 행사로 전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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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내 3대 웹툰 페스티벌인 경기국제웹툰페어, 부산글로벌웹툰페스티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대해 훑어보았다. 세 행사를 모두 다녀본 개인적인 느낌은 다음과 같다. 첫째, 행사의 규모보다 내실이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줬다. 둘째, 대상 고객이 명확하고 그 대상 고객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한 축제일수록 흥미로웠다. 셋째, 본 콘텐츠는 또 보고 싶지 않았다. 처음 보는 콘텐츠가 더욱 흥미롭다. 길게 말했지만 한마디로 결론은 축제의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한 회의석상에서 모 교수님이 “예를들면 프랑스 앙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는 몽블랑 산을 배경으로 요트 2대를 띄워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저녁에 애니메이션을 모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상영했습니다. 서울도 한강이 있습니다. 한강에 요트 띄워서 애니메이션 상영회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시도를 하며 시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만화애니메이션 축제로 탈바꿈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하신 바 있다. 한 여름밤에 한강변에서 대형 요트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상영이라...듣기만 해도 설레는 일 아닌가.
축제(Festival)는 재밌어야 한다. 관객을 누구로 삼든 그 관객이 재밌어야 성공적인 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다. 웹툰이 콘텐츠 산업이듯 축제도 결국은 콘텐츠 산업이다. 축제에 들어갈 콘텐츠에 대한 힌트는 관객에게 있다. 성공한 축제를 만들고 싶다면 관객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소통하며 성장하고 변화해야 할 것이다.
웹툰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많은 분들의 노력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2020년에는 좀 더 알차고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재미있는 축제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1)“만화잡지에서 연재하고 그 후 연재분을 모아 단행본으로 묶는 ‘코믹스’가 국내 주류 상업 만화 시장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작지가 침체 국면에서 회생하지 못하고 있음은 국내 만화산업계의 가장 큰 고민이다.”, <만화산업백서 2006>, 2006, 1부 16p.
2) <2010 만화산업백서 제2부>, 117p
3) 일례로 2018년 말 기준 웹툰창작체험관 및 지역웹툰캠퍼스가 전국 15개도에서 38개 운영중이라고 한다., <강릉교육문화관 웹툰창작체험 우수기관>, 강원일보, 2019 ; http://www.kwnews.co.kr/nview.asp?s=501&aid=219010400084
4) Goverment(정부), Business(기업), Customer(고객) 모두를 타깃으로 하는 박람회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