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웹툰 차단해야 할 방심위의 공백, 그 원인과 대안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반년 가까이 표류하며 만화 업계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 방심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이곳의 공백이 만화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공백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방심위와 만화계의 관계
본래 방심위는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더해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디지털 성범죄나 불법 온라인 도박을 다루는 사이트 등을 차단하고 가짜뉴스 등으로 말미암은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불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경우 뜨는 ‘warning.or.kr’ 사이트가 바로 이 방심위의 심의에 따라 차단된 결과다.
방송과 통신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만화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방심위는 만화, 특히 그 가운에서도 인터넷에 최적화한 만화 양식인 웹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통신상에서 노출되고 유통되기 때문에 웹툰은 곧 방심위의 심의 대상이다. 방심위는 박근혜 정권 당시인 2015년 유료 웹툰 사이트인 레진코믹스를 일부 콘텐츠의 음란성을 이유로 느닷없이 전체 차단했다가, 만화 업계인들의 반발과 온라인에서의 논란 격화로 슬그머니 차단 조치를 풀기도 했다.
그보다 조금 더 앞서서는 이명박 정권기였던 2011년 말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으로 한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자 방심위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의 융단폭격 속에 – 만화 욕하는 기사로 1면을 통으로 채워 만화사에 길이길이 남은 조선일보의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 기사가 바로 이때 나왔다 - 만화 20여 편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 공중파 뉴스에도 보도되었던 조선일보에 실린 <열혈초등학교>를 다룬 기사 ⓒMBC
2011년 말 사건의 여파로 만화가 된서리를 맞았던 당시에는 안 그래도 밤낮을 바꿔 사는 경우가 많은 만화가들이 아침부터 방심위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반발과 여론전의 결과로 현재는 이를 공권력 차원의 검열로 작동하지 않게끔 만화계 차원의 자율규제로 풀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만화계는 이처럼 질 낮은 정치가 힘을 얻을 때 언제든 만화에 사회 문제의 원인을 뒤집어씌울 수 있고, 방심위가 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오래도록 학습해 온 상태다.
그러니 사실 방심위는 1997년 청소년보호법 사태의 주역인 간윤(간행물윤리위원회)와 더불어 만화계 입장에서는 ‘얽혀서 좋을 일이 아무것도 없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만화계 구성원들이 바로 이 방심위를 두고 거꾸로 “제발 모여서 일 좀 하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왜일까? 바로 이 방심위가 차단하는 불법 사이트의 범위에 불법 만화 공유 사이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심위가 일하지 않으면 이 사이트들을 차단할 수 없다.
방심위의 표류 원인은?
지난 1월 29일 방심위는 4기 임원들의 임기가 끝났다. 정상적인 업무 흐름이라면 이후 5기 위원회가 곧 출범해야 했지만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 중하순 현재까지도 위원 인선을 하지 못해 심의 업무가 공백 상태다. 한데 이 태업이 5기 위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1월 30일 출범한 4기 위원회도 3기 위원회가 마무리된 이래 7개월 만에 첫 전체 회의를 열었다. 5기 위원회는 아직 기록 경신을 위해선(?) 아직 시간이 다소 남았다.
이 사이에 밀린 심의 안건은 3월 말 이미 약 8만 건을 넘어 5월엔 12만 8천여 건, 7월 중순 들어 14만 건에 이르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4월 1일 자로 낸 기사 <심의 안건 쌓여 가는데… 5기 방심위 '감감무소식'>에 따르면 4월 당시 디지털 성범죄정보 2천여 건을 자율규제로 삭제했음에도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정보를 비롯해 심의가 필요한 3300여 건은 처리되지 못했다.
불법 웹툰 사이트들 또한 대부분 2018년 운영자가 검거된 밤토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국에 서버를 두고 광고 등을 붙여 수익을 편취한다. 밤토끼처럼 하나하나 쫓아가 검거하는 쪽이 근본적 해결책이긴 하겠으나, 그에 앞서 접속 차단이 임시로나마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설립해놓은 방심위가 현재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난국 속에서 만화가들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하거나 웹툰을 불법 공유하는 계정에 직접 경고하는가 하면 불법 계정을 색출해 경고하는 업무를 대행해주는 해외 사설 업체에 돈을 내고 가입해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불법 웹툰' 차단에 동분서주 작가들…자체 경고장에 해외 사설업체 가입까지> (박채영, 경향신문, 2021.07.08)에 따르면 불법 사이트 한 곳이 막히자 1주일 만에 정식 경로의 유료 결제율이 2배 증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방심위는 대체 왜 아직도 위원회 인선을 못 하고 있을까. 표면으로만 보자면 정쟁 때문이다. 여야 간에 위원 인선을 위한 명단을 완성하지 못하니 위촉을 할 수가 없다. 겉에서 보자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으니 그만 싸우라는 식으로 흘러가기 딱 좋은 구도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방심위 위원은 총 9명이다. 한 기수당 3년 임기를 지니며, 대통령과 국회의장 그리고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세 명씩을 추천한다. 실제 적용되는 비율로 보자면 여야 사이에 6:3이다. 한데 4기 방심위 위원들의 활동 종료 후 방심위원장에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현시점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사가 방심위원장으로 추천되었다고 반발하며 추천 명단 제출 자체를 거부했다.
시사저널이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 갑, 더불어민주당)을 인터뷰한 기사 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정연주 씨를 공식적으로 지명한 적이 없다. 7월 자 언론 기사들에서도 ‘임명설’으로 나오고 있으며, 4기 위원회가 종료된 1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하마평이 나온 1월부터 아예 협상의 여지 자체를 막아섰으며, 국민의힘 측에 편향성을 보이는 보수 성향 언론들은 아예 선거철을 앞두고 선거방송을 심의할 자리에 편협한 언론관을 지닌 인사를 세우려 한다며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선거방송이 방심위 소관이 아니라는 시점에서 오히려 방심위의 심의를 받아야 할 가짜뉴스다.
일각에서는 여당이 통 크게 양보하라는 제안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위원장을 포기하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으며, 인사의 정치관과 편향성이라는 주장 또한 과거 정권의 방심위가 대중문화에 어떤 결정을 어떤 형태로 내려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와 위원장에게 방송•통신에 관한 전문성이 있었는지를 살피면 설득력을 잃는다. 당장 만화계가 지난 두 정권의 방심위에서 골고루 겪은 사단들만 해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눈앞에 발생한 사회 문제에서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획책에 지나지 않았으며, 정치적 편향성 문제 또한 과거 정권의 경우 심지어 뉴라이트 학자와 공안검사 출신을 위원장으로 데려다 썼다는 시점에서 감히 어디 댈 것이 못 된다.
그 모든 걸 감안하고서도 야당은 정연주라는 이름 석 자가 흘러나오자마자 아예 배수진을 쳤다. 심지어 정연주 씨는 2008년 8월 편향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에 해임당한 인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정연주는 해임 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해 해임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는 판결과 함께 승소(2009.11.12)하였고 배임으로 기소된 건도 무죄를 선고받았다(2012.01.12).
따라서 국민의힘 측이 하마평만으로 인선 파행을 일으킨 건은 오히려 정연주라는 인물이 본인들의 정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불공정하게 해임되었나를 돌이킬 수밖에 없게 한다. 하물며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추천했다고 거론되는 인사에는 새누리당 대변인 출신과 민자당(민주자유당) 공채 당직자 출신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선택되었던들 결과는 같았을 터다.
분명한 건, 정치결사가 특정 인사가 용납 안 된다는 주장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불법복제 피해는 물론 디지털성범죄 차단이 걸린 행정 절차를 마비시키는 일만은 일으켜선 안 되었다. 차라리 여 6 야 3이라는 비율이 문제라면 이 부분을 협상으로 풀었어야 한다. 현 상황은 결국 그럴 의지가 털끝만큼도 없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4월에 발표한 성명의 한 부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관한 단초를 제공한다. "국민의힘이 주도하고 여기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청와대 사이의 힘겨루기가 방심위와 뉴스통신진흥회의 공적 기능 수행과 개혁 작업을 마비시키는 정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끌려간다는 표현과 힘겨루기라는 표현을 한 문장 안에 같이 쓸 수 있는가와 이를 정쟁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는가에는 이견이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상황을 주도하는 게 명백히 한 쪽이라는 점이다. 이 드러눕기 앞에서 누가 속수무책이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많은 집단 속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바와 같이, ‘없다’.
대안은 없을까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협조가 없을 시 여당 몫인 6명만으로 방심위를 구성하여 업무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기다리며 명분을 쌓는 데에 6개월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14만 건이라는 민원을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이상, 이제는 반쪽짜리로라도 업무를 개시해 조금이라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한 신고도 매우 큰 문제지만, 만화 업계인으로서는 만화 불법 공유와 그로 말미암은 수익 강탈을 이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차 자체가 같다면 위원회가 출범해도 임기가 끝나는 3년 뒤에 똑같은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5기 위원회 인선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4기 인선 당시에도 똑같이 있었다. 따라서 누가 위원과 위원장이 되느냐로 시비가 걸리면 이와 같은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이 난맥상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를테면 만약 위원회 출범이 늦어지는 경우, 임기가 끝난 전 위원들이 공석 기간 동안의 업무를 대행함으로써 민원 업무 공백을 막자는 발상이 대표적이다. 이 발상은 이번과 같은 드러눕기 속에서도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업계인으로서는 불법성을 띤 사이트로 가는 접속 경로를 차단하는 업무를 반드시 방심위를 통해서만 해야 하는 구조를 타파하자는 주장을 하고 싶다. 과거 방심위는 같은 방식으로 만화 탄압을 저질렀다. 그야말로 정치가 편의적으로 대중문화를 ‘활용’한 결과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권한을 방심위에만 오롯이 쥐여주고 있는 한 정치가 독재 편향적으로 퇴행하는 경우가 온다면 얼마든지 똑같은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만화계 또한 2011~2012년 유해 웹툰 차단 사태 이래 항의를 통해 업계 자율심의 체계를 갖췄던 사례를 참고하여 역으로 불법/유해 사이트 차단을 위한 권한을 업계 차원에서 요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방심위의 공백이 곧바로 작가 개별 단위의 파멸적인 피해로 연결됨을 확인한 이상, 이를 기관 단위에 맡겨놓기만 해서도 문제겠거니와 불법/유해 여부를 남에게 판단해 달라 요구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이참에 차단 여부를 업계에서 판단할 수 있게끔 권한을 받아온다면, 정권 차원에서 악용할 일 없이 작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 방심위가 현재 취하고 있는 방식 또한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는 게 아니라 접속을 위해 통하는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Internet Service Provider) 단위에서 차단하는 수준인 이상 수단 면에서 그리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발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분오열되어 있는 한국 만화 업계의 협/단체 분포 상황이다. 2021년 현재 9개에 달할 만큼 규모에 비해 난립 중인 협/단체가 같은 목적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가 걱정이다. 그럼에도 이 제안이 특정 정치가 초래한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김성민,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 「조선일보」, 2012.01.07.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07/2012010700175.html (접속일자 2021.08.09)
2) 구민주, "방심위 공백 사태 시급…여당 단독 출범도 고려”, 「시사저널」, 2021.06.21.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170 (접속일자 2021.08.09)
3) 동아일보 사설, “방심위 공정성 훼손할 정연주 위원장 내정 철회하라”, 「동아일보」, 2021.01.23.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122/105053333/1 (접속일자 2021.08.09)
4) 금준경,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선거방송’ 심의를 한다고?”, 「미디어오늘」, 2021.01.26.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625 (접속일자 2021.08.09)
5) 서진욱, “조승래 "野 과방위 협조 않으면 우리 시간표대로 진행"”, 「머니투데이」, 2021.07.14.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71417001824091 (접속일자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