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만화축제를 보고 -확실한 참신성
국제라는 가면을 쓰고 온갖 만화축제들이 난동을 피우는 와중에 [부천만화축제]가 조금씩 자기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한 [부천만화축제]는 툭하면 갖다 붙이는 [국제]라는 허울을 스스로 뒤집어쓰지 않은 것으로도 자기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 국제 만화페스티벌, 춘천국제만화축제, 동아LG 국제만화 게임페스티벌 따위들이 [국제]로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가운데 팜플렛에 그냥 [만화축제]라고 소박하게 적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난 부천이 참
2000-10-01
김병수
국제라는 가면을 쓰고 온갖 만화축제들이 난동을 피우는 와중에 [부천만화축제]가 조금씩 자기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한 [부천만화축제]는 툭하면 갖다 붙이는 [국제]라는 허울을 스스로 뒤집어쓰지 않은 것으로도 자기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 국제 만화페스티벌, 춘천국제만화축제, 동아LG 국제만화 게임페스티벌 따위들이 [국제]로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가운데 팜플렛에 그냥 [만화축제]라고 소박하게 적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난 부천이 참 착하게 느껴졌다.
물론 [국제]라고 내세우기에 지역여건으로나 예산배정으로나 민망스러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동급의 [춘천]보다는 솔직해 보이고 한 체급 위인 [서울]이나 [동아LG]보다는 확실히 참신하다.
이번 [부천만화축제]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한국언더그라운드만화 10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준 [언더그라운드 만화 10년 그리고 오늘]전과 유럽만화의 종주국인 프랑스 작품을 소박하게 소개해준 [프랑스 만화 특별전]이다. 확실한 참신성은 바로 여기로부터 기인한다.
[언더만화 10년...]의 큐레이터를 맡은 모해규씨와 성주삼씨는 언더그라운드 만화 10년 그리고 오늘전은 말 그대로 발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대해 그 흐름의 맥을 추적하여 정리시켜주는 만화의 작은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양한 저변과 인식의 풍부함을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묻혀있는 보물을 끄집어내서 제시하는 것, 이것이 언더그라운드 만화 10년 그리고 오늘전이 가지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는 말로 이번 전시를 정의한다.
프랑스만화특별전은 프랑스 만화전문 출판사인 Casterman외에 4개 출판사가 자사의 출판만화를 직접 전시하고 열람할 수 있도록 했으며, 프랑스 현대만화를 작가별로 정리한 판넬 전시와 어린이를 위한 슬라이드 만화교육슬라이드 상영 등이 곁들여 졌고 프랑스 만화가를 초청하여 작가전, 현장작업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지난 겨울 프랑스 앙굴렘 지방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출판만화축제인- 그야말로 진정한 국제적인-앙굴렘 만화페스티벌을 다녀온 까닭에 내게는 다소 초라한 전시였지만 평소 유럽의 순준 높은 예술만화를 접할 기회가 봉쇄(?)돼 왔던 한국인들에겐 나름대로 의미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위의 두 전시회는 그 자체의 성과는 접어두고라도(미비했다는 건 아니다)[부천]이 가지고 있는 만화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안목의 넓이를, 국제적인 부분이라고는 국적불명의 캐릭터쇼, 어설픈 국제 공모전, 질리도록 봐 온 일본 수입만화 판매 따위들로 채워지는 일련의 국제페스티벌에 비교해 외형은 몰라도 내실은 훨씬 앞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언더만화전] 같은 경우도 각 그룹들에게 참가하라는 공문은 보냈을지언정 정리하고 체계화해낼 궁리는 해보지 못한 그들에 비해 [부천]이 한발 앞선 기획을 이끌어 낸 것만은 분명하다. 불행인 것은 이 모든 것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일어났던 과거형이라는 점이다.
300여일후 보다 대견한 기획과 준비로 우리에게 다가올 [부천만화축제]를 기대해본다.
김병수
만화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교수, 前 목원대 웹툰애니메이션·게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