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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자 인터뷰] <방과 후 전쟁활동> 하일권 작가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자 인터뷰] <방과 후 전쟁활동> 하일권 작가

2013-11-14 황효진
어느 날, 미확인 구체(具體)가 낙화하여 사람들을 공격한다. 국가는 비상전시동원체제를 선포하고,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모자란 병력을 채우기 위해 예비군 대대로 편제된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이처럼 갑작스러운 전시 상황에 놓인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해부하듯 자세하게 그려낸다. 누군가는 다른 이들을 돕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기 위해 친구를 죽이며, 어떤 아이들은 사태를 수수방관한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이면이야말로 이 작품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을 이야기했던 <목욕의 신> 이후, 전쟁 같은 삶을 이야기하는 <방과 후 전쟁활동>으로 돌아온 하일권 작가를 만났다.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진짜 별 기대를 안했는데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더라. ‘왜 내가 선정됐지?’라는 생각도 했다. 예전 수상작들만 봐도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처럼 다 좋은 작품들이 선정됐는데 왜 이번에는 나를.... (웃음) 확실히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투지가 생기긴 했다. 완결도 안 된 작품인데 뽑아주셔서, 해이해졌던 마음에 다시 긴장감이 생겼다. 마무리를 열심히, 제대로 해야지.
 
사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본인의 전작들에 비해서 상당히 긴 작품이다. 평소보다 좀 더 지치긴 했겠다.
정말 힘들다. 예전에 잡지 만화 같은 걸 연재할 때는 1, 2년 동안 해도 스토리만 썼으니 그다지 길다는 체감을 못했었다. 그런데 혼자 그리는 웹툰을 이렇게 1년 넘게 연재해본 건 처음이다. 지치더라. 보통 내 작품이 30회 정도에서 끝나는데, 이번에도 딱 30회를 끝내고 한번 휴재했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긴 호흡으로 끌고 가려고 생각했던 건가.
그렇다. 나는 원래 영화 한편 정도의 분량으로 끝나는 짧은 호흡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만큼 처음과 끝, 흐름이 한눈에 딱 보이는 걸 선호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볼까 싶더라. 전에 했던 방식들이 많이 지겨워진 거다. 작품을 할 때마다 항상 새롭게 다르게 해보려고 했지만 막상 돌이켜보니 너무 똑같은 길을 답습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고 이번 작품은 욕심을 확 뺐다. 전작들이 나랑 밀접하게 호흡하듯 딱 붙어있었다면, 지금은 한 발짝 떨어져서 작품을 대하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처음엔 학생과 전쟁이라는 소재만 갖고 있었다고 하던데, 어디서 출발한 아이디어인가.
뚜렷한 계기에서 얻어진 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고, 전쟁물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두 소재가 붙었다. 약간 상반된 느낌의 소재들이라 붙여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지금보다 스케일이 훨씬 더 컸다. 세계가 아니라 우주적인 규모로. (웃음)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의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다. 지구는 이미 다 멸망했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지구에 다시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걸 구상했다.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더라. 최대한 줄이고 걸러내고 쳐낸 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딱 하자고 마음 먹었더니 전쟁과 학생만 남게 됐다.
 
‘구체’가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설정은 어떻게 생각했나.
사람들이 싸울 수 있는 적을 만들어야 했다. 원래 미확인 생명체들을 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디자인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흉측하고 기괴할 것 같았다. ‘남은 인간들이 퇴화해서 그렇게 됐다’는 설정을 생각한 건데 쉽지가 않았던 거다. 솔직히 말해서, 동그라미 형태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심플하고 그리기 쉬운 걸 생각하다가 그렇게 된 거다. (웃음)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학생들의 또 다른 얼굴이 표출되는 게 이 작품의 묘미 같다.
‘학생들이 진짜 전쟁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해보니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보통은 입시를 두고 ‘전쟁’이라고들 하니까. 원래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정말 급박한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 바뀌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들 같은 경우엔 늘 선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 중심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캐릭터를 봤을 때 착한 건지 나쁜 건지를 명쾌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더라.
딱히 주인공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 한 반 전체가 주인공인데, 그 중에서는 끝까지 착한 아이들도 있고 착했는데 전쟁 상황이 닥치면서 나빠진 애들도 있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는 착한 척을 하다가도 살아야 하니까 본성이 나오지 않겠나. 만약 내가 이 학생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봤는데, 굉장히 이기적인 인물이 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특히 국영수라는 캐릭터가 흥미롭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친구를 죽이는 등 이기심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데.
국영수는 생각 이상으로 독자들의 미움을 많이 받고 있더라. (웃음) 어떻게 보면, 이 아이는 전쟁 상황이 아니었다면 조용히 있다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데 취직해서 잘 살 수 있을 캐릭터다. 그런데 전형적으로 지금 입시제도에 딱 맞는, 그것만을 위해서 살아온 아이가 다른 상황에 부닥친다면 어떻게 변할까 싶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잃게 되는 상황 아닌가. 그럴 때는 극단적인 인물로 돌변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국영수가 아주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살기 위해 친구를 죽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거다.
 
이토록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작품이 처음인데, 그리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나.
잔인한 걸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사람이 어디에 찔리거나 잘리는 걸 그려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어쨌든 최대한 잔인하게 표현이 돼야지만 보여주고자 하는 게 더 확실히 나타날 것 같아서 그렇게 그리긴 하는데, 딜레마가 있었다. 중간에 ‘19금’이 되는 바람에 내가 진짜 보여주고자 하는 주 독자층인 학생들이 못 보게 된 거다. 그렇다고 수위를 낮춰서 전체관람가로 맞추자니 그건 또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고. 이 정도는 학생들이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좀 아쉬웠다.
 

 
 
 
 
 
 
 
 
 
 
 
 
 
 
 
 
 
 
 
데뷔작 <삼봉이발소>부터 <3단합체김창남>, <두근두근두근거려> 등 지금까지 학생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많이 그려왔다. 그런데 사실 해를 거듭할수록 본인은 십대에서 점점 멀어지지 않나. (웃음) 그들의 말투나 미묘한 감정 같은 것들을 잘 살리기 위해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게 굉장히 어렵다. 나는 점점 나이를 먹고, 지금의 십대들은 만나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더라. (웃음)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으니 지하철을 타거나 할 때 아이들이 하는 말을 엿듣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니까. 그렇다 해도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나 주로 쓰는 말투 같은 건 전혀 모르겠다. 다만 학생들의 생각만큼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교육제도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똑같지 않나. 그걸 최대한 잘 살리려고 하는 편이다.
 
학교라는 공간에 계속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장소다. 각기 다른 사람들을 모아 놓기도 했고, 개인으로 봤을 때도 학창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변화가 심한 시기다. 성장기이자 사춘기인 거다. 물론 대학교나 회사생활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흥미를 느낀다.
 
결국 <방과 후 전쟁활동>을 통해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나.
입시 제도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다. 학생 때부터 입시 전쟁을 겪는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사실 모두가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나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수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가면 더 힘든 거지. 말하자면 삶 자체가 전쟁 같은 거다. 꼭 총을 들고 싸우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뭔가와 힘들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웹툰 작가로 데뷔한 지도 꽤 지났고, 작품성과 스타일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제 하일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뭔지 좀 감이 오는 것 같나.
아직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걸 생각하게 되면 거기에 더 갇힐 것 같다. 그냥 ‘어떤 작품을 해야 겠다’라는 생각만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