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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주목할만한 한국의 만화 10選을 소개합니다.

현재 한국 만화 제작, 유통의 형태적 측면에서, 만화는 크게 세 가지 줄기를 가진다. 첫째가 출판만화다. 이 형태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분야가 ‘아동학습만화’인데 이 부분을 제외하면 매우 협소해진다. 게다가 잡지에 연재되고 난 후 일정량이 묶여져 나오는 단행본이나, 웹툰에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후에 출판되는 단행본 만화를 제외하면 발행 종수나, 매출 면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가장 작다고 할 수 있다.

2014-01-15 김현국
현재 한국 만화 제작, 유통의 형태적 측면에서, 만화는 크게 세 가지 줄기를 가진다. 첫째가 출판만화다. 이 형태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분야가 ‘아동학습만화’인데 이 부분을 제외하면 매우 협소해진다. 게다가 잡지에 연재되고 난 후 일정량이 묶여져 나오는 단행본이나, 웹툰에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후에 출판되는 단행본 만화를 제외하면 발행 종수나, 매출 면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가장 작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오프라인 출판만을 목적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만화는 매우 희소하다는 이야기며 이리 된 이유는 출판해서 얻을 수 있는 상업적 가치가 제작비와 원고료의 보전도 안 되는 시장 환경 때문이다.
 
둘째가 잡지연재만화다. 1990년대 한국 잡지 만화의 활황기를 정점으로 찍고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온 잡지만화계는 2013년에도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하다.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시장규모로 후퇴한 상태다. 대신 그 자리에 여전히 웹툰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만화 잡지나 출판된 만화책 보다는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로 만화를 보는 게 자연스럽다.
 
마지막 세 번째가 디지털 만화, 즉 웹툰이다. 대형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료로 뿌려지는 웹툰은 한국 만화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고 전세계 유례가 없는 만화의 제작, 배포, 소비의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에 원작 소스를 제공하는 역할자로서도 확고한 자리매김도 하고 있다. 2013년, 특이할 만한 것은 대형포털이 제작과 유통을 주도하고 있는 이 분야에 경쟁력 있는 작가들을 섭외해 유료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레진코믹스’가 성공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웹툰의 막대한 영향력을 인지하고 설득력 있는 평가와 담론 형성을 위한 ‘에이코믹스’ 같은 온라인 평론 매체가 만들어져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건 마찬가지겠지만 한 해의 결산을 내리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명확한 기준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3년 한해의 ‘만화’를 정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두에 언급한 세 가지 줄기에 적절하게 안배된 만화 작품과 그 작품의 역할이나 가치에 대해서 객관적인 기준이 담보되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따져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기술적으로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다. 출판 단행본이라면 그 판매량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고, 웹툰이라면 누적 조회수나 별점 또는 독자 반응도 등을 객관적으로 통계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게다가 만화잡지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모호하기도 하다. 그리고 세 가지를 공통적으로 아우를 수 있을 만한 기준점이나 근거 또한 취약하다. 그래서 이 글에선 2013년 한국의 만화 지형에서 여러 각도로 고려해 계량적 기준보다는 상업적 성과, 독자들과 평단의 호응, 그리고 나름대로의 객관적 심사 기준에 의해서 수상된 작품 중에서 가치적 평가나 의미 등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각 부문 별로 주요 작품을 골라 의미, 작가적 역량과 문화 콘텐츠로서의 역할 등을 짚어보는 것으로 2013년의 만화에 대한 정리를 간단하게나마 해보고자 한다.
 
명확한 근거로 나눈 안배는 아니지만 대략 시장의 규모와 콘텐츠의 유통량에 따라, 출판만화 부분에 3개 작품, 잡지만화 부분에 3개 작품, 웹툰 부분에 4개 작품 등 총 10작품을 골라 2013의 만화계의 지형에 어떻게 발자국을 남겼나 살펴보기로 하고 그 외에 인상적인 몇 개의 작품을 간략하게 언급해 보기로 했다. 한 해에 새로 만들어지는 만화작품의 수나 출판되는 책의 양을 기준으로 하면 당연히 웹툰 부분에 더 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영역을 구분하고 가르며 비교하는 것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성적으로 안배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을 먼저 밝힌다.
 
 
 
출판만화 부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 휴머니스트
화지에 첫 선이 그어진 지 무려 12년 만에 완결을 맺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03년 제1권 ‘개국’이 출간되고 2013년 7월 제20권 ‘망국’편 발행을 끝으로 드디어 대장정을 마쳤다. 오프라인 출판만을 위해 기획되고, 제작 출판되는 만화는 위태롭다. 일반 서적에 비해 만화는 기획, 원고료, 제작비 등의 제작 투자금이 회수되기 매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아동학습만화 분야를 제외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시장은 더더욱 열악하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국면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정면으로 돌파했다.
 

 
 
 
 
 
 
 
 
 
 
 
 
 
 
 
 
 
   
 
 
2013년 연말 기준으로 누적판매 부수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 두 가지의 타이틀을 거머쥔 셈이다. 자료의 방대함과 역사 기술 방식을 고려할 때, 전세계 어디에서 그 비슷한 유례를 찾아보기도 힘든 역사서라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훑어내 만화로 재탄생 시킨 작업의 이면에는 작가의 근성과 치열한 공부도 필요했겠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투자를 아끼지 않는 출판사의 저력도 분명 필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연재 매체나 미디어를 거치면서 원고료 보전을 하지 않고 오로지 출판판매의 성과만을 가지고 상업적으로 성공적 결과를 가져온 것에 한국 만화계는 충분히 고무될 만하다. 이제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독자들은 만화로 잘 만들어진, 재미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만화가 10년이 넘는 창작의 고통 끝에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인 ‘재미’를 완성한 콘텐츠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20권으로 완성하기로 기획된 것에 정확하게 맞춰 발간을 이뤄낸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사관들에 의해 촘촘하게 기록된 조선 왕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조선 왕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박시백 화백의 뛰어난 연출력과 이야기 전개 능력과 어우려져 20권을 내리 읽어가는 데에도 전혀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스물 일곱의 조선 군주의 캐릭터들은 때론 팽팽하게, 때론 유약하게 사대부들과 맞서가며 나라를 통치하한다. 그리고 때론 분열하고 때론 뭉쳐가며 군주에 대응하는 사대부들은 각기 다른 꿈을 펼치며 인생을 경영해가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무려 6천4백만자에 기록된 조선의 역사, 조선 왕조 하루하루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박시백 화백의 작업 덕분에 비로소 한국 만화 독자들은 조선의 왕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으나 보지 못했던, 선대 임금들의 사료나 자신의 사료를 온전히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폐어 / 최민호 / 거북이북스
어느 분야건 트렌드가 있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웹툰 시대가 열리면서 화려한 색채감의 만화가 많아지면서, 아동학습만화의 컬러 트렌드가 성인만화 분야에까지 확산됐다. 이런 현상은 ‘한국형 그래픽노블’이라는 다소 모호함을 동반한 장르까지 생성시켰다. 2013년에 출판만화로 만들어진 만화 중에서 이런 트렌드에 가장 적합하게 호응하는 만화가 눈에 띈다. 최민호 작가의 <폐어>다. 컬러만화가 반드시 상업적 유행을 좇아서 만들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 만화 <폐허>는 상업적 유행을 좇아서 만들어진 컬러만화가 아니라, 작가의 만화 작화 방식에 최적의 표현 방식이라 ‘컬러’가 선택된 것으로 보여진다. 잘 할 수 있는 방식이 컬러 만화인 셈이다.
 
몽환적 색감과 컬러의 농담이 자유자재로 표현된 채색 방식이 작가의 이전 작품 <텃밭>보다 한층 진화한 듯도 하다. 바람이 아직 스산하게 불어대는 이른 봄 목련이 꽃잎을 떨쳐내기 시작한다. 사창가 한 구석에서 ‘애정수족관’이 문을 연다. 안 그래도 물이 안 좋은 사창가에, 동네 사람들과 여자들은 가차 없는 뒷담화를 날리기 시작한다. 쇠락한 사창가라면 동네 사람들에겐 물이 안 좋은 것이다. 사창가에서 삶을 이어가는 여자들에겐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안 좋은 물’이다. 그렇게 ‘안 좋은 물’이 가득한 곳에서 신선한 물만 필요한 수족관은 이질적으로 위치한다. 어느 날 애정수족관에 찾아온 은수라는 상처투성이의 여자. 그녀는 물에서도 살 수 없고, 뭍에서도 살 수 없는 ‘폐를 가진 물고기’, 폐어의 운명을 타고났다.
 
만화는 줄곧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며 서서히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며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작가가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이야기 하고 있듯이 ‘상처로 가득 찬 불편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보이는 조그만 희망의 조각이 이 만화를 끝까지 쥐고 있게 만드는 요소이다. 작가의 전작 <텃밭>은 실제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던 실용 만화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 곳곳에 설치해놓은 ‘물고기’에 대한 정보 팁은 오히려 불필요해 보인이지만 만화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장치가 이상하게도 작가가 던져놓은 이야기 그물에 걸린 채 파닥거리며 눈에 들어온다. 절묘하게 이야기 흐름과 착착 맞아 떨어지는 물고기의 생태적 특징인 셈이다. 고도로 계산된 작가의 연출력에 의도된 소재의 활용이 놀랍다.
 
성인용으로 기획되고 잘 만들어진 출판 만화를 만나는 것은 요즘의 만화 시장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쉽지 않은 요즘에 반가운 만화가 아닐 수 없다. <폐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우수만화로 선정되어 지원도 받고 2013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부문에 수상하는 영예도 누렸다. 이런 소식은 앞으로 <폐어>와 같은 수준 높은 출판만화가 지속 가능한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환절기 / 이동은, 정이용 / 이숲
2013년 하반기에 신인 같지 않는 신인의 만화가 출판된다. 만화 <환절기>를 펴낸 출판사는 만화 분야에선 그간 간간히 일본 만화 몇 편을 국내에 소개한 경험만 있는 소규모 출판사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된 국내 작가, 그것도 신인 작가의 작품을 기획하고 출판해 냈다. 이 만화는 모 인터넷 서점이 실시한 한 해의 인기 만화를 뽑는 독자 투표에서 ‘그래픽노블’ 부문에 독보적으로 몰표를 얻으며 1위를 차지한다. 웹툰만 양적 질적으로 흥하는 근 몇 년 사이에 출판만화 부분에서 나름의 성과를 낸 것으로 의미를 부여해도 될 일이다.
 
내밀하게 구성된 감성적 서사와 군더더기 없이 연출되는 그림의 조화가 신인 작가들의 첫 공동 작업이라고 하기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성애에 관해서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많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섣불리 드러내놓고 다룰 만한 소재는 아니다. <환절기>는 동성애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우리 사회의 야릇한 선입견에 경고를 던진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그로 인해 상처가 생기고 균열이 오더라도 결국 그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 외의 것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인간애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공동 작업을 계속 해나갈지 모르겠지만, 이동은, 정이용 작가는 이번 첫 작품 <환절기>를 통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작품의 무게감을 충분히 예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내 파란 세이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박흥용 작가가 간만에 필작을 내놓았다. 만화 <영년>은 박흥용 화법 특유의 관조적 필체로,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관통하며 통찰하는 만화라는 평가와 함께, 2013년 한국만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아직 1권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후속권들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그리고 윤필의 <검둥이 이야기>, 앙꼬의 <삼십살> 등이 출간돼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잡지만화 부분
 
밤을 걷는 선비 / 글 조주희 그림 한승희 / 서울문화사
한국 순정만화잡지계에서 줄곧 맏언니 역할을 맡아온 ‘윙크’가 만화 잡지 시장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앱진으로 변경돼 발행되고 있다. ‘윙크’를 떠받치고 있던 중견 작가 두 명이 공동 작업으로 만들고 있는 만화 <밤을 걷는 선비>.
 
현직 국어 교사이자 만화가인 <키친>의 작가 조주희가 스토리를 맡고 <천일야화>, <춘앵전>으로 긴 호흡의 장편순정만화 작업해온 작가 한승희가 그림을 맡았다. 뱀파이어 시대극화 <밤을 걷는 선비>는 조선의 역사에서,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사건을 모티브로 서양의 판타지 소재를 절묘하게 뒤섞어 버무려냈다. 250여년 전, 조선의 수많은 정치 사건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의문투성이인 사도세자 사건에 만화적 상상력을 한껏 덧붙여 더욱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날의 책 외판원쯤 될 법한 조선시대의 ‘책쾌’라는 직업을 가진 남장 여자 양선과 뱀파이어 선비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특히 순정 만화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순정만화계에서 캐릭터의 눈매를 가장 매혹적으로 그리기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가 한승희다. 그가 그리는 뱀파이어 선비의 눈매에 많은 순정만화팬들이 설레고 있다. 주요 흥행 코드라 할 수 있는 역사 미스터리와 뱀파이어, 로맨스, 그리고 야릇한 BL의 분위기까지 모두 접목돼 과하게 넘쳐 오히려 어수선해 보일 법하지만, 조주희 한승희 콤비는 절묘하게 잘 섞어 나가고 있다. 전세계적인 뱀파이어, 좀비 열풍에 맞춰 이 만화도 영화로 추진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진다. <밤을 걷는 선비>는 2013년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레카 / 글 손희준 그림 김윤경 / 학산문화사
2000년 단행본 제1권이 발행된 지 무려 13년 만에 41권을 끝으로 완결된 만화 <유레카>. 작품이 마무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터넷 환경이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온라인 만화사이트와 웹진이 속속 만들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 무렵에 ‘해킹’이란 잡지에 연재를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 ‘해킹’의 사업이 중단되고 학산문화사의 소년만화잡지인 ‘찬스’로 연재처를 옮겨온다. 그리고 ‘찬스’와 ‘부킹’이 믹스된 잡지 ‘찬스플러스’에 266화라는 마지막 연재 회수를 기록하며 2013년 봄,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됐다.
 
소년만화계에서 탄탄한 스토리력을 인정받아온 손희준 작가의 최장기 연재작으로 유일하게 완결된 것도 의미가 크고 여자 신예작가로 출발해 소년만화 분야에서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연재 매체에서 마감을 해가며 작업을 해온 김윤경 작가의 이정표도 빛이 날만 한 것이다. 특히 작품 초기의 연출과 그림이 권수가 쌓여가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독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소년 만화에서 ‘판타지’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트렌드다. 그러나 맥을 유지하며 결말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로스트 사가라는 가상 현실 게임을 배경으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물어가며 13년의 긴 작업의 성과를 이뤄낸 두 작가의 대표작 <유레카>는 한국 잡지 만화계에서 큰 몫을 해낸 게 틀림없다.
 
국립자유경제 고등학교 세실고 / 글 양혜석 그림 타파리, 캇제 / 대원씨아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일류 명문대를 나와야 하고, 일류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외고, 과학고, 특목고를 가야 하고, 이런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좋은 학군의 중학교에서 온갖 사교육을 받아가며 선행학습을 한다. 요람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의 과잉 시대에, 다소 긴 제목의 학교 이름이 제목으로 된 만화가 한 편 있다. <국립자유경제 고등학교 세실고>. 만화 제목 치곤 꽤나 진지하다. 2010년 대원 웹툰 공모전에 당선된 이 학원 만화는 바로 ‘코믹챔프’에 연재를 시작한다.
 
첫 회부터 독자들에게 황당함을 던져주는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들이 다소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 17.4대 1의 경쟁을 뚫고 입학하게 되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천만원씩 돈을 준다. 이제 학생들은 이 돈을 불려나가며 학교 안에서 자유경제(?)를 실현하며 좌충우돌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돈을 잃으면 유급되고 심지어 퇴학까지 당하게 되는 교칙을 극복해 가는 설정. 치고 빠지는 술수와 꼼수가 난무하는 이 학교의 설정은, 우리가 강요받는 교육환경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무한 경쟁 환경을 가차 없이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프라인 잡지 연재만화는 시장 환경의 부침이 심하다.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는 만화의 경쟁력을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웹툰으로 지평을 확장했다. 잡지 연재가 지나간 분량을 컬러링해서 네이버 웹툰에 올리고 있다.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 잡지 만화의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잡지의 한계를 뛰어넘어 웹툰의 강자들과 경쟁하고, 외연을 넓혀 전자책 매출도 몇 배로 상승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목할 만한 만화의 미디어믹스 전략이다.
 
1990년대 중후반 만화잡지 시대의 전성기에 비하면 시장규모와 질적 양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쇠락한 만화잡지계지만, 웹툰 등과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기법과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협만화의 신기원을 이룩하고 있는 <열혈강호>는 여전히 오프라인과 전자책 분야에서 여전히 건재하고, 문정후 작가의 <괴협전> 프리퀄인 <마왕>도 제8권으로 완결됐다. 그리고 순정만화 쪽에선 이소영 작가의 인기 연재작인, 역사판타지 <연모>는 드라마 판권계약이 성사돼 조만간 드라마로도 만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웹툰 부분
 
미생 / 윤태호 / Daum
이제 웹툰은 일상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문화콘텐츠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더욱 그렇다. 웹툰을 그다지 열정적으로 봐오지 않던 장년층 남성들까지 이 영역으로 끌어들인 웹툰을 꼽아보라면 윤태호의 <미생>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미생>은 2012년 초 다음 만화 속 세상에 연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돌풍을 일으킨 웹툰이다. 그리고 약 1년 6개월여의 연재 기간 동안 누적 조회수 6억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불황기의 출판시장 환경에서도 9권으로 완간되어 대략 50만부 정도가 팔렸다고 알려졌다. 어떤 지점이 중고등학생부터 일반 직장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미생>에 열광하게 만들었는지 문화계 전반의 분석들도 다양하게 쏟아졌다.
 
이렇게 <미생>은 만화를 넘어서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됐다. <미생>을 접하면서 웹툰의 새로운 소비자가 된 청장년층 직장인들은,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와 오차장, 그리고 그 외의 캐릭터들에게 ‘자기’를 투영했을 것이다. 대기업 조직의 임원으로, 팀장으로, 팀원으로, 그리고 언제 잘려나갈지 모를 월급쟁이로. 주인공 장그래는 대기업 상사맨이지만, 대기업 상사맨이 아니기도 하다.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캐릭터다. 고졸에다가 시한부 계약직 사원이다. 프로기사를 꿈꾸며 살아가다 좌절한 청년일 뿐이다. 청장년층 독자들은, 아마도 처음엔 1980년대에 자신들이 만화방에서 봐왔던 기업만화의 영웅적 스토리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계약직 고졸 사업이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성공스토리.
 
그러나 윤태호는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그 의외성에 독자들은 여지없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처한 현실과 만화에 함께 공명하며 열혈 독자가 됐을 것이다. 물론 대기업 상사맨을 자신이 투영하는 직장인의 대표적 모델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찌 보면,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버텨나가야 하는 방식과 룰에는 그리 다르지 않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끊임 없이 강요받고, 과로를 훈장처럼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 샐러리맨의 비감한 모습을 발견하며, 독자들은 스스로 위로 받고, 좀 더 나은 내일의 단서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작가 윤태호는 이렇게 말했다.
“윗사람들이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멋있게 악수하며 계약서에 사인할 때, 이 장면을 위해 사무실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가 윤태호는 그 사람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가며 자신만의 바둑 돌을 놓는지 보여주기 위해 종합상사 원 인터네셔널이란 공간을 창조해 냈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무려 6억 번 넘게 문을 두드린 것이다.
 
웹툰 <미생>은 2012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3년엔 대한민국 국회대상 오늘의 만화상을 수상했다.
 
미슐랭스타 / 김송 / 티스토어
‘맛’에 대한 인간의 탐구와 도전은 끝이 없다. 먹고 자고 숨 쉬고 하는 세 가지 인간의 본질적 행동 중에서 가장 탐미적인 것이 바로 ‘맛’이다. 시쳇말로 ‘궁극의 맛’을 찾아가는 만화가 그래서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만화 중에서 대표적인 ‘맛’ 탐구 만화로 허영만의 <식객>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식객>의 뒤를 이어도 좋을 웹툰이 한 편 눈에 띈다. 티스토어 웹툰에서 인기 몰이를 하며 연재 중인 김송 작가의 <미슐랭스타>다.
 
만화의 시작은 다소 상투적으로 전개된다. 런던의 미슐랭 3스타 식당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는 류태환은 미래가 보장된 자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전성기를 잃어버린 이태원의 식당 ‘라 쁘띠 메종’의 젊은 여사장인 박은비를 만나면서 류태환은 궁극의 ‘맛’을 찾아가는 길을 가게 되며 꿈을 펼쳐나가는 구성이다.
 
왠지 뻔한 공식을 따라가는 듯한 첫인상을 뛰어넘어, 이 만화를 읽다보면 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음식의 영혼을 찾아가는 듯한 쉐프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 영혼은 작가 김송이 특별하게 취재한 레시피와 스토리가 결합하면서 생명을 얻는 듯하다.
 
등장하는 음식마다 작가가 공들여 그림을 그리 덕분에 독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먹방’을 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재미와 함께 식욕을 자극하는 그런 만화인 셈이다. <미슐랭스타>는 2013년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하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품이라서 앞으로도, 독자들은 그 ‘맛’의 다양함과 재미를 골고루 맛볼 기회가 충분할 것이다.
 
죽음에 관하여 / 글 시니 그림 현노 / 네이버
부자든, 가난뱅이든, 위인이든 범죄자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공통점이 바로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은 바로 삶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한 줌의 욕망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매회 펼쳐지는 에피소드엔 우리가 상상하는 죽음에 대한 모든 이미지가 작가들의 상상력과 결합돼 제공되며, 그 이야기들은 허를 찌르기도,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때론 가슴이 오그라드는 두려움도 겪게 만든다. 이렇게 만화를 읽어가다 보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삶에 의미가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엔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깊고 무거운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가들은 의외로 새파란(?) 20대 청년들이다. 어차피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나, 갓 태어난 아기도 죽음에 대해선 초보자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풀어내고 있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진지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그 곳엔 누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내기 위한 작업의 성과물이다. 2012년 가을, 작품이 시작되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 2013년 초에 연재가 끝나서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많은 듯하다. 단행본으로는 2권으로 묶여져 발행됐다.
 
수업시간 그녀 / 박수봉 / 네이버
웹툰은 출판 만화에 비해, 공간의 활용이 자유로운 편이다. 종으로 흘러가는 연출에서 만화가들은 나름의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도 동원된다.
 
스크롤을 내릴 때 효과음을 낸다거나, 아예 매회 적절한 배경음악을 깔아 청감각적으로도 호소하기도 하며 움직이는 영상을 결합하기도 한다. 이렇게 적극적인 방법이 사용되는 요즘에, 역으로 그림에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캐릭터의 ‘눈’을 그리지 않은 용감한(?) 만화가 있다.
 
작가의 개성적 그림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얼핏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만화 <수업시간 그녀>는 발군의 스토리 전개 방식과 담백한 데생력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발산해내며 흡입력에 견고함을 더해간다. 일명 대박 콘텐츠인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관통했던, 첫사랑, 짝사랑에 대한 아련하고 저릿한 감정을 작품 활동 경력이 전무했던 무명의 블로거 ‘박수봉’이 이렇게 먹과 선으로 간결하게 만화로 담아낸 것에 대해 독자들은 열광했다.
 
첫회에서 처음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보고 설레며 어쩔 줄 몰라 연신 ‘망할’을 내뱉는다. 작가는 ‘망할’이란 대사를 연신 반복해서 보여주며, ‘망할’이란 단어가 담고 있는 수많은 감정의 선들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독자들은 그렇게 함축된 감정의 선들을 발견하고 뜨겁게 응답했다.
 
웹툰은 한국 인터넷의 영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적기라고 모두들 내다본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경쟁력을 갖춘 ‘레진코믹스’의 해외 진출 시도가 주목받고 있으며 에이코믹스는 ‘데일리 베스트 10’ 으로 웹툰에 최적화된 평론과 기사를 연일 생산해내며 의욕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웹툰의 리더격 작가로 자리매김한 윤태호(인천상륙작전), 강풀(마녀), 하일권(방과 후 전쟁활동) 작가들도 작품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뒤를 이어 참신한 아이디어와 재미로 중무장한 수많은 웹툰들이 매일매일 업로드되고 있다. 만화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문화콘텐츠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에 응당한 대접을 충분히 받을 자격을 갖췄다.
 
 
 
필진이미지

김현국

소미미디어 SBA웹툰파트너스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