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이 특수 취향이라고요?"
- 강의실에서 벌어진 세대 충돌과 깨달음
BL의 진화: 특수 취향에서 문화 코드로
교실 뒤편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평소 발언이 거의 없던 아이였다. "교수님, BL이 정말 특수한 취향일까요?"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마치 동전 던지기처럼 교실의 공기가 뒤바뀌는 것을 느꼈다. 지난 목요일 오후, 만화 콘텐츠론 강의에서 내가 던진 "BL은 특수한 취향을 반영한 틈새 장르"라는 발언은 예상치 못한 격렬한 반응을 불러왔다. 순간 강의실은 조용했던 뒷자리 학생들까지 일제히 손을 드는 토론장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날의 충돌은 나에게 BL 웹툰이 단순한 장르적 분류를 넘어선 문화적 현상임을 깨닫게 했다.
예상치 못한 반격의 논리
"교수님, 그건 아니에요!" 앞자리 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겼다. 평소 차분하던 아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야화첩> 보셨어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완벽한 사극 로맨스인데, 단순히 남자끼리 사랑한다고 해서 특수한 취향이라고 할 수 있나요?"
학생들의 논리는 내 예상보다 훨씬 체계적이었다. 한 학생이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준 자료에 따르면, <야화첩>은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기간 5년 동안 1위를 놓치지 않은 인기 작품으로, 전 세계 누적 조회수 4,500만 뷰를 돌파했다.

"<시맨틱 에러>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아요. 왓챠에서 드라마까지 만들어졌잖아요." 다른 학생이 거들었다. 실제로 <시맨틱 에러>는 2022년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되어 원작 웹소설과 웹툰의 판매액이 급증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한 '특정 독자층을 위한 틈새 콘텐츠'가 학생들에게는 '정당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었다.
숨겨진 편견과의 조우: 통계가 말하는 거대한 전환
솔직히 고백하면, 나에게도 편견이 있었다. BL 웹툰 하면 '19금 선정적 콘텐츠'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추천한 작품들을 실제로 읽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게이 커플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들에서는 커밍아웃의 두려움, 사회적 시선에 대한 부담, 가족과의 관계 등 현실적인 고민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댓글 창이었다.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이 웹툰 덕분에 용기를 냈어요."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사랑이 중요한 거 같아요."
이런 댓글들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이것이 단순한 장르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주류 담론으로 편입되는 문화적 지각변동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더욱 놀라웠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연구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BL 웹툰 독자 500명 중 여성 이성애자가 77.8%로 가장 많았고, 61.4%가 10대 때 처음 BL 웹툰을 접했다고 답했다1. 이 통계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BL 웹툰의 주요 소비층이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닌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것이다.
왜 이성애자 여성들이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금기에 대한 관음적 욕구를 넘어선다. 이들에게 BL 웹툰은 기존 이성애 중심의 로맨스 서사에서 탈피한 새로운 관계성의 모델을 제시한다. 전통적인 남성-여성 관계에서 고착화된 성역할과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보다 평등하고 수평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BL이 웹툰업체들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2022년 웹툰 산업 매출액이 1조 8,290억 원을 기록하며 5년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다2. 웹툰의 세계 주요 기업 중 상위 5개사의 매출 점유율이 54.37%에 달하며, 한국 웹툰 시장은 2030년 16억 1,686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BL이 더 이상 '틈새 취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 산업이 되었고, 젊은 세대의 정서적 욕구를 반영하는 주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한국 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 웹툰 시장이 2024년부터 2032년 동안 연평균 6.92%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한국의 BL 웹툰은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3. 이는 한국의 BL 콘텐츠가 지닌 독특한 서사적 완성도와 문화적 보편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이 모든 통계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장르의 확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정서 구조의 변화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들은 BL 웹툰을 통해 사랑의 다양성을 학습하고, 차이에 대한 관용을 기르며, 무엇보다 '정상성'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법을 익히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BL 웹툰에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세대론을 넘어선 문화론
다시 교실로 돌아가서, 학생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교수님은 BL을 보면 어색하지 않으세요?" 한 학생이 솔직하게 물었다.
"처음엔 그랬어. 솔직히 말하면 남자끼리 사랑하는 걸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거든."
"그게 바로 세대 차이예요!" 다른 학생이 맞장구쳤다. "저희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BL 웹툰 보는 걸 봤어요. 처음엔 저도 이상했는데, 막상 보니까 그냥 사랑 이야기더라고요. 성별이 다를 뿐이지."
이 말이 핵심을 찔렀다. 내게는 '특별한' 것이 학생들에게는 '평범한' 것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서는 문제였다.
학생들의 눈에 비친 BL 웹툰은 이미 완전한 하나의 장르였다. 남성들 간의 연애가 중심이 되고, 과거처럼 고정된 역할 분담이 아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계를 그리며,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고, 성적 묘사의 정도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며, 무엇보다 이런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플랫폼들이 생겨났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의 문화적 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음지 문화'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당당히 주류 플랫폼에서 연재되고,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낯선 풍경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한국 BL이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학생들이 강조한 또 다른 포인트는 BL의 국제적 위상이었다. "교수님, ‘킬링 스토킹’ 알아요?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그리고 태국에서는 한국 BL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이 계속 제작되고 있어요."

실제로 <야화첩>은 일본어, 영어, 태국어로 번역되어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일본 치루치루 BL 어워드 2025 베스트 웹툰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4. 하지만 단순히 번역되어 수출되는 것을 넘어, 한국 BL 웹툰은 전 세계 BL 문화의 새로운 기준점이 되고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해외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한국 BL 콘텐츠가 "평등한 젠더 감수성을 반영"해서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는 평가였다5. 기존의 일본 BL이 고정된 성역할을 강조했다면, 한국 BL은 더 평등하고 현실적인 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의 차이를 넘어 문화적 철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K-POP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듯이, 한국의 BL 웹툰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한국 BL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현실적인 갈등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독자들은 한국 BL 웹툰에서 기존 서구 LGBT+ 콘텐츠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발견하고 있다.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인간적 감정에 집중하고, 투쟁보다는 일상의 행복을 그리며,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성별과 상관없이 아름답게 그려내는 한국만의 독특한 서사 방식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의 반응은 더욱 뜨겁다.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는 한국 BL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지 팬들은 한국어를 배워서 원작을 직접 읽기까지 한다. 이는 과거 일본 만화가 아시아 전역에 미친 영향력을 연상시키지만, 그 성격은 사뭇 다르다. 일본 만화가 주로 오락적 소비에 머물렀다면, 한국 BL 웹툰은 독자들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 BL 웹툰이 각국의 문화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되면서도 그 핵심적인 가치관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관용과 다양성, 평등한 사랑에 대한 메시지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BL 웹툰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아니라, 현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문화적 텍스트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한류다. K-POP과 K-드라마가 음악과 영상의 한류를 이끌었다면, 이제 BL 웹툰이 문학과 만화 분야에서 새로운 한류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한류의 핵심에는 사랑의 다양성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진보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BL이 다시 쓰는 사랑의 문법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연구를 살펴보던 중, 흥미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 BL 장르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만 해도 이 장르가 현실의 동성애와는 거리가 먼 판타지적 소재로만 활용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의 작품들은 실제 성소수자들의 현실보다는 특정한 로맨스 공식에 맞춰진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처음 이런 분석을 접했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학생들과 함께 본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과연 그런 문제적 기원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수록, 현재의 한국 BL 웹툰들이 그 과거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의식적으로 해체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다. 과거의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관계 설정에서 벗어나, 보다 수평적이고 상호존중에 기반한 관계를 그리려는 시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최근의 작품들에서는 전통적인 지배적 역할과 수동적 역할의 이분법적 구조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두 남성 캐릭터가 각자의 개성과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을 바꿔가며,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동성애를 더 이상 단순한 서사적 장치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작품들이 동성 간의 사랑을 일종의 금기적 로맨스의 도구로만 활용했다면, 현재의 작품들은 그것을 진정한 사랑의 한 형태로서 진솔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서사적 기법의 변화를 넘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변했음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다.
그런데 이런 학술적 분석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였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BL 웹툰들을 보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겪는 사회적 차별이나 내적 갈등을 정말 현실적으로 그려내요. 그냥 달콤한 로맨스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마주하는 어려움들을 함께 다루니까 더 진정성 있게 느껴져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이미 이런 콘텐츠를 통해 현실 감각을 기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BL 웹툰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는 창구였다. 커밍아웃의 어려움, 편견과 차별의 현실, 가족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고립감 등 성소수자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문제들이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뤄지고 있었고, 학생들은 이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사랑의 새로운 문법을 배우다
학생들의 반응을 지켜보면, 이미 이들에게 BL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어 있다. 이제는 금지하거나 외면할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건전하게 향유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마치 과거 TV나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비난이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설적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문화적 변화를 무작정 막을 수도, 비판 없이 수용할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BL 웹툰이라는 문화 현상을 통해 다양성, 관용, 사랑의 의미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진행한 토론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성숙한 태도는 기성세대의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켜 주었다. 이들은 단순히 자극적인 내용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 의식, 캐릭터의 심리 변화, 사회적 메시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기존의 획일화된 로맨스 서사에서 벗어나, 더 다양하고 포용적인 사랑의 형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정서적 성숙도는 이전 세대보다 한층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학생들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학생의 말을 빌리자면, "BL 웹툰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와 다르다'라는 것이 '틀렸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라는 것이다. 이는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많은 학생이 이러한 웹툰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꼭 성적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주류에서 벗어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는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칫 매몰될 수 있는 개성과 다양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경험과 관찰을 통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콘텐츠 교육과정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학생들의 실제 소비 패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장르 분류와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콘텐츠 사이의 괴리가 너무도 크다. 웹툰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BL과 백합 웹툰은 여전히 교육과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을 단순히 특수한 취향이나 틈새 시장으로 치부하는 관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산업 규모나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문화적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이제는 이들을 정식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할 때가 되었다. BL과 백합 웹툰이 다루는 주제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연애 이야기를 넘어선 사회적 메시지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가정 내 차별, 사회적 시선 등 현실의 문제들이 두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이런 콘텐츠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감정적 지능을 기르는 교육 도구로도 기능하고 있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 갈등 상황에서의 의사소통 방식,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의 이해와 배려 등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으로는 가르치기 어려운 영역들이다. 실제로 교실에서 BL 웹툰을 소재로 한 토론을 진행해 보니,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작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를 읽어내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지으며,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있었다. 물론 모든 BL이나 백합 웹툰이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된 자극적인 콘텐츠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어느 장르에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이며, 장르 전체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하고, 건전한 향유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이 이런 콘텐츠를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BL과 백합 웹툰 역시 우리가 교육해야 할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인 셈이다.
한 학생이 던진 질문이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교수님, BL 웹툰을 보면서 처음으로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이게 정말 나쁜 건가요?" 이 순수하고 진솔한 물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아마도 정답은 이것일 것이다. "나쁜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이다. 다만 그 소중함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책임감 있게 향유하자." "BL과 백합은 장르인가 취향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 긴 탐구의 여정은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귀결되었다. 학생들이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바로 고정관념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의 중요성이었다. 성별, 성향, 장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던 낡은 틀을 과감히 해체하고, 보다 포용적이고 다면적인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BL과 백합 웹툰은 더 이상 변방의 특수한 취향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시대가 품고 있는 다양성의 진정한 얼굴이며,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적 상상력을 전파하는 K-콘텐츠의 핵심 동력이다.
앞으로의 콘텐츠 교육은 단순히 장르를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BL과 백합 웹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독자들의 향유 방식, 해외 진출 전략,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의 확산 과정까지를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과과정의 확장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하는 교육철학의 전환을 의미한다. 교육자로서 나는 앞으로도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겸허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편견을 의심하며, 용기 있게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콘텐츠 교육이 단순히 분류와 분석 기법을 전수하는 기술교육이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르는 인성교육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BL과 백합 웹툰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값진 선물은 바로 이런 성찰의 기회가 아닐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지나 외면이 아닌, 이해와 소통을 통한 건전한 문화 조성이다. BL 웹툰이 보여주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되,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이끌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육자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의 책임이 아닐까. 사랑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으며, 아름다움에는 고정된 기준이 없고, 이야기에는 금지된 영역이 없다는 것—이것이야말로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통찰이다. 그리고 이 통찰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교육의 나침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고려대 미디어학부 연구진, 「BL웹툰 실태조사」,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지 『미디어, 젠더&문화』, 2024년, 『한국경제』, 2024년 5월 8일자 보도에서 재인용.
2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99쪽.
3 『세계의 웹툰 시장 : 시장 규모, 현상, 예측(2024-2030년)』, GII Korea, 2024년.
4 강신우, 「성인 BL웹툰 '야화첩', 15세 실사화 논란…"이걸 어떻게 각색하나"[스경X이슈]」, 『스포츠경향』, 2025년 5월 23일, 네이트뉴스, https://news.nate.com/view/20250523n17723 (2025년 8월 27일 접속).
5 이승희, 「OTT 'BL(Boys' Love) 콘텐츠'의 대중화 전략 및 수용 특징 연구: 왓챠 오리지널 〈시맨틱 에러〉를 중심으로」, 『지식과 교양』, 제12호, 목원대학교 교양교육혁신연구센터, 2023, 4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