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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2015]순정만화라는 유령_순정만화라는 장르의 역사와 감성만화의 정의_한상정

2016-10-18 한상정
순정만화라는 유령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역사와 감성만화의 정의
 
한상정 _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 들어가며 : 정의와 역사 규정의 순환적 오류
2. 장르의 역사적 구분
3. 감성만화 장르의 정의
 
1. 들어가며 : 정의와 역사 규정의 순환적 오류
 
   ‘순정만화’라고 부르던 장르가 한참 많은 인기를 끌 무렵인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이 장르의 정의에 대해 많은 연구자나 평론가 들이 글을 발표하곤 했었다. 이 용어 자체의 한계점은 이미 그 당시에도 뚜렷하게 보였다. ‘순정’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주로 어린이들이 가지는 순수한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정만화의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보자면, 아이들처럼 순수한 감정이 묘사되는 만화정도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의미론적 접근과, 현실에서 호명되고 있는 순정만화의 양태들이 완벽하게 어긋났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만화, 감성만화, 멜로만화, 사랑만화 등이 제기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그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순정 만화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순정만화에 대한 정의를 순정만화의 역사와 함께 통시적으로 다룬 연구는 2000년에 박인하가 발표한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정도이고, 다른 연구들은 동시대적인 작품들에 대한 연구에 그치곤 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의 제정 이후,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만화계는 서서히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만화잡지 역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잡지는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한때 30종을 구가하던 순정만화잡지 역시 최근엔 오프라인 상의 1종, 온라인 상의 2종정도로 완전히 축소되었다. 2003년 이후 다양한 웹 만화의 실험 중 웹툰이 서서히 주된 웹 만화 양식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순정만화를 발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사실상, 순정만화를 정의하려는 노력은 순정만화의 역사에서 막힌다. 195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의 순정만화라고 불리는 모든 작품들을 하나의 장르로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 시기의 모든 작품들을 관통하는 아주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특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부차적인 성격들의 변화를 야기해온 것이 아니라면, 이를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음 해야 하는 작업은 ‘순정만화’라는 명명을 무시하고, 오로지 시대별로 등장하는 작품군의 특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순정만화라는 정의를 먼저 내려야, 이에 근거해서 역사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취하려는 접근법은 역순으로, 순정만화사라는 것이 불균형적인 특성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각 시기별 성격에서 1960년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통일성을 찾아낼 수 없다면, 우리가 지금껏 순정만화라고 지칭해왔던 장르가 사실 유령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연구자는 순정만화라고 총칭해왔던 장르들을 통사적으로 크게 세 장르로 구분하려고 한다. 각 시기별 구분에 있어 정확한 년도의 제시는 상징적인 접근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고 넘어가려고 한다.
 
<표 1> 연구자의 구분 방법과 박인하의 구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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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르의 역사적 구분
 
1) 가족만화/순정만화(1957~1962)
 
   손상익은 《한국만화통사》에서 “순정만화의 실질적인 시작이 된 작품”으로 한성학의 《영원한 종》(1957)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이유로 이 작품이 이 장르의 실질적인 시작인가에 대한 근거들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단지 이 만화의 그래피즘이 아주 많은 부분 일본의 ‘쇼죠망가’를 닮았다1)고 특정한 비교의 근거 없이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한 장르의 기원에 대해 논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며, 순정만화 장르의 논의에 대해서도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이 결과만을 반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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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하는 순정만화를 다루면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순정만화로 엮고, 그 차별성을 1세대에서 3세대로 분류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시선의 날카로움인데, 특히 1세대의 첫 번째 두 시기 구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는 1950년대 순정만화가 가족만화의 범주 안에서 기획되었다고 언급한다. 당시의 유력한 장르들인 영웅만화, 유머만화들과는 변별적인 가족만화는 1950년대의 정서,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붕괴와 삶의 빈곤함, 가족애 등을 그리는 만화일 것이다. 박인하는 “우리는 이 장르에서 주인공들이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고 친절한 어린 소녀들이며, 전쟁으로 인해 강제로 헤어졌던 가족들의 상봉을 다루고 있으며, 주인공들이 어떻게 비참한 가난을 극복하는가를 보여준다. 《영원한 종》은 이러한 종류의 만화들의 기원이다2)” 그렇다면, 순정만화와 가족만화의 변별점은, 사실상 주인공의 성별이라는 점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의 성별이 왜 이 장르를 별도로 구분할 만큼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불행한 어린 작은 아이가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행복을 찾는 스토리는 해외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의 <올리버 트위스트>(1838), 말로(Hector Henri Malot)의 <집 없는 아이>(1878), 버넷 여사(Frances Hodgson Burnett)의 <소공녀>(1888) 등은, 약간의 결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유사한 맥락에 놓을 수 있다. 예컨대 <소공녀>만을 세라가 ??인공???라고 별도로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는 ‘순정만화’이전에 이미 정착되었던 ‘순정’이라는 용어의 2차적 사용법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손상익은 1956년 10월 《만화세계》라는 만화잡지에 처음으로 순정이라는 용어가 등장했3)다고 한다. 아직 순정만화라는 용어가 언제 등장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보여주는 연구는 없고, 한영주는 “순정만화라는 용어는 이 장르가 아직 고착화되기 이전 1950년대 중반쯤에 나타났다. 순정만화라는 표현은 ‘순정소설’ 또는 ‘순정이야기’이라는 단어들의 영향 하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4)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정이야기’의 주요 테마가 사실주의적인 시각 하에서 불행한 삶을 다루고 있으며, 주인공은 작은 소녀이고, 내레이션은 이 인물의 심리적 묘사에 집중된다5), 고 정리한다. 우리는 단번에 1950년대의 순정이야기 등과, 순정만화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미 순정이라는 단어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여성과 상관적으로 사용되어왔다는 점을 포착할 수 있다. 비록 원래 순정의 사전적 의미는 아이들의 순수한 감정일지 모르나, 실제로 이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단어이며, 소년이나 남성은 순수할 수는 있으나 순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냥 가족만화라고 해도 커다란 물의가 없었을 것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이를 별도의 순정만화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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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순정소설이나 순정이야기에서 순정만화로의 전환에는 분명 전자의 영역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의 활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도 가능하다. 이는 특히 ‘정파6)’라는 인물에서 두드러지는데, 이 저자는 순정그림소설, 순정소녀소설의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았었다. 표지만 확인하더라도 오히려 《영원한 종》보다 조금 더 진전한 것으로 보인다. 도판을 참조하면, 표지에 순정그립소설, 순정소녀소설이라는 용어들이 보이고, 1년 차이에도 불???하고 두 작품의 주인공 얼굴 스타일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 작가의 작화 스타일이 이미 일정 정도 구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정해볼 ?? 있다.
 
    여하간 순정에 붙어 있는 은밀하고도 부차적인 의미를 포괄하는 의미라면 이 당시의 소녀 주인공 만화를 순정만화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며, 탈맥락화 한다면 가족만화라고 지칭해도 커다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만화에서 소년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별도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손상익은 일본 쇼죠망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으나, 아마도 이 가족만화들 중 소녀가 주인공인 만화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중반 모성을 주로 다루는 ‘어머니 이야기’와의 연계성을 더 찾아야할지도 모른다.
 
2) 소녀만화(1963~1976)
 
   박인하가 ‘소녀들을 위한 만화’라고 지칭하는 1960년대 작품들은, 사실상 일본의 1950년 후반기에서 1960년대, 더 정확히는 쇼죠망가의 황금시대 대비 첫 번째 준비기(1953~1962)’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 구분은 요네자와 요시히루(YONESAWA Yoshihirou)7)의 구분에 의거하는 바, 이 연구자는 쇼죠망가의 역사를 5개의 ???계로 분류한다. 첫 번째 준비기(1953~1962), 두 번째 준비기(1963~1968), 장르의 구축기(1969~1974), 장르의 황금시대(1975~1987), 장르 추락의 시작기(1988~ )이다. 그가 언급하는 이 첫 번째 준비기의 특징을 요약해보자.
 
? 1953년, <리본의 기사>의 출현 ~ 쇼죠망가의 경향들 중의 하나로 ‘낭만적인 판타지’가 긴 길이의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 1956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들이 생겨난다. 이 시기부터 잡지8)들의 페이지들의 반 이상이 쇼죠망가에 의해 점령된다.
? 1955년과 1958년 사이. ‘모성적 멜로드라마’ 스타일의 이야기들이 유행을 이룬 시기. 이 스타일의 이야기들은 주로 모성적 관계(엄마와 자식의 관계, 혈연에 대한 질문들 등) 주변의 테마들을 다루었음. 이 이야기들은 전쟁 이후 영화에서 먼저 유행을 이루었다. 이러한 경향은 정통 쇼죠망가가 배태되기 이전, 쇼죠망가의 한 경향을 이루었다.
? 1958년경 타카하시 마코토의 화려한 그래피즘이 출현함과 동시(그림 7)에 정통 쇼죠망가의 작가군이 될 작가들이 도래했다. 이 작가들 중, 와타나베 마사코, 마키 미야코, 미즈노 히데코를 대표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특히 타카하시는 ‘패션화’를 도입하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페이지 구성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 페이지들은 액세서리, 그리고 마치 인형과 같은 소???들을 묘사했고, 특히 장식들과 표현성과 섬세성에 그 무엇보다도 큰 의미들을 부여했다.
 
   우리의 경우, 보통 민애니, 송순히, 엄희자, 장은주 등을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는다. 민애니는 1962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송순히와 엄희자는 1963년9), 그리고 장은주는 이미 1961년부터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녀들은 1970년대 중반까지는 아주 규칙적인 리듬으로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권영섭(그림 6), 조원기, 최상록 등도 유사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우리가 이 시기를 1963년부터 언급한 것은, 대표적인 작가 중 두 명의 데뷔 시기라는 것 이외의 다른 심???한 이유는 없다. 물론 이미 1963년 이전에도 분명히 소녀들을 위한 만화가 존재했고, 이 이후에도 가족만화가 출현했으므로 사실은 기억하기 쉬운 년도를 언급했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박인하가 ‘소녀들을 위한 만화’라고 지칭한 이 시기의 만화를 우리는 그냥 쇼죠망가의 번역어 정도인 ‘소녀만화’라고 지칭하려고 한다. 이 시기가 이전의 순정만화 시기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성격의 작품들을 산출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전의 변천사를 도저히 읽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쇼죠망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본다.
 
   소녀만화라고 우리가 부르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전 시기의 작품들과는 다른 특성을 내보인다. 첫 번째로 이야기에 있어서 ‘비현실성’의 증가이???. 순정만???가 현실적 삶의 고단함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면, 이제 그 향기는 흩어지기 시작하고, 일종의 ‘낭만적 판타지’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두 번째로는 이???에 발견할 수 없었던 화려한 그림체와 장식들의 등장이다. 소녀들은 갑자기 다리가 길어지기 시작했으며, 머리카락의 색깔들도 변했고, 눈은 반짝이며 속눈썹은 상당히 길어졌으며, 주인공~마네킹(그림 5 참조)10)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1980년대 후반에 만나게 될 작품들에 비하면 아니라고 해도, 이전의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 그래피즘이 화려한 편이다. 세 번째 차이점은 서서히 여성작가들이 등장했다는 데 있다. 이는 가족만화의 작가들이 비록 소녀들을 앞세우긴 했으나 남성작가들에 의해 창작되었다면, 이제는 서서히 여성작가들이 작업 활동을 시작??다는 점이다.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실상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만화가들의 대부분은 남성이고, 여성작가의 숫자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일본의 쇼죠망가 덕분에 어쩌면 일본에는 여성만화가들이 많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이 소녀만화가 서서히 정착하고,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 만화들의 향유자가 미래의 여성 창작자를 배태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쇼죠망가가 확장, 발전(그림 8 참조)되어간 것과 반대로, 소녀만화는 70년대 초반 이후 추락하기 시작하며, “1970년대 중반 이후 모든 순정만화들이 거의 한꺼번에 사라졌다.11)” 외부적 요인으로 가장 큰 것은 검열을 꼽아야 할 것이다. 만화의 다양한 장르들 중에서도 이 당시 여성에 대한 일상화된 무시12)는 여성들이 보는 만화들에게도 동일하게 행해졌다. 민애니 역시 그를 확인해주고 있다.“검열은 만화에서 만약 어떤 여성이 귀걸이를 하고 나오거나 또는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오거나, 또는 소년과 소녀가 한 공간에 같이 있으면 그를 모두 삭제하라고 요구했다13)” 그리고 소년들이 보는 만화보다 소녀들이 보는 만화에, 전통적인 유교사상 덕분에, 더 엄밀한 잣대를 대었다는 사실을 보충했다.
 
   합동이 발휘했던 무소불위의 권력 역시 이 장르의 발전을 저해했다. 합동은 생산과 유통의 독점이었고, 만화가들로 하여금 각 200페이지, 3권으로 제한한 채로 이???기를 완성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억압적 요소들은 그래픽적인 요소와 서사적인 요소 들을 잘 조화를 이루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페이지 증감의 자유를 처음부터 차단했다. 처음에 독자들은 새로운 작품들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작품들은 반복적인 패턴을 유지하게 되었다14).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소녀만화를 그렸던 남성 작가들이 이 장르를 떠난 이유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화들에게 좀 더 엄격한 요구들이, 그리고 더 낮은 원고료가 책정되는 상황에서 이 장르에 남고자 하는 남성 작가들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장르를 바꾸어서 활동하는 것이 조금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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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은 쇼죠망가의 표절이 단지 단행본에서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잡지에서도 되풀이되었다는 점에서, 더군다나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이 1970년대 내내 별 제제 없이 행해졌다는 데 있다. 아마도 잡지는, 만화방과 합동이라는 생산과 유통의 독점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지들은 그러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의 소녀들을 위한 만화들에게 기회는 사라졌고, 소녀들의 독서는 한국의 소녀만화보다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더 흥미로운 일본 쇼죠망가에게로 옮겨졌다. 수많은 일본 쇼???망가들이 한국만화인 것처럼 소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청소년들을 위한 월간지에서도 역시 되풀이되었다. 소녀들을 위한 만화, 동일한 코드들이 계속 반복되어 독자들의 애정에서 벗어나게 된 만화들은 이런 위장한 일본만화와 경쟁이 되지 않았고,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사라진 것이다.
 
3) 감성만화 (1977 ~ 현재)
 
   세 번째의 감성만화 시기를 우리는 1977년부터 현재까지 잡으려?? 한다. 모색기로??? 1977년에서 1984년까지, 구축기와 황금기를 1985년에서 1996년까지, 쇠퇴기를 1997년부터 현재까지라고 설정한다. 시기구분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은 1977??, 이 가라시 유미코의 <캔디캔디>의 TV 방영, 1985년 여성작가들로만 구성된 동호회 <나인>의 무크지 《아홉 번째 신화》의 창간, 1997년 청소년보호법의 제정이다. 요네자와의 구분에 따른 ‘장르의 황금시대(1975~1987)’ 및 그 이전 시기 쇼죠망가의 수작들은 1970년대에 불법으로 복제되어 이미 소녀만화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실 <캔디캔디>의 방영은 상징적인 사건에 불과한데, 이 애니메이션의 상영은 일거에 이 작품 및 쇼죠망가에 대한 출판 및 유???업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 이후 쇼죠망가는 불법복제나 표절을 통해 한국의 독자층에게 풍부하게 제공되었다. 비록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래픽적인 그리고 서사적인 수준들 덕분에 이러한 표절물들은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였고, 반복적인 코드에 질려버린 한국독자들의 취미와 시선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독자적인 훈련을 통해 이와 유사한 작품을 하려는 지망생들의 교과서로도 활용되었다.

   일본 대중문화의 합법적인 수입조치는 1990년대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이 순간까지 쇼죠망가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표절에 의한 것뿐이었다. 유명한 작품들은 1977년 이후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케다 리요고의 <베르사이유의 장미>(1972), <올???스의 창>(1975), 미유치 스즈에의 <유리가면>(1976), 아리요시 교코의 <스완>(1976) 등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들15)이었다. 당시 독자들은 실제로 이 작품들이 일본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 이름들, 주인공들의 이름들이거나 또는 저자의 이??들을 모두 출판사에 의해 가짜 한국 이름들로 바뀌었고, 페이지 중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일본적 요소, 특히 기모노 같은 복장들은 전문가나 비전문가들에 의해 다시 그려졌기16)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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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시기의 작품들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남성작가들(김동화, 차성진 등)이 창작한 작품들인데,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역을 떠나게 된다. 두 번째는 새로운 여성작가 세대(이혜순, 황미나, 김진, 김혜린 등)에 의한 작품들이고, 마지막은 쇼죠 망가들의 모방이나 표절작이다. 이 세번째 그룹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정도의 문제일 뿐, 첫 번째나 두 번째 그룹의 작가나 작품들도 쇼죠망가의 모방과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룹의 작가들은 여성 작가들의 활??이 두드러지자 서서히 이 장르에서 떠나게 된다. 이 모색기는 사실상 쇼죠망가의 모방을 통해, 어떤 새로운 미적 질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로만 보자면, 두 그룹 사이의 실제적 차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혜순은 특히 1980년대 초의 잡지들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자매의 ???>과 <돌아오지 않는 바람>(그림 10)같은 작품들을 잡지에 연재한 후 몇 권의 단행본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 단행본들의 초판 출간일은 정확하지 않고, 이 잡지들을 통해 한 시대를 보낸 이후 작업을 그만두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쇼죠망가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특히 칸 1에서 드러나는, 묘한 전환, 오른쪽 페이지에서의 마네킹~주인공으로의 히로인의 출현, 칸들의 활용방법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황미나는 모두가 만장일치로 감성만화의 대모로 다루고 있다. 그녀는 1980년에 《소녀시대》라는 잡지에 <이오니아의 푸른 별>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이어서 1981년에 <보헤미아의 별들>, 1982년에 <아뉴스데이>, 이어서 사실상 1년에 한 시리즈씩 계속 발표한다. 김진은 1983년 《여고시대》라는 잡지에서 <바다로 간 새>로 데뷔했다. 김혜린은 1983년부터 벌써 유명세를 얻었는데,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은 11권으로 완결될 <북해의 별>(1983~1987)이었다. 이 한국작품들은 쇼죠망가의 모방과 표절작들의 물결 사이에서 힘들게 전쟁을 치렀어야 했다. 게다가 독자들이 어떤 것이 고유한 작품이고 어떤 것이 표절작품에 불과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더 힘겨웠을 것이다.
 
 
   감성만화의 개화기의 시작을 1985년으로 보는 이유는 만화의 어떤 장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성만화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해 《아홉 번째의 신화》가 창간되고, 이것이 결국 이 장르의 황금기를 이끌어낼 잡지창간까지 견인해냈기 때문이다. 감성만화의 모색기와 개화기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감성만화가 무엇인가??는 정의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다.
 
3. 감성만화 장르의 정의
 
   연구자는 의도적으로 지금까지 순정만화라는 용어를 피하고 감성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1977년, 특히 1985년 이후의 한국의 순정만화라고 불리던 장르는 그 어떤 다른 용어들보다도, 감성만화라고 지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순정만화 논의를 전개해오던 연구자들의 논지를 정??하자면, 접근방식의 차이는 감안하더라도, 여섯 가지의 근거를 부분적으로, 또는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선 텍스트 내부의 특징들이다. (1)이야기(테마, 서사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함) (2)작화 스타일, 페이지 연출 등 시각적 요소들 그래픽적인 요소들(서구적 인물형, 금발머리, 8등신, 장식물, 주인공~마네킹, 복잡한 칸 배치) (3)(여성의 관점 및 내면 묘사 등을 통해 동일시를 야기하기 위해) 주인공이 여성인 것. 그리고 텍스트 외부의 요소들로서, (4)여성만화가 (5)여성독자들을 메인 타깃으로 하거나, 여성독자 군이 존재하는 것 (6)작품이 독자들에게 야기하는 효과로 정리17)할 수 있다.
 
   감성만화를 정의하기 위해, 우리는 이 여섯 가지의 접근법이 필요한 것일까? 이 중에서, 여성주인공, 여성독자, 여성만화가는 제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우리가 이 장르를 여성만화라고 부르지 않기 위한 의도???인 배제는 아니다. 단지, 이 장르에서 성담론을 통해서만 해석이 될 만한 아주 핵심적인 요인들이 존재하느냐의 판단 결과일 뿐이???. 우리는 남성 주인공을 통해서도,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려하는 남성독자들의 존재도, 남성만화가들이 작업한 감성만화를 알고 있다. 물론 이를 상대적으로 소수이므로 예외로 제외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중요한 판단과제는 이 장르가 과연 어떤 여성들만의 현실을 제시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시도는 감성만화의 가장 주요한 ???소들과, 그 요소들이 각기 별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총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라고 할지라도, 어떤 작품들은 이 장르를 만들어나가거나 변혁해나갈 수 있고, 또 다른 작품들은 이미 생성된 코드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도 있다. 우리의 근거 기준은 전자가 될 것이며, 후자는 전자의 희석화, 코드화, 전형화의 현상으로 보고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기존의 연구자들이 지적했던 스토리, 작화 스타일, 야기하는 효과를 우리 식으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스토리의 성격, 시각적 그래피즘의 성격, 이들의 복합체로서의 연출의 성격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리는 장르의 본질적 특성들을 단지 텍스트 분석이라는 범주 내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독서의 분석이라는 범주 안에서 포착하려고 한다. 함축적 독자들을 향해 기획되고 준비된 텍스트의 특성들은 ‘읽는다’는 행위 없??는 단지 잠재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다른 표현양식들처럼 행동, 지각행위와 인식행위들을 결합한 복잡한 작동과정이다. 이 작동과정은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 같은 물리적인 행위만큼이나 시각, 촉각,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인지활동을 포괄한다. 독서과정 중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정신적인 재현은 이러한 기능에서 독립적이지 않다. 바로 이러한 과정 덕분에 만화가 이해되는 것이다. 각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정신적인 재현을 축조하고, 이 속에서 자기마음대로 주인공들이 움직이고 말하게끔 만든다. 브느와 피터즈(Benoit Peeters)가 제시했던 ‘유령 칸(La case fantome)18)’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특성들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칸들이 함께 행위를 ??산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장면(scene)’이라는 용어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인 장면’의 축조가 만화, 또는 서적 일반의 모든 독서들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이라면, 감성만화만의 특수성들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독서의 구성 요소들의 특성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감성적 독서’라는 용어를 감성만화의 모든 특정적인 구성요소들이 상관적으로 작용하는 독서를 지칭하기 위해, 즉 다른 모든 독서와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감성적 장면’이라는 용어를 감성만화의 독서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정신적 재현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할 것이다. 결국 감성만화란 독서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감성적 장면??? 구축될 수 있게끔 하는 작품이다.
 
   우선, 텍스트의 성격부터 차례로 다뤄보자. 스토리는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남녀 사이의, 또는 그 외 인간관계, 인간들 사이의 애정 및 감정이 오고가는 관계를 메인으로 다룬다. 남녀 사이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들이 가장 많긴 하나, 그렇지 않은 작품 군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김진, 유시진, 권교정, 조주희 등의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김진의 <바람의 나라>의 경우, 오히려 남녀 간의 애정이 서브스토리로 물러나고 부모자식 간에 죽고 죽이는 불행과 비극의 속살을 ??여준다. 중요한 점은 남녀 간의 애정이건, 그렇지 않은 인간관계건, 이를 합리적이거나 냉정한 시선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멜랑콜리 한 시선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열정적인 감정이 ??니라, 감성만화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기도 하다.
 
   감성만화의 그래픽적인 특성을 우리는 ‘장식성(decorativite)’이라고 지칭하려고 한다. 등장인물들의 서구적인 이상화, 주로 배경에 드러나는 장식적 요소들, 일러스트 페이지, 그리고 페이지 전체의 구성 방식에서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 특징 즉 페이지 전체의 구성 방식은 감성만화의 영향으로 이젠 다른 장르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그 외의 특수성들은 여전히 낯선 방식으로 감성만화를 규정한다. 이미 소논문19)에서 이에 대해 발표한 바 있는데, 우선 구체적인 페이지 분석을 통해 장식성의 형식적 특성들을 추출한다. 인물표현 방식, 시각적 코드들, 일러스트 페???지, 양면 페이지 구성 방식을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 위한 장치’라고 보고 이를 ‘장식성’이라고 ??른다면, 이 장치는 두 대립적인 힘의 균형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서사공간의 성격과 연관되면서 서사의 구성 요소로써 서사에 협조하는 측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선을 빼앗거나 또는 서사공간 외부의 요소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서사의 진행을 방해하는 대립적 측면이 그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면 장식성은 서사 장르의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이어서 우리는 이러한 장식성의 계보를 살펴본다. 장식성이라는 장치는 일본의 ‘쇼죠망가’(소??들을 위한 만화) 의 탄생부터 나타났던 현상이며, 그것이 한국의 순정만화로 이식되어 재생산되었다. 이 쇼죠망가 역시, 프랑스의 1910년대에서 20년대까지 여성용 잡지에 등장했던 ‘패션화’그리고 일본의 ‘서정화(抒情畵)’에서 영향을 ??았다. 이 패션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식성은 무엇보다도 시각적 즐거움을 부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며, 이???한 심미주의는 자연스럽게 비현실적 특성과 연관된다. 현실세계적인 디테일은 제거되고, 가상적인 여성적 우아미의 극단적 미화 혹은 유미주의가 나타난다. 맥락만을 집어 본다면, 일본의 서정화가들이 프랑스의 패션화의 이런 특성들을 쇼죠망가에 도입했다. 비록 패션화에 비하면 재현(再現)대상은 훨씬 더 어린 소녀들로 변화되었고, 서구풍의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패션화의 가장 기초적인 특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어떠한 현실도 부재한 채, 오로지 아기자기하게 예쁜 것만을 묘사하는 관습이다. 이어서, 아르누보, 비어즐리, 라파엘 전파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특성들을 파악해낸다.
 
   즉, 조형적으로 드러나는 장식성이라는 특징은, 각 표현매체의 차이를 넘어서, 어떤 공통적인 세계를 재현해왔다. 장식성은 허구성, 비현실성, 현실로부터의 퇴거, 판타지즘에 기반을 둔 유미주의가 주는 즐거움이며, 그것이 허용되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는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이즘’에서 ~ 본격적이건 또는 부차적이건 간에~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맥락을 잇고 있다. 결국은 역사(우연적)요소들과 미학적(본질적) 요소들이 함께 이 독특한 스타일들을 형성해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연출에서 볼 수 있는 것, 달리 말하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 서사’에서, 감성적 장면을 산출할 잠재태로서의 텍스트적인 요소 전체를 ‘연극성’으로 포괄하여 다룰 것이다. ‘연극성20)’은 장식성만이 아니라 서사적인 장치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더 상위 층위의 장치이다. 우리는 이 장르에서 파악할 수 있는 ‘연극성’을, 독자의 활동을 자극하기 위해 텍스트의 연출 속에 숨어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장치로, 시각적 장치와 서사적 장치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규정한다.
 
   이 연극성은 두 가지 대립??? 목적성을 동시적으로 지니는데, 한편으로 독자들이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산출하려고 노력한다. 달리 말하면, 각각의 페이지들은 독자들을 연극무대 앞의 관객들인 것처럼 다룬다. 보통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하나는 무대처럼 구성된 페이지 연출이고, 또 하나는 마치 극적 장면을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페이지 연출이다. 다른 한편으로 연극성은 독자의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인 활동을 자극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은밀한 공감의 시스템, 묵설법, 페이지의 다이내믹한 구성, 한 공간 안에서 두 행위의 동시적 재현이 바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기여하는 네 가지 방식들이다.
 
   연극성이 지니는 대립적인 두 목적 사이의 공존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만약 독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면서 독자들의 실질적인 활발한 정서적, 이지적 활동을 숨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독자들이 독서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하자면 연극성이란, 독자들의 활동을 극대화시키기 위??? 비활동적이라는 착각을 부여하는 장치이다. 특히 이 연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서사적으로 ??요하거나 극적인 순간으로 주변과 단절된 시공간으로 표상된다. 이는 일직선적인 서사의 진행 속의, 아주 순간적인 단절을 요구한다. 이러한 연극성의 표출 형태들은 만화라는 표현양식의 특성과 본질적으로 엮여있다. 문자언어를 겸비한 이미지, 동작과 소리의 부재, 이러한 특성들이야말로 만화 고유의 ‘연극성’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이는 각색에서 항상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연극성은 두 가지 대립적인 지향성들에 기반을 ?? 때에만 드러날 수 있다.
 
   하나가 독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는 착각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라면, 대립적 장치는 ??연히 독자들의 정서적, 정신적 활동들을 자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두 가지 대립적 성향이 ??실은 연출 속에서 포괄적으로 독자의 감성을 일깨우고 지속적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성만화 텍스트의 이야기, 장식성, 연극성은, 사실상 독자들이 이 텍스트를 접하면서 ‘감성적 장면’을 산출하기 위한 목적을 노정한다. 현실적인 독서에서, ??자들은 텍스트와의 상호작용을 일으킴에 있어, 인식과 감성적 총체로서의 독자 자신의 성향과 욕구, 텍스트의 편집과 인쇄상태, 텍스트를 접할 때의 주변 환경 등에 간섭을 받는다. 사실 감성만화 텍스??에 노정된 이상적 독자, 함축적 독자는 감성만화 텍스트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자이며, 저자는 당연히 텍스트의 편집과 인쇄상태라든가, 독자와 작품이 만나는 독서 환경이 최상의 것이라고 상정할 것이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즉, 감성적 장면의 산출을 위해서는 텍스트의 성격만이 아니라 위의 다른 세 가지 요소들도 감안해야 한다.
 
   이 장르의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주요한 특징은, 텍스트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독서 과정에서 또는 독서 이후에 독자가 생성??는 ‘감성적 장면(la scene sentimentale)’이라는 정신적 재현(representations mentales)이다. 이 정신적 재현21)은 모든 감각적 영역과 상관적이지만, 이 작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각적 재현이다. 이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 중에서도, 인지심리학의 바바라 츠베르스키(Barbara Tversky)의 ‘공간적인 정신적 모델(le modele mental spatial)’이 우리가 생각하는 감성적 장면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델은 원래 사물들의 공간적 관계를 묘사하는 텍스트의 경험적 분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시각적벡터들을 여기에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개념이다. 이 모델을 요약하자면, “이 모델은 형상을 묘사하는 텍스트가 취하는 시점에서 독립적으로 일종의 일반화된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건축에서 사용하는 3차원 모델에 유사하며 일종의 구조적 묘사이고 묘사된 장면의 각기 다른 부분들 사이의 공간적 관계들을 감안하는 특정 시점들의 종합본이다. 이 모델은 단일한 관점에 따른 장면을 재현하는 시각적 이미지와는 차???적이다22). 이 모델의 장점은 우리가 읽어나가는 과정은 결코 한 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읽어나가는 칸들을 머릿속에서 섞고 바꾸고 등, 연속체로서의 칸들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이 모델은 역시 실제 작품과 우리 머릿속의 이미지 재현이 왜 다른지도 설명해준다. 또한 한번 구축된 이 모델은 이제 나머지 독서 과정에도 영향23)을 준다. 그리고 이 정신적 모델이 다른 타입의 텍스트보다 서사 텍스트일 경우 더 쉽게 구축된다24)는 것을 지적한다. 1980년대 말부터 이미지들이 정신적 모델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구들이 증가되어왔다. 이 결과들25)에 따르면, 비록 이미지가 심???어 빈약하더라도, 텍스트의 이해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정신적 모델에 대한 연구는 아니지만, 정신적 이미지와 정서적 충격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주체는 중성적인 단어들보다 정서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들의 이미지를 훨씬 더 빨리 떠올린다26). 무난한 내용보다 격정적인 내용의 영화가 상영될 때, 관객의 머릿속에는 더 많은 정신적 이미지를 야기한다27).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 독자는 더 많은 디테일을 기억한다28). 감정적인 내용을 담은 이미지들을 독자들은 훨씬 더 오래 기억한다29).
 
   ‘감성적 장면’ 이란, 독자가 현재 읽고 있는 페이지를, 지금까지 읽고 보아 온 모든 정보들의 축적 하에 머릿속에 그려 내는 극히 개인적이며 상상적인 장면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델이 문자 서사보다는 이미지 서사에서, 일반 연구서보다는 감성적 서사에서 훨씬 더 활발하게 형성되며 더 오랜 기간 ???안 지속된다. 이러한 장면을 탄생시킬 수 있는 작품만을 ‘감성만화’라고 부르려고 하며, 순정만화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용어로 제안한다. 장르 정의에 있어 감성적 장면의 산출이라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세 가지 정도?? 장점이 있다. 첫 번째, 텍스트의 특성을 분석하면서도 텍스트 이외의 현실적인 요소들을 감안하여 현실에서 생기는 텍스트의 다양한 반응을 이해하게 만든다. 두 번째, 장르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텍스트의 성격들을 분리하여 다루는 것이 아니라, 최종 목적의 산출을 염두에 두고 상호적인 것으로 다룬다. 세 번째, 만화 장르의 정의에 대한 담론의 확장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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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정(2007), 장식성의 반복적 출현에 대한 소고: 순정만화와 타 장르(포스터, 일러스트, 서정화, 쇼죠망가)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12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pp.45~56
한상정(2007), 감성만화의 이미지 서사의 주 특성으로서의 연극성, 《미학예술학연구》26집, 한국미학예술학회, pp.151~176
 
주석
1) 손상익(1998), 《한국만화통사 하권》, 시공사, p.135. 아마도 데츠카 오사무니 미즈노 히데코의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으나, 연구자 스스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2) 박인하(2000), 《???가 캔디를 모함했나》, 살림, p.41
3) 손상익(1998), 앞의 책, p.136
4) 한영주(2001), 《우리만화 다시보기(1950~1969)》, 글논그림밭, p.164
5) 한영주(2001), 앞의 책, p.163.
6) 본명은 김정파(金靜波 : 1924~1992). 1950년대에 상당히 많은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소설, 만화를 발표했다. 그의 작화스타일은 별도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으나, 자료의 한계가 있다.
7) YONESAWA Yoshihirou(1991), <쇼죠망가연보>, 《쇼죠망가의 역사 1》, 平凡社, pp.4~8.
8) 1956년부터 《리본》과 《나카요시》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만화만 실린 잡지는 아니었다.
9) 박인하는 1963년이 민애니와 송순히의 데뷔년도라고 말한다. 한영주는 마지막 두 작가들의 데뷔년도는 밝히지 않는다. 이들의 연구를 보자면, 엄희자는 1963년에 작업을 시작했다면 장은주는 1961년 초부터 작???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박인하, 앞의 책, p.53/한영주, 앞의 책, p.178.
10) 앙리 모르간(Henry Morgan)이 사용한 용어이다. Autres themes, autres styles, pp.27~ 52, dans Thierry Groensteen(1991), L’Univers des mangas: une introduction a la bande dessinee japonaise, Paris, Casterman, p.46
11) 박인하(2000), 앞의 책, pp. 60~63, 백정숙(1996), ‘순정만화의 짧은 역사’, 《마인》3월호. 백정숙은 역시 이 시기에 수많은 망가들이 한국의 작??인 것처럼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12) 우리는 특히 여성들이 주로 향유하고 있는 장르들에 대한 일상화된 무시를 ???올려볼 수 있다. 실상 표절문제도 순정만화에게만 일어난 예외???인 현상은 아니었지만, 순정만화에 더 엄밀한 잣대를 대는 경향이 있다.
13) 박인하의 민애니와의 인터뷰 참조. 앞의 책, pp.56~57.
14) 박인하(2000), 앞의 책, p.69.
15) 여기에 표기된 년도들은 모두 일본 쇼죠망가 잡지에 처음 발표한 년도이다. 이 중에서 하지오 모토, 타케미야 케이코(그림 8 참조)의 작품들은 표??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 이 작가들은 당시로서는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켰던 작품들이었는데, 특히 소년들 사이의 동성애적 코드들이 대표적이다.
16) 흥미로운 점은, 역설적에게도 바로 이런 다시 그려진 그림 때문에 조금 더 능숙한 독자들에게는 이???이 일본작품이라는 것을 지시하는 표시가 되기도 했다.
17) 박인하는 ‘순정만화잡지에 연재하는 작품’을 순정만화라고 규정한다. 박인하(2000), 앞의 책, pp.27~33
18) 그는 이 ‘유령 칸’을 ‘완전히 독자가 구성한 가상적인 칸’으로 정의했다. 칸, 원고 페이지, 서사, Peeters Benoit(1998), Case, Planche, Recit, Casterman, p.32
19) 한상정(2007), 장식성의 반복적 출현에 ??한 소고 : 순정만화와 타 장르(포스터, 일러스트, 서정화, 쇼죠망가)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 연구》12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pp.45~56
20) 연극성에 대한 연구 역시 연구자의 다음 논문을 참조. 한상정(2007), 감성만화의 이미지 서사의 주 특성으로서의 연극성, 《미학예술학연구》26집, 한국미학예술학회, pp.151~176
21) Michel Denis(1998), ‘Imagerie mentale’, in Olivier Houde, Danierl Kayser, Olivier Koenig, Joelle Proust, Francois Rastier, Vocabulaire de sciences cognitives, PUF, pp.201~203. 엄밀하게는 시각적 재현 중에서도 정신적 이마저리 분야 연구에 속한다.
22) Jean~Marie Galliana(1998), ‘Image mentale et comprehension de textes decrivent des configurations spatiales : vers une approche developpementale’, pp.115~138, in Jacqueline Bideaud, Yannick Courbois, Image mentale et developpement, PUF, p.116.
23) Marie~France Ehrlich et Hubert Tardieu(1993), ‘Modeles mentaux, modeles de situation et comprehension de textes’, in Les Modeles mentaux : approche cognitive des representations, Paris, Masson, pp.47~77
24) Marie~France Ehrlich et Hubert Tardieu, 위의 글, p.71 25)Marie~France Ehrlich et Hubert Tardieu, 위의 글, pp.63~65
26) Selon l’article de Sadalla (E.K) et Loftness (S.), Emotional images as mediators in one~trial paired~associate lerarning , J. exp. Psychol., 1972, n° 95, pp.295~298, cite par Denis Michel, Les images mentales,Paris, PUF, 1979.
27) Horowitz (M.J.), Image Formation and Cognition, New York, Appleton~Century~Crofts, 1970, cite par Denis Michel, 위의 책
28) 제임스 맥고흐(James MacGaugh)와 그 동료들의 실험결과들이 보여준다. Involvement of hormonal and neuromodulatory systems in the regulation of memory storage ,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 n° 12, 1989, pp.225~287 ; Significance and remembrance : the role of neuromodulatory systeme , Psychological Science, no 1, 1990, pp.15~25. Antonio R. Damasio의 언급을 참조. Le sentir du sentiment, pp.277~292, in Le sentiment meme de soi : corps, emotion, conscience, Paris, Odile Jacob, 1999, p.292.
29) M. Cocude, Generating and maintaining visual images : the incidence of individual and stimulus characteristics , pp.213~222, M. Denis et les autres (ed.), Cognition and Neuropsychological Approches
to Mental Imagery, Dordrecht, Martinus Hijhoff, 1988, 미셀 드니의 언급 참조,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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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정

만화평론가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