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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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티 젬

2002년 1월 현재 우리나라의 순정만화잡지 시장은 ‘중고생용(4종)’과 ‘어린이용(3종)’으로 양분되어 있다. 나는 중고생용 순정만화잡지는 매달 꾸준하게 챙겨보는 편이지만, 유독 어린이용 순정만화잡지들은 외면해왔다. 이 나이에 애들 만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기 ...

2002-02-14 노수인
2002년 1월 현재 우리나라의 순정만화잡지 시장은 ‘중고생용(4종)’과 ‘어린이용(3종)’으로 양분되어 있다. 나는 중고생용 순정만화잡지는 매달 꾸준하게 챙겨보는 편이지만, 유독 어린이용 순정만화잡지들은 외면해왔다. 이 나이에 애들 만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린이용 잡지에도 재미있는 만화가 여럿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박은아의 『스위티 젬』은 푹 빠져서 볼 수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도 이 만화에 환호하는 20대 여성을 여럿 보았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30대 전후의 여성들에겐 ‘공주님’에 대한 향수가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인형들은 파란 눈동자와 금발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서양식 공주님이었다. 또한, 즐겨 보던 텔레비전 만화영화와 외화, 무엇보다 수없이 읽어 내린 순정만화와 동화책은 모두 이국적이고 화려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심어줬다. 『스위티 젬』에는 바로 이러한 정서를 자극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이 작품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깨어났을 때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 아마 무지 외로웠을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창조한 가공의 보석 ‘스위티 젬’의 전설은 ‘저주를 푸는 가장 강력한 마법은 사랑’이라는 고전동화의 모티브를 반복한다. 따라서, 그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처음부터 자명했다고 볼 수 있다. 내 생각에 『스위티 젬』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화려한 볼거리로 승부하는 만화다. 박은아는 정교한 그림이 특징인 순정만화 중에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그림을 선보이는 작가다. 『스위티 젬』 역시 특유의 인형처럼 예쁜 그림이 독자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무엇보다 주인공 루비가 진짜 ‘공주님’이기 때문에, 나풀나풀한 드레스와 화려한 레이스, 프릴, 리본 등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루비의 라이벌 또는 친구에 해당되는 미소녀들도 잔뜩 등장하고, 루비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왕자님’에 해당되는 미소년, 미청년 역시 여럿 나온다. 단행본 속표지에서 “‘꽃돌이’(미소년)로 가득 찬 세상을…”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꽃을 흩뿌리고 있는 작가의 캐리커처는 20대 여성으로서 진한 동지애마저 느끼게 한다. 박은아는 왕국, 공주, 마녀와 요정, 저주와 축복 등 고전적인 요소들을 차용하여 구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모델계, 명문가, 학교, 짝사랑, 연적, 오해, 갈등 등 익숙한 코드들을 결합하여 신세대를 위한 재미를 배가시켰다. 푼수기 다분하고 둔감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공 ‘루비 공주’ 역시 무척 사랑스럽다. 진짜 공주님이면서 공주병과는 무관한 것이 특히 그렇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실제보다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그 시절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어느새 색이 바랜 순수함과 낭만을 되살려주는 ‘추억’의 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위티 젬』은 어린 소녀들뿐 아니라 2~30대 여성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