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랑법
스즈키 유미코의 『그녀의 사랑법』의 원제는 『신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이며,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국내명: 미녀를 누가 말려?)』의 속편이다. 『그녀의 사랑법』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웃음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라토리 레이코의 무지함이다...
2002-02-14
노수인
스즈키 유미코의 『그녀의 사랑법』의 원제는 『신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이며, 『시라토리 레이코입니다!(국내명: 미녀를 누가 말려?)』의 속편이다. 『그녀의 사랑법』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웃음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라토리 레이코의 무지함이다. 특히 ‘성에 대한 무지함(순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레이코는 연인과 동거한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둘 사이에는 키스나 포옹 외에는 성적인 접촉도 없다. 테츠야는 레이코를 너무 원하는 나머지 임포텐트 증상까지 보인다. 그렇게 억지스러운 설정을 통해 숫처녀 레이코의 순진함과 무지함이 유지되는 것이다. 레이코의 성에 대한 인식은 『미녀를 누가 말려?』 4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레이코는 포르노를 보다가 “뒤집힌 개구리”같은 흉측한 자세에 충격을 받는다. 그가 상상한 섹스는 ‘바닥에 뒹구는 하이힐, 아무렇게나 놓인 옷, 시트 위에 마주 잡은 두 손(101쪽)’이 전부였다. 타카다는 “레이코! 넌 소녀만화를 너무 많이 봤어. 실제는 이렇게 해”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에 뜨끔한 것은 비단 나뿐이었을까? 레이코는 일그러지고 과장된 우리들의 모습이다. 여자들은 성에 대해 무지할 것을 강요받으면서 성장하며, 조금이라도 아는 척 하면 ‘밝히는 여자’로 낙인찍힌다. 따라서 성에 대해 둔감하거나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성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거북이를 키우거나 오나니(=자위)의 뜻을 알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레이코의 작태가 우스우면서도 씁쓸하다. 사실 레이코는 섹스 이외의 부분에서는 무척 대담(=뻔뻔)하다. 스즈키가 즐겨 그리는 ‘안하무인+바보+미인 주인공’의 전형이다. 백치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지만 자존심 하나는 세다. 레이코의 특기는 착각과 오버이며, 취미는 민폐 끼치기다. 고학생 테츠야에게 얹혀 살면서도 부잣집 외동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덕분에 테츠야는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뛰면서 집안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이처럼 레이코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지만, 진보적이고 주체적인 여성도 아니다. 오히려 가부장적인 여성에 가깝다. 과거에는 아빠의 품속에서 곱게 자랐고, 현재는 남자친구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귀여운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테츠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버지나,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자 테츠야에게 이별을 고하는 레이코를 보면, 이 만화가 갖는 ‘한계’가 극명하게 보인다. 결국 레이코는 사랑스러운 연인이자 효성스런 딸일 뿐이다. 처음에는 『그녀의 사랑법』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 종종 폭소를 터뜨렸고, 레이코와 테츠야의 사랑법이 보여주는 나름의 철학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왠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바로 이 만화가 가진 가부장적인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사랑법』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