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보걸 키쿠
여자들은 대부분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습된 결과다. 이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가장 중증으로 포착되는 시추에이션은 바로 ‘연애’다. 여자들은 남자친구...
2002-02-14
노수인
여자들은 대부분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습된 결과다. 이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가장 중증으로 포착되는 시추에이션은 바로 ‘연애’다. 여자들은 남자친구에게 충분히 잘해주지 못하는 것에 항상 마음 걸려하고, 좀 더 착한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한다. 평소에는 똑똑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들조차 이상하게도 ‘사랑’이라는 함정에 걸리면 ‘착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가 된다. 그런데 키쿠는 다르다. 그녀는 제멋대로 사는 여자다. 정신도 육체도 자유롭다.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사랑 역시 예외가 아니다. 키쿠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엄마는 사랑에 빠질 때마다 결혼해서 각각 아버지가 다른 4남매를 두었고 지금은 5번째 남편과 살고 있다. 다른 형제들은 친아버지가 돈을 보내주지만 키쿠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에 다녀야 한다. 글쎄, 현실에서라면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문제아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쿠는 씩씩하게 잘 살고 있으며, 토키와와 열애중이다. 토키와는 키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지독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그는 키쿠와 바람 핀 상대가 찾아와도 놀라지 않는다). 외모 역시 객관적으로는 꽝이라는 걸 알지만(그의 직업은 미용사다) 자기 눈에는 예쁘기만 하다. 키쿠는 툭하면 “절교야!”를 외친다. 하지만 토키와는 키쿠에게 버림받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을 작정이다. 그 이유는 ‘자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다. 키쿠에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붙어 있는 걸 보면 ‘이 녀석 매저키스트 아냐’ 싶으면서도, 이런 남자친구가 있는 키쿠가 부럽다. 물론 어찌 보면 토키와는 또 다른 함정일 수 있다. 하이틴 로맨스나 ‘꽃 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멋진 남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여자들의 환상을 부추기는 남자 캐릭터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는 키쿠만을 위해 존재한다. 키쿠와 함께 있는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서 승진도 마다한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디 있을까? 잘생기고 능력 있고 성격도 좋으면서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가 파놓은 달콤한 함정 정도는 눈감아 주고 싶어진다. 나는 주위에서 강력한 추천을 받고 『맘보걸 키쿠』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키쿠에게 반했다. 키쿠는 착한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나를 비웃는다. 그리고 이렇게 충고한다. “나처럼 제멋대로 살아봐. 그렇다고 세상이 망가지는 건 아니라구! 아마 너의 인생이 훨씬 행복해질 걸?” 이제는 내가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린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모두가 키쿠처럼 될 순 없겠지만, 그 거침없는 말과 행동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