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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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바둑왕

『고스트 바둑왕(원제: 히카루의 바둑)』은 일본의 「소년 점프」에 연재되고 있는 본격 바둑만화다. 90년대 초 「소년 점프」에 연재되었던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등 초대형 인기작들이 막을 내린 이후, 『원피스』『헌터×헌터』등과 더불어 새로운 트로이카를...

2002-02-14 노수인
『고스트 바둑왕(원제: 히카루의 바둑)』은 일본의 「소년 점프」에 연재되고 있는 본격 바둑만화다. 90년대 초 「소년 점프」에 연재되었던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등 초대형 인기작들이 막을 내린 이후, 『원피스』『헌터×헌터』등과 더불어 새로운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고스트 바둑왕』은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여성 독자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고스트 바둑왕』은 일본만화 특유의 ‘대결구도’를 기본으로 삼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맞수와 대결하고 주인공이 점점 더 강해진다는 설정은 이미 여러 만화에서 사용되었다. 완전 초보가 우연히 한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타고난 재능으로 급속하게 성장한다는 점은 『슬램덩크』 등과 비슷하다. 천덕꾸러기 주인공의 라이벌은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는 구도가 『유리가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이 작품은 인기만화의 유형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성 팬들의 ‘각별한’ 애정을 설명할 수 없다. 오바타 다케시의 빼어난 미형 캐릭터가 소녀만화에 익숙한 여성들의 주목을 끌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더불어 라이벌 히카루를 향한 아키라의 ‘특별한’ 집착은 여성 팬들이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언제부터인가 일부 여성 독자들은 단순히 읽는 입장에 만족하지 않고, 일종의 생산자로서 작품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만화가들은 등장인물의 관계를 변형시켜 패러디를 창작하며 즐거워한다. 원작에서는 친구, 라이벌, 선․후배였던 관계가 패러디에서는 새로운 관계, 즉 동성연인 관계로 탈바꿈하곤 한다. 『고스트 바둑왕』 역시 많은 패러디를 거느리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매트 손은 일본의 소년만화가 ‘일련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소녀만화는 ‘감정, 관계’ 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차이 때문에 감정묘사가 치밀한 소녀만화를 즐겨 읽는 여성들에게 소년만화는 아무래도 어딘가 허전하다. 여성 팬들은 바로 그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운다. 라이벌 때문에 번민하는 캐릭터에게 그들은 속삭인다. ‘내가 보기에 그건 사랑이야.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마’라고. 멋진 남성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는 소년만화일수록 다양한 커플을 엮어볼 수 있다. 그리하여 여성들이 소년만화에 몰입할 수 있는 즐거운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일본 아마추어 만화계에서 시작된 ‘커플링(원작에서 선호하는 캐릭터들을 원작 바깥에서 짝지어 주는 것)’과 ‘패러디’ 문화는 우리 나라의 여성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고스트 바둑왕』 패러디 사이트가 속속 생기고, 아마추어 만화축제에 패러디 만화가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