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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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해도 괜찮아

순정만화의 주된 독자층은 여중․고생이고,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춰 만화의 주인공도 고등학생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학원물’이라고 불리는 만화들! 그런데, 이런 학원물이 모두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짧은 미니스커트의 세일라 칼라 교복, 남자...

2002-02-14 노수인
순정만화의 주된 독자층은 여중․고생이고,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춰 만화의 주인공도 고등학생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학원물’이라고 불리는 만화들! 그런데, 이런 학원물이 모두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짧은 미니스커트의 세일라 칼라 교복, 남자 농구부를 돕는 여학생 매니저 등 일본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얘기들이 학원물을 채우기도 했다. 또한, 학원물=로맨스물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극히 평범한 여학생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멋진 ‘꽃미남’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도 많다. “이거, 무늬만 학원물 아니에요?”라는 반문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지” 싶은 작품이 늘어났다. 무늬‘도’ 학원물 말이다. 이런 만화는 십대 독자에게는 ‘공감’이라는 강력한 흡인력으로, 20대 독자에게는 ‘추억’이라는 그리운 이름으로 다가온다. 특히 권교정이 그리는 학원물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풍경을 담아낸다. 다음은 작가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학원물일 경우는 현실하고 거의 비슷하게 묘사하려고 하고 있고 상당히 한국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리면서 이건 우리 나라 애들이 보면 ‘아, 정말 맞아’라고 얘기하겠지만, 일본 애들이 보면 잽도 안 먹힌다고 생각해요. 오직 한국인을 위한 만화라는 느낌으로 그려요.” 그의 만화는 정말 “어색해도” “괜찮다.” 오히려 다소 어설픈 듯한 그림체와 현실적인 인물들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권교정은 ‘작가의 말’에서 “이 파릇파릇한 고교생들을 그리는 일이 무지 행복해져 버렸어요”라고 밝혔는데, 그의 만화를 읽는 사람들도 누구나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 이긍하는 만화와 환타지를 좋아하는, 공부에 목숨 걸지 않는 우등생이다(상당히 현실적인 캐릭터이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설정이기도 하다). 그는 16세의 봄, 전교 3등으로 의초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강을 만나게 된다. 한강은 빼어난 외모 때문에 입학 전부터 유명해졌고 피아노 솜씨가 뛰어나다. 그리고 둘은 운명처럼 가까워진다. 이렇게 얘기하면 흔한 ‘로맨스 학원물’ 같지만,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다. 작가는 꽤 설득력 있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녹여낸다. 주인공들은 우리 주변의 진짜 고등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음악 실기시험을 보고, 박물관에 봉사활동도 가고, 체육시간에 물구나무를 선다. 무작위로 학생들을 호명해(예를 들어, 끝번호가 4자인 사람, 이름에 ‘희’자 들어간 사람 등) 칠판에 나와서 문제를 풀게 하는 ‘공포의 수학시간’ 광경은 정말 낯설지 않다. 긍하와 강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과정도 독자가 납득할 만큼 서서히 진행된다. 도대체 작가는 무엇이 “어색하다”는 걸까? 이렇게 “친근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