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신장판)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 말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오은하는 「만화토피아」에서 “치열하게 노력할 수 있는 것조차도 타고난 재능”이라고 썼다.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1%의 영감이 없는 ...
2002-02-14
노수인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 말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오은하는 「만화토피아」에서 “치열하게 노력할 수 있는 것조차도 타고난 재능”이라고 썼다.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1%의 영감이 없는 사람에게 그 벽은 높기만 하다. 모차르트를 질투했던 살리에르가 그랬고, 마야의 라이벌인 아유미가 그럴 것이다. 타고난 천재와 노력하는 수재의 대결은 늘 흥미진진하다. 『피아노의 숲』에도 ‘카이’라는 천재와 ‘슈우헤이’라는 수재가 나온다. 일류 피아니스트의 아들인 슈우헤이가 정규교육을 받으며 정도를 걷는 데 반해, 카이는 창녀의 아이라고 놀림을 당하며 문제아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카이의 비참한 환경은 그의 재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악보대로의 정교함을 추구하는 슈우헤이의 피아노가 콩쿠르용이라면,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카이의 피아노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 세상은 99%의 노력조차 버거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도 카이의 재능이 ‘진짜’라는 것을 안다. 카이는 한 번 들은 곡은 그대로 칠 수 있는 천재적인 음감을 지녔다. 그리고 숲은 이 천재 소년에게 피아노를 선물한다. 사고로 피아니스트의 삶을 접어야 했던 불우한 천재 아지노의 피아노가 숲에 버려지고, 카이가 어려서부터 그 피아노를 벗삼아 성장한 것은 단지 우연일까? 이 만화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말한다. 스승 아지노로 인해 콩쿠르에 나가고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쾌감’을 알아버린 카이… 숲이 벼락을 맞은 날 피아노는 불타버리지만, 그러한 자연의 섭리 역시 카이를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한 운명이다. 카이의 삶은 100% 피아노로 채워져 있다. 피아노는 카이가 세상을 배우는 통로이며 그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카이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피아노를 쳐본 적이 없다. 슈우헤이가 일류 레슨을 받고도 갖지 못했던 ‘자신만의 소리’를 그가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는 마음속에 살아 있는 깊고 풍성한 숲에 도취되어 피아노를 연주한다. 태초부터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원초적인 수단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카이의 피아노는 퇴색해 버린 본성을 일깨우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피아노의 숲』은 현재 7권까지 나왔다. 전국 콩쿠르에서 우승한 슈우헤이는 세계로 진출하고, 피아노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 카이는 일본에 남는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카이와 슈우헤이… 하지만 언젠가는 두 사람의 ‘세계’가 조우하게 될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쌓아올린 재능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