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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영역을 향한 딱 한 걸음만큼의 용기만 있다면 :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

인천 지역을 배경으로 청소년기의 등장인물이 느끼는 외로움과 열등감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잘 담아낸 작품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

2023-10-23 최기현


인천광역시 행정구역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흥미롭다. 어느 지역이든 중구는 이름 그대로 해당 지역의 가운데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인천광역시 중구는 인천의 가운데가 아닌 서쪽에 위치한다. 동구 역시 인천의 동쪽이 아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인천의 발전 과정에서 기인한다. 1800년대 후반 서구 열강에 의해 조선으로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 바로 인천이었다. 그 인천의 중심은 제물포항, 지금의 지하철 1호선 인천역 차이나타운 근대개항장 일대였다. 시간이 흐르며 여러 지역이 인천으로 편입되면서 인천은 점차 넓어졌다. 인천광역시 중구가 인천의 서쪽에 위치하게 된 이유다.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은 삐약삐약북스의 지역 이슈 만화 브랜드 중 하나로 인천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지역을 소개하는 여행책은 많지만 만화를 통해 조금 더 빠르고 쉽게 지역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책의 서문은 밝힌다. 메 작가의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에는 인천 중구 근대개항장을 배경으로 두 명의 청소년이 내면의 고민,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담겨있다.


희주는 자신의 학교생활이 별로 재미없다.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자영은 이사를 하면서 친구들과 헤어져 새로운 학교에 들어간다. 자영은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밝아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다른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희주는 우연히 옛 친구인 자영을 만나 차이나타운과 근대개항장 일대를 다니며 서로의 고민을 나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결심한다. 물론 새로운 시도는 결코 쉽지 않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딱 한 걸음만큼의 딛을만한 용기를 내는 것이다. 메 작가는 등장인물을 그릴 때 특이하게도 눈동자와 코를 생략하였다. 눈동자 없는 눈과 입으로만 표정과 감정을 표현했다. 눈의 초점을 맞추지 않고 무엇인가 바라본다는 것은 명확히 그 사물을 바라보는 의도가 없거나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메 작가의 다른 그림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화 방식이다. 추측건대 초점 없는 눈으로 사람을 그린 것은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다시 말해 미지의 영역을 바라보는 등장인물의 마음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인터뷰에서 인천이 가진 모든 매력을 한 권에 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주 다닐법한 일상의 공간, 그리고 또 하나는 희주와 자영이 잠시 일탈하는 장소로 인천!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다운 장소를 선택했다.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은 청소년이 겪을 수 있는 삶의 고민을 미지의 영역이라는 주제와 연결하여 표현했지만, 정작 만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주제를 연결하기에는 다소 어색하다. 차이나타운과 근대개항장의 모습을 그렸지만 실제 존재하는 공간과 미지의 영역이라는 추상적인 공간을 연결하려는 의도가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는지는 확신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인천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지금도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이 나왔을 때 이 만화가 무척 궁금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근대개항장이 익숙한 필자에게는 만화 속 재현된 공간은 실제로 있는 공간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감상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만화를 읽다가 한 전시에서 마주한 장면이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 인천아트플랫폼에서 한국이민사 12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기획한 <한지로 접은 비행기>展이 열렸다. 이민과 이주를 주제로 한 이 전시 중 다프네 르 세르장의 <우리 내면의 인도를 향한 여행>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 내면의 인도를 향한 여행>은 서쪽을 향하던 유럽의 정복자들이 어떻게 동인도에 닿게 되었는지 여정을 흑백 영상에 담았는데 아메리카 원주민의 곡조와 인도 남부의 언어 타밀어로 된 OST가 삽입되었다. 유럽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이 새로운 세계, 즉 미지의 영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이들의 이동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가는 단순한 여행이라기보다 내면의 탐구, 미지의 땅으로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자아가 가진 연속적인 여러 층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 것으로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을 읽으며 이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지역의 사생활 99: 인천>은 청소년기의 등장인물이 느끼는 외로움과 열등감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잘 담았다. 제 살길을 찾아가는 당연한 과정이 숨 막히는 것은 만화 속 등장인물만 겪는 것은 아니다.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또는 그 시기를 이미 지났지만 아직도 겪는 누군가에게 이 만화는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을지 모른다. ‘힘들지만 아마 잘될 거야, 미지의 영역을 향한 딱 한 걸음만큼의 용기만 있다면.’


필진이미지

최기현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만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 공연,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만화 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글로는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5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