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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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혹은 ‘웹 서핑(Web Surfing)’이라는 조어가 있다.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정보는 바다를 이루고 파도가 되는 물방울만큼이나 많다. 오늘날에는 어지간한 정보를 이부자리에 누워서 코 앞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띄우기까지 물리적으로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균형을 잃기 무섭게 서프보드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버리곤 한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를 때 특히 더 그렇다. 이 와중에 안내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많다. 사람이 정보만큼 많을 수는 없겠지만, 길잡이를 발견하고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친애하는 20세기>는 책날개나 머리말을 건너뛰고 아무 데나 몇 장 읽어도 작가의 고유한 개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참고 문헌 항목에는 참고 문헌 목록에 해당 도서의 일러스트가 추가되어 있다. 아니, 지면에서의 비중을 따지자면 도서 일러스트에 참고 문헌 정보가 추가되어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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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그림, 비교적 작은 글자, 넉넉한 여백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스마트폰이나 흑백 단행본에 익숙한 독자라면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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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옮기고 있노라면 박물관을 거니는 듯하다. 명도와 채도가 높아 경쾌한 색이 조명처럼 패널을 채우고 있고, 인류의 업적과 주역은 패널을 포함한 전체 지면에서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색은 흑과 백이다. 개척자, 예술가, 20세기의 등장인물들은 검고 얇은 선과 새하얀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쇄와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한 덕에 제대로 출력할 수 있게 된 색상. 선의 질감에서 판화 일러스트나 연필 스케치가 연상되는 흑백 캐리커처. 서로 대비되는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정보와 해설, 그리고 가벼운 농담도 비슷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관람객, 아니 독자에게 ‘정보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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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수록된 만화는 각각 다른 두 매체에서 연재된 바 있다. 둘 다 지금은 없는 매체라 연재분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연재처의 배열레이아웃 안에서 만화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각각 다른 곳에 게재된 만화의 대사나 편집 방식 등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지 등등) 그 대신 다른 경로를 통해 아카이브를 접할 수는 있다. 둘 다 같은 색상, 같은 그림인데도 책으로 엮인 버전과 모양새가 아주 다르다.
온라인 중앙일보에 게재된 버전에는 <김재훈 연재만화>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패널이 빽빽하게 나열돼 있고, 패널이 해설과 말풍선과 그림으로 꽉 차 있다. 책과 비교하면 내용, 그림, 농담까지 없는 부분이 꽤 많은데도 주어진 지면보다 내용이 많아 보여서 밥과 반찬을 꽉 채워 담은 도시락처럼 뭐가 하나라도 튀어나오거나 흘러나올 것만 같다.
현대카드 유튜브 채널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라이브러리 카툰>을 볼 수 있다. 내용은 만화와 같지만, 정보가 소개되는 순서가 다르다. 내레이션은 대부분 대사로 바뀌었고, 대사는 쉽게 읽히고 좀 더 잘 들리는 문어체로 바뀌었다. 말풍선 모양도 다양해졌다. 여기에 경쾌한 배경 음악과 전문 성우의 연기까지 더해져 있어서 구색이 훨씬 화려하다. 단, 매끄러운 전개를 의식한 탓인지 <김재훈 연재만화>에 있던 농담마저 빠지거나, 나오더라도 배경처럼 잠깐 나왔다가 반짝 사라져 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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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변형하고 가공하더라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보와 스타일이다. 정보는 멋진 목걸이처럼 잘 꿰어져 있다. 스타일은 얼핏 봐도 인상에 남는다. 김재훈의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그를 안내자로 선택해 볼 수도 있겠다. 가볍게 즐겁게 소소하게 얻을 만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 온라인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8032514
* 현대카드 https://youtu.be/Z7diEMXzIHM
*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4sB5ujmFsJ0q5DEUgZe67CQAqC606BbO&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