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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삼풍>

<삼풍>이 보여주는 재현의 윤리성

2024-06-29 손유진



매체에 등장하는 폭력의 재현은 간혹 감상자로 하여금 당혹감 나아가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단지 장면에 드러나는 잔혹성뿐만 아니라 창작자의 관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만약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에서 폭력을 재현할 때 자극적인 요소만 부각시킨다면 우리는 쉽게 화가 나고 불쾌해질 것이다. 이렇듯 재현의 윤리성은 작품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작품이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재현이 비윤리적으로 일어난다면 이는 실존하는 인물에게도 가해가 될 수 있다. 한때, 문학계에서는 한 개인의 삶을 그대로 소재로 쓴 소설이 논란에 올랐다. 타인의 사적인 경험에 주관적인 색을 입혀 공공에 출판한 것이 문제였다. 이렇듯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예술로써 다시 써내는 데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현 윤리는 작품과 연결되는 현실성을 항시 견지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윤리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창작자가 재현하려는 사건이 특히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경우 이는 더더욱 중요해지는데, 창작자가 사건을 재해석하는 데 있어 그 해석이 현실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즉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이 사건과 이에 관련된 생존자, 혹은 희생자들에게 타격을 입힌다면 법적 제재를 고려해야 할 만큼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작가는 항상 자신의 창작물이 행사하는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감상자는 언제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시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관점이 수용자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수용자들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놀란의 인기작인 <다크 나이트>의 경우 ‘조커’의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그 인기로 인해 모방범죄가 발생한 적이 있다. 잔혹성으로 악명 높은 <시계 태엽 오렌지> 또한 비슷한 사례를 남겼다. 이렇듯 창작자가 의도한 바가 분명 따로 존재하여도 수용자에게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현실적인 결과는 부정적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는 실제 상황의 현실감과 사실성을 어느 정도까지 구현할 지에 대한 문제이다. 불필요한 폭력성은 사안에 대한 자극적인 반응만을 초래할 뿐, 창작자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없다. 즉 작가가 확고한 기준과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작품의 방향성과 윤리성은 모호해진다. 물론 이를 평가할만한 구체적이며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과 창작에 대한 가치판단은 언제나 온전히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선례와 같은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그 기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선례란 바로 삼풍 백화점 붕괴를 다룬 웹툰, <삼풍>이다.


<삼풍>에 등장하는 주연은 총 세 명으로, 기자, 구조자, 그리고 생존자이다. 세 주인공은 각자의 시점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를 바라보며 이 사건이 구조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어떠한 비극이었는지 묘사해 나간다. 구조자에게는 매뉴얼과 성과에만 급급한 상사가 보였고, 기자는 붕괴에 기여한 기득권과 구조를 목도했으며, 생존자는 지옥과 같았던 사고 현장 밖에 볼 수 없었다. 이렇듯 본작은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사건의 묘사에 깊이를 더하고 객관성을 강화하게 된다. 세 명이 바라본 하나의 사건이 어떠한 비극을 지시하고 있는지 그 시선을 추적하며 문제의 심각성은 더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철저하고 정확한 취재를 통하여 확보된 자료들은 작가의 섬세한 접근을 통하여 극적 효과를 얻게 된다. <삼풍>은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무리한 시공과 이를 묵인할 수 있었던 정치적 구조의 허점, 상황이 전개된 양상 등 많은 정보량을 전달하면서도 이를 이야기에 녹여내어 무리 없이 전달되도록 만들고 있다. 또한 이야기, 극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전달하는 사실들은 단순히 나열에서 그치지 않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 사건에 대한 비판점을 정확히 지시하기 위해 객관성을 견지하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자라는 인물을 통하여 작가의 사견이 사건을 왜곡하지 않도록 한 점이 돋보이는데, 정의감과 동시에 시선의 공정성을 보전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작품의 시선에 균형을 잡아내었다. 


<삼풍>은 비극적인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면서 동시에 우리가 서사라는 수단을 통하여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하여야 할지 그 메시지를 주의 깊은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한 창작의 전략들은 매우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이렇듯 확고한 견해를 이야기의 고유한 힘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이 재현 윤리의 기준을 정립하는 데 큰 참고점이 되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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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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