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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믿는 것은 믿을만한 것인가

바람이 불 때에(글, 그림 레이먼드 브리그스 / 시공사 출판) 리뷰

2024-06-04 이종석

당신이 믿는 것은 믿을만한 것인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핵폭탄을 처음으로 만들어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그렇게 투입된 핵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터지면서 2차 세계 대전을 종결시킨 뒤, 인류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상 최악의 무기를 두려워했다. 이후 강대국들은 서로 자신들의 무기를 내보이며 서로를 위협해 전쟁은 터뜨리지 않고 조용히 협박하는 식으로 냉전이 시작됐고, 냉전 속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핵무기를 두려워했다. 그런 배경을 두고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핵이 남긴 방사능으로 인해 돌연변이 괴물이 튀어 나온다거나, 핵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생존주의에 물들어 서로를 못 믿게 된다거나. 이런 와중에 정부에선 사람들의 걱정을 줄이려고 핵무기 대처법을 알려줬다. 그러나 이때 알려준 대처법은 상당수가 쓸모없는 보여주기 식 행정일 뿐이었다. 이 중 핵이 폭발 했을 때 숙이고 엎드려라(Duck and cover)’는 하도 어이없던 나머지 오늘날 까지도 패러디가 나오고 있다.

  레이먼드 브릭스 작가의 작품 바람이 불 때에또한 이러한 쓸모없는 대처법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눈사람 아저씨, 산타 할아버지 같은 동화책 느낌의 그래픽 노블을 그려왔다. 바람이 불 때에 도 마찬가지로 동화책 화풍으로 그려져 얼핏 보면 따뜻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몇몇 도서관이나 서점에선 어린이 책 코너에 꽂혀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따뜻한 느낌과 반대되는 스토리 덕에 역으로 더 소름이 돋는 작품이다.

  바람이 불 때에는 제임스와 힐다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순수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며, 당대 사람들이 그렇듯이 다른 나라나 민족에 대한 편견도 갖고 있던 평범한 노 부부는 냉전 속에서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핵폭발의 공포에 시달린다. 핵폭탄이 터지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정부에서 나눠준 지침서를 바탕으로 대피소를 제작하기로 한다. 제작 방식은 간단하다. 나무판자를 벽에 기울여 세워놔서 그 안에 숨기만 하면 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물과 음식도 담아둔다. 나무판자는 없어 안 쓰는 문을 한 짝 떼어다 대피소를 만들었다. 빛을 막기 위해 창도 흰 페인트로 칠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진짜로 적국에서 핵미사일을 쏘는 사태가 벌어지고, 노부부는 재빨리 대피소 안으로 숨는다. 강렬한 섬광이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대피소 안에 숨은 덕에 노 부부는 핵으로부터 살아남긴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남아있었다.

  노부부는 몰랐지만, 사실 정부에서 나눠준 지침서 내용은 엉터리였다. 핵폭발로부터 당장 살아남는 방법은 써져있었을 뿐, 그 이후 방사능을 비롯한 2차 피해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은 없었다. 거기다 지침서에 따라 말이 다르기도 하고, 지침서와 안내 방송의 말이 다르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폭발에서 살아남은 노부부는 핵폭발로 모든 게 망가지고, 방사능으로 오염된 상황에서 살아가려다 방사능에 점차 피폭됐다. 하지만 지침서에 이러한 내용은 없었기에 노부부는 그저 알레르기 반응 정도로 생각했다. 결국 피폭이 심해져서 둘은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고, 지침서 마지막 내용에 있던 대로 포대를 뒤집어 쓴 채, 대피소 안에 들어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앞서 말했듯이, 냉전 당시 핵에 대한 공포를 다룬 작품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 대부분은 흔치 않은 인물을 다루거나, 다소 과학적 상상이 곁들여진 작품으로 나왔다. 가령 냉전 당시 핵폭탄을 다룬 정치극인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방사능으로 탄생한 거대 돌연변이 괴물을 다룬 고지라, 뎀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바람이 불 때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핵폭발 속에서 겪는 일을 다루고 있기에 오는 충격이 더 세다. 거기다 당시 제대로 되지 않았던 지침서 내용을 다루어, 지침서를 따르다 오히려 큰 피해를 보며 죽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일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며 크게 경고하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핵무기에 대한 공포는 잊혀 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바람이 불 때에 책이 경고한 내용이 우리들에게도 무효해 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 본다. 바람이 불 때에가 경고한 것은 핵폭발과 방사능의 무서움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잘못된 정보의 위험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아직까지도 있다. 세상에 위험한 것은 핵폭발과 방사능 뿐 만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대중교통, 우리가 살고 지내는 건물, 먹는 음식물, 입는 옷, 바르는 약품 등등... 이러한 것들 속에도 작고 큰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곳곳에서 안전 교육 등이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교육들이 잘못 된 것이라면? 자칫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잘못된 정보만을 믿고 행하다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자극만을 중요시 하는 시대에, 인터넷에선 어떠한 것이 위험하니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말하고, 반대로 저 사람이 말한 위험성은 잘못 된 것이고 오히려 따라하다간 더 큰일이 날 수 있다는 경고 등이 유튜브나 SNS에 자주 올라오고 있다. 몇몇은 진실이다. 하지만 몇몇은 거짓이다. 몇몇 사람들은 그러한 경고를 제대로 들어 위험한 상황을 피해가기도 했지만, 몇몇 사람은 잘못된 경고를 듣고 맹신해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우리가 듣고 보고 말하게 되는 정보는 과연 믿을 수 있는 정보인가 아닌가. 이러한 정보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것인가, 득을 보게 해 줄 것인가. 우리는 이를 모른다. 모르기에, 그나마 기댈 수단이 이러한 쪽 밖에 없기에 일단은 따를 뿐이다. 우리가 제2의 제임스 힐다 부부가 될 것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필진이미지

이종석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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