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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이세계>: 또 시스템? 또 이세계? 좀 다른 웹툰인 듯합니다

내가 만든 이세계 (글, 그림 가천가/네이버웹툰)

2024-07-29 김득원

<내가 만든 이세계>: 또 시스템? 또 이세계? 좀 다른 웹툰인 듯합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아픈 엄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는 주인공 계희도의 취미는 웹툰 보기이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캐릭터 같은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희도에게 캐릭터 같은 삶이란 행복이 보장된 그런 삶이자 겨우 시합 좀 못했다고 저렇게 모두가 달려들어 위로해주는 유치한, 그리고 부러운 삶이었다. 알바는 잘리고 엄마도 잃은 희도가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작품(웹툰) 속 캐릭터가 된 희도, 다만 캐릭터로서의 삶도 녹록진 않았다. SF 드라마, 스릴러, 아포칼립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각 작품의 캐릭터로서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희도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아래와 같았다.

<화원의 영애님>의 주인공 티나를 마법대전 1위로 만드세요.

내가 사는 이 세계도, 누군가에게는 이세계(異世系)

  시스템 창이 말한 캐릭터 같은 삶은 무작위로 어느 작품 속 캐릭터 중 한 명이 되는 삶이었다. 미션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해결해야 주는 E.P(독자들이 주는 감정 점수)를 할당량만큼 채워야만 본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희도는 [화원의 영애님]에 들어가 마법대전에 참가할 선수들을 모조리 학살하여 미션 성공했다. 이에 시스템창은 E.P에 관해 설명하면서 캐릭터의 삶을 정의한다.

  “그게 캐릭터의 본질이에요. 해피엔딩이 보장된 삶 따위가 아니라 재미를 주기 위해 보여지는 삶. 멋대로 캐릭터를 부러워하며 이 삶을 선택한 건 그쪽이잖아요? 과연 진짜 해피엔딩일지 그 과정이 정말로 견딜 만할지 직접 겪어보세요. 당신이 즐겨 보던 그 캐릭터의 삶.

  희도는 이제 작품의 캐릭터 중 하나로 분해서 작품의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캐릭터를 통해 사건을 만들고 상황을 이끌어가는 건 작가의 몫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든 이세계> 속 작가란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계를 본인의 세계에 소개하는 매개체 정도로 설정되어 있다. 또 캐릭터들은 마치 자유의지를 가진, 진짜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에 살인을 통해 [화원의 영애님] 미션을 돌파한 희도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불만을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세계, 그 세계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욕망을 위해서 다른 세계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서사,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서사, 전혀 다른 세계에서 다양한 여정을 겪는 서사는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세계>는 이세계와의 공명을 꿈꾸며 각각의 세계를 규합하는 데에 무게를 두며 진행된다.

  따라서 <내가 만든 이세계>는 세계 간 연결성과 더불어 주체성을 강조하는 걸로 보인다. 이들 세계의 장르는 제각각인데, 캐릭터들은 각자의 세계를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다는 공통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다. 장르적 방향성과 상이한 다른 희망을 가지고 작품 속 캐릭터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방향성과 캐릭터의 목적이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래서는 갈등과 사건, 나아가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회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궁지에 몰리게 되는 캐릭터들의 욕망은 뾰족하게 드러나게 된다. [알콜게임] 속 태훈은 스릴러에서 의외의 드라마를 통해 반전을 만들었고, [울프걸] 속 보경은 조력자의 역할을 저버리고 배신을 시도했다. 캐릭터들의 절박함과는 별개로 장르적 클리셰를 벗어나게 되니 작품은 당연히 재미있어진다.

이세계에 저항하는 이 이세계물

  장르에 따라 세계를 살아가는 캐릭터들은 목표 설정의 자유가 제한된 상태다. 캐릭터의 사고에 제한이 있어야만 장르를 지킬 수 있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이세계>의 희도는 본인의 목적을 잃지 않으며 어떻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지에 주목한다. 장르를 온전히 따라가면서 극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도전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거다.

  <내가 만든 이세계>의 희도의 경우, 작품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보다 원활한 진행이 가능했지만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관점의 이동이 필요했다. 초반 에피소드 중 하나인 [플래닛]에서 생존을 위한 화해와 협의를 넘어, 후반부에 공개되는 장르를 뒤집는 반전이 배치되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다양한 장르를 엮어내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가천가 작가는 다양한 장르를 묶었음에도 주인공의 목적성을 끝까지 유지함으로써 소재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 감각을 보여줬다. <럭키언럭키>이라는 초능력배틀물에 이어 <내가 만든 이세계>를 통해 보여주는 가천가 작가의 행보는 장르적 시류에 저항하고자 하면서도 배척하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으로 짐작된다. (원작 웹소설을 둔 웹툰 <북부 공작님을 유혹하겠습니다>의 글 작가로도 참여 중이나, 완성도의 유무를 떠나 해당 지면에서는 제외한다.)

  <내가 만든 이세계>는 현실과 이세계를 함께 지켜 내는, 어느 하나의 세계를 실패로 규정 짓지 않고자 했던 희도의 도전기를 담았다. 그러나 이세계를 완전한 판타지로, 혹은 새로운 현실로 만드는 이세계물을 답습하지 않고자 했다는 점에서 <내가 만든 이세계>는 이세계물에 저항하는 새로운 이세계물을 만들고자 한 장르적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시스템? 또 이세계? 좀 다른 웹툰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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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원

만화 평론가
E-mail: dokwon0o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