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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지켜보면 좋아질 것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고먕/네이버 웹툰) 리뷰

2025-06-20 최윤주

천천히 지켜보면 좋아질 것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고망 

웹툰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을 보던 중, ‘라이더라는 캐릭터의 외형이 마음에 들어 친구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림을 곧잘 보는 친구이고, 평소 웹툰에서 인상 깊은 컷을 함께 공유해 온 터라 당연히 동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생긴 게 좀 무서우니 더 지켜봐야 좋은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것이었다. 이게 고민할 문제라고?

라이더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모험하는 어린이 모리의 여정을 돕는 인물로, 모리와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피부는 시뻘겋고 뿔이 달렸으며 눈은 이마에 자리한 3개를 포함해 5개나 달고 있다. ‘물이라 말했지만 사실 인간이 아닌 인외 존재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가장 유약하고 수가 적은 종족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이 세계에서 독특한 존재는 라이더가 아닌 모리다. 현실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가 완전히 뒤집힌 생태계를 그린 셈인데, 사실 인간 외 종족을 그리는 판타지 장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설정이다. 일찍이 만화와 게임, 장르 소설을 접해온 나로선, 그러니 피부색도 눈의 개수도 그다지 놀랄 만한 요소가 아니었단 뜻이다. 오히려 놀라웠던 것은 친구가 그것을 무섭고 낯설다고 느꼈다는 반응이었다.

이세계(異世界) 문법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극을 실감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게임, 만화, 소설 같은 것들 속에서 한 시절 이상을 보낸 사람. 현실 너머의 세계를 체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거리감 같은 것이다. 무엇을 허무맹랑하다고 여기는지, 무엇을 아름답고 뭉클하다 느끼는지, 다른 어떤 것을 견디고 또 견딜 수 없는지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 그 사람이 보고 자란 콘텐츠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섬세하고 또렷하게 판타지 세계를 구현해낸 작품들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런 작품을 통해 인외종에 익숙해지다보면, 우리 사회가 서로를 좀 덜 낯선 존재로 여기게 될 수도 있을까 하고. 만화가 그려주는 세계가 너무도 그럴싸하고 아름다워서 실없는 낙관을 품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인외종을 모르고 자란 내 친구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넓혀 왔음을 안다. 더욱이 픽션의 힘이란 언제나 기대보다는 미약한 것이어서 판타지를 도덕 교과서처럼 활용하고픈 마음이 욕심이란 것도 안다. 그러나 어떤 잘 만든 판타지는 결국 독자를 과감하게 만든다.

결말에 가까워진 이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풍경을 보면, 독자로서 품은 욕심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제목만 들어도 당장 엄마를 찾아 떠났던 여러 옛 이야기들이 떠오르지만, 이 작품은 그런 전통적인 이야기들과 차이를 보인다. 작품의 종착지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 작품이 만나고자 했던 엄마가 흔히 진짜엄마로 지칭되는 낳아준 이가 아니라, 엄마를 대신해 모리를 돌보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의 엄마는 본능이나 혈연이 아니라, 수행하는 역할로 설명된다. 수행하는 것이고 되어가는 존재다.

모리가 상상해오던 진짜엄마의 품이 그의 후원자인 미리아의 품으로 대신될 수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나, 실질적이고 기껍게 모리의 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한 미리아와 라이더가 엄마를 자처하는 모습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을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인간 아이 89%가 엄마 아빠 중 엄마를 더 좋아한다는 말에 엄마를 자처한다. 종족이 달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여성 형태에 가까워 보이는 미리아와 남성에 가까워 보이는 라이더 모두 엄마이 되기로 결심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복수형엄마다. 경직된 상상력에 구애 받는 인간들에게는 너무도 급진적인 어떤 전환이, 뒤집힌 세계를 그려내는 판타지적 상상력 안에서는 거뜬히 가능할 때가 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인간 아이를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배치한 점 역시 눈에 띈다. 어린이를 재현한 적지 않은 작품이 취하는 방식과 달리, 이 작품 속의 어린이 모리는 그다지 쉬운 존재가 아니다. 어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르거나 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동시에, 투명하게 바라는 바가 드러나는 단순한 존재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작화와 행동 모두 (물론 무척 귀엽지만) 단순히 귀엽기만 하지 않아 좋았다.

인외 종족들 사이에 놓인 유일한 인간 아이인 만큼, 작중 인물 누구도 모리와 언어를 통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는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모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야 하며 여정을 끈기 있게 따라가야 한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당사자가 이토록 불가해해도 되는 것인가 싶지만, 어린 주인공의 자리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던 것은 바로 이 불가해한 면 때문일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좀 더 끈기 있게 견디게 하는 것도 판타지가 지닌 중요한 미덕이다.

환상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작화 덕에 작품은 한층 더 설득력을 얻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다양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캐릭터나 어떤 형태와 배경을 그려도 갖춰지는 안정감이 역시 작품이 갖는 커다란 강점이지만, 특별히 더 좋았던 것은 원경과 근경을 자유롭게 오간다는 점이었다. 작품은 인물들의 표정과 손끝 하나하나를 섬세히 포착하기도 하고, 광활히 펼쳐진 배경을 생략 없이 담아내기도 한다. 컷 안 인물을 극도로 작게 표현하며 거대함을 전달할 때, 손바닥만 한 화면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감이 생긴다. 이 만화가 담아내는 세계는 아주 내밀한 동시에 몹시 드넓고, 이는 작품의 상상력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더없이 적절한 축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장담해도 되지 않을까. 갑작스럽게 마주한 이 풍경이 낯설고 무서울 수도 있지만, 천천히 바라보면 분명 좋아질 거라고.

필진이미지

최윤주

만화평론가
2021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신인부문 대상, 2020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