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주는 순수한 사랑과의 이별, <은돌아, 산책 갈까?>
『은돌아, 산책 갈까?』, 라미
“강아지의 사랑은 우주의 사랑. 너를 만난 것은 우주를 만난 것. 너를 만난 덕분에 나는 내 삶의 끝까지 살아 낼 거야.”
- <은돌아, 산책 갈까?> 中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코카스파니엘 한 마리를 데려오셨다. 순우리말로 공주라는 뜻의 “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작고 소중한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우리 가족의 품에서 자랐다. 대학교를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어 좀처럼 보지 못하지만, 늘 본가로 돌아가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준다. 하지만 그런 난이도 세월은 못 속인다는 듯, 몸에 혹이 생겨 수술하게 된다. 이제는 귀도 멀어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에 난이라는 이름을 불러 보아도, 자기 집에서 눈을 붙인 채 잠들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음에 내려가면 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함께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이별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준다.
2025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약 591만 가구에 달한다. 그중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 수는 546만 마리에 이른다. 오늘날의 반려견은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았다. 만화에서도 반려견이라는 소재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홍끼 작가의 <노곤하개>에서와 같이 반려견과의 일상은 많은 반려 가구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 많은 반려 가구 뒤에는 무수히 많은 이름과 이야기, 그리고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이별의 순간이 숨어 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필연적이다. 사람보다 너무도 짧은 세월을 살아가는 반려동물들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은돌아, 산책 갈까?>는 남겨진 가족들의 심경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작품 <은돌아, 산책 갈까?>는 반려견 은돌이와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그래픽 노블이다. 작가는 은돌이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전반부인 ‘사라지는 세계’에서는 이별 이후의 상실을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은돌이가 떠난 뒤의 허무함과 그리움이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며, 독자는 현실의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인 ‘너와 함께한 시간’에서는 반려견과 함께한 일상의 기억을 세밀히 담아낸다. 은돌이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품종견의 유전병, 병원기록, 그리고 은돌이와의 마지막 순간 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작품 속에서 은돌이는 결국 주인의 기억과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남는다. 이는 실제 반려인을 위로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은돌아, 산책 갈까?>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별의 순간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 깃든 사랑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 데 있다. 반려견과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그 안에서 느낀 순수한 사랑을 소중하게 표현한다. 반려견은 조건 없이 우리를 믿고 사랑한다. 내가 잘못한 날에도, 지쳐 돌아온 날에도, 그들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그렇기에 이별은 더욱 고통스럽다. 동시에 그 고통은 우리가 얼마나 깊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증명한다. 반려견의 삶은 짧고 단순하다. 하루 세 번의 밥, 짧은 산책,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주인의 곁에서 잠드는 평범한 순간들이 그들의 전부다. 그러나 그 소박한 일상에서 반려견은 온 마음을 다해 주인을 바라보고, 작은 몸으로 끝없는 애정을 표현한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눈빛과 몸짓 하나하나가 사실은 그들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방식이다. 이별은 그 모든 순간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일깨우고, 짧지만 충실했던 한 생애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증명한다.
반려견과의 이별은 완전한 끝이 아니다. 기억 속에서, 마음속에서, 여전히 산책을 이어 나간다. 정말로 잊어버린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작품의 제목 <은돌아, 산책 갈까?>는 단순한 일상의 제안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음에 대한 감사이며, 곁에 있는 존재를 향한 사랑의 선언이다. 반려견이 주는 우주의 사랑은 남은 가족에게 삶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삶에 좀 더 충실하고, 전보다는 덜 두려워하며, 언젠가 마지막 문을 열게 될 때. 그때를 기다리며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반려견은 기억과 삶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숨 쉰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