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으로써 불혹(不惑)
『마흔 즈음에』, 서쿤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서쿤스 작가의 <마흔 즈음에>는 제목에 ‘마흔’이라는 중년의 나이가 들어간다. 10대, 20대 독자가 주 소비층인 웹툰 플랫폼에 어쩐지 금기 같은 단어인 데다 ‘40세 이상 관람 주의!’라는 다소 높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인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평균수명도 초혼 나이도 늘어난 현재,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개사 된다면 <마흔 즈음에>가 아닐까.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구나’라는 노랫말 때문인지 <마흔 즈음에>는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우울함이 느껴졌다. 청춘이라 하기엔 멋쩍은 나이 마흔, 중년의 성장통이라는 ‘마흔 앓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리얼 로맨스 & #결혼 장려 만화
2024년 11월 기준 30대 미혼 비율 51.3%, 40대 미혼 비율 20%라고 한다. <마흔 즈음에>의 주인공 현성민은 마흔이 된 미혼남이다. 성민은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선 만감이 교차하고 이대로 혼자 살다가 독거노인이 될까 두렵다. 친구 중에서 혼자만 혼자인 그는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다. 마흔에 육아일기를 써도 늦은 마당에 결혼하고 싶은 남자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성민은 혼자 살면서 배달 음식과 술을 가까이하고 운동은 멀리하는 바람에 잘생긴 외모가 푸근한 아저씨처럼 변했다. 그는 외모를 개선하고자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외모 업그레이드 후 소개팅, 단체 미팅, 게스트 하우스 등 만남을 시도하지만 제 나이로 보이는 외모 탓인지 인기가 없다. 판타지를 쏙 뺀 ‘리얼’ 로맨스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독자는 성민의 시점에서 그의 솔직한 생각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마흔 살 성민을 아예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흔 즈음에>는 남성의 외모가 연애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꾸준히 얘기한다. 성민은 연상의 여인들에게만 어필됐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만, 결국 ‘나한테 어울리는 여자는 예쁜 여자가 아닐지도 몰라’라며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재밌는 건 독자 반응이다. 독자는 성민의 성찰 과정을 따라가며 그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하면서 비판하고, 그와 비슷한 처지임을 자조한다. 댓글 창엔 젠더 갈등이나 혐오적 발언 탓에 과열될 때도 있지만 딱 하나 마음이 맞는 의견은 <마흔 즈음에>가 나쁜 본보기로써 ‘결혼 장려 만화’라는 주장이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보다 뒤늦게나마 결혼을 꿈꾸는 남자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야기가 어째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해야 하는지 역설한다. 다른 예로 성민의 지인으로 등장하는 피부과 의사, 대기업 과장도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여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지만, 스타일 좋고 동안인 40대 돌싱 ‘만찬이 형’은 젊고 예쁜 여자와 데이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외모지상주의와 에이지즘(연령차별 주의)이 맞물리며 젊음을 숭배하고, 나이와 외모는 사람의 첫인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러한 즉물적 잣대는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 35세부터 노산’ 같은 표현으로 여성을 압박했었지만, <마흔 즈음에>는 남성 캐릭터가 주름, 뱃살, 건강 이상 등 신체적 노화를 체감하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묘사하며 이제 세상이 남성의 나이 듦에도 관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만혼(晩婚)의 조건, 불혹(不惑)
앞서 언급했든 성민은 이성 앞에서 위축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이제 나와 잘 맞는 상대를 만나야겠다고 다짐하고 또래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이하린’을 만난다. 성민은 하린의 배려심과 성숙한 매력을 의식하지만, 데이트 내내 무례를 거듭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이어지지 못했고, 성민은 ‘무의식중에 내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배려심이 줄어든 걸까.’라며 1차 허들(상대방의 나이와 외모)을 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자신에게 희망이 없음을 느낀다.
흔히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공자의 저서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 ‘四十而不惑(사십이 불혹)’에서 유래한 말로, 세속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민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자신만의 확고한 이성관, 결혼관이 부재해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성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 취업, 결혼 등 생애주기별 발달과업이 정해지다시피한 세상에서 휩쓸리듯 살아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얼마든지 유연하게 삶으로 선회하기에 늦지 않았다.
문득 2005년에 방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떠올랐다. 김삼순은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 엄마의 잔소리와 노처녀 타이틀이 듣기 싫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애에 성공하지만, 드라마의 결말은 결혼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삼순이는 연애의 목적은 결혼이 아니며 연애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결론짓고, 자신이 돈이 없건 뚱뚱하건 이름이 촌스럽건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다짐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삼순의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이 있다. 성민의 콤플렉스는 나이지만 그건 바꿀 수 없다. 성민에게 삼순이를 대입한다면, 성민이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고 여전히 혼자 살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모든 사십춘기에게 위로를 건네는 웹툰
독자가 만화를 보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기 삶의 영감을 받기 위함도 있다. 고자극×하이퍼리얼리즘을 표방한 <마흔 즈음에>는 동시대적 고증이 매우 잘된 작품으로 나이와 결혼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적지 않은 공감대를 느낄 것이다. 연령대별 미혼 비율이 낮지 않은 요즘, 평범한 마흔 살 남자의 고군분투는 단순히 웃프다고 넘기기엔 그 여운이 상당히 짙다. 다행인 건 아직 <마흔 즈음에>의 여자 주인공은 특정되지 않았다. 성민이 좌절하고 실패한 만큼 메타인지를 갖추고 자신을 알게 되며 얼추 사랑에 빠질 준비를 마친 것 같다. 독자는 성민의 로맨스를 기다린다. 뚱뚱한 노처녀 삼순이가 멋진 연애를 한 것처럼, 평범한 마흔 살 성민의 리얼 로맨스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