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 《페르세폴리스》를 잇는, 전쟁을 다룬 논픽션 그래픽 노블: 《오키나와(OKINAWA》
『오키나와』, 히가 스스무
새삼 부끄러워졌다. 작년 중순쯤 쓴 칼럼이 떠올랐던 탓이다. 전쟁을 주제로 한 기획이었는데, 내가 배정받은 건 (만화에서 드러나는) ‘픽션으로서의 전쟁’이었다. SF 장르에 초점을 맞춰, 나(인간)와 너(비-인간)를 구분하는 전쟁의 생리가 비인간적 존재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SF의 문법과 조응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는데, 써놓고도 썩 마음에 들었었다.
그 글에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군이나 적군이라는 단어만으로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을.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지만, 전쟁의 바람으로 황폐해진 대지를 밟고 여전히 살아가는 자들이자, 전쟁의 가장 큰 당사자이기도 한 사람들을. 그래픽 노블 《오키나와(OKINAWA)》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은 1995년 쇼가쿠칸사에서 출판된 《모래의 검》과, 2010년 세린코게이샤에서 출판된 《마부이》를 한데 엮은 것이다. 두 작품은 다시 각각 6편과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란 작가 히가 스스무는 《모래의 검》와 《마부이》에서 모두 일관되게 오키나와 전투에 휘말렸던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발표 시점 사이의 십오 년이라는 시차만큼이나 오키나와라는 같은 공간을 다루는 두 작품의 초점은 사뭇 다르다. 《모래의 검》의 접근 방식은 전통적이다. 주민들과 오키나와에 상륙한 군인들은 갈등을 빚기도 서로 교류하기도 한다. 거대한 전쟁 한복판에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인간성을 발견하는 식이다. 반면, 《마부이》에서는 오키나와의 특수성이 더 잘 드러난다. 수록된 일곱 편의 에피소드가 오키나와 고유의 풍습인 ‘우간(책에 따르면, 오키나와에서 신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올리는 제사 또는 의식)’을 소재로 삼아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부이》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기로 하자. 책에 따르면, 마부이는 ‘오키나와에서 영혼 또는 정신을 뜻하는 말로, 사람에게 깃들어 있으며 때로는 몸에서 빠져나가거나 약해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혼령인 셈이다. 《마부이》에 포함된 일곱 단편은 전쟁으로 혼란한 와중에도 오키나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부이’를 회복하려는 이야기이고, ‘우간’은 그 방법으로 채택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군용지의 주인’에서 주인공 히로는 우간을 통해 마치다가 받은 군용지 이용료를 노리던 히코보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묵인경작지’와 ‘섬 마출소 경찰’에는 모두 사고로 추락한 미군이 등장하는데, 우간은 이들이 각각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정신을 되찾게 한다. 한편, ‘귀향’과 ‘군무원’의 젊은 주인공은 우간을 계기로 자아를 찾고, ‘짐 토머스의 여행’에서 참전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오키나와를 방문하게 된 토머스는 우간을 통해 전사한 형 벤의 혼을 잠깐이나마 만나게 된다. 마지막이자 표제작인 ‘마부이’는 조금 특별한데, 우간으로 마부이를 회복하는 내용을 그린 앞서 여섯 편과 달리 ‘마부이’는 도굴꾼 소베 아키오가 우간을 거부한 후 헛것에 시달리는 내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부이를 잃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매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간은, 《오키나와》가 보편적인 전쟁 이야기일 뿐 아니라 오키나와 고유의 이야기이기도 함을 매번 실감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다룬 논픽션 그래픽 노블 《쥐》와 《페르세폴리스》와 비교하자면, 특정한 인물이 주인공인 두 작품과 달리 단편집의 형태인《오키나와》에서는 여러 인물이 번갈아 주인공을 자처한다. 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호흡이 비교적 짧은 셈이다. 몰입감이 떨어진다거나, 서사적으로 덜하다고 느껴진다면, 그러한 까닭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전쟁에 휩쓸린 다양한 군상 사람들의 다양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어 도리어 좋았다. 나는 ‘군무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군사 기지에서 근무하나 정서적으로는 기지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더 가까운 주인공 류코의 입장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 《오키나와》를 살 때 딸려 온 띠지의 문구처럼, 이 책이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잇는 걸작 논픽션이 되리라는 데 나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마무리하며, 오랫동안 덧붙이지 않았던 책 추천을 이어가 본다. 언제인가 유행에 휩쓸려 『망고와 수류탄』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오키나와의 생활사를 조사하는 학자인데, 연구의 과정에서 그가 겪고 느낀 것을 정리한 논픽션이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소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회학에서의 연구방법론 등 이론적인 내용이 제법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점들 덕분에 더 매력적인 책이다. 오키나와에 가본 적은 없지만, 《오키나와》와 『망고와 수류탄』을 연달아 읽고 나면 오키나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