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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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추천] <오사카 환상선> - 2026년, ‘마니아’들의 웹툰 세계가 궁금하다면

웹툰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싶은 당신께 보내는 짧은 추천사. 웹툰의 작품성을 깔보거나, 작품성 있는 웹툰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에 가장 현명한 대응이 뭘까? 쉽게 분노하거나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가치 있는 시도를 하는 작품, 짤막한 요약으로는 갈음되지 않는 여러 미덕으로 가득 찬 <오사카 환상선>을 추천한다.

김후겸


‘웹툰’을 ‘교양’으로 읽을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조합 자체가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디지털 매체의 탄생과 함께 출현한 웹툰은 ‘고상한’ 예술의 반대쪽 ‘트렌디’한 극단에 있는 대중문화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밈(Meme)을 작품 내 대사로 활용한다든가, 독자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여 연재 방향을 수정한다든가 하는 풍경은 우리가 고상한 ‘예술 작품’에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다. 거기에 천편일률적인 스토리까지. 

여기서 교양, 혹은 예술을 찾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지만 얼마 전 SNS 상의 ‘텍스트힙’ 현상의 유행에서도 엿볼 수 있듯, 좀 더 고급의 지적 교양이나 예술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것이 매력으로 통하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현재의 웹툰 플랫폼에서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웹툰을 통해 이제까지의 ‘오락’과는 다소 다른 걸 즐기고 싶은 독자라면, 다소간 막막한 마음으로 교양이 되어 줄 수 있는 웹툰을 찾고 있을 터다. ‘마니아’가 될 그런 사람들에게 작은 길잡이나마 되어보고자 ‘혀나현’ 작가의 <오사카 환상선> (네이버웹툰, 네이버 시리즈, 2025.05~)을 추천한다. 


<오사카 환상선> 표지. [출처 =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12569020, 필자 제공]


작품은 1968년 일본 오사카에 거주 중인 ‘자이니치’, 재일한국인/조선인 소년인 ‘김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용은 조선을 비하하는 일본인 동급생을 폭행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일본인이 야쿠자 ‘아나이’의 조카라는 것이다. 폭행에 대한 보상을 대신해 김용은 아나이로부터 오사카 내 조선인 부락에 침입하도록 사주 받는다. 이 야쿠자는 ‘야마자키’ 건설회사와 밀착한 조직이었는데, 해당 구역에 철도가 들어서려는 걸 조선인 ‘이시범’을 비롯한 부락민들이 막아서서, 이를 치워달라는 건설회사의 용역을 받은 것이다. 김용의 역할은 내부자로 잠입해 그의 신분증을 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곳에 들어간 김용은 이시범과 그의 딸 ‘마루’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생활하면서 차츰 부락민들에 감화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김용은 이시범의 계획을 듣게 된다. 사실 그는 ‘야마자키’ 건설사의 치부가 될 만한 ‘증거’를 찾아낸 상태였다. 이를 가지고 건설사를 협박해 4억 엔을 받아낸 후 부락의 부지를 사들여 재일 조선인을 위한 자치 구역, 곧 ‘새로운 조국’을 만드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이시범의 계획. [출처 = <오사카 환상선> 3화 / 필자 제공]


거기에 감명 받은 김용은 원래의 약속을 포기하고 이시범을 도와주기로 했지만, 일이 틀어져 이시범은 죽게 되고 김용과 마루만 남겨진다. 다만 이시범이 말한 ‘증거’는 그가 여러 명에게 흩어서 나눠 놓은 상태. 김용은 이시범을 잃은 죄책감과 책임감, ‘조국’에 대한 고민 등으로 ‘마루’에게 조국을 선물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거’를 모아야 하는데….

  

<오사카 환상선>은 서사적으로 밀도 있는 작품이다. 연재 중인 작품이라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조선인, 야쿠자, 그 외 등장인물들까지 여러 이해 집단이 등장하고 그 내부의 역학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서사를 취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서사의 인지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물들이 ‘증거’를 모은다는 이정표를 부여하는 전략을 택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다음 ‘증거’가 있는 사람과 장소로 인물들이 이동하면서 국면이 전환된다. 실제로 댓글 창에서 독자들이 “챕터 1”, “챕터 2” 등 서사를 분절적으로 받아들여 작품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모습에서 이 전략은 성공한 듯 보인다. 

이 전략은 나아가 주제적으로도 중요하다. 김용이 이시범의 지인들을 만나는 과정이 곧 그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둘의 행적은 ‘남과 북 둘 다 갈 수 없는’, 혹은 왜 둘 중에 하나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조국’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에서 겹친다. 이는 김용이 청소년으로 설정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자이니치이자 사춘기 소년인 김용이 ‘조국’에 대해 고민하는 건, 곧 ‘고향’에 대한 고민이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물의 대사라기보다는 작가의 코멘트라고 느껴지는 아나미의 지적. 아나미는 여기서 자신의 역할을 이 도시의 ‘중심’(일본인)과 ‘주변’(소수자)의 조율자를 자임한다. [출처 = <오사카 환상선> 3화. 필자 제공]

  

이 작품은 나아가 그러한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며, 다른 정체성과 맞부닥칠 때도 있다는 것까지 지적한다. “이 도시”(오사카)는 류큐(오키나와)인, 대만인, 조선인 등의 민족, 남성과 여성의 젠더, 한국과 조선의 이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체성들이 교차하는 장(場)이 된다. 작품은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를 어떤 ‘정체성’으로 정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오사카라는 공간, 1968년 당대 일본 역사, 조총련을 비롯한 당시 자이니치 커뮤니티까지, 일반적인 웹툰 독자에게는 익숙지 않은 정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배경지식’에 당신이 겁먹기 전에 이 작품이 ‘웹툰’ 플랫폼에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급히 덧붙이고자 한다. 같은 매체적 특징이라도 작품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작품에서 댓글은 작가를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대로 진행하도록 하는 압박의 수단이 아니라 정보 공유의 장(場)이 된다. 매 화 댓글에는 작품에서 각주가 달리지 않은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부정확한 정보는 대댓글을 통해 반박되고 교정된다. 이제 첫 문장에 대한 답변을 잠정적으로나마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오사카 환상선>은 바로 웹툰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교양이 될 수 있다.

웹툰의 작품성을 깔보거나, 작품성 있는 웹툰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에 가장 현명한 대응이 뭘까? 필자의 답은, 쉽게 분노하거나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가치 있는 시도를 하는 작품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이 짤막한 요약으로는 갈음되지 않는 여러 미덕으로 가득 찬 작품 <오사카 환상선>에 좀 더 시선이 가닿을 수 있기를 소박하게나마 바라본다. 


필진이미지

김후겸

2004년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웹툰 <목욕의 신>을 접한 이후로 웹툰에 애정을 가지고 읽고 있다. 문단 문학만 좋아하는 지인들, 일본 만화만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틈날 때마다 작품성 있는 웹툰을 즐겁게 '영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