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넘어 노력으로, 라이벌을 넘어 친구로

스포츠물의 조건
스포츠 만화에는 왕도가 있다. <슬램덩크>, <하이큐>, <가비지타임>, <빌드업>까지, 왕도를 따르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성장에 핵심을 둔다. 뛰어넘어야 할 1등, 성장을 자극하는 라이벌, 설명을 맡는 인물(이른바 스피드웨건), 저마다의 사정을 지닌 동료들. 이 구성이 빠지는 스포츠 만화는 사실상 없다. 다만 종목에 따라 무게중심은 갈린다. 농구·축구 같은 팀 스포츠가 전략과 팀워크로 승부한다면, 테니스·탁구·유도 같은 1대1 스포츠는 결국 개인에게로 수렴한다. 한 팀에 속해 있어도 팀 단위로 겨루지 않고, 팀은 응원과 연습 상대가 되어줄 뿐 그 안에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1대1 스포츠물에서는 라이벌이, 그 적대적 상대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이야기의 심장이 된다.
<펜홀더>는 이 학원 스포츠물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기 스포츠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던 한이연은 이수린에게 패한 뒤 탁구에 빠져들고, 그를 이기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며 전국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상대를 하나씩 넘어서는 동안 한이연의 탁구는 '이기기 위한 탁구'를 넘어, 공이 오갈 때 상대의 탁구까지 읽어내는 데로 나아간다. 초보였던 그가 재능과 노력으로 전국의 강자들을 꺾어가는 과정, 그리고 한낱 내기 도구였던 종목이 자신의 철학을 담는 ‘업(業)’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은, 우리가 도구라 여기는 것들에도 철학이 깃들 수 있음을 믿게 한다. 주인공보다 상대를 조명하며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나가는 전형성은 일본 농구 만화의 고전 중 하나인 <소라의 날개>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익숙한 클리셰이기에 오히려 옛 만화를 읽는 듯한 향수마저 든다.
학원 스포츠물의 미덕은 승패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기든 지든 그 결과가 이후의 성장 동력으로 되살아나고, 그 동력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함께 뛰는 학교 친구들이 있다. 결국 이 장르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성장의 계기가 되는 친구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대할 것인가. 친구는 동급이기에 열등감을, 자만을, 호승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의 재능을 부러워할 수도 질투할 수도 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실패와 성공을 통해 우리를 길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펜홀더> 연희고의 최고 실력자 셋은 모두 친구 때문에 탁구를 시작했다. 한이연은 동급생인 줄 알았던 이수린에게 졌기 때문에, 반해원은 친구 정태성이 시작했기 때문에, 김도진은 박유한에게 졌기 때문에 라켓을 잡았다.

성장, 재능과 노력 사이에서
<펜홀더>가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의 서사만큼이나 그가 상대하는 인물들의 과거를 깊이 파고든다는 데 있다. 저마다 탁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결코 질 수 없는 사정들이 촘촘히 그려진다. 전국대회 후반부에 한이연이 만나는 상대들, 김소희부터 김재원, 남궁호, 홍시영, 김도진까지, 그들에게 할애된 분량은 오히려 한이연에게 주어진 몫보다 많다. 한이연의 승리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만큼 이 작품이 공들이는 것은 극적인 승리가 아니라 극적인 패배다. 그리고 그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어린 시절의 패배가 어떻게 더 큰 성장의 동력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은 변동하는 랭크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의 성장과 슬럼프를 보여주거나 탁구 지식을 중간중간이나 끝에 조금씩 넣어주기에 탁구를 즐기지 않는 독자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작품은 이렇게 분명한 열혈 스포츠물이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주제는 여전히 묵직하다. 재능과 노력, 선천과 후천이 빚어내는 결과 말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탁구에 진심이되, 제 재능을 노력으로 꽃피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재능 자체가 없어 꽃피우는 일조차 요원한 이들이다. 그런 노력이 한이연의 재능 앞에 스러져 가는 광경은, 정작 한이연의 승리가 늘 아슬아슬한 것과 대비되어 천재 주인공 앞에 모두가 허무하게 쓰러지는 <더 복서>가 떠오를 만큼 안타깝다. 여러 구기 종목에 재능을 보였다지만, 탁구를 배운 지 반년 된 사람이 국가대표의 아들마저 꺾는 광경 앞에서 그를 '재능보다 노력이 앞선 사람'이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수린이라는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 모두가 좌절하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이 좌절의 핵심은 한이연이다. 최연소 국가대표에게 지며 벽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것이 탁구를 그만둘 만한 개연성이 되지는 못한다. 최연소 국가대표는 공부로 치면 영재고 수준이 아니라 이미 석·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경지다. 날고 긴다는 영재고 학생이라 해서 그런 상대에게 좌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년 공부하고 들어와 자기보다 시험을 잘 보는 동급생에게 더 큰 좌절을 느끼는 법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했던 이수린과, 고등학교에 이르러 시작하고도 금세 자신을 앞질러 버린 한이연. 둘 중 누가 더 뼈아픈 존재일지는 자명하다. 그래서 진짜 '노력의 아이콘'은 오히려 김도진에 가깝다. 독자들의 반응 역시 김도진 대목부터는 '이번엔 김도진이 이겨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다. 한이연이 끝내 우승까지 차지하면 재능이 모든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셈이라, 주인공의 우승을 바라는 목소리보다 상대편인 김도진이나 이수린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학교라는, 실패해도 되는 장소
학창 시절, 굳이 스포츠가 아니어도 공부나 예체능에서 마주하는 재능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재능은 재미를 낳고, 재미는 성장의 효율을 낳는다. 잘해서 재미있는 쪽이 못해도 재미있는 쪽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 물론 재능이 있어도 주변의 압박에 재미를 잃을 수 있다. 국가대표의 아들 남궁호가 꼭 그런 경우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재미도 사라진다. 학생도 다르지 않다. 이겨야 하는 경쟁 속에서, 공부를 그리 하지 않은 친구가 더 잘하는 것 같고 제 노력은 물거품처럼 느껴진다. 나보다 못하던 아이가 어느새 앞서가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온다.
바로 이 감정이야말로 <펜홀더>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이연의 노력보다 상대들의 노력을 더 도드라지게 그린다. 아닌 척하면서 누구보다 애쓴 김소희, 무언가 될 때까지 쉬지 않은 김도진, 아픈 몸을 이겨가며 매달린 홍시영. 이런 분투가 가장 치열하게 타오르는 시기가 바로 학생 때다. 성인이 되면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취업과 승진을 두고 겨루지만, 학생은 얼굴을 아는 친구와 겨뤄야 한다. 그렇기에 친구와의 경쟁에서 어떤 마음을 품느냐가 곧 자신의 성장 방향을 결정한다. 공부든 그림이든 악기든, 우리는 학생 때 가장 많이 경쟁하게 된다. 그때의 질투도 부러움도 제 힘으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은 바로 그 시절에 길러진다. 학생 때 한 번의 실패가 기회라면, 성인이 된 뒤 한 번의 실패는 무너짐에 가깝다. <펜홀더> 속 인물들이 한이연과 다시 맞붙었을 때 자신이 지리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든지 이길 기회가 학생 때는 있기 때문이다

권토중래(捲土重來)는 한이연만의 말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말이다. 다시 흙먼지 속에서 일어나 맞설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서 그리고 우리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배울 수 있어서 우리가 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성장할 수 있다.